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1월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첫눈이 내린다. 첫눈 치고는 꽤나 소담스럽게 내려 조용히 쌓이고 있는데 나는 간만에 학교 앞 거리를 걷고 있다. 졸업한 지는 아직 1년도 안 되었는데 졸업한 후 걷는 학교 앞 거리는 굉장히 어색하다.
학교를 다닐 때는 그렇게까지 친구가 없다고는 느끼지 않았는데 졸업하고 나니까 딱히 연락하는 사람도 없다. 아는 사람도, 나눌 꿈도 없는 거리는 이렇게나 황량한 것일까. 요즈음의 취업난에도 가까스로 취업하긴 했지만 조그만 회사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굽실굽실 거리고 살다 보니 학교 다닐 때가 그리워져 무작정 학교 앞으로 오긴 했지만 반기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골목배기의 단골 밥집에 잠시 들렀다가 그곳마저도 주인이 바뀐 것을 보고 씁쓸해져서 정문 앞길을 걷고 있다.
대학교 앞이라고는 해도 거리는 황량해서 차가 몇 대 지나가는 것과 우산 쓴 사람 몇 명, 눈을 맞으며 감정 없는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 몇 명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높은 건물도 하나 없고 가로수도 앙상해서 허전해 보이는데 눈이라도 오고 있지 않으면 그리다 만 그림처럼 텅 빈 모습일 뻔 했다. 예전에는 눈이 오면 어린아이들이나 강아지들이라도 좋아서 뛰어다니곤 했는데 말이다. 눈싸움 하는 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왠지도 뭔지도 모르고 그저 멍멍거리고 짖으며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강아지들도 없는 거리라니, 그것도 첫눈인데. 너무 조용하다.
나도 감정 없는 얼굴로 걷고 있는데 무언가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바로 한 작고 촌스러운 붕어빵 노점이다. 파란 새마을 천과 비닐 한 겹으로 애처롭게 바람을 막은 작은 공간에는 붕어빵 틀과 종이봉투, 반죽을 담은 노란 양은 주전자와 팥 앙금을 담은 통. 잘 구워진 붕어빵 몇 마리와 누렇게 뜬 피부까지 붕어빵을 닮은 주인아저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고 초라한 노점이지만도 그게 뭔가 빠져 있다거나 허전해 보이지 않는 것은 달작한 냄새를 풍기는 붕어빵이 있기 때문일 거다.
손님도 별로 없었는지 붕어빵도 모양이 눌러앉은 것도 몇 마리 있었고 굽는 손도 영 미적거린다. 하긴 사람도 이렇게 얼마 없는데 가뜩이나 이런 옛날 붕어빵을 누가 먹기나 할까...
그러고 보니 여기는 옛날 붕어빵을 판다. 그걸 발견하자 나는 굉장히 반가워졌다. 요즈음의 잉어빵처럼 기름 많은 바삭바삭한 것도, 우리 학교의 상징이라며 유명해진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간 호랑이 빵도, 거북이 빵이니 게 빵이니 하는 것도 아닌 정말 옛날 풀빵 가게의 옛날식 붕어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붕어빵을 보면 그가 생각난다.
그를 못 본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대학 새내기 때다. 그러니까 5년 전쯤? 친해지게 된 것도 참 빙충맞아서, 새내기 첫 MT에서 서로 숫기가 없어서 주변에 동화되지 못하고 어물거리다가 서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시작이다. 그 때도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사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으니까.) 어쩐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친해져 있었다. 마치 어릴 적에 전학을 가면 처음엔 서먹서먹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친해져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와 이미 친해지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친해지고 나니 그는 여간 괴짜가 아니었다. 아니, 단 한 가지를 빼고는 그는 그냥 조용한 모범생 타입의 친구일 뿐이었다. 수업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숙제나 조별 과제도 성실하게 하고. 나를 제외하고는 친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단 한가지가 그를 과에서도 유명한 괴짜로 만들었다.
붕어빵.
붕어빵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 별로 특이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내 주변에도 카스테라를 무진장 좋아한다거나 카카오 함량이 60%를 넘어가는 블랙 초콜릿만 먹는다거나 태평후괴 녹차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다거나, 베토벤의 월광을 들어야만 편히 잠에 든다거나 하는 특이한 취향의 친구들은 그럭저럭 있다. 사실 나도 홍차를 마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가 붕어빵을 좋아하는 것도 단지 하나의 취향일 뿐일 테고 나도 별로 그걸 간섭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조금 특이했다.
붕어빵.
