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문답’인가, ‘교리문답’인가?
고전(Classic)의 번역이라는 것은, 원어(source language)를 도착어(target language)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원어가 사용되던 시대나 지평의 배경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정확하고 실질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세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와 같은 인물이나 한국의 박경리(朴景利, 1926-2008)와 같은 인물들의 경우에는, 따로 그 사람이 사용한 언어의 용례들을 알려주는 주석 혹은 사전이 발행될 만큼 심도 있는 작업도구들까지 동원된다. 물론 고전 번역이란 원어의 배경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착어가 사용되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용 또한 요구된다. 그러므로 출발어로서의 원어를 도착어로서의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가히 창작물에 버금가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사용되는 텍스트들의 경우에 번역은 주로 출발어의 지평을 이해하며 고려하는 데에 치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그 언어가 사용되었던 당시에 어떤 의도와 뜻으로서 그 언어가 구사되었는지를 탐색하고 추적하는 일이 번역의 주안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어의 경우에는 심지어 라틴어나 헬라어에까지 소급되는 어의(meaning of a word)의 탐구가 이뤄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 말틴 루터의 교리문답이 소개된 1562판 책자의 속표지.
예컨대 ‘카테키즘’(catechism)의 경우에 그 근원은 헬라어 ‘κατηχἑω’(chatecheo)에까지 소급되어, ‘가르치다’ 혹은 ‘들려주다’라는 의미에까지 그 기원을 추적하게 된다. 물론 그 실제적인 용례는 세례문답교육으로서, 말하여 가르치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의 시발점으로 지칭하는 인물인 말틴 루터의 ‘Der grobe Katechismus’ 역시 ‘대교리문답’(大敎理問答)으로 번역한다. 즉 기독교 신앙의 다섯 기초인 십계명과 신조, 주기도, 세례, 성찬에 관하여 가르치는 기본적인 교리들을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세기의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과 ‘Westminster Larger Catechism’의 경우에는 공히 ‘소요리문답’(小要理問答)과 ‘대요리문답’(大要理問答)이라고 번역하여 통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물론 루터의 교리문답의 경우에는 ‘소교리문답’(小敎理問答)과 ‘대교리문답’(大敎理問答)으로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로 보건대 굳이 한자를 분류해보면, 루터의 교리문답의 경우에는 ‘가르치는 원리의 물음과 답변’이라는 의미로, 그리고 그보다 더 후대의 도착어로 표기된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의 경우에는 ‘원리의 요지의 물음과 답변’이라는 의미로 번역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경우에는 ‘소요리문답’과 ‘대요리문답’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며, 다만 ‘소교리문답’과 ‘대교리문답’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는데, 출발어인 헬라어의 어의에 조금 더 가까운 시대라 할 수 있는 말틴 루터의 교리문답이 의도하는 바가 “가르치는 기본적인 교리들”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제5문답에서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성경은 주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고 답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이 가르치는 요지 혹은 개요로서 문답이 작성된 것이라고 보아 ‘요리문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이지만, 헬라어 ‘κατηχἑω’(chatecheo)가 ‘가르치다’ 혹은 ‘들려주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출발어로서의 ‘가르치다’에 무게를 두어 ‘교리문답’이라 칭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입장이다.
결국 이러한 번역상의 의미적인 차이는 출발어에 비중을 두어 원래 사용된 단어의 용례를 추적하려는 입장과, 도착어에 조금 더 비중을 두어서 지금 전달되는 단어의 의미에 치중하려는 입장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 물론 ‘교리’(敎理, Doctrine)라는 용어는 신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어도, ‘요리’(要理)라는 용어는 ‘요리문답’(catechism)의 용례 외에는 신학의 다른 용례들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