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얘기를 하기전에 먼저 제 얘기를 좀 하자면 저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겉보기에는요...
벌써 십년 가까이 돼 가네요. 저는 한창때에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와 연골판이 완전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연히 수술을 했지만 재활에 소홀하고 격한 운동을 반복하며 재수술...그리고 이제 평생 운동같은 거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지 수년이 지났군요..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레이커스를 정말 싫어했던 농구팬입니다. 지금도 싫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아이버슨의 광팬이었거든요.
샥, 코비, 피셔, 오리, 팍스, 닉더퀵, 라이더, 오돔, 파마, 밈, 아리자에서부터 지금의 가솔, 아테스트까지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예외없이 싫었습니다. 그 중 가장 싫어했던 두 선수 샥과 코비, 둘 중 더 싫었던 선수......코비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선수들-아이버슨, 카터, 티맥, 웨버, 키드, 가넷...
이정도면 참 레이커스를 싫어할만도 하죠..레이커스에게 쓴맛을 본 선수들 혹은 코비의 라이벌이었던 선수들입니다.
전 사실 레이커스 중계는 제가 좋아하는 팀과의 경기(히트, 클립스, 셀틱스 등) 외엔 잘 안봅니다. 그치만 tv중계가 있으면 어떤 경기라도 다 봅니다. 농구 인기가 별로인 우리나라에서는 흔치않은 기회이니까요.
오늘도 역시 중계를 해주기에 봤습니다. 지인 결혼식에 가야했는데 조금이라도 보다 가야지...하면서 봤죠. 커리가 버닝했고 골스를 응원하며 경기를 봤습니다. 부상이 있어보이는 코비가 4쿼터 막판 삼점 두방을 꽂아넣었습니다. 감탄과 탄식이 동시에 나왔죠....그런데 다음 공격에서 코비가 오른쪽으로 돌며 왼발을 내딛는 순간 쓰러졌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엔 걷는것 조차 불안해보였고 자유투를 던지고 들어갈 때는 걷는 보폭이 엄청나게 좁더군요. 한 발 딛기도 힘드니 당연했겠죠..하이파이브 하는 동료들 보면서 부축이나 좀 해주지 하면서 혀를 찼습니다. (그전에 통증 때문에 반대편코트까지 절뚝거리며 걸어갈때는 정말 안쓰러워 못보겠더라구요)
코비 참 싫어합니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라고 욕 많이 했습니다. 고득점 한 날은 낮은 야투율을 보면서 위로받고 야투율도 좋을땐 턴오버 갯수를 보며 위로받았고 턴오버도 적을땐 그냥 배아팠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선수들은 이제 부상에 노쇠화로 리그를 떠났거나 내리막을 걷는데 코비는 여전히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중이어서 더 싫어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 코비는 제가 싫어하던 예전 모습이 아니네요..코비도 노쇠했고 부상으로 골골하고 있었단 걸 새삼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독기어린 모습도 오늘은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그게 결국 오늘의 부상을 만들었으니까요...
저는 제 무릎이 꺾였던 느낌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고 여전히 좀 무리했다 싶은 날은 무릎 통증으로 힘들때가 있어서 누가 다리부상 당하는 것만 보면 움찔합니다. 작년 플레이오프 로즈 십자인대 부상때는 정말 며칠간 밥맛도 없었습니다.
올시즌 코비팬분들이 부상중인데, 35살인데 이정도 해주는게 존경스럽다. 몸안좋은데 출전 강행한다 하실때도 별로 공감이 안됐습니다. 뛸만 하니까 뛰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네요. 정말 더는 뛸 수 없는 상태인데 몸이 먼저 고장나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든 둘 중 하나겠지 하면서 뛰었던 거 같아요. 자신이 젊고 미래가 창창했다면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았았겠죠. 더 좋은 모습으로 더 높은곳까지 갈 기회가 많이 있었을테니까요..이번 시즌이 지나면 지금같은 기량으로 팀을 컨텐더로 이끌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걸 알기에 죽을힘을 다해 뛰었던 거 같아요. 그게 자기 선수생명을 갉아먹고 더 나아가 노년을 관절고통으로 시름하며 살게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겠죠.
저 조차도(저는 원래 운동신경이 안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농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섭고 서러워 밤새 울었던 적이 기억이 있기에 만약 코비가 이번 부상으로 더이상 농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코비에겐 그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안됩니다.
