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로마로 유학 가셨던 지학순 신부님은 귀국하신 후
주교님이 되시어 원주교구로 가셨고
키가 장대같은 나귀엘모 신부님도 주교님이 되서어 인천교구로 가셨고
청주의 파디 신부님도 주교가 되시어 청주교구가 탄생 되었습니다.
나는 고3이 되어
음대에 가려고 준비를 해 오느라고 그동안 음악 선생님들을 쫓아다니며
화성학을 배우고, 카운터포인트를 배우고, 바흐와, 모짜르트와, 베에토벤과, 쇼팽곡의 분석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악기 편성법을 배우고 지휘법을 배우고
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한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성당의 청년 성가대를 지휘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에 몸을 불태웠습니다.
청주에는 구호물자 덕분에 신자들이 급증하여
수동에 성당이 생겼고 내덕동에도 생겼고
서운동에도 생겼는데
내가 일 하던 북문로 성당은 폐쇠되고 서운동 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성당이 얼마나 큰지 내가 할 일들이 몇배나 더 늘어났습니다.
첫 신부님은 미국 메리놀 신학교에서 갖 신부님이 되신 유 Fred Luhmann)신부님이 오셨는데
남자도 반할만큼 너무 잘 생기고 정이 많아 사람들을 끌어당깁니다.
그는 한국인들을 사랑하고 제도적으로 돕고싶어 다시 미국으로 가서 사화학을 공부합니다.
그 후임으로 오신분이 길 (james Gilligan)신부님으로써 내가 그동안 겪은 수십명의 미국 신부님중에
가장 악한 신부님이었습니다.
그는 풍채가 좋고 장래 주교님의 물망에 까지 오른 분이었는데
그는 한국인들을 싫어합니다.
내가 그에게서 2년간 일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고
친절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는 아주 고약한 신부님이었슴니다.
그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제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나를
아주 꼴불견으로 바라보고 나를 노골적으로 싫어하지만
차마 나가란 말은 하지 못하고
내가 나가주기를 바라며
사무장을 하나 데리고 와서 내가 하는 사무일을 맡기는데
내가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인들을 싫어하며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소문이 그가 있던 성당에서부터 소문이 들려 옵니다.
그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식모가 있는데, 남편없이 아이 혼자만을 데리고 사는 부인이고
신부님은 부인의 말만 믿고, 심지어 서운동 성당의 고회장, 임히장, 최회장,그리고 운전사와 나를 좋아하지 않고
오직 식모만을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식모는 성당의 모든 일에 간섭을 하는데 길신부는 그 식모의 말이라면 사족을 못쓸만큼
식모를 믿고 사랑합니다,
그런 것을 모르는 신자들은 신부님에게 어떤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 성당에 찾아오면
그 커다란 코를 부인들의 얼굴에 바짝 드리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잡아 먹을 듯이
"뭡니까? 뭡니까?"
하고 달려들듯이 말을 하면, 부인들은 질겁을 하고 울면서 뛰쳐 나갑니다.
이제 그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짐작하셨을 것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등등 님 감사합니다 ^*^
어서오세요 로즈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고은 하루 맛과 멋 향기로 보람 되시고
아름다운 가을 행복 하시고 편안 하시며
코로나19와 질병에 늘 건강 하시고 화이팅 하세요~
저도 샬롬입니다 하하하
좋은 나날 되세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