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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뚝심이 김정은에게도 통했다. 1차 협상 10시간, 2차 협상 34시간에 걸친 남북 고위급 회담 끝에, 북측은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던 목함지뢰 폭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연 4일에 걸친 강행군으로 인해 확연하게 초췌해진 표정으로 8월 25일 02:00 청와대에서 직접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6개 항으로 된 남북합의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빠른 시일 내에 서울 또는 평양에서 여러 분야에 걸친 당국자 회담을 개최한다.
2. 북측은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병사들이 부상을 입은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3.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남측은 오늘 정오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
4. 북측은 오늘 정오를 기해 준전시상태를 해제한다.
5. 다음 달 중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간 회담을 진행한다.
6.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교류를 실시하도록 노력한다.
2항에 대해서는 북한이 자기들 소행이라고 직접 시인한 대목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좌파언론을 필두로 깐죽대기 좋아하는 여러 부류의 인간들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들이 한 일도 아닌데 유감을 표명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저들의 억지는 항상 비논리적이었다. 남북이 양쪽 군대를 총동원해놓고 벼랑끝 회담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문재인‧박지원‧이재명(성남시장) 등은 김정은에게 잘보이기 위해 교묘하게 딴지를 건 바 있다.
3항은 우리 측이 처음부터 강력하게 주장한 재발방지 약속이 포함된 합의사항이다. 이 대목 역시 좌파들이 시비를 걸겠지만,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문항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의 전제조건이다. 즉,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방송을 재개하겠다는 우리 측 의지를 담음으로써 재발방지 약속을 회피하려는 저들의 처치를 존중해주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한 수준 높은 문항이다.
두 가지 점이 통쾌하다. 첫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회담 당사자의 격을 대등하게 맞춘 것이다. 저들은 처음 김양건의 파트너로 김관진을 요구했다. 이에 우리 측에서 황병서를 요구하여 김관진과 격을 맞추면서, 김양건의 파트너로는 홍영표 통일부장관을 대동했다. 우리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을 거치는 동안 늘 저들보다 한 급 높은 당국자를 회담 테이블에 앉힘으로써 저들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억지에 동조해왔었다. 둘째는 전면전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다. 영국의 대처나 독일의 메르켈에 못잖은 철의 여인이다.
전역을 앞둔 사병 50여명이 전역 연기신청을 하고 수많은 예비군들이 군복과 전투화를 준비해놓고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가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점 또한 이번 사태에서 얻은 든든한 국방자산이다. 국민의 의지와 단결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협력이 이뤄지고,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철도와 도로가 개통되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우리의 산업시설에 직접 연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어 남북이 함께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러시아의 우랄산맥은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산맥은 북극해에 이르러 면적 9만㎢의 노바야젬랴섬으로 솟아올라 머리에 빙하를 이고 서 있으며, 남으로는 카자흐스탄의 ‘노래하는 사막’까지 뻗어 있다. 우랄산맥 서쪽의 유럽지역은 러시아의 핵심부로서 광대한 러시아평원이 펼쳐져 있다. 농업생산성이 높은 평원의 한복판에 모스크바가 자리잡고 있고, 서쪽 끝 발트해 연안에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장엄하게 서 있다. 평원을 가로지르는 볼가강 연변에는 산업도시가 도열해 있다.
우랄산맥의 동쪽으로는 1310만㎢에 이르는 시베리아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시베리아(타타르어로 ‘잠자는 땅’이라는 뜻)는 한반도 면적의 60배에 이른다. 소련 공산주의 70여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추운 이 동토에서 3천만~6천만 명의 ‘죄 없는 죄수들’이 고문과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이 광활한 대지를 서쪽 야로슬라브스키에서 동쪽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9297km의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달리고 있다. 횡단철도의 중간 기착지인 이르쿠츠크 동남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깊은 바이칼호가 있다. 바이칼호에서 가장 큰 알혼섬은 한민족의 조상인 코리족(코리아의 어원)이 살던 곳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순록의 먹이인 이끼[鮮]가 자라는 곳을 따라[朝] 한반도까지 이르렀다. 단군은 이를 좇아 국명을 朝鮮이라고 지었다. 시베리아의 동쪽 끝에는 20여개의 활화산이 쉴 새 없이 화산재를 뿜어내는 캄차카반도가 있다.
