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주 이야기] 묵주 흔치 않아 손가락 꼽으며 기도
처음으로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첫영성체 준비를 하던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한 것은 충남 서산에서 당진 합덕 신리로 이사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정미소를 하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구 교우 집안이면 누구나 대동소이하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기도와 삼종기도, 저녁에는 저녁기도와 성월이 있는 달에는 그달에 맞는 기도를, 그리고 묵주기도 5단을 바쳐야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됐다.
그때는 왜 그리도 기도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지! 종일 뛰어놀고 집에 와 저녁밥을 먹은 다음 온 가족이 모여 저녁기도를 바쳐야 하는 시간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맨 앞줄에 형제들이 앉고, 뒤에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자리하시면 기도가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묵주가 흔치 않아 손가락으로 세어 가며 기도를 드렸다. 난 채 1단을 마치기도 전부터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가차 없이 꿀밤을 맞고 정신을 차리고, 또 졸다가 꿀밤을 맞고, 이러기를 몇 번을 반복하면 저녁기도를 끝낼 수 있었고 꿈나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되던 때부터 신앙을 간직하셨던 조상님들 덕분에 어려서부터 기도 아닌 기도를 배우고 여태껏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통과의례로 시작했지만, 점점 자라면서 조금씩 기도의 맛을 알게 됐던 것 같다.
결혼 전 성령세미나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고, 1987년 광주로 내려와 성령쇄신봉사자회에서 봉사를 시작하면서 성령 신심과 성모 신심, 성체 신심 세미나를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과 묵주기도를 시작했던 것 같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처럼 나 역시 자녀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저녁기도를 마치고 묵주기도를 할 때 몇 단을 바칠 건지 물어봤다. 1단을 하고 싶다 하면 1단을, 3단을 하고 싶다 하면 3단을 바치게 했다. 기도를 끝낸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면 난 아내와 함께 5단을 바쳤다.
많은 남자가 그렇지만 젊은 나이에 운전하다 보면 험한 말을 하고 심지어 싸움까지 하기 일쑤다. 나 역시 운전할 때만큼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운전 중에 화를 내거나 욕을 하면 상대편 운전자를 위해 묵주 기도 1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은총이 가득하신…’ 하다가도 ‘저 XX’ 가 나왔다. 얼마나 성모님께 죄송하고 창피하던지…. 그래도 무조건 운전석에 앉으면 십자성호를 긋고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2~3년이 지나서야 상대편에 대한 판단이나 욕설이 사라졌다.
거의 거르지 않고 묵주기도를 드리지만, 너무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바쳤던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예수님 생애를 묵상하고 드린 기도는 그리 많지 않다. 전에는 주로 ‘무엇을 해주십사’ 하고 드리는 청원의 기도였다. 9일 기도도 그런 청원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레지오 마리애를 하면서부터는 지향 없이 온전히 성모님께서 필요한 곳에 쓰시도록 기도를 봉헌하고 있다. 출근길 차에 오르면 십자성호를 긋고 묵주기도를 한다. 이동 중에도 항상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아직도 많은 분심 잡념 속에서 드리는 묵주기도지만, 성부 성자 성령님을 모시고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드리는 묵주기도는 내 삶의 일부다.
조상현 안드레아(광주 세나뚜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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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도 가끔 묵주가 안보이면 손가락으로 헤이며 합니다
성가정이였던 우리들 어릴적 모습이 스칩니다. 정말 기도가 왜 그리 긴지..... 놀고 싶어도 맘놓고 놀지도 못하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