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발라드의 노스웨스트46번가와 애버뉴15번가 사이의 모퉁이에 있는 트레이드 조와 LA 피트니스의 사이에 박혀 있는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삼면이 우뚝 솟은 콘트리트 벽에 둘러싸인 100년도 더 된 이 낡은 집은 에디스 메이스필드(Edith Macefield)라고 하는 고집 센 노부인의 소유였는데, 2006년 복합 상가를 만들겠다고 제안된 100만 달러에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콘도와 트렌디한 식당가로 사라지게 된 블루칼라의 이웃주민들에게는 영웅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다.
108년이나 된 오래된 건물주변에 5층 건물 건축을 강행하는 그녀의 케이스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해졌다.
메이스필드의 이 상징적인 집은 2009년 픽사 영화인 “UP"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에디스의 목표는 그녀 자신의 집에 가능한 한 머무는 것이었다.
“ 내 어머니가 여기서 돌아가셨지..바로 이 소파에서. 내가 영국에서 그녀를 돌보러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나한테 시설이 아니고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게했지...나는 약속을 지켰지... 그리고 여기는 바로 내가 죽고싶은 자리야. 바로 여기 내 집안 바로 이 소파에서...”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나는 돈도 필요 없어요. 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는 그녀의 말은 시애틀P-I에 인용되었다.
그녀는 1950 년대에 구입한 작은 오래된 집에 2008년 사망할 때까지 콘크리트 벽이 그녀의 주위에 둘러져진 후에 조차 계속 살았다.
크레인이 그녀의 지붕에 우뚝 솟았을 때 조차도 메이스필드는 그냥 텔레비전이나 그녀가 좋아하는 오페라음악을 약간 크게 돌리기만 했다.
그러면서 “세계 이차대전을 겪으면서 소음은 더 이상 방해가 안되.” 라고 말하곤 했다.
두 번 또는 세 번은 거의 집을 팔아치울 뻔 했지만 메이스필드는 언젠가 떨어져서 갈빗대를 다쳤다. 그 후로는 이동하는 것이 너무 번거로와 졌다. 그래서 그냥 버티게 되었다.
사실 메이스필드는 모든 진행에 반대를 하지 않았으며 자신도 이제는 옮기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단순히 생각하기로 했다.
건설기간동안 메이스필드는 베리마틴 이라는 이 건설프로젝트의 수석감독과 있을 것 같지 않는 우정을 쌓았다.
마틴은 쇠약해지는 메이스필드를 2년간이나 간호를 했다.
그는 그녀와 긴 밤을 같이 보내면서 2차 대전에서의 스파이였다는 이야기와 수용소에서 탈출한 이야기며 진할로우와 찰리채플린과의 친분등 그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들었다.
그는 그녀의 집을 청소했으며 그녀를 목욕시키고 의사와의 약속에 데려갔으며 그녀의 심부름을 했다.
2008년6월 췌장암으로 메이스필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베리마틴에게 집을 남겼다.
그는 나중에 부동산코칭회사를 운영하는 사무실로 용도변경하려는 그렉피네오에게 31만달라에 팔았다.
2012년 10월 집은 리모델링을 거쳐서 새로운 창문이 달리고 다락방은 거실과 침실욕실로 확장이 되었다.
소유자는 이제 집을 들어 올리고 아래에 지역사회의 이벤트공간을 구성할 계획이다.
워싱턴 중에 있는 이 작은 집에 오기전 에디스는 흥미로운 삶을 살았다.
오레곤주에서 1921년에 태어난 그녀는 영국에서 전쟁노력에 지원하기 위해서 나이를 속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18세가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도 그녀는 고아를 돌보느라 해외에 머물렀고 그녀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 때에야 그녀는 미국에 돌아왔다.
그녀의 자손은 13살에 뇌막염으로 죽은 아들 하나만 있었다.
출처: Edith Macefield's Legendary House in Seattle ,
Seattle pi
번역및 엮음: 행림거사.
첫댓글 시애틀에 신기한 건물이 있군요.
때때로 고집스러움이 유연한 것 보다
도행에 가까울 수 있다고 느껴집니다.
저 미국에 인간미가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