러시아는 거대한 영토 덕분에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특히 1991년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석유와 천연가스는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을 감당한다. 러시아는 20세기 초 중공업정책을 시행할 때 이미 석탄과 철광석을 비롯한 모든 자원을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소련이 자체 제작한 무기를 앞세워 히틀러의 침공을 격퇴한 것도 풍부한 자원 덕분이었다. 소련은 이후에도 기차‧자동차‧비행기‧트랙터 등 공산품에서 개인화기‧탱크‧잠수함‧전투기 등 첨단 무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체 개발했다. 1950년대에는 최초의 인공위성과 최초의 유인우주선까지 잇달아 발사하여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권력자들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 확고한 뒷받침이 되었으며, 제3세계에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미국의 턱밑에 미사일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도 후르시초프의 뒷배를 단단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었다. 비효율적인 공산주의식 생산성으로는 가격경쟁에서 서구의 제품을 이길 수 없었다. 강제동원된 기술자와 노동자들의 솜씨는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권력자들도 굳이 세계시장을 겨냥하지 않고 자만에 빠져 있다가 끝내 몰락의 길을 걸었다. 농산품이나 소비재 생산의 경우도 생산성의 극대화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할당을 통한 형식적 체제를 고수했다. 특정 지역에 관료들이 탁상에서 정한 특정 제품을 할당해주고 생산하도록 했으니 제대로 관리가 이뤄질 수 없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민주주의 제도에 의한 러시아가 탄생하기는 했지만, 오랜 타성에 물들어 있던 관료들이 시장경제체제를 숙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과 희생이 요구된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이러한 과도기를 지탱할 수 있는 대자연의 선물인 셈이다. 특히 러시아는 에너지의 블랙홀인 유럽‧중국‧한국‧일본 등과 이웃하고 있어 판로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러시아의 지도자는 지금이라도 1998년에 겪은 모라토리엄을 잊지 말고 석유와 천연가스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러시아의 문제는 이미 진단이 내려져 있다. 아직도 국가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법체계가 불안정하고 제도가 미흡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다.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든 부패는 범죄와 형제간이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데도 권력과 밀착한 극히 일부의 부유층들은 세계에서 가장 호화판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다. 비록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었다고는 하지만 현대판 차르인 푸틴은 제멋대로 대통령-총리-대통령을 오가며 권력과 부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당연히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은 노른자위를 독점한 채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광주시민의 98.5%가 김대중에게 표를 몰아주었듯이, 어리석은 러시아 국민들도 그러한 푸틴에게 계속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광활한 영토는 러시아의 자랑이자 관료들에게는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짐이다. 러시아에는 제정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시절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개발할 청사진을 제시한 유능한 관료가 없었다. 크림공화국 합병처럼 영토 확장 욕심만 있었지 모든 국토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개발할 아이디어는 없었다. 현재의 관점에서 봤을 때 1867년 러시아제국이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넘긴 것은 경제적으로 불용국토 처분이라는 훌륭한 결정이었다. 러시아는 지금도 주변국들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1991년 15개 공화국을 독립시켜주듯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핵심지역만 남기고 다른 지역은 독립을 시켜주는 게 먼 장래를 위해 유익할 것이다. 2014년에 합병한 크림반도도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처럼 언제 부메랑이 되어 러시아의 국익에 손상을 끼칠지 모르는 일 아닌가.
러시아연방은 22개 공화국, 46개 주, 9개 지방, 1개 자치주, 3개 지방시 등 복잡한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행정적 위계는 국가적 중요도와 수도로부터 거리 등을 감안하여 설정했지만 다분히 탁상공론이다. 수도로부터 거리도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요도 역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족벌의 입김도 위계 설정에 깊이 작용했다. 2012년 대통령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끌어내리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 푸틴은 전 국토를 7개로 나눈 연방관구를 설치했다. 2010년에는 체첸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남부연방관구에서 분리하여 8번째 연방관구인 북캅카스연방관구를 신설했다. 2014년에는 크림공화국을 합병하여 9번째 연방관구인 크림연방관구로 삼았지만 어느 나라도 승인하지 않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는 크림반도를 상굿도 우크라이나의 크림공화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남부연방관구에 집단 거주하는 체첸人들의 독립의지는 뿌리가 깊다. 체첸人들은 2차대전 중 독일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민족 전체가 기차에 실려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대부분 목숨을 잃은 아픔이 있다. 이후에도 공산정권은 체첸人들에게 혹독한 압제를 가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체첸人들도 독립을 선언했지만 당국은 즉각 무력으로 진압했다. 2010년 남부연방관구에서 북캅카스연방관구를 분리한 것도 북쪽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캅카스산맥의 북쪽 사면에 흩어져 살고 있는 체첸人들은 러시아 전역에서 테러를 자행하면서 끈질기게 동료 석방과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8만 이상의 병력을 상주시키며 체첸人들을 통제하고 있지만 세계 무슬림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체첸人들이 쉬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캅카스산맥의 북쪽 사면에 위치한 6개 자치공화국의 수십 개 민족 가운데는 체첸을 도우는 무리도 있어 러시아 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체첸人들의 테러가 계속되자 1999년 말 푸틴은 군대에 체첸 공격을 명했다. 체첸은 즉각 독립을 선포하고 러시아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지만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수도 그로즈니는 쑥대밭이 되었고 수십만 주민이 죽거나 다쳤다. 체첸 반군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러시아 전역에서 테러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2002년 10월에는 41명의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의 한 극장을 점거하여 관객들을 인질로 잡고 체첸 독립을 요구했다. 교전 끝에 관객 130명과 체첸 반군 중 일부가 사망했다. 이후에도 체첸 반군은 계속 테러를 벌여 2004년 2월 모스크바 지하철 폭파로 41명 사망, 5월 그로즈니 경기장 좌석 폭탄 설치로 그로즈니 카디로프 대통령 암살, 6월 잉구셰티야 경찰시설 폭파로 100명 사망 등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2004년 9월에는 북오세티야의 한 학교에서 학생‧교사‧부모를 인질로 삼아 러시아군과 교전 중 양측에서 37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그러나 테러를 지원하던 세력도 하나둘 등을 돌리는 형편이라 체첸의 독립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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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로 간다
지금의 내 버킷리스트 1번의 땅으로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