오직 붕어빵, 단지 붕어빵. 그는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언제나 붕어빵을 우물거렸다. 한여름에도 붕어빵을 구하는 것이 워낙 신기해서 언젠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게 마련이니까. “
하며 학교 옆 모퉁이에 있는 붕어빵 가게를 알려주었다. 신기하게도 그곳은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었는데 처음 보는 것처럼 가게가 ‘나타났다.’
왠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나도 여기저기서 붕어빵 굽는 곳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지나서의 일이다. 가을도 막 지나가려 해서 쌀쌀한데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붕어빵 포장마차를 보게 되었다. 천원 어치를 사서 먹어 보니 고소한데다가 꽤나 바삭거리는 것이 맛있어서 그의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한 봉지를 사다가 그에게 건넸다.
붕어빵.
이 한 마디뿐이었지만 그는 굉장히 고마워하며 봉지를 받아들었다. 나는 무슨 훈장 수여식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봉지를 받아든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 너는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
더듬거리며 실망한 듯 하는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다 주었더니 이게 웬 말이람? 당황해서 뭐가 잘못되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열변을 토해냈다.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조금 끊기긴 했지만 그 끊긴 것까지도 거의 생각이 난다.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붕어빵.”
“부, 붕어빵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붕어빵이 어떤 음식인지 아느냐고? ! ”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깟 풀빵이 뭐란 말인가?
“붕어빵, 붕어빵 틀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생선을 굉장히 좋아하는 소년이었어. 하, 하지만 6.25가 갓 끝난 당시 생선을 먹는 것은 사치였지. 아마도 낚시를 한다거나 할 상황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 때 값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국에서 원조해 준 밀가루뿐이었다고 해.
어렸을 적에 들은 적 없어? 어, 어렸을 적에 맹탕에 수제비 띄워 먹는 것에 질려서 수제비라면 치를 떠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아니 아버지 어머니들일지도 모르겠네...
맹탕에 수제비, 기껏해야 설탕가루 조금 넣은 밀가루 빵으로 끼니를 아니 허기를 채우며 일하다가 소년은 생선을 먹고 싶다는 꿈을 자신이 하는 철 다루는 일로 이루려 한 거야.
어차피 밀가루 빵이라면 모양이나마 먹고 싶은 생선 모양으로!
지긋지긋한 밀가루 덩어리를 씹으면서도, 마, 마음속으로나마 비릿한 생선 내음과 짭짤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었겠지. 꿈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니까. 모래만 가지고도 아이들은 수많은 날들을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게다가 그 소면의 꿈은 소년만의 꿈이 아니었어. 어, 어느 틈엔가 모두들 붕어빵을 좋아하게 되었고 값싼 재료들이 더해져 가면서 인기 많은 거리의 음식 붕어빵이 완성되었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노래를 녹음하던 청년의 꿈이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들었듯, 소년의 순수한 꿈은 영양 많은 팥 앙금과 고소하고 값싼 풀빵 반죽의 붕어빵으로 거리를 메우게 된 거야. 세, 세상에 붕어빵이 싫어서 못 먹겠다는 사람 본 적 있어? 오히려 겨울에 거리를 걷다 보면 누구라도 한 봉지 먹고 싶게 될 걸?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도, 돈이 없어도 붕어빵 하나 먹을 돈은 구걸을 해서라도 구해낼 수 있다고.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면 추운 겨울에 하교 길이나 귀가길이 따뜻했던 기억은 누구라고 갖고 있을 걸?
우리나라에 언제 이렇게 꿈으로 만들어져서는 따뜻함을 전해주는 음식이 있었겠어?“
그렇군 듣고 보니 대단한데?
정말이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사다 준 붕어빵에 대고 화를 낼 이유는 아니지 않아? 나도 널 생각해서 굳이 이걸 사 온 거라고.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붕어빵.”
“그, 그것을 우습게보고 고등학교 때 틀을 얻어다 장사를 해 본 적이 있어. 바, 반죽도, 앙금도 떼어오는 거고 단지 내가 할 일은 구워서 파는 것 뿐 이었지. 사실 고등학생이 가스통까지 연결해 가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아, 아는 사람들을 통하다 보니 의외로 쉽게 붕어빵 노점을 열 수 있더라고. 고등학생도 차릴 수 있는 나만의 가게. 멋지지 않아? 게다가 난 외삼촌을 많이 닮았기 때문에 외삼촌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면 누구도 나를 어린아이로 보지 않았다고. 외탁을 많이 해서 말야. 나름대로 어려 보이지도 않고.”
하긴, 절대로 어려 보이진 않는다.
“음, 크음. 흠... 어, 어쨌든 그런데 이게 어려운 거야. 반죽을 틀에 붓고, 그 뭐냐... 그, 그래 팥 앙금을 얹고, 반죽을 붓고 틀을 닫고 돌려 다음 칸. 이것이 기계적으로 반복될 뿐인데도 꽤나 정확한 타이밍과 리듬으로 해야 해.
