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서 명리학은 소위 말하는 제도권의 학문이 아닙니다. 제도권의 학문이 되기 위해 해결될 문제는 엄청나고 또 그 해결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아직은 명학은 술이라는 입장보다는 학이라는 입장에 접근해왔고 현장에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논의과정을 보면서 지식의 오해와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르는 충돌과 회피등을 무수히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과거 학회에서 발제문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현재 논문에 삽입될 내요입니다. 따라서 원문의 문어체를 다소 구어체로 윤문하였으며, 근거와 발췌의 주석문은 생략하였습니다. 세번에 걸쳐서 나누어 실도록 하겠습니다.
1. 서론
필자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철학관이 하나있다. 그 철학관의 상호 밑에 상호보다 딱 절반의 크기로 "중국정통추명학"이라고 쓰고 있다. 중국정통추명학이라고? 정통은 우리가 뭐 일상적으로 붙이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볼때 논외로 한다고 치고 중국과 추명학이라는 관점에서 한번 접근해보자. 중국에는 추명학이 있는가? 없다. 왜 없느냐고 반문하고 계실 분들이 있으리라 본다. 독자들중 중국 추명학이란 말이 가지는 언어적 모순을 느끼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명리학의 깊이는 논외로 명리학적 상식은 부족하다고 스스로 반성해도 좋을 듯 하다. 중국에는 추명학이 없다. 추명학은 일본에 있다. 그럼 중국(대만으로 국한한다.)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산명학이다. 심지어 대륙에서는 산명학과 명리학을 구분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명리학이다. 추명학, 산명학 그리고 명리학이 주는 교훈은 크다. 당대 중국의 명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는 위천리를 들 수 있다. 위천리는 원래 대륙사람이었지만, 대륙의 홍화이후 홍콩으로 망명하여 졸시까지 거주하였다. 장개석에게 국사대접을 받으며 한국과 일본의 기업가까지 홍콩을 드나들게 만들었던 위천리는 이론 뿐만 아니라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모두를 관통하는 명쾌한 학자이며 술사였다한다. 일본은 어떠한가? 이론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부태산(아베 다이잔)을 꼽고 싶다. 종군기자로 청일전쟁에 참가한 그는 어마어마한 양의 역학서적을 입수하여 후에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체계와 현지에 적응한 이론을 만들어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떠한가? 중국과 일본의 경우 명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 술사의 길을 지향하는 자들은 중국의 고전은 사고의 밖에 두는 경향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언어적 접근의 용이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서처럼 신봉하는 3대보서조차도 학습자들의 필독서 목록에는 올라있지 않다. 차후 어느정도 명학의 경지에 올라 자신만의 이론체계를 세우거나 추명학을 명리학으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는 소수인의 도서목록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각 서적들의 번역서들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명학적 지식의 부족 혹은 언어적 지식의 부족으로 그 번역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실정이고, 때로는 자신의 이론적 성향이 녹아들어 견강부회하고 있는 모습조차 보여주기도 한다. 명학의 초심자들마저도 그 해독적 지식을 담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3대보서의 원서를 판본별 격차를 인식조차 하지도 못한채 암호를 해독하듯이 읽거나 번성하고 있는 검증되지 않은 일부 명리학 교육기관을 통해 사사받고 있다. 명학의 학자도 아닌 술사의 입장에서 자평학파니 난강망학파니 하는 학문적 선호로 파당을 형성하여 서로 대립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아직 체계적으로 3대보서의 지식적 체계를 융합하는 학문적 시도가 보편화되지 못하거나 그런 시도도 대중적으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실제적으로 3대보서간의 이론적 격차를 해석하지 못하거나 편향된 한권의 서적에 탐닉하여 맹신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자평진전, 난강망, 적천수 무엇인가?
필자은 이글의 원문에 있는 3대명학서의 역사적 고찰 및 학문적 계승관계를 생략하였다. 이유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고 이글의 논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판단에서이다. 각각의 서적은 나름의 체계를 지니고 있고 간명의 관점을 뚜렷이 한다. 하지만, 서로 중첩되고 있는 설명의 영역과 이론적 전개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모두 감안하고 각각의 서적이 가지는 하나의 기조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평진전은 격국론, 난강망은 조후론, 적천수는 중화론이다. 여기서 이수의 관점을 차용하자면 자평진전은 명조의 Frame을, 난강망은 Time, 적천수는 Space로 규정하고 있다. 좀더 발전적으로 시각을 전개해본다면 자평진전을 명조의 태생적 존체(innate Being)을 격국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난강망은 명조가 가지는 시간환경적 상황(chronical Circumtances)을 말하고 있으며, 적천수는 명조가 가지는 힘(innate Power)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것을 물리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자평진전은 질량, 난강망은 시간, 적천수는 힘의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한 물체를 판단할 때 이 세가지요소는 판단의 중요한 단초가 된다. 그 중 하나라도 간과한다면 그 물체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3. 억부론과 조후론의 충돌
현재 국내 명학계에서 풀어야 무수한 숙제들 중 하나가 억부론적 해석과 조후론적 해석의 충돌 문제이다. 지금 억부론적 해석과 조후론적 해석을 별개의 카테고리 즉 수평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례로 수와 목의 관계를 살펴보자. 억부론적 관점으로 본다면 수는 목을 생한다. 하지만, 조후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만약 자월의 자수는 갑목의 생존에 부정적인 상황으로 지대하게 조성한다는 관점이다. 억부론자들의 관점과 조후론자들의 관점은 접점을 찾기 힘들어지며 이것을 사주체의 강왕여부와 세력 그에 따르는 작용의 선택여부에 천착하여 고민하는 학자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세운과 대운의 문제도 조후와 억부를 혼하여 조후론을 아예 포기해버리거나 억부를 조후로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 계속
홍삼드링크제 마시면서 술마시면 서는 데 지장없고 무한 주량을 자랑함 . 주량이 없는 이당 취해도 표안나는 주당 충고 ~
내가 역학을 여기서 귀동냥 했더니, 아무리 미인 이래도 꼬시는건 , 어린아이 사탕 뺏는것 보다 쉽다는걸 느꼈음. 내가 여인에게 하는 말..., " 운명은 알면 슬픈 것이니, 모르는게 낫읍니다."
역학하면서 맘만 먹으면 연하남자 옷벗기는 것은 그보다 더 쉽다는 것도 느낀답니다. 벗길일은 없겠지만.....
두분 자중하시지요 .. 나무아미타불 ~
沈孝瞻의 生歿年代가 어떻게 되나요? 아시는 분 답 좀~
沈孝瞻 - 清乾隆年間(1736~1795)進士 정확한 생몰년도는 없고 대략 건륭제적 인물이란 것만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