
출처 : 여성시대 프림커피
여-하! (여시 하이라는 뜻)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내가 좋아하는 감독 영화라서 개봉하기 전부터 기대했었는데, 기대만큼이나 영화가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라서 오랜만에 또 길게 영화 리뷰 겸 추천 후기를 써서 가져와봤어!!
후기들을 보면 영화가 호불호도 꽤 갈리는 것 같던데, 리뷰가 뒷북인 감은 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재밌게 본 여시들이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여시들이 봤을 때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래로는 내가 다른 SNS에 영화 리뷰를 써서 올리는 지라, 말투도 좀 딱딱하고 내용이 길 수 있는데 그래도 편하게 읽어주길 바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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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사랑처럼, 무형(無形)의 아름다운 동화.

나와 다른 대상을 만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뉜다. 대상을 더 알아가려고 하거나, 그 대상을 배척하거나. 전자는 쉽지 않은 길이다. 다름은 무지를 수반하며, 무지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두려움을 이겨낸 후에도 대상에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쉬운 배제보다, 쉽지 않은 이해를 선택한다. 그 고단한 길 너머 ‘이해’가 주는 기쁨 때문이다. 다름을 이해하게 될 때, 나 자신도 다름으로부터 이해받게 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극단의 두 갈래 길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우화다.
영화의 주인공 엘라이자는 농아다. 들을 줄 알지만 말하지 못한다. 이유는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있었던 목덜미의 상처가 그녀가 가진 유일한 유년의 흔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엘라이자를 쉽게 동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저녁 9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계란을 삶으며 출근을 준비한다. 목욕을 하면서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고, 음악 소리에 맞춰 발을 굴릴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에는 자신의 일상과, 일, 즐거움이 생활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낯선 생명체가 들어온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시대. 미 항공 우주 연구센터에서 청소 노동자로 근무하던 엘라이자는 수조에 갇힌 괴생명체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둘은 닮았다. 말할 수 없으며, 세상의 일반적 기준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들이다. 둘 사이에는 언어 대신 몸짓과 눈빛이 자리한다. 계란을 나눠먹으며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에게 ‘계란’을 수화로 설명해주지만, 그들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언어는 부가적인 역할은커녕 그 필요성이 사라진다. 음악을 들려주고 춤을 추며,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맞대는 모든 교감에서 언어의 빈자리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지칭할 수 없고, 형언될 수 없는 무형(無形)의 것이다.
주류 사회에서 벗어난 존재는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엘라이자의 가장 친한 동료인 젤다는 흑인이며, 그녀의 이웃 자일스는 동성애자이고, 영화의 후반에 디미트리는 소련 출신의 외국인이다. 모두 미국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소외자들인 셈이다. 이 영화를 동화처럼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는 이들의 연대다. 연구센터에서 고통받는 괴생명체를 구하기 위해 네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합쳐 탈출 계획을 성공시키는 순간이 그렇다. “이름도 계급도 없는” 이들의 연대는 물처럼 정형되지 않은 인류애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로맨스극이 그렇듯, 이들의 사랑과 연대에도 훼방꾼이 있다. 상류층 백인 남성인 스트릭랜드. 그는 주류 사회의 정점에 속한 사람이다. 이를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이 “신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고 믿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과 멀리 있는 이들을 멸시한다. 스트린랜드가 상정하는 세계에 무형(無形)의 존재란 없다. 신의 존재부터, 그 자신이 성애하는 침묵. 그리고 녹색과 청록색의 차이를 강조하며 자기가 새로 산 차의 색깔이 ‘청록색’임을 강조하는 것까지. 정형돼 있으며 배타적인 스트릭랜드의 언행에는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의 태도가 묻어난다.

영화의 제목, 비 내리는 창가, 괴생명체가 살고 있는 수조. 영화의 주요 제재인 물은 따로 형태가 없다. 무형(無形)이기에 언제, 어디에든 존재하며 무엇과도 부드럽게 어울릴 수 있다. "당신의 모양을 알 수 없어요. 내 주변엔 온통 당신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오래된 시처럼,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 위해선 물처럼 정형되지 않은 사랑이라야 가능하다. 사랑의 형태를 재단하고, 사랑의 모양은 이래야 한다고 단언하는 순간, 사람은 내가 정한 경계 밖의 사랑을 배척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 모든 차별과 폭력이 시작된다. 스트릭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당신’이라면. 마치 물처럼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는 사랑의 힘은 엘리이자의 유년의 상처까지 ‘아가미’라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으로 승화시킨다. 배척이라는 쉬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그들만의 행복이다. 아름다운 동화의 해피엔딩은 쉽지 않은 ‘이해’의 길 끝에 펼쳐져 있었다. 영화는 우리에게 부드럽게 전한다. 그 이해는 정형이 아닌, 무형에서 시작된다고.
첫댓글 여시야 글 잘 읽었어 ㅜㅜㅠ 나도 물은 형태가 없으니까...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고 생각해
오늘 봤는데 영화 진짜 좋았어ㅜㅜ 여시 글 잘썼다..!
여시야 글 너무 잘봤어!