한 200개 정도 태웠나? 아마 더 태웠을 거야. 설익은 것도 그 정도 되고. 그, 그 정도를 해 보니까 밀가루가 설익다 숯이 되었다 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거야. 겉은 풀빵이 누렇고 고소해 질 정도로 바삭하게 구워지고 소, 속은 팥이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부드럽고 타지도 않은 완성품이 나왔을 때의 그 기쁨은 아직도 잊지 못할 거야. 그렇게 한 번 만들어 내고 나니까 완성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더라.“
그래서?
“조금 지난 게임이긴 하지만 붕어빵 타이쿤 이라는 게임처럼 모양이 흐트러지거나 팥 위의 반죽을 잘못 붓거나 틀을 돌리는 박자가 틀려서 팥이 튀어나오거나 약간 검게 된 것을 덤으로 주는 것까지 알게 되니까 꽤나 잘 팔려나갔어.
그리고는 반죽과 팥의 차이까지 꼼꼼하게 보게 되었지. 반죽에 찹쌀가루가 들어가면 더 쫄깃해 지지만 식으면 더 맛이 없어지고 딱딱해지고 크기도 줄어들지. 우, 우유나 계란이 조금 섞이면 맛이 더 좋아 하지만 타거나 검게 되기도 쉬워져. 팥은 사다 쓰는 거지만 회사마다 성분 비율이 달라. 팥 비율이 높으면 비싸지기도 하고 너무 뻑뻑해지기 쉬워 그렇다고 설탕이 너무 많으면 담백하지 못해서 혼자 한 봉지를 거뜬히 먹기는 힘들어지지.
그래서 어디의 팥이 가장 맛있는지 반죽은 직접 할 수도 있고 맛있는 곳의 것을 떼어다 할 수도 있게 되었어. 하, 하지만 방학은 곧 끝났고 빌렸던 붕어빵 틀과 작은 포장마차를 아예 사버릴 돈이 모였어. 그, 그걸로 장사는 그만뒀고 다시 해 보지는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붕어빵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지.
부, 붕어빵.
그건 초창기의 붕어빵처럼 꿈이 있어야 해. 가, 값싸고 배부를 때까지라도 많이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맛이 있어야지. 그, 그리고 소년의 꿈을 간직하기 위해선 오직 ‘붕어’ 빵이어야 해. 다른 모양은 반칙이라구!“
그는 잉어빵의 꼬리를 조금 잘라 손으로 뭉개며 말했다.
“이, 이건... 기름으로 반죽한 찰반죽이야.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열을 받으면서 반죽이 튀겨지는 거지. 부 붕어빵을 구울 때 가, 가장 어려운, 그리고 갓 구운 붕어빵을 가장 고소하고 맛있게 해 주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풀빵의 느낌을 가장 쉽게 흉내낼 수 있는 방법이야.
하, 하지만 이건 튀겨지는 거야. 반죽 자체에서부터 기름이 들어가니까 한 두개 먹을 때는 오히려 더 고소하게 먹을 수 있겠지. 하지만 호, 혼자서 이걸 대여섯 마리씩 먹을 수있을까? 불가능할걸? 더 비싸기도 하지만 느끼할 테니 말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붕어빵은 가장 옛날식 붕어빵이긴 하지만 내가 그것만이 붕어빵이라 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은 아냐. 하지만 저, 적어도 소년의 꿈만은 지켜져야 해. 그것만큼은 난 양보할 수 없어!“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별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순수하게 꿈을 동경하는 마음과 저 열정만큼은 굉장히 멋지고 부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이런 일도 있었다.
붕어빵.
그 때 이미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전공 수업의 나이 많으신 교수님 몇 분 밖에는 없었다. 누구나 그를 붕어빵이라고 불렀고 그도 그걸 좋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호랑이 빵, 잉어빵, 거북이나 게 빵 따위의 등쌀에 못 이겨 붕어빵 파는 곳이 줄어드는 것을 한탄하면서는
“꿈이 사라지고 있어.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 것도 붕어빵. 꿈이 담긴 붕어빵은 없고 저런 체인점 따위가 거리를 메우고 있어서 일거야.”
따위의 말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붕어빵 소리는 그의 경쾌한 목소리와는 굉장히 반대되게 들렸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는 저런 말을 할 때를 제외하면 성실한 모범생이다. 붕어빵 봉지가 언제나 한 손에 들려 있는 것만 빼면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그는 꽤 건강한 편이었지만 한겨울에, 이제는 얼마 남지도 않은 ‘진짜’ 붕어빵을 구하기 위해서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왕복 25분이나 걸려 청량리 역까지 다녀왔을 때는 고열로 끙끙 앓았다.