현재 저는 웨이드팬이지만 웨이드는 농구가 아니어도 재밌게 잘 살 거 같습니다. 사업가적 기질도 있어보이고 패션에 관심이 굉장히 많고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보이거든요. 이런 비유가 좀 이상할 수 있겠지만 저처럼 사내들끼리 만나서 농구할때가 제일 행복해서 연애건 여자건 아예 관심도 없이 농구'만' 좋아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는가하면 여자도 잘 만나고 노는것도 좋아하고 여기저기 안끼는 데가 없는데다 농구'도' 잘하는 사람 같은....억만장자에 농구 하나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된 선수를 걱정하는게 참 주제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코비는 정말 융통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외골수에 농구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처럼 보여서 선수생활을 그만두면 그 부와 명예 속에서도 빈곤함과 공허함을 이기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코비 경기를 보면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나를 위해서 농구한다'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길게도 썼고 마무리를 해야겠는데 왜 이글을 썼는지도 잊었네요...멍청하게..;;
단지 제가 응원했던 선수들이 커리어 중간에 여러가지 이유로 좌절했던 모습을 봤을땐 글 쓸 생각도 못했는데 커리어를 마감하는 시기에 부상당한 코비가 안타까워 무슨 말이라도 쓰고 싶었던 걸 보면 코비의 농구사랑이 남다르다는 걸 저도 알긴 했었나봅니다.
코비 헤이터이기 이전에 한명의 농구팬으로서 코비처럼 수준높은 농구를 보여주던 선수가 이렇게 갑작스런 부상으로 선수생명 자체를 위협받는 건 가슴 아픈일이고 참담한 일입니다. 결국 전 오늘 결혼식도 빠지고 저녁 약속에도 빠지고 멍하니 하루를 보냈네요...
코비 부상에 제가 이렇게 기분이 다운된 거에 제 자신이 새삼 놀랐어요..데뷔때부터 오늘까지 한결같이 싫어하던 선수인데 말이죠..
코비가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길 응원해야겠습니다. 좋아하는 선수, 좋아하는 팀만 남아있으면 뭔 재미로 응원을 하나요...
저도 여전히 농구는 합니다.예전처럼 전력으로 뛰어다닐 수는 없지만 죽어도 농구는 못끊겠더라구요. 슛쟁이로라도 살아남아야죠
농구 자주 하시는 분들 부상 조심하시길 바라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저랑 비슷한 경우네요. 저같은 경우에는 어느순간부터 코비가 존경스럽고 다시는 저런 선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NBA에 코비가 없으면 NBA 보는 재미가 줄어들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여전히 코비와 레이커스가 싫긴 합니다. 오늘 코비 모습이 안타깝고 존경스러웠던 건 제가 코비처럼 오늘이 마지막이다 하는 맘으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본 기억이 없어서 인 거 같아요...다시 돌아오면 욕하는 재미로 봐야죠 뭐 ㅎㅎ
가끔가다 보면 저사람 왜저러나 너무 고집부리는거 아닌가 싶은데 그래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플레이 스타일의 타입 선수는 아니지만.. 여튼 다시 돌아와서 잘해줬음 싶네요
감동이네요...저도 꼭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페이스북 글 보시면 아시겠지만 코비는 코비네요.. 기대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밑에 코비 페이스북 관련 글이 올라왔었군요...읽어보니 괜히 뻘쭘해지네요. 제가 코비 멘탈을 너무 얕봤나봅니다ㅋㅋ
진심어린 글 감사합니다. 오늘은 술 생각나네요..
저도 술 한 잔 하고 싶은 날이네요...약속을 다 깨서 혼자 마셔야 할 판입니다;
저랑 너무 비슷하시네요. 잘읽었습니다. 저도 참 같은 심정이에요
농구 좋아하는 사람들 맘 다 비슷한가 봅니다 :)
진심이 느껴지네요.. 왠지 제가 다 감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씀을요...민망합니다 그러지마세요..
레이커스와 코비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선수는 별로 없습니다. 레이커스와 코비는 패배자이기보다는 항상 승리자에 가까웠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른 선수 팬이라면 저도 참 코비 많이 깠을꺼 같아요- 팬이지만 깔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진심어린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몸 조심하면서 운동 재밌게 즐기길 바랍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코끝이 찡~~해지는 글이네요..몸관리 철저히 잘해서 돌아올거라고 믿고싶습니다..저도 코비가 굉장히 싫었는데 저조차도 뭔지모를 감정이 솟구치네요 ㅠㅠ
코비에게서 농구를 뺏어가면 뭐가 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네요..울지 마세요 ㅎ
저도 옛날에 아이버슨 티맥을 좋아해서 레이커스를 싫어했습니다ㅜㅠ그런데 요즘은 진짜 존경심이 드네요 코비 최고입니더 진짜
그래도 저는 아이버슨이랑 티맥이 좋습니다.
