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 평정을 잃지 말아라
쾌활함은 삶을 살아가는 양식으로
고도한 수련과 노력으로 얻어진 고귀한 자질이다
기분은 감염된다. 쾌활한 사람들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절망적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이들을 만나면 감탄하게 된다.
기쁠 때 웃는 건 아무나 하지만,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미소 짓는 건 너무나 어려운 까닭이다.
빌헬름 슈미트 독일 에르푸르트대 교수의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책세상 펴냄)
쾌활함은 타고난 기질이나 생리적 감정이 아니다.
쾌활함은 삶을 살아가는 양식이고,
꾸준한 수련과 노력을 통해 누구나 체득할 수 있는 고귀한 자질이다.
쾌활함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에우티미아(Euthymia)다.
이 말은 본래 '좋은 기분'이란 뜻이다.
쾌활함은 인생의 숱한 비극 속에서도 만족감, 행복감, 안정감을 끝내 지켜내는 힘이다.
세네카는 이를 평정(Tranquillitate)이라고 불렀다.
세상 폭풍 속에서도 한결같음을 보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부동심이다.
마음을 굳세게 단련한 사람,
즉 자기 강화에 성공한 사람만이 험난한 상황에서도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심연에 평정을 잃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한다
문제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고, 갈등 없이 진행되는 일도 없다.
간단한 일도 어렵고 힘든 순간을 피할 수 없다.
사람들도 한결같지 않다.
능력과 성품도 다르고, 뜻과 태도도 다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악감정을 쏟아내거나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고 언짢아해도 자기 허약함만 드러낼 뿐 변하는 건 없다.
인생길은 원래 울퉁불퉁하니까 말이다.
심연이 고요하도록 일상에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주 쾌활함을 기쁨이나 긍정과 혼동한다.
그러나 애써서 웃거나 억지로 긍정하지 않아도 우리는 쾌활할 수 있다.
쾌활한 사람은 슬픔의 심연을 메워 평평하게 만들거나,
실존의 나락에서 찾아드는 고통과 고뇌를 피하려 힘을 허비하지 않는다.
언제나 좋은 기분을 지켜낼 수 있기에 절망에 놀라 도망치는 대신
삶의 어둠과 끈질기게 싸우면서 그 안에서 슬픔의 언어로 쓰인 진실을 찾아낸다.
오래된 라틴어 격언. 폭염을 피해 서늘한 숲길을 걷다가 집안으로 들어서니,
마당 수돗가에는 집안의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나와 있었다.
그릇마다 찰랑찰랑 물이 담겨! 어, 이거 무슨 일?
기척을 듣고 나온 옆지기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뜨거워진 지구를 좀 식혀드리려고요.
하루 한 번씩은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되는 그녀에겐 절망이란 없지.
“새로운 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우리가 희망하기를 멈출 때뿐”
(지그문트 바우만)이란 것이겠지.
쾌활함은 희망에 대한 심오한 탐색이다.
사람이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다.
쾌활한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한,
슬픔은 기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기쁘고(悅 說), 즐겁고(樂) 아름다운 것이다(美)
삶은 祈禱하며(心), 기뻐하고((悅 說), 즐기며(樂), 감사하라(行, 美)
세상 사는 것은 사랑이다
새벽기도는‘항상 기뻐하고(樂), 쉬지 말고 祈禱하며(心), 범사에 感謝하라(行)’
(살전 5:16~18)
平居(要常)喜乐,祈禱不息(不住的祷告 無時, 恒常, 恒時),萬事(凡事)谢恩,
因为这是上帝在基督耶稣里向你们所定的旨意
삶을 기도로 열어라(心)
심연에 평정심을 잃지 말라
"상대가 화를 낸다고 덩달아 화를 내면 두 번 패배한 사람이다.
상대에게 끌려드니 상대에게 진 것이고
자기 분을 못 이기니 자기 자신에게도 진 것이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一切唯心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