내 자취방은 그의 자취방 바로 옆 방 이었기 때문에 성실한 그가 수업을 하나 빼먹었을 때 이미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그의 방에 갔다. 세 시간 후에 전공과목 시험이 있어서 약간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되는데도 안 가볼 수도 없었다.
붕어빵.
그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붕어빵은 침대에 누워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뭐라도 먹었어? 하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얼굴을 빨갛고 이마는 뜨겁다.
이거, 심한데?
중얼거리고는 감기약과 닭 한 마리를 사 왔다.
우리 할머니께선 내가 아프면 어릴 적부터 닭죽을 끓여 주셨었어. 어쨌든 뭐라도 먹는게 나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하고 말했지만 붕어빵은 정말 붕어빵이 된 것처럼 열을 내며 미동도 없이 모로 누워 있었다. 나는 바로 뉘어 주고는 내 방에서 압력밥솥을 가져왔다. 닭을 푹 고은 다음 기름을 걷어내고 씻은 쌀과(물론 찹쌀 죽이 더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취방에 그런 게 있을 리도 없고 이 추운 날에 다시 나가기는 너무 싫었다!) 냉장고에 남은 양파니 감자니 마늘이니 하는 채소들을 다 걷어다가 씻고 다듬어서 잘게 썰은 뒤 넣어 다시 푹 끓였다.
솔직히 죽을 끓이기 전까지는 우습게 봤지만 채소나 밥알이 바닥에 계속 눌어붙어서 완성 될 때까지 계속 저어주는 것이 꽤나 힘들었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한 그릇 떠 붕어빵에게 건넸다. 아마 둘이서 이틀은 더 먹을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압력밥솥에 가득 담긴 죽을 보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자 이거라도 먹고 푹 자. 약을 먹으려면 뭐든 먹어야 하니까.
붕어빵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젓고 다시 누웠다.
붕어빵.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다 줄 수 있어? 미안하지만.”
아마 나의 어이없어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듯 대답이 없는 것을 긍정으로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청량리 역 2번 출구 두 번째 노점. 거기여야 해.”
그리고는 머리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어쩌겠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아파하잖아. 라고 생각하며 붕어빵을 사러 갔다. 걸어갈 엄두는 나지 않고 가뜩이나 월말인데 약과 닭을 사느라 빠듯한 생활비는 더 빡빡해져 택시를 타기는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때, 옆방에 사는 사람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운동 목적인지 한가하게 몇 번 가지고 나가다가 먼지만 쌓여가는 불쌍한, ‘헌’ 새 자전거다.
빌려야겠다.
몇 번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포기하고 돌아서서 그냥 걸을까, 몰래 자전거를 들고 나갈까 잠시 고민하는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누구세요?”
후욱 하고 술냄새가 풍겨왔다. 아마도 어디에나 있는, 매일 술에 절어 사는 자취생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 자전거는 타이어의 털도 안 닳은 채 조용히 녹슬어 갈 운명이겠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말을 꺼냈다.
저기 친구가 아파서 약이랑 먹을 것 좀 사오려는데 자전거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친구가 꼭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요.
“그래요? 뭔데요?”
설마 되물어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사실대로 대답해야 하나...
붕어빵.
붕어빵이요.
그는 크게 킬킬대며 웃다가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이 추운데 아파서는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사오래요? 거 참 나보다 더 취한 사람이군요. 아님 약간 돌았거나.”
꽤나 험하게 말하는 주제에 너무 말투가 유쾌해서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웃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쓰세요. 어차피 저 자전거 쓰지도 않고”
그는 자전거 자물쇠 번호를 알려 주고는 속이 쓰린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문을 닫았다. 낮에 활동하고 밤에 정상적으로 자는 나로서는 다시는 그를 마주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지금까지는 맞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니 5분 조금 넘어 청량리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2번 출구의 두 번째 노점.
정말 있다. 붉은 새마을 천을 덮은 허름한 노점.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능숙한 솜씨고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붕어빵.
천 원 어치 주세요. 하고 인사도 없이 불쑥 이야기하는데 할머니가 멋쩍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 학상이 아니네... 만날 요맘때 오는 학상이 있는디.”
예. 그 친구가 아파서 대신 사다 달라고 부탁받았어요.
노점을 연 지 얼마 안 되는 듯 다 구워진 붕어빵은 두 마리 뿐이다. 그것도 처음 불을 시험하기 위한 물건인지 조금 초라하게 꼬랑지가 늘어져 있었다.
“거 두 말리 먹고 있어잉. 쪼께만 기둘려. 금새 꿉어 줄텐게.”
