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고급 호텔을 짓겠다는 사기꾼에게 걸려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지루해질 때가 되면, 통영은 먼저 서둘러 일어나자고 한다.
“오늘 미국 대사관 사람들과 약속이 잡혀 있어요. 미안합니다. 먼저 일어날 게요.”
여자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잖아도 오늘 선약은 취소되었고, 할 일도 없는 터였기 때문이다.
“아 그러세요.”
“예. 제가 다음에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예. 괜찮아요.”
이런 방식으로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헤어진다. 사기꾼들은 신중하다. 통영은 바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신라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끔 만든 여자에게 한 보름쯤 있다가 전화를 한다. 그것도 여자의 심리를 잘 연구해서, 여자의 남편이 출근한 월요일 오전 11시경 전화를 한다. 심심하던 차에 여자는 반갑게 응대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호텔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달러값이 떨어지기 전에 돈을 들여와야 해요. 시간이 되면 커피나 한 잔 하면 어떨까요?” 여자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오케이한다. 두 사람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자는 자신의 차로 통영을 태우고 양수리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고급 호텔을 지을 자리를 찾는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는 일체 비밀이다. 1급 군사비밀이고, 특명작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업계획을 말하면 큰일 나요. 비밀이 새면 조직폭력배들이 저를 납치해서 살해할지 몰라요. 미국에 있는 아버지가 저에게 주의를 하라고 수시로 연락이 와요. 한국에는 조직폭력배가 많아서, 만일 재미교포가 한국에 큰 돈을 투자하러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고, 미국 아버지 회사에 연락해서 100억원 정도는 뜯어낸다는 거예요. 사기꾼들이 많아서 저를 이용해서 바가지 씌우려는 복덕방도 조심하라는 거예요. 오직 사모님만 알고 계세요. 그래서 저는 이름도 가명을 쓰고 있어요. 지금은 제임스 박이지만, 수시로 이름을 바꿀 것이니 놀라지 마세요. 제 핸드폰도 한달에 한번씩은 번호를 바꾸고 있어요. 물론 지금 쓰는 것도 렌트한 거예요. 미국에서는 큰 사업을 하려면 비밀유지가 가장 중요하고, 신변보호가 최우선이에요. 아버지는 돈이 들어도 1급 경호업체에 이야기해서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라고 하는데, 한국은 미국과 달라서 경호원도 전과자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호원이 다른 경호원을 시켜 보호받는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한국 경호원들은 미국과 달리 권총도 없이 경호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상대는 사시미 칼을 들고 공격하는데 경호원이 장난감 권총가지고 폼잡아야 경호가 될 수 없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혼자 신분을 숨기고 다니는 게 안전한 것 같아요.”
여자는 들을수록 통영이 큰사람으로 보였다. ‘아, 사업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역시 미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매우 치밀하고 빈틈없이 하고 있구나.’
비밀을 지켜야 하고, 주변에서 달라드는 사기꾼이나 조폭들도 따돌려야 한다는 통영의 말에 공감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같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양수리 경치 좋은 곳을 다니다 보면, 여자는 통영의 숨은 계획에 말려들어간다. 자연스럽게 양수리나 서종면에 있는 북한강이 보이는 모텔에 들어가 정사를 벌인다. 그러다가 어느 날, 통영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여자에게 애로사항을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일단 1억원을 보냈다는데, 그것을 찾으려면 외국환거래법 문제가 있어 경비가 필요하대요. 지금 나는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잠시 빌려주면 미국에서 송금된 돈을 찾는 대로 갚을게요. 300만원만 빌려주세요. 일주일이면 돼요.”
여자는 망설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통영의 사회적 지위나 아버지의 재력, 한국에서의 사업계획 등을 모두 알고 있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돈을 만들어준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잘 봐요.”
여자는 통영이 호텔사업이 잘 되면 객실 하나는 전용으로 평생 공짜로 쓰도록 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고 있어 미국에서 돈을 받는데 필요한 경비 정도는 당연히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핑크빛 환상에 젖는다.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은 미국 재벌 아들을 만나, 북한강변에 크게 세워질 스코틀랜드 풍의 고급 관광호텔에서 가장 높은 층의 스위트룸 객실을 평생 무상으로, 그것도 전용으로 쓰게 될 꿈을 꾼다. 그 룸의 인테리어는 여자가 자신의 돈으로 아는 업자를 시켜 최호화판으로 꾸밀 생각도 한다.
그런데 돈을 빌려 간 다음에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연락이 뜸해졌다. 통영은 또 다른 호텔로 옮겨가서 다른 여자에게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홍콩이나 일본에 비지니스 때문에 출장을 간다고 했다. 보름씩 연락이 끊어지기도 했다.
이런 수법으로 통영은 수십명의 여자를 농락했다. 사기금액은 한 사람으로부터 몇백만원 내지 몇천만원까지였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사기치는 기술이 늘고, 경험이 풍부해지자, 때로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렌트카를 운전시키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통영을 고소하지 못했다. 유부녀로서 정을 통했으므로 남편이 알게 되면 집에서 쫓겨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 여자는 이혼했기 때문에 고소하는데 장애요인이 없었다. 그 여자도 500만원을 사기 당한 상태에서 처음에는 고소할 생각이 없었다. 그 여자는 혼자 살면서 통영을 사랑하게 되었다. 통영과의 잠자리에서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양수리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통영과 다니던 모텔에서 통영이 다른 여자와 나오는 것을 보고 통영을 만나 따졌고, 그 후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했다.
이 점에서는 통영도 너무 재수가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그 모텔에 갔던 것일까? 그렇잖아도 그 모텔은 너무 많이 다녀서 싫증이 났던 것인데, 새로운 파트너가 그 모텔이 전망이 좋다고 우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통영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고소를 한 사람만 조사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피해자들은 유부녀가 대부분이어서 고소를 하지 못했다.
유부녀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여자들 신분이 대학 교수 또는 공무원, 대기업 직원인 경우도 있어 그들은 사회적 체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돈을 손해 보고 말았다. 재수가 없어 사기꾼을 만나, 몇 번 연애를 하고 그 대가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작은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