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거(慧炬) 스님은 1959년 영은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으며, 1961년 월정사에서 범룡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였다. 탄허 스님 회상에서 사교와 사집을 수료하였으며, 영
은사에서 역경사 3년결사에 동참하였다. 1963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으며 1964년 김제 흥복사 선원
등에서 수선안거, 1966년 묵호 대원사 및 서울 대원암 주지, 86년
조계종 20교구본사 선암사 주지를 역임하였다. 78년~82년 탄허
대화상의 역경을 보조하였다. 92년 한암대종사문집편찬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88년 금강선원을 개원하여 현재까지 불자들의 경
안을 열어주고 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2000년 3월 강원도 홍천
의 대봉초등학교를 임대인수하여 금강선원선수련장 기공식을 가
졌으며, 화천에 화천 10년결사도량을 일구고 있다. 도심에서의 회
향이 마무리되는 대로 10년결사도량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원없
이 수행할 원력을 세우고 계시다.
밖으로만 치닫는 세상사 속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범부는 도달
할 수 없는 ‘성인의 길’로 치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곁
에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는 수행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
이 되는지 모른다. 게다가 도심 속의 포교당에서 그러한 스승을 만
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불교방송과 교계 잡지, 각종 법회
를 통해 불법을 전하고 계신 혜거 스님을 뵈러 가는 날 햇살이 찬
란했다.
생활참선으로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
서울 강남구 개포 5단지, 상업업무지역의 삼우빌딩 4층 금강선원
엔 산사의 정적이 감돈다. 일요일 아침 9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짐짓 거룩해보인다.
“참선의 수련법인 지(止)·관(觀) 수식관(數息觀)을 응용해서 청소년
들에게 맞는 생활참선법을 계발해서 지도하고 있는데 심적인 안정
과 아울러 집중력과 지구력, 창의력을 키울 수 있어 호응이 매우
좋습니다.
요즘 학교 교육에 소외된 채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할 나이에 위축된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를 열어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청소년
들로 하여금 자기 안에 본래 깃든 불성(佛性)을 깨닫게 하여 우주
의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야말로 불교 지도자들
의 가장 큰 과제일 것입니다.”
스님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불성을 깨달을 때 이 세상
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올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스님의 참선 지
도로 꼴찌가 상위권에 오르고, 상위권이 전교수석을 했다는 이야
기에 세상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실제로 스님의 뜻은 불성
찾기에 있다.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깃들어 있다는 것
만 인식해도 우리들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불성만 깨닫는다
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저절로 생겨나지 않겠는가. 청
소년기에 발심출가한 스님, 부처님과의 만남으로 법열 속에 살고
있는 수행자의 청소년들에 대한 진한 애정이 가슴을 적신다.
‘수보리 행자’ 시절
“어려서 별명이 영감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조숙했던 소년은 서당에서 글을 배우면서 동양사상에 매
료되었다. 다른 것은 일체 관심이 없고 오직 성인군자의 길을 갈망
하고 있을 때 속가 외삼촌인 김지견 박사가 승복을 입고 찾아왔는
데 그렇게 끌릴 수가 없었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발심, 출가의 뜻
을 굳혔고, 외삼촌이 써주신 소개장을 들고 탄허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가 너무 좋아 마치 신선경에 들어온 듯한 산
사의 첫 느낌부터 상서로웠다.
“나처럼 출가 복, 스승복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겁니다. 탄허 스님께
서 화엄경 3년결사를 막 시작하고 계시는데 행자로 들어가게 되었
으니….”
행자 때 공부의 반을 했으니 지금껏 은사이신 탄허 스님의 덕화 속
에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환히 웃는 혜거 스님, 은혜를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이들이 많은 현실이기에 그 모습이 더욱 아
름답다.
“탄허 스님의 지도방침이 공양주든 행자든 공부하고 싶은 사람 모
두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양주의 공부를 위해 3년간 전
대중이 점심공양은 찬밥을 먹어야 했지요.”
탄허 스님 덕분에 3년의 행자기간 동안 경전 공부에 전념할 수 있
었다. 나무 하고, 채마밭 가꾸고, 농사를 지으면서 오전에는 화엄
경을 배우고 오후에는 본과 공부를 했다. 행자생활틈틈이 시간을
내어 공부하는 것이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지만 환희심에 충만해
있었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당시에는 모든 의전을 전부 익히고 금강경을 한 권 암송해야만 계
를 받을 수 있었다. 경전을 외울 시간이 없어 돌아다니며 외우다
보니 ‘수보리 행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부는 바짝 긴장하면 더 능률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집중해서 운율까지 넣어 외우니 도반들보다 빨리 외울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막힘없이 외우다 보니 뒷부분은 외우지도 않고 강사
스님의 칭찬을 받으면서 시험에서 통과되곤 하였다.