모양은 축 늘어져 있어도 억지로 너무 달게 하지 않은 팥이 굉장히 맛있어서 금새 두 마리를 먹었다.
별로 의식하지 않고 꼬챙이로 틀을 열고 반죽을 붓고 팥을 넣고 다시 반죽을 붓고 꼬챙이로 틀을 닫아 돌리고 다음 칸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너무나 능숙해서 인상적이었다.
한 바퀴를 금새 돌리고 나서 꺼낸 붕어빵은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할머니는 신문지와 포장지를 접어 만든 종이봉투에 넉넉하게 열 마리나 담아서 건넸다.
천 원 어친데요?
“개시니까 더 주는겨. 친구가 아프다매. 나으라고 더 주고, 친구가 가면서 먹으라고 더 죽고 그런겨. 얼마 남지도 않는 풀빵인데 인심 좀 써야제.”
내가 건넨 오천 원짜리에 할머니는 몸빼 바지에 일체형인 것처럼 달려 있는 복대에서 거스름돈을 꺼내 주었다.
먹음직스러운 붕어빵 하나를 입에 물고 자전거에 올랐다. 색이 노릇노릇하면서도 타지 않은 표면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풀빵, 너무 달지도 않고 부드럽고 고소한 팥이 정말 훌륭했다.
가면서 식고, 바삭한 겉이 눅눅해질 것을 생각하니 아까울 정도라 페달을 더 빨리 밟았다.
붕어빵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봉지를 던지듯 방에 넣고는
난 시험이라 먼저 간다. 붕어빵 사 왔어.
하고 시험에 들어갔다.
시험은 꽤나 어려웠다.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 사정 때문인지 학점을 잘 받으려고 공부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줄 세워야 하는 학교 측의 입장이 끝없는 다람쥐 챗바퀴를 돌리고 있는 거다.
학생을 시험 점수로 평가한다는 것은 성실하게 공부하는지와 학습 성과 모두를 볼 수 있는 것이니 그런 면에서는 별로 불만이 없다. 하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등수를 뽑기 위해, 취직을 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정도가 되어 버리면 이건 이미 뭔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반항할 수도 없이 끌려 다니고는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시험은 그 후에도 한 시간이 더 있어서 다시 다른 교실로 향했다. 여전히 시험은 어려웠고 예전부터 동경해 온 공부가 좋아서 학구열에 불타는 진짜 학생은 아무도 없는 채 단지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만 교실에 가득했다.
떫고 텁텁한 기분으로 시험을 끝내고 붕어빵의 방에 갔다. 빈 붕어빵 봉지와 빈 죽그릇,빈 약봉지가 날 반기고 있었다.
많이도 먹었네...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내 방으로 갔다. 예전에 친구에게 받은 홍차를 끓여놓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임프라 사의 얼 그레이 홍차. 굳이 말하자면 싼 차지만 꽤 맛있다. 예전에 친구가 홍차는 중국산 녹차를 영국까지 실어가다 적도의 열기와 습기 때문에 찻잎이 변질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쨌든 마실 만한 녹차에 비해 마실 만한 홍차는 꽤나 싸다. 얼 그레이는 16세기 영국의 수상 이름인데 지금도 유명한 트와이닝즈 홍차 브랜드의 선조인 토마스 트와이닝이 그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홍차라고 한다. 귀한 중국의 홍차 향을 따라하기 위해 베르가못이라는 우리나라의 유자나 탱자 비슷한 과일을 넣어 새콤하고 향긋한 내음이 더해진 꽤나 인기있는 홍차다.
그러고 보니 이건 녹차가 변해서 된 것인 데다가 다른 것을 따라하려다 만들어진 물건이다. 붕어빵 녀석에게 이걸 주면 굉장히 싫어하겠군. 하는 생각에 씨익 웃음지어졌다.
낙엽 빛깔로 곱게 우려진 홍차를 마시다 보니 이걸 선물해 준 친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찻주전자에 홍차를 넣을 때는 몇 사람 분을 끓이든 사람 수에 한 명 분을 더 넣어야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그걸 찻주전자의 몫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맛있는 홍차를 만들어 주는 찻주전자도 차를 마실 자격이 있다나? 재미있는 이야기라 나도 홍차를 끓일 때 꼭 주전자의 몫을 넣어 준다. 꿈 같은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런 거니까.
간만에 한참 생택쥐페리의 남방우편기를 읽다가 식은 닭죽을 퍼먹고 다시 잠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교실엔 붕어빵이 있었고 그는 서툰 말솜씨로 시험에 빠지게 된 것을 변명하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지를 물었다. 더듬거리며 말하다 보니오히려 억지로 변명하는 것보다 더 어색하게 들려서 아무래도 잘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붕어빵.
