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5. 큐티
시편 108:1 ~ 5
마음을 정한 자의 찬양
관찰 :
1) 표제어
- 다윗의 찬송시 => 본 시편의 표제어에는 저자가 다윗이란 사실과 찬송시라는 것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본 시편은 다윗이 쓴 시편 57:7 - 11과 60:5 -12의 두 부분을 합하여 하나의 시로 이루어졌습니다. 시편에는 하나의 시가 두 개의 시로 나뉜 경우가 있고(42, 43편), 두 개의 시가 하나의 시로 합쳐진 경우가 있습니다(9, 24, 27, 36편). 그러나 두 시의 일부를 합하여 하나의 시로 만든 경우는 시편 108편 본 시편이 유일합니다. 본 시에 대해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를 받는 중에 익명의 편집자가 과거 다윗이 쓴 두 시의 일부를 발췌하여 구원과 승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기 위하여 조합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두 개의 시 일부가 합쳐져서 구성된 혼합시 이지만 구성상 어색함이나 이질감이 없이 내용의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내용과 주제가 유기적 통일성을 지니며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본래의 두 시는 각각 비탄시와 민족애가로 분류되지만 두 시에서 발췌된 본 시편은 찬양시로 분류됩니다. 두 시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부분을 발췌했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을 다하여 드리고자 하는 찬양
- 1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 1 - 5절은 다윗이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하는 사울 왕을 피하여 도피하던 중에 지은 57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한 자의 새벽을 깨우는 찬양 부분과 일치합니다. 본 절은 57:7과 대응하는 본문입니다. 57편에서는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라고 반복했지만 본 시편에서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다윗은 이미 과거에 무엇인가 마음으로 확실하게 정한 마음이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 확정되어 이 결심이 어떤 사건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하며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겠다는 서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2절.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비파”는 12줄로 된 현악기이며, “수금”은 고대 근동에서 널리 사용되던 현악기로 비파와 함께 다윗이 찬양할 때 종종 사용했던 악이였습니다. “비파”와 “수금”은 바벨론의 포로 시절 이방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할 때도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본 시편에서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라고 노래한 본문의 내용은 포로 귀환한 이들에게 매우 각별한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편집자가 다윗의 이 시편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자신들의 본분이라는 것을 선포하며 다짐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가 시작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여호와를 찬양하는 찬양에 바치겠다는 다윗의 다짐을 이어서 자신들도 찬양하고자 하는 심정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
- 3절.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 본 절에서는 시편 57:9에서 “아도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본 시편 108편에서는 의도적으로 “여호와”라는 성호로 바꾸어 사용하여 하나님이 자신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성실히 지키시는 분이심을 드러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나라로 다시금 세워지도록 하실 것이라는 간구를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 절에서는 찬양의 범위가 개인과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온 민족에게로 확대됨을 “만민”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4절.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 본 절은 “כִּי”(키,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즉, 3절에서 언급한 찬양의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이유가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진실하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의 기원은 하늘로부터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인자하심은 무한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의 진실 역시 주의 인자하심과 같이 무한하며 궁창, 곧 하늘에 미칠 만큼 고귀하고 숭고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5절.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 “하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뜻합니다. 다윗의 소원, 본 시편의 편집자의 소원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아뢰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시편 두 곳에서 필요한 부분을 모아서 하나의 시편으로 담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새롭습니다. 다윗의 노래가 바벨론 포로 귀환한 이들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불렀던 “새 노래”가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새 노래”가 된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새 노래”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새 노래”로 불리워져야 할 것입니다.
2) 마음을 정하고,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찬양을 하나님은 새 노래로 받으십니다. 형식에 매여, 혹은 매너리즘에 빠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이 아닙니다. 상황과 여건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드리는 찬양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3) 바벨론에서 여호와 찬양을 해 보라는 조롱에 세계 최고의 수금과 비파 연주자들이 엄지 손가락을 도끼로 잘랐습니다. 이방인들의 유흥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연주를 할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의 결기였습니다. 그리고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 짓던 이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이 이제 비파와 수금을 들고 새벽을 깨우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합니다. 이 찬양의 중심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가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가장 잘 아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오늘날도 동일한 마음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속에서 담겨질 수 있는 진실함이 될 것입니다.
4) 아도나이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의도적으로 바꾸어 부른 노래의 내용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개인에서 이스라엘 공동체, 그리고 만민이 찬양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족속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전심으로 찬양하는 그 기쁨과 중심을 날마다 회복하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다윗의 영성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새 노래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찬양을 기뻐받으셨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동일한 새 노래를 부르기를 소원합니다. 비파와 수금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합니다.
2) 미얀마의 상황이 시간이 갈수록 좋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이 그럴 뿐만이 아니라 제가 겪고 있는 재판의 상황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악한 방해와 궤계가 하나님의 공의를 굽게하고자 수면 아래에서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일들이 진행될 것임을 믿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를 통해서 새 노래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일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전심으로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