“나중에 그런 공부습관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고나서 끝부터 외
워나갔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끝을 외우고 앞을 놔둘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행자 때의 공부가 큰 힘이 되었다는 스님은 경전공부로 기초를 다
진 연후에 참선문에 들라고 당부하신다.
“어렸을 때 먹어야 할 게 있고 어른이 먹어야 할 게 있습니다. 초
심자가 참선문부터 들어가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녹용을 먹이는
것 같은 우를 범할 수도 있지요. 경전 말씀을 통해 발심을 견고하
게 하고나서 참선 수행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잠이 깨면 일어나 정진하라
행자 때 화엄경 3년결사를 회향한 뒤 탄허 스님께서 월정사 강원에
서 다시 화엄경을 강할 때 은사스님을 시봉하면서 공부를 다졌다.
60년대 후반 탄허 스님이 동국대 대학선원장으로 계실 때도 모셨다.
몇 년 동안은 외전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 인연으로 탄허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6년 전부터 시봉해드리면서 주역, 도덕경 등
을 교정해드리기도 했다.
“입적 직전까지도 수행을 놓지 않으시는 스님을 시봉한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도 활짝 핀 연후에 지는 것처럼
사람도 가장 무르익을 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참 수행자는 열반
할 때 비로소 알아본다고 한다. 탄허 스님께서는 저녁 9시만 되면
방문객이 있든 없든 반드시 주무셨다. 그리고 새벽1시든 2시든 늘
첫잠이 깨면 일어나서 정진하셨다. 입적하실 때까지 하루도 거르
지 않고 정진하던 스님의 모습이 이후 수행생활의 지침이 되고 있
으니 제자로서 그 얼마나 큰 행운인가.
반조(返照)하라,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교를 배운 뒤에는 교를 버리고 선에 든다(捨敎入禪)는 말처럼 스님
은 경전공부가 깊어진 60년대 후반 김제 흥복사 선방에서 처음 결
제에 들었다.
“경공부만 했지 참선은 처음인지라 죽비소리만 나도 머리카락까지
아프더군요. 방선시간이 되면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앉으면 지옥이
고, 하루가 한 달 같았습니다. 부처님 출가 열반일을 기해서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용맹정진하는데 고통의 연속이었지요. 참선은
한 철이라도 제대로 해봐야 압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고통스러웠으
나 그 과정이 나중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공보다는 실패 속에서 성숙한다더니, 앉아서 망상만 피웠더라면
그럭저럭 타성에 젖어 한 철 무난하게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철저
하게 참구하다보니 그렇듯 고되었지만, 힘들었던 만큼 훗날 큰 힘
이 되었던 것이다.
“수덕사 혜암 스님을 찾아 뵙고 공부에 대해 여쭙자, 노장님께서
‘공부는 반조밖에 없어’라고 하시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
지만 차차 ‘반조가 과연 무엇일까?’ 궁구하다가 참선 수행으로 경지
에 이른 수중 스님께 그 방법을 여쭙고 공부의 가닥을 잡게 되었지
요.”
우리들의 눈·귀·코·입은 밖으로만 향하는 데 비해 반조는 안으로 돌
리는 것이다. 밖의 사물에 끄달리지 않고 내 안을 들여다 보는 반조
(返照)는 참선수행의 기초요, 기초를 잘 다졌을 때 수행은 급진전하
기 마련이다. 모든 상황에 접해 반조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처음
이자 마지막이다.
“참선 수행의 결실을 부득이 논하자면 얼마만큼 흔들리지 않고 비
워졌느냐입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이 뿌리까지 뽑혀
져야 공부가 제대로 된 것입니다.”
한편 스님은 담기 위해 비우는 것임을 역설한다. 그릇에 무언가를
담으려면 먼저 비워야 하는 것처럼 탐진치 삼독심을 비웠을 때 온
우주를 담을 만큼 큰 마음이 되는 것이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이
다. 비운다는 것은 무위(無爲)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단
지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이리라.
“비운 사람은 준비된 사람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방과 그릇을
큰 용도로 쓰려면 비우라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런데 방이나 그
릇은 설혹 비우지 않더라도 깨져버리지는 않는데 안 비우면 아주
깨져버리는 도리가 있어요. 수레의 바퀴살이 자신을 비워야 바퀴
통이 굴러가지 안 그러면 바퀴통이 깨져버리고 맙니다.”