아 물론 저도 아직은 아이버슨>티맥>코비입니다ㅋㅋ
전 레이커즈만 16년째 응원하고있는데 정작 선수는 샼, 아이버슨, 티맥을 좋아해서 코비는 별로 안좋아했습니다. 04-05는 물론이고 05-06때도 코비가 아무리 미쳐날뛰어도 인정하기에 약간 거리낌이 있었는데 06-07시즌인지 그 다음시즌인제 언젠가부터 코비 인정하게되고 좋아하게되고, 무엇보다 레이커즈 응원하는 팬의 입장에서 코비를 믿고 의지하게 되더군요. 그전까진 "이 팀은 제대로 하는놈이 코비밖에 없냐..." 이런기분이었다면 어느순간부터 "그래도 코비가 있으니까.." 이런 기분으로 바꼈달까... 저지도 사고 신발도 티맥시리즈로 샀을만큼 좋아하던 티맥이 무너지는걸 보면서 너무 슬펐었는데
아까 코비 부상으로 나가는거 보는데 여태까지 스포츠를 보면서 박찬호선수가 무너지고 먹튀소리 듣던거 이후로 가장 큰 슬픔과 절망감이 느껴지더군요...
아이버슨이나 티맥과 코비를 다 좋아하는 팬은 별로 뵌 적이 없어서...저도 안타까운데 코비팬분들 기분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아이버슨의 멋과 화려함이야 말할것도 없고 (특히 식서스의 당시 어깨 넓게 펴지고 검은색,붉은색으로 빠진 원정유니폼 입은 아이버슨에게 반해서) 코비를 안좋아했던건 아이버슨,티맥 영향보다 샼을 좋아했던게 큽니다. 샼이랑 힘싸움한다고 설치던게 싫었거든요. 아프로 헤어도 맘에 안들었구요. 지금은 리그에서 코비를 제일 좋아하는데 레이커즈 팬으로서도, 코비 팬으로서도 진짜 착잡합니다 ㅠㅠ
바클리의 은퇴와 사실 10여년간을 nba를 보지 않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조던,바클리,하킴... 이런 선수들과 비교되던 모든 선수들을 사실 싫어했습니다.
그러던 중 르브론의 디트침공을 보고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nba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싫어하던 코비,아이버슨... 등이 아직도 있더군요.
오늘 코비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리그를 보지 않던 10여년간을 코비,아이버슨.,,, 같은 제가 싫어하는 선수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비의 부상을 걱정해 주는 것은 레이커스팬들에게 보내는 매너나 예의가 아닌 리그를 지켜 준 코비에 대한 저의 의무입니다.
어떤 감정이신지 어렴풋이 짐작은 됩니다. 저도 새삼 코비가 제가 좋아하는 전체의 한 부분이란 걸 실감햇거든요.
와인 한 잔 잡고 홀짝거리면서 코비관련 기사만 뒤적거리고 있네요. 한숨자고 일어나도 멘붕이 가시질 않습니다... 생각보다 코비를 제가 많이 좋아했었나 봅니다.
코비에 대한 감정이 저랑 딱 비슷하시네요.
지금도 코비와 랄 싫어합니다. 낮은 야투율과 턴오버를 보면서 위안을 하던것도 비슷하구요... 하지만 요새 코비 보면 농구선수이기 전에 정말 칭찬 받을만한 인간인 거 같아요.
(저 포함) 안티 코비들 모두 지금은 다 대동단결해서 코비가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부상이라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은퇴하는 날을 맞이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또한 코비를 굉장히싫어하지만 팀을위해 잘하든 못하든 상한몸생각않고 뛰는코비가 참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배울점은 존재한다는걸 코비가보여주네요.자신이 좋아하는것에 대한 열정,누구에게도 지기싫어하는 승부근성,우직함등등은 배워야할듯싶네요
저랑 비슷하시네요 아이버슨 - 웨이드 순서도 비슷하구요 전 어느 순간 코비라는 사람이 존경스럽더라구요.
응원하시는 팀과 다시 컴백해서 붙게될날이 빨리왔으면 좋겠네요 ㅜㅜ 다시 싫어하시겠지만 ...^^;
완전 공감합니다.. 정말 역대급으로 싫어하는 선수였는데 게임보면서 정말 속상했습니다. 킹덤에 나오는 왕기의 마지막에서 모두가 두려워하고 원망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동시에 시대의 영웅이였다는 장면이 생각나더군요
저도 코비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등장해서 사라지는동안 얼마나 연습하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했을까요 그리고 우리시대의 스타라는점이 이제는 더끌립니다 제발 부상 잘 회복해서 다시봤으면 좋네요
늦게나마 이글을 보게 됐네요.저랑 심정이 완전 똑같은글이네요.저는 티맥과 카터를 미친듯이 사랑했고,그들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NBA를 떠나게 됐었죠.지금도 술한잔하고 유투브에서 티맥이나 카터 전성기 영상보면 눈물이 찔끔 나옵니다.ㅋㅋ지금은 르브론으로 달래고 있네요.
이 경기에서 코비 모든 것을 다 불싸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구 글 내용 너무 좋네요. 저도 30대 초반인데 농구 못끊겠어요. 길거리 농구장에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게 안타까울 뿐이죠.
코비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하는 글이네요... 코비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코비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이더군요.... 코비 없는 NBA는 정말 허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