한 봉지를 우물거리며 내게 교수들이 왜 자기 말을 안 믿어 주냐면서 투덜거리던 그는 곧 군대를 갔다. 아쉬워하거나 보고 싶어 하거나 연락할 틈도 없이 나도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는 각오했던 것보다는 편했지만 힘들고 지루한 것은 듣던 대로였다. 몇 명의 친구와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리는 사람 몇 명이 생기는 동안 2년은 지나갔다.
나는 전역하자마자 복학을 하고 남들 하듯 자격증 몇 개를 딴 뒤 졸업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학교에서 그럭저럭 괜찮게 졸업한 뒤 그럭저럭 취업을 하고 나름대로 스트레스 받으며 마치 수명을 깎아 월급을 받는 듯이 사회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나다.
그러고 보니 학교를 다니던 동안에도 붕어빵을 본 적도 없고 소식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말뚝을 박았다느니 다른 학교로 옮겼다느니 고시원에 갔다느니 집이 어려워져서 학교를 그만뒀느니 하는 뜬금없는 소리만 조금 들었을 뿐이다.
여하튼 추억은 여기까지.
따끈한 붕어빵을 한 봉지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그 녀석이 보고 싶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아볼 수 없을까 싶어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우습게도 학교에 다니면서 직접 연락하려 하는 것보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얻는 정보가 더 많다. 글을 올리고 나서 4일이 지났을 때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까먹을 무렵 이메일이 도착했다.
Re: 붕어빵 연락처 아는 사람 없냐?
반갑다. ㅋㅋ 나 김 XX다. 요즘 잘 지내냐?
나.... 사실.... 그동안....
결혼했다!
너도 알지? 우리 과 이 XX. 이젠 내 처야. 아 그래. 네가 물어봤던 거 내가 알아봤다.
핸드폰 번호가 010-XXXX-XXXX야 뭔가 대박났는지 꽤 근사하게 일한다더라 ㅋㅋㅋ 학교에서 맨날 붕어빵이나 물고 다니더니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었나봐? ㅋㅋ
요즘엔 붕어빵 물고 다니지도 않고 말야.
아 나한테 혹시 연락하고 싶으면 이 메일 주소로 답장 해.
그럼 이만. 잘 지내라!
김 XX, 추억을 떠올리려 해도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각박하게 산 것 같아 머리를 긁적이며 혼자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가장 눈을 끄는 것은 그녀석이 근사하게 되었다는 것과 더 이상 붕어빵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에 떠오른 것은 당근을 먹지 않는 벅스 바니, 피자를 먹지 않는 닌자 거북이, 시금치 알레르기가 있는 뽀빠이 따위, 뭐 그런 거였다.
설마 녀석이 그렇게 변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틀이 또 훌쩍 지났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Re: Re: Re: 붕어빵 연락처 아는 사람 없냐?
잘 지내니, 나 정 XX야. 네 글 보고 동창회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끼리 서로 연락을 했어.
최근에 걔를 본 친구가 있는데, 미국에서 MBA과정 다 하고 돌아와서 자기 회사 차렸다. 돈도 잘 번다던데?
연락해서, 다음번 동창회에 꼭 같이 와. 네가 오라고 하면 꼭 올 거야. 둘이 친했잖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와야 동창회도 커지고 그런 거지.
어쨌든 붕어빵이나 물고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쫙 빼입고 회사 소개 사진 찍은 거 보니까 정말 사장님처럼 보이더라.
내 연락처는 010-XXXX-XXXX야. 꼭 불러. 너도 다음 동창회 꼭 오고.
정XX의 얼굴은 기억이 났다. 수완 좋고 눈치 빠른 여자애였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친하지도 않았던 데다가 붕어빵 녀석이 잘 나간다니까 이제껏 연락 한 번 하지 않던 나한테 데리고 오라고 하는 품이 꽤나 사람을 부글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녀석이 말쑥해지고 더 이상 붕어빵이나 먹을 것 같지 않게 변했다는 거다.
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데 두 사람이면 2/3은 믿어야지 뭐.... 하고 중얼거리며 녀석에게 전화를 걸려다 핸드폰을 닫는다.
연락 따위 하고 싶지 않다.
보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붕어빵.
아, 붕어빵이 먹고 싶다.
사흘을 더 연락할까 고민하고 그동안 이메일 두 통을 더 받았다. 이제는 동창회 내부에서 소문과 정보를 돌리는지 그게 그거인 똑같은 거였다.
글쎄 평범하게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일상 속에서 남들처럼 변해버린 녀석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진심이다.그리고 고민하던 중에 나는 깜박 잠이 들었다.