수행을 통해 자신을 비웠을 때 영원을 살 수 있다. 겉으로만 치달
려 눈·귀·코·입이 각기 주인노릇을 하다보면 불성을 상실하고 윤회
의 수레바퀴를 돌고 도는 것이다.
“차를 마셔 봐야 그 맛을 알듯 해보지도 않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또한 경전을 먼저 공부한 이는 사교입선(捨敎
入禪)해야 하고 선문에 먼저 든 이는 반드시 경전에 입각해서 점검
받아야 합니다.”
불교의 생명력은 수행에 있고, 그 경지를 부처님 말씀으로 점검해
보아야 제대로 공부했는지 알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는 혜거 스님,
지극히 수행했을 때 인생과 우주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
안 배우고도 알아지고, 언어 문자 이전의 이치가 알아진다는 스님
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죽어야 사는 도리
“염불, 참선, 주력, 사경 등 갖가지 수행방법이 있는데 이 모든 것
이 실로는 다 하나의 도리입니다.”
경전공부, 참선수행, 금강경 사경, 백일기도 등에 두루 전심전력한
스님의 말씀이기에 더욱 미덥다. 스님의 백일기도 일화는 신심이
절로 난다.
어느 해인가 속리산 복천암에서 백일기도 원력을 세웠다. 도량석,
새벽예불, 각종 불공의식까지 집전해가면서 하루에 여덟 시간을
꼬박 서서 목탁 치고 염불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몸에 무리가
오고 너무나 아파서 한 달여 지났을 땐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
각마저 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온갖 궁리를 하다가 문득 ‘기도
시간을 늘려서 더욱 용맹정진하리라’는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새벽 세 시부터 오전 11시 30분까지, 점심공양 후 2시부터 5시까
지, 저녁공양 후 7시부터 9시까지 한 달 동안 서서 기도를 했더니,
다리가 뚱뚱 붓고 발가락 사이는 오리발처럼 붙었다. 목탁을 든
손은 세 시간이 지나면 마비가 왔다. 그 고통이 극에 달하자 ‘죽어
도 이렇게 아플까, 그래 차라리 죽자. 기도하다 죽으면 얼마나 멋
진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죽을 각오로 기도했다. 그렇듯 관세음
보살을 지극하게 염송하면서 죽으려 했는데 죽어지지 않았다. 그
런데 어느날 죽음의 경지에 딱 이르른 듯한 찰나에 기가 막힌 현
상이 일어났다.
“아프던 팔은 힘이 솟구치고 다리의 부기가 빠지고… 날아갈 듯 경
쾌한 것이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염불해도
목이 잠겼었는데 목청이 툭 터져서 온 도량을 쩌렁쩌렁 울렸지요.
그 다음부터는 관세음보살 몇 번 염송한 것 같은데 사시마지가 올
라오곤 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정진한 결과 신통묘용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픈 몸도 낫고, 염불삼매 속에서 가볍게 백일기도를 마쳤다는
스님의 이야기는 우리 안에 본래 깃든 불성의 위신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문득 광덕 큰스님께서 그토록 간곡하게 설하신
‘우리는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 떠오른다.
“사경도 지극한 마음으로 하면 삼매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금강경 병풍을 8백여 벌 쓰신 스님은 그 역시 2~3일이 걸리는
분량을 단 몇 시간에 쓸 수도 있단다. 한 가지에 몰입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몰입할 수 있다. 모두가 수행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일에 매진할 때 그
는 성공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수행으로 성공과 실
패에 집착하지 않고 반조하는 이들이 모인 세상은 그대로 불국
이리라.
발심이 최상의 수행법이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평범하다는 데에 안주해서 용기를 내
지 않지요. 부처님은 인류에게 가장 큰 희망을 주신 분입니다. 부
처될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확신하고 용기를 내서 발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처님 당시 바보였던 주리반특이 발심해서
깨달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도 남음이 있다.
발심이 최상의 수행법이요, 발심해서 원력이 사무치면 지혜가 생
기고, 나아가 용맹정진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며 스님은 불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스님의 감동적인 수행역정이 큰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겉껍데기
에 끄달리지 않고, 발심한 불자들이 ‘세상의 등불이 되리라’는 큰
원력을 세워 실천수행할 때 밝은 미래가 열린다”는 스님의 말씀이
못내 귓전을 울린다. 희망찬 새봄이다. ‘불광’도 새로운 발심을 다
짐해본다.
월간 불광 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첫댓글 마니주님!! 고맙습니다.._()()()_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_()()()_
마니주님!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좋은글 감사합니다._()()()_
마니주님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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