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장애인 공약 기자회견/장애인 차별철폐 결의대회/최옥란 열사 2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가했던 글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집회 보고글은 아니고, 고양이가 보았던 몇 가지 인상적인 삽화들을 자유로이 적은 개인적인 글입니다. 중요한 사건들이 빠졌다거나 꼭 들어가야 할 것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고양이 홈페이지/진보누리/민주노동당 게시판에 실립니다.
일정은 11시 기자회견부터. 비례대표 후보경선 후 몸살감기에서 위를 완전히 버린 고양이는 간신히 죽을 먹고 출발했습니다. 박경석 장애인 이동권 연대 대표님의 반가운 얼굴이 먼저 보였습니다. 못본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박 대표님은 젊었을 때 여자깨나 울렸을 법한(...) 카리스마와 멋을 지니신 분입니다. 새치와 검은 머리가 거의 반반씩 섞인 긴 머리를 하나로 뒤로 묶으셨고, 체구가 큰 편은 아니신데 검은 외투만 입어도 몸에 쫙 붙는 가죽 잠바를 입은 터프한 폭주족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경찰들 앞에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자후를 토하고 쇠사슬로 몸을 묶는 결사투쟁도 마다하지 않으시지만 연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할 때는 말 끝에 애교스럽게 '그죠?'라고 덧붙이십니다 ^^; 그리고 천영세 후보님과 심상정 후보님, 김종철 대변인 등이 나와 계셨고요. 그외 당 상근자들과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 동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 임시대표이자 장애아동부모연대에 계시는 박인용 동지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기자회견을 조금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장애인 공약 발표 등을 생략하며 천영세 후보님의 인사말과 그외 기조연설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서약의 의미로 '차별철폐 평등사회'라고 씌어진 노란 천 위에 검푸른 잉크로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빠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골때리는데, 집회를 위해 설치하던 무대가 방해를 받은 것입니다. 한 50명 가량 모인 집회 준비에 갑자기 500명은 되어보이는 전경들이 우르르우르르...그리고 종로경찰서 정보계장인가 하는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무대는 미신고물품이므로 설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핑계도 덧붙였습니다. "6시 문화제에 쓸 무대 설치다." "일몰 후 문화제는 법적으로 신고할 의무도 없는 거 아니냐" "민주노동당은 분명 2시 집회신고를 했다." "통행에 방해는 인도 막고 있는 전경들이 더 방해다" 등의 항의를 하자 "이렇게 여기저기서 마구 이야기를 하면 어떡하냐"면서 전경의 벽 뒤로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면서 전경으로 밀어붙여 이미 조금 설치되어 있던 무대를 해체해 버리고, 나중에는 종로구청에 연락해서 해체된 무대를 싣고 간다고까지 했습니다. 이때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몸싸움이 벌어지는데, 인상에 남는 장면 하나. 오옷! 이쪽저쪽 몸으로 밀어대는 전경과 마주하게 되자 심후보님은 멋진 발차기를 날리셨습니다. 그 발차기가 그대로 전경의 엉덩이에 작렬! 카메라를 잘 다룬다면 반드시 찍어놓고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장애인 동지들의 투쟁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전동 휠체어 속도를 높이고 전경의 방패벽에 달려가 뻥 부딪칩니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치는' 거지요. 몸을 사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에 대항하는 전경들의 투쟁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싸움은 기본이고 나중에 허락이 떨어지자 휠체어 채로 하나씩 떼어내서 들고 나오고, 휠체어에서 떨어진 사람이 있어도 대오를 흐트리지 않고(!) 밟을 위험을 의연히 감수했습니다. 여성 장애인 같은 경우 "몸 만지지 말고 휠체어 들어!" 같은 신사도(?)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고양이 쥐생각한다는 속담 말고 다른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덩치가 꽤 있어보이던 백인 하나도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감을 못잡고 뒤에서 얼쩡거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감을 잡았나 봅니다. 경찰들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뭐라고 막 합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세종문화회관을 가리키며 "Evil, evil empire!!!"