(엔딩 A)
이건 꿈이다. 이렇게 명백하게 느껴지는 꿈은 처음이다. 난 붕어빵에게 여기는.... 그래 학교 앞의 작은 카페다.
꿈이라 그런지 카페는 아무것도 없이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나만 보이다가 내 주변에 관심을 두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님은 나뿐이고 카페는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지루할 정도로 기다리다 보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
말쑥한 차림에 예전보다 젖살이 좀 빠진 듯 하긴 해도 그녀석이다 그녀석.
붕어빵.
아마도 실크 양복이라도 되어 보이는 좋은 양복을 입고 가슴팍에는 사랑의 열매를 꽂은 녀석은 한 눈에도 예전의 녀석과는 달라 보였다.
순간 나는 숨거나 도망칠 수 없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알고 있는 녀석과의 위화감, 그리고 싸구려 양복을 입고 변변찮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영 엉거주춤한 자세로 시선을 회피하게 만든 것이다.
“여어!”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가 다가오고 있다. 꿈속에서 꿈속의 그가 다가오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상상 속에 빠져들었다.
“간만이다 어떻게 지내냐?”
말도 더듬지 않고 예전보다 차분해진 녀석이 말한다. 여유 있게 거들먹거리는 녀석을 보니 조금 기분이 상한다.
“여전히 말이 별로 없네. 자!”
명함을 건넨다. 명함에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벤처기업 출신의 회사 이름과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사장’ 이라는 직함이 달려 있었다. 그걸 보자 왠지 더 주눅이 드는 것 같았지만 친구가 잘 되었다는데 배알이 꼬여서 그러냐고 자신을 조금 다그치고 말을 꺼냈다.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
“부모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셨어. 의외로 재산도, 보험금도 꽤 되더라고. 그걸로 주식이랑 땅 좀 해서 불렸지. 돈 좀 불리고 나서 벤쳐기업 출신의 회사 하나를 경영권까지 사버렸어. 그리고 나서 몇가지 상품이 동시에 히트를 친 거야. 그래서 이렇게 되었지.
그는 자랑스럽게 말하며 요즘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누구를 만나는지(사실 그가 말하는 일이든 사람이든 반 이상은 모르겠지만)을 수다스럽게 말하고는 시계를 보더니 일어난다.
“미안하다. 가야겠어. 일이 바빠서 말야. 나중에 또 보자.”
그리고 꿈속에서 눈을 뜨자 카페는 사라지고 말도 안돼는 악몽을 꾸었다. 삼류 B급 영화스러운 괴물에게 쫒기는 악몽을 말이다.
만나지 말아야겠다.
부은 눈을 꾹꾹 누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는 녀석은 붕어빵보다 붕어빵의 꿈을 좋아하는 녀석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녀석은 말이다. 더 이상 붕어빵을 먹지 않는 녀석을 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팥 없는 붕어빵 같다고나 할까?
혼자 중얼거린다. 세상 사람들은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고 놀리지만, 붕어가 없는 붕어빵은 붕어빵일 수 있지만 팥 없는 붕어빵은 존재할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따끈한 붕어빵 한 봉지를 사다 먹고는,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엔 실망도 컸지만 곧 나아졌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꿈도 엷어졌는데 그만 그대로일 수는 없으니까. 사실 옛날 일을 내가 괜히 과대평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귀찮은 괴짜일 뿐이었고 요즘 삶이 팍팍하다 보니 괜히 그 괴짜 녀석에게 동조해선 어쩌고저쩌고 머릿속에서 떠들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꽉 막힌 기분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좀 마시고 돌아왔다.
꿈은 이렇게 기분을 풀어 줄 수조차 없는 거잖아? 하고 힛힛 웃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기에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술 마신 후 아침에는 언제나 그렇듯 머리가 아프다. 나는 그날 이후로도 평소처럼 출근하고 평소처럼 절망하고 평소처럼 외로워했다.
조금 다른 것이라면
붕어빵.
한 봉지씩을 매일 먹게 되었다. 마치 꿈을 가질 수 없다면 모두 먹어버리기라도 할 듯, 정말 신경질적으로 말이다.
(엔딩 B)
이건 꿈이다. 꿈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할 만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교회 같기도 성당 같기도 한 곳에서 나는 붕어빵, 그가 되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내가 그가 되어 있다는 것은 굉장히 기묘한 기분이다. 나는 그의 몸과 생각과 기분과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래서 그가 하고 싶은 것이 사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그 반대도 물론 똑같다.
내가 몰랐던 동안의 그의 기억이 내가 그가 되자 자연스럽게 내 안의 기억이 되었다.
