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유심론자도 아니면서
요즘 제가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내년엔 잘 될거야. 그래, 한 두 번도 아닌데...”
며칠 전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내심 메론이 잘 안되었나보다 했지만 설마하면서 물었지요.
“메론은 언제 따?”
“올해 메론 농사 완패야. 정말 완패인건 또 처음이네...”
사막같은 더위 속에서 자란 여름 메론이 잘 되었을 때 솔직히 전 가을 메론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올 가을농사 끝나면 저한테 농협 빚 갚으라고 얼마는 내밀 줄 알았지요.
여름 메론이 당도도 높고 맛이 좋았지만 수정이 잘 안되어 실제 달린 메론은 심은 모종의 3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쯤이야 ‘수업료’려니 하면 될 정도로 여유 있고 마음도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가을엔 수정만 신경쓰면 되려니 했습니다.
벌도 다른 집 것 얻어 쓴다는 남편한데 지레 겁나서 수정벌 사서 넣자고 돈도 주었습니다.
사막의 향기라는 이름을 지어준 남편의 메론,
그 메론을 심고 가꿀 때 저도 남편의 향기이기도 했지요.
모종을 심던 날, 남편이 구멍을 내면 그 사이에 전 모종을 넣고 같이 흙으로 덮어주고
그리고 순이 자랄 땐 튼실한 열매 달리게 순도 쳐 주고
모종이 좀 자라자 남편과 함께 끈도 메달아 주곤 했습니다.

초보 농부 마냥 메론을 이야기하며 꿈을 나누고 미래를 생각하며
그리고 귀농이야기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 어렵다는 메론 농사를, 원예의 꽃이라는 메론 농사를
우리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 무엇보다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에 그저 저도 신이 나고 좋았습니다.
어쩌면 몇 년 동안 메론 농사를 반대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계란만한 메론이 달렸을 때 새낭골 밭에 가면 제일 먼저 커피 타서 메론 밭으로 갔습니다.
“와~올해는 벌들이 일 열심히 했네..”
수정이 잘 된 것에 기뻐하며 남편도 저도 고랑 몇 바퀴를 돌며 보고 또 보고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남편은 메론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간간히 메론에 타격이 되는 흰가루병이 생긴걸 알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그건 예상한 거라 무사히 잘 넘길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흰가루병에 메론이 완패될 줄이야...
내가 자식이야기하고 시부모 이야기 할 때도 남편은 그저 메론 이야기만 했는데
그저 말 없는 남편에게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농부의 아내로 8년을 살아오면서 얻는 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밭을 갈아엎은 게 한 두 번은 아니었습니다.
첫해 무씨를 500평정도 심어놓고 발아되지 않아 갈아 엎고 참깨를 다시 심었지요.
그리고 앞 밭 300평에 들깻잎을 심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판로가 막혀 다 자란 들깨를 갈아 엎었습니다.
잎을 먹는 들깨는 들기름도 낼 수가 없어 그때 처음 밭 갈아 엎는 농부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비싼 수업료가 아깝지 않은 정말 초보였는데...
남편은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흰가루병도 병이지만
아직 땅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인것 같다고 합니다.
유기농 농사는 화학비료도 안되니 땅심을 잘 만들려면 거름이 튼실해야 함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알 수 있었지요.
내년엔 어떻게든 퇴비장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퇴비장도 농사 시작하면서부터 조르던건데 여러가지 어렵다 보니 순위에서 밀려났었지요
사실 올 가을 농사는 메론만이 타격을 입은 게 아닙니다.
어찌하다 보니 미나리도 심었지요. 겨울에 나름대로 수입 올려보자고 생각한건데..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아니면 갑자기 제가 빚갚는데 조급해졌나 봅니다.

마음 들어내지 않으려 이말 저말 수다도 떨어 보았지만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맘 편하게 소리라도 질러 보고 싶은데
그래서 “겨울에 주기로 한 돈은 어쩔건데”
그래서 내 속이라도 후련해지고 싶은데
오히려 남편이 자꾸 걸립니다.
8년차 농부에게 줄 상심이 얼마나 클까.
전화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행여나 상실감 때문일까
괜히 썰렁한 재롱이나 떨고 있습니다.
"여보야, 힘내 그정도로 뭘~~"
그러는데 전화 끊고 제가 멍하니 있습니다.

농부의 아내로 산다는 것
농사걱정 작물걱정만이 아니라
농사짓는 그이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아직도 철없는 저에겐 농부 아내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빠, 메론 농사 안되었어?”
“걱정마, 너 먹을 건 많이 있으니까..”
여름 메론, 잘 되어서 우리 식구 먹기엔 너무 아까워서 먹지 못했던 메론
농사가 잘 안되니 팔지는 못해도 우리 식구는 실컷 먹는답니다.
유심론자도 아니면서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 위안하며
정말 실컷 맛있게 먹으며 남편을 위로해야겠습니다.
첫댓글 에궁.... 무심한 멜론..ㅠㅠ
에구... 그래도 언젠가는 두분 사랑만큼 튼실한 메론 잠못자고 수
할 날 오겠지요. 서강둑님 그리고 옆지기님 
아이쿠!~~ 꼬야누요!! 이글은 제 글이 아니라 새낭골의 무당벌레(남편), 풀잠자리(아내) 다연이, 영규네 가족 일기여유^^ㅋ
강둑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글 읽고 일년농사 성공한분들 대단하단걸 다시금 상기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