여시 글진짜잘쓴다....!!!!
다시 그때의 기분과 영상이 떠오른다 :) 좋은 후기 고마워
와 진짜 글 잘쓴다... 후기 잘읽었어 ㅜㅜ
영화보고 여시글읽으니까 여운이 배가되는 느낌이야ㅠㅠ 좋은 글 잘봤어!!!
와 글 너무 읽기 찰져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읽으면서 다시 새록새록 생각나ㅠㅠㅠㅠ글 잘읽었어 여샤
여시야 여시글보니까 한번 더 보고싶어졌다 예매하고올껨
사랑은 어떤 형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형인 것이다.
나도이거읽고나니까 더잘이해된다!!! 너무고마워 나도 길예르모감독님넘나좋나하는데 다른영화에대한 글도 있으면 부탁해도될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04 02:0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04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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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05 14:26
여시야 글 잘읽었어!!! 글 너무너무 잘쓴다 여시
영화보자마자 여운이 남아있을 때 여시글로 마무리를 짓는 거 같아 덕분에 영화가 내게 더 진하게 남는 거 같아 고마워 잘 읽었어
여시 글 잘쓴다 ㅠㅠ 청록색 강조하는 부분 나는 보면서 지나쳤었어 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04 07:42
와ㅠㅠㅠㅠㅠ 이거 책으로 내주라ㅠㅠㅠㅠ진짜ㅜ대벅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최고시다ㅠ역대급
영화 너무 좋았어!! 나는 여주가 신발을 많이 가지고 있고 탭댄스를 추는 모습 보면서 ‘발 혹은 다리’에 대한 애정, 누군가 목소리를 잃게 만들어 남은 흉터, 물에서 주워온 것 이 세가지 봤을 때는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생각났었어ㅜㅜ
영화엔딩장면에선 정말 나도 모르게 뉸물이ㅠㅜ 오에스티도 너무 좋았고 정말 오랜만에 넘나 좋다좋다 싶은 영화를 봤어
이거 진짜 너무 좋았어 진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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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댓글 너무 늦게봤다...ㅠ 여샤 여시가 나보다 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박사인듯!ㅋㅋㅋ 나는 여시가 본 것중에 헬보이를 안봤어ㅠㅋㅋ 악마의 등뼈 유명하던데(나도 아직 안봤지만) 덕분에 추천 얻어가 ~.~
여시 글 읽으니까 여운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 영화는 왜이렇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난진짜재밌게봤어ㅠㅠ.. 노래도좋고
전체적으로 너무 만족
머릿속으로만 맴돌고 말로 정리 안된것을 딱 정리했당 멋졍!!!!
영화볼 땐 좀 이해안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제 그게 다 해소되는 기분이다!! 여시 글 너무 멋져!ㅠㅠ
셰이프오브워터 보고싶어서 후기 찾았는데ㅠㅠ 여시 후기 너무 좋다ㅜㅜ 영화 보고와서 다시 봐야지ㅠㅠㅠ
진짜 좋은 후기다 여시 후기 읽으니까 영화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생각나 좋은 글 고마워!
헐 여시가 쓴거야..?영화 평론가 해주라..ㅠㅠ
나는 청록색이 괴생명체/순수한 사랑을 뜻하는것같아..! 영화가 보여주는 색감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고
중반인가? 초반쯤에 엘라이자 자켓에 영롱한 청록색 브로치가 달려있었던것같아.
그리고 스트릭랜드가 새로 뽑은 청록색 캐딜락은 결국 비주류 특공대들에 의해 망가지잖아..! 물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움은 그는 절대 갖지 못하는 것같았어...!
음... 글쎄 순수한사랑을 상징하는 색은 빨강이 아닐까? 엘라이자는 영화 내내 갈색이나 푸른계열의 옷을 입는데, 괴생명체랑 처음 사랑을 나눈 다음 날부터 엘라이자의 머리띠랑 옷에서 빨간색이 두드러지기 시작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선 괴생명체와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날 머리띠부터 발 끝까지 빨간색 옷과 구두를 착장하고. 녹색은 괴생명체를 뜻할지 몰라도 청록색은 완전 배제의 색깔이지..! 스트릭랜드는 녹색이 아니라 '청록색'임을 분명히 구분하고 강조하거든ㅎㅎ 자일스가 사랑에 실패할 때 즈음 그림에서 빨간색으로 그렸던 젤로를 초록색으로 바꿔그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고...!
@넷풀릭수 자일스가 좋아하던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남성이 일하던 파이집에서 자일스가 계속 사먹었던 파이 색깔 기억나? 그것도 초록색..!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던거지..! 난 오히려 색깔의 대비로 봤을 때 사랑을 상징하는 색은 빨간색이라고 느꼈어ㅎㅎ
@프림커피 아 그렇구나...!빨간색을 너무 간과했어...!
@프림커피 괴물이 청록색이라 뭔가 큰 뜻이 있을 쥴..ㅠㅠ
여시 후기 정말 잘봤어 ㅜㅜㅜㅜ 나도 다시 많은걸 생각하게 된다 ㅜㅜ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10.21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