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곧바로 바다가 떠오른다. [니모를 찾아서]처럼, 여름 영화 배경으로 바다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 수는 없다. 다른 영화와는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그 무엇은, 이야기는 보수적이지만 캐릭터는 도전적이라는 것이다. 역시 할리우드 천재들은 100% 모험은 하지 않는다. 흥행 안전핀을 다른 한쪽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애니메이션 시장은 푸른 파도로 출렁거린다. [니모를 찾아서]가 역대 애니메이션 박스 오피스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했지만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슈렉]을 만들며 디즈니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드림웍스가 [신밧드: 7대양의 전설]로 도전하고 있다.
앤드류 스탠튼 각본 감독의 [니모를 찾아서]는 [토이 스토리][몬스터 주식회사][벅스 라이프]를 만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 스튜디오가, 월트 디즈니와 손잡고 내놓은 애니메이션 블록버스터다. 바다속 풍경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테크닉이 매우 뛰어나다. 또, 영화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결정적 요소는 타이밍인데, 웃음의 성감대를 건드리는 시간차 공격과 절묘한 한국식 번역도 좋다. 그러나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영화를 끌고 가는 튼튼한 내러티브다.
바다 속에는 약 3조 7천억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물고기 니모와 그의 아버지 말린은, 우리에게 아네모네 피쉬라고 알려진 클라운 피쉬 종이다. 호주 북동부 거대한 산호초 지역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지역에 살고 있는 모험심 많은 어린 물고기 니모는, 열대어를 수집하는 스쿠버 다이버에게 붙잡혀 시드니 항구의 치과의사 수족관에 갇히게 된다. 겁많고 소심한 아버지 물고기 말린은 과보호하던 아들을 잃고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며 니모를 찾는다. 말린은 낙천적이지만 건망증 많은 푸른 색 물고기 도리를 만나, 함께 니모를 찾아간다.
니모는 시드니 항이 내다 보이는 치과 병원 수족관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수조에는 다채로운 캐릭터들, “길”이라는 검고 터프한 물고기와 불가사리 “피치”,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복어 “블로트”, 거품에 집착하는 옐로우 탱 “버블” , 결벽증이 심한 로얄 그래머 “거글”, 강박적인 청소 새우 “자끄”, 유리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쌍둥이 자매 “플로”라고 굳게 믿고 있는 흑백 줄무니의 댐즐 피쉬 “뎁” 이 살고 있다.
말린과 도리는 상어 트리오 (무식한 육식 기계라는 오명을 벗고 다정한 채식주의 상어로 거듭나기 위한 “5단계 프로그램”을 시작했음),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아귀, 해파리 지뢰밭, 푸른 고래, 호주 동부 해류 East Austrailian Current, EAC의 파도, 돌진하는 바다 거북 떼와 조우하고, 굶주린 갈매기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가까스로 시드니 항에 이른다.
줄거리 뼈대만을 들으면 새로울 것이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신물 나게 우려먹은 케케묵은 가족주의다. 보수적 세계관에다 해양 어드벤처류의 양념을 슬쩍 뿌렸다. 너무 익숙한 이런 플롯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리 없다. 그러나 [니모를 찾아서]의 시나리오는 마술을 부린다. 내러티브의 단순성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씨줄 날줄로 얽힌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살아있게 만드는 다양한 캐릭터들이다.
채식주의 백상어나 갈매기를 무서워하는 우스꽝스러운 펠리칸 등 주변부 캐릭터들은 쉴새없이 웃음의 파도를 불러 일으킨다. 낡은 주제를 희석시키는 것은 현란할 정도로 수다스러운 입담이다. 제한된 공간 속에 갇혀 있는 니모는 바다 속을 바쁘게 움직이는 아버지 말린과 대비된다. 정(어항)/동(바다)의 대칭적 구도를 축으로 수많은 변주가 일어난다.
말린과 니모는 아네모네 피쉬라고 불리우는 클라운 피쉬고, 도리는 이름과는 달리 노란 색을 띄고 있는 블루탱 종이다. 시드니 치과의사 수족관의 조폭 물고기 길은, 무어리쉬 아이돌이고, 백상어 트리오는 바다 속에서 시속 35Km의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마코 상어다. 150살의 크러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녹색 바다 거북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회귀성을 갖고 있다. 수많은 동료 거북들과 함께 1250 마일을 헤엄쳐 태어난 곳을 향해 돌아가는 특성이 있다.
<니모를 찾아서>의 기술팀은, 각 캐릭터들의 동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호초 및 바다의 리얼한 형태와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빛(바다 밑바닥에서 춤추는 빛의 문양과 표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흐릿한 빗줄기들), 부양물(물 속에 항상 떠다니는 미세한 조각들), 물결(수중 생물을 움직이게 하는 일정한 요동), 어둠(멀어지면서 빛이 소멸하며 어두워지는 방식), 해수면 상태(빛의 영향을 받는 수면, 물결과 파도) 등과 물거품, 파문, 떨어지는 물방울, 동심원들을 그려넣어 변화무쌍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인간 캐릭터와는 달리 물고기는, 머리 방향을 바꿀 때 몸 전체가 따라서 방향을 틀게 된다. 말린 같은 클라운 피쉬는 몸을 움직이며 속도를 내고 가슴 지느러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도리 같은 블루탱은 거의 몸체를 움직이지 않고 지느러미를 파닥거려 헤엄친다. 물고기가 말과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해저에서는 중력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위치를 약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물고기의 제스처를 표현한다.
본질적으로 어떤 대상을 찾아가는 여행은, 관객들의 심리에 수직적 깊이를 부여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안개 속의 풍경] 등은 한 방향의 강렬한 시선으로 화면을 끌고 간다.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거나 먼 길을 우회하더라도 우리는 애초의 목적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다.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버지 말린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잊혀진 부성을 자극한다. 탈권위주의의 시대에 아버지의 옛 자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니모를 찾아서]의 위대한 가족주의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위대한 본능에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