라고 소리칩니다. 세종문화회관을 경찰청 쯤으로 안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합니다. 백인이라 그런지 아니면 외국인들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어서 그런지, 정보계장은 얼굴을 찌푸리고 "아저씨 가요 가!" 하고 맙니다. 그 외국인은 한 30분 정도는 더 자리를 지켰던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이쪽저쪽에서 작은 몸싸움과 실랑이를 하면서 4시까지 집회를 간신히 마치고 박경석 대표님과 4.20 투쟁 공동대표단이 고건 총리를 만나러 가는 것을 확인한 후 6시 문화제 전까지 잠시 시간이 남았기에 고양이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이 너무 추웠기 때문입니다. 돌바닥에서 올라오고 돌건물에서도 팍팍 풍겨오는 듯한 냉기 때문에 감기가 도지는 것 같았거든요. 집에 들어와서 당 잠바 색과 똑같은 주황색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오자 좀 살 것 같았습니다. 아아...3월 말에 오리털 파카라니. 하지만 추운 걸 어떡해. ㅠ.ㅠ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앞에 다시 오자 이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까만 해도 집회 터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었던 전경들이 저그 텃밭처럼 증식하여 세종문화회관 앞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당 잠바의 주황색과 공동투쟁티셔츠의 푸른 색이 드문드문 가냘프게 그 안에 몰려서 있습니다. 격분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공태윤 동지를 만나 '어떻게 된 거예요?'하고 물었더니, 4월 20일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의 날까지 예정된 철거농성 준비물품을 늘어놓자 전경들이 몰려들었다는 겁니다. 준비했던 의자는 어디론가 치워지고 스티로폼 매트는 뜯겨지고 날아가고, 제대로 끼니를 못 먹은 참가자들을 위해 주최측이 나누어 주던 김밥은 은박지채 내팽개쳐졌습니다. 전경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몸 장벽으로 분리하고 정말 저글링들처럼 달라붙어 장애인 동지들을 뜯어내 열 밖으로 내칩니다. 그 와중에서도 "야 이새끼들아 우리 가난한 단체야. 저거 다 돈인데 너네 저거 가져가서 돌려주지도 않을 거잖아."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외쳤던 어느 장애인 동지의 날카로운 해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열은 한번 완전히 해체되었지만, 어찌저찌 공간이 다시 확보되고(당연히 확보되어야죠! 합법적인 집회를 어딜 몸으로 막아!) 모두 대오를 갖추어 앉아 추모 집회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홍보 기획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이지안 동지도 이때쯤 합류. 이때가 여섯 시 반쯤 되었을 때인데, 고양이는 무척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럭저럭 달래놓았다고 생각하던 위가 마구 아파오는 것입니다. 혹시 당 이름으로 발언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버텨야 하는데...버텨야 하는데...포기. 모든 발언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고양이는 결국 못견디고 자리를 떴습니다.(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뒤편에서 얼쩡거리다 가슴이 찡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최옥란 열사의 생전 투쟁 모습을 담은 영상을 프로젝터로 상영하고 있었는데, 대열 뒤쪽, 세종센터 앞쪽에서 엄마와 머리를 귀엽게 땋은 여섯 살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함께 그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떤 장면은 차마 못 보고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기대고 울고, 엄마는 아이를 치마폭에 꼭 감싼 채로 눈물이 그렁그렁ㅡ 보는 저도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이렇게 고양이의 집회 참가 스케치는 끝입니다. 돌아와 이지안 부장과 메신저를 하니 정평 연대사업부장과 박경석 대표님, 그외 많은 분들이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끝까지 같이 하지 못한 것이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첫댓글 이 글을 쓴 분은 소설가 송경아 씨라고 합니다. 진보누리에서 고양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쓰곤 한다고 해요.
http://420.or.kr/ 에 가시면 장애인차별철폐 1000인 선언단에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