내가 입대하고 나서 조금 있다가 붕어빵은 군대에 입대한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밖에 모르던 그에게 군은 너무 낮선 곳이었고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던 그는 너무나 힘들어한다. 그리고 힘들고 배고픈 와중에 간식이라도 먹고 잠이라도 자기 위해 주말마다 교회를 간다. 그리고 교회에선 주머니 사이즈의 작은 성경 한 권을 준다.
붕어빵을 먹지도 못하고 몸은 힘든데다 머리 쓸 일도 없어 혼자서는 꿈을 갖지 못하던 나는, 아니 붕어빵은 닥치는 대로 읽던 것이 성경책이었다.
그리고 그는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간다. 거기서도 틈만 있으면 성경을 읽고 있으니 기독교 군종병을 시켜 준다. 그는 군대에 와서 처음 교회를 간 것이었지만 별로 대꾸하지도 않고 맡은 일을 한다.
그가 붕어빵을 먹는 대신 하루에 한 번 씩은 읽는 구절이 있다.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 부분이다.
예수가 갈릴리호의 빈들에 있을 때 많은 무리가 쫓아왔다. 예수는 큰 무리 중 병든 자를 고쳐주었다.
저녁 때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할 때 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였다. 그리고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어 큰 무리로 먹게 하였는데, 5천 명(여자와 어린이는 뺀 숫자)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는 것이다.
붕어빵.
붕어빵은 이 빵과 생선이 마치 붕어빵이라도 되는 양 흥분했다.
언젠가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붕어빵이 꿈을 가진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먹는 것으로 나도 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믿음 없는 제자들이 먹을 것과 먹일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한 꼬마아이는 자신의 도시락인 작은 빵과 생선을 모두와 나눌 수 있도록 바쳤다. 순종과 나눔이 없었더라면 이 꼬마가 이 아름다운 꿈의 기적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빵과 생선이, 내가 생각했던 붕어빵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붕어빵은 성실히 군 생활에 임한다. 정 많게 사람들을 돕고 체력이 약해서 훈련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도 많았지만 모두들 기꺼이 도와 줄 만큼 다른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픔을 겪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일병 때 그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그리고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욥의 이야기를 읽었다. 욥의 고통과 그를 통한 깨달음을 읽으며 그 또한 고통과 아픔이 오히려 자신을 단련시키는 풀무불임을 깨닫고 쇠속의 찌꺼기가 용광로 불에 녹았을 때 제거되듯 더욱 속이 깊어지고 기도로 자신의 비젼을 갖기 시작한다.
군에서 전역할 즈음 붕어빵은 몇 가지 아이디어 상품을 생각하고 친해진 능력 있는 친구들과 함께 벤쳐 기업을 설립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히트를 치게 된다. 그리고 일찍 돈을 번 그는 자신의 진짜 비젼을 실천한다.
붕어빵.
붕어빵 봉사를 시작한 것이다. 노숙자, 독거노인, 감옥, 전방 부대를 돌며 붕어빵을 굽는다. 노약자 심지어 이가 빠진 노인들도 부드럽게 구운 붕어빵은 드실 수 있어서 굉장히 평이 좋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샀던 자신의 붕어빵 틀을 가지고 매주 봉사했다.
그가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에게 따끈한 붕어빵을 구워주는 것을 보고 한 친구가 투덜거린 적이 있다. 그 때 붕어빵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빨리 따뜻한 붕어빵을 건넸다면 이 사람도, 희생자도 지금도 실컷 붕어빵을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난 잠에서 깼다.
부은 눈을 꾹꾹 누르며 간만에 차를 마셨다. 친구에게 받은 진년보이차다. 좋은 차를 땅 속에서 오래 발효시키는 차다. 자신의 생전에는 완성되지도 못할 물건이지만 손자 대의 다른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 꿈이 멋있다며 선물해 준 친구가 생각났다.
그를.
붕어빵을.
만나자.
굳이 거짓말 같은 꿈 때문은 아니다. 평범하게 일하고 살더라도 괜찮다. 꿈속에서, 내가 붕어빵이었을 때의 그 꿈. 그것에 나도 참여하고 싶어졌다. 만일 내 꿈처럼 붕어빵이 살고 있다면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다. 생선을 먹고 싶어 하던 소년의 꿈과 모두와 소중한 도시락을 나누고 싶었던 아이의 꿈이 팍팍한 세상을 얼마나 바꾸는지 보고 싶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래도 난 그를 만날 것이다. 꿈속의 그. 그의 그 꿈을. 그렇다면 내가 훔쳐내겠다. 그래서라도 나의 꿈을 갖겠다. 설마 꿈을 훔친다고 잡아가진 않겠지?
첫댓글 멋있군... 소박한데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