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가면 유명한 항구가 하나 있다. 꽤 오래전부터 멸치를 비롯한 각종 생선을 잡아 부산 또는
통영항으로 올리는 역할을 했던 항구로, 생선뿐만 아니라 거제도 주민들을 육지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해왔던 유서 깊은 항구이기도
하다. 이곳의 이름은 장승포로서, 좁은 만이 아닌 넓은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대도시인 부산까지 가장 짧은 거리에 위치한 덕분에
거제도에서 가장 큰 포구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로
꾸준히 거제도의 대표 포구로 이름을 알려왔지만 냉정히 보면 그저 변방의 시골 포구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대우조선소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공단이 들어선 옥포를 포함한 장승포 일대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고, 결국 1989년 시로
승격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시 승격 6년 만인 1995년 거제군과 다시 통합되면서 장승포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조선단지는 꾸준히 번창하여 20여 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거제군의
전통적 중심지였던 고현리 일대와는 독자적으로 발전한 배경 덕분에,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이후에는 여기서 외지로 나갈 수 있는
버스터미널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온통 산악 지형뿐인 장승포에선 평평한 땅을 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워낙 고립된 위치에 동네가 있다 보니 넓은 부지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임시 정류장 같은 모양새로 간이정류장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 시설을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비가 내리는 점심쯤의 장승포는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경기 침체로 조선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오면서 지역 경제가 나락으로 빠졌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직접 왔을 땐
그런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다. 다만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고 동네가 조용하다는 것은 대략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장승포가 가장 한산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거리에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급경사길이 굉장히 많다. 고현 쪽은 그래도 도시 자체가 평지에 있어서 딱히 언덕이 많이 나오지 않아 쭉쭉
도로가 뻗어있고, 중간에 지나온 옥포의 경우에는 언덕이 많지만 구획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 깔끔하게 정돈된 반면에 여기는 아예
산비탈에 도시를 만든 듯 도로가 구부정하고 메인 도로 바로 옆에도 상당히 경사진 골목길이 나타난다. 대략 부산, 통영 구도심 분위기와 상당히 흡사한 분위기다. 이런 곳에서 매일같이 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고, 왜 이쪽 사람들의 운전이 험한지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이렇게 험한 길목 사이에 조그마한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다.
장승포에 있고, 이렇다 할 승차장 구조가 갖춰지지 않은데다 주차·주유 시설이 미비하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이다. 상당히 특이하게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에 임대해서 정류장 시설을 쓰고 있는 듯 보인다.
60~70년대에나 볼법한 오래된 아파트 느낌의 건물에 들어와 있는데다 이렇다 할 버스 관련 안내판이 없어 버스를 타러 여기를 온다
해도 터미널을 찾지 못하고 헤맬 수 있을 것 같다.
주차장이 굉장히 좁아서 예닐곱 대의 버스가 들어오면 자리가
빽빽하게 꽉 차버리게 된다. 여기는 육지에서 올 수 있는 가장 먼 지점이라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지역이 없어서 여기에 들어오는
차들은 무조건 주차를 해야 하는데, 이런 데에서 주차시설이 없다는 건 매우 치명적인 일이자 터미널로서는 실격인 부분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기에 어떻게든 좁은 땅에 꾸역꾸역 차들을 박아 넣고 있는 형편이다.
정류장에 가까운 외관, 비좁은 주차시설, 오래된 건물...
대체 이 버스정류장은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까? 최소 198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 거라 추정되지만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주차장 뒤편에는 이런 기사식당, 이발소 같은 시설이 있는데, 이들도 굉장히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을 해온 듯 모진 세월의 풍파를 다 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건물은 나름대로 큰 편이지만 매표소를 비롯한 정류장 시설은
매우 작아서 찾기가 까다로운 편인데, 여기서 표를 사려면 왼편 끄트머리로 가야 한다. 인형 뽑기 바로 왼쪽에 조그마한 간이
매표소가 있고 그 옆에 놓인 유리문으로 들어가면 버스를 기다리는 맞이방이 있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좁고 답답해 보이는데, 매표소
사방으로 붙여놓은 시간표가 그 답답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하지만 시간표를 섣불리 떼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표를 사진 않아도 시간표를 확인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와서 시간표를 보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밖이든 안이든 시간표는 무조건 붙여놓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될 것이다. 안쪽의
좁은 맞이방은 마치 간이역의 아담함을 빼닮은 듯한 모습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오붓하게 붙어있는
의자들이 인상적이다. 선풍기를 제외하면 따로 냉난방 장치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워낙 외진 지역에 있지만 거제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시로
승격되었을 만큼 인구가 있기에 딱 그만큼의 노선망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시내가 조선소를 사이에 두고 장승포와 옥포로 갈라져 있어서
여기서 출발하는 모든 노선은 옥포를 경유하고, 시가지가 더 발달한 옥포 쪽의 수요가 더 많아 여기는 사실상 차고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수요가 많은 노선은 아무래도 부산으로 가는 노선이다. 신평역을 거쳐 사상터미널로 들어가는 노선과 김해공항으로 가는 노선이
각각 1시간 간격으로 번갈아 운행되어, 총 30분 간격으로 부산행 직통 노선이 출발하고 있다. 중간 경유지인 옥포에서 하단가는
직좌버스 2000번과 경쟁함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거제시 입장에선 거의 시내버스에 준하는 수준의 배차간격이다.
현재 가장 수요가 많은 곳은 부산행이지만, 정작 마산 쪽으로
시외버스가 더 자주 다닌다. 왜냐하면 부산 방면으로는 고현터미널과 각각 다르게 시외버스가 운영되어 노선이 분산되는데다 옥포로는
하단행 직행좌석 2000번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부산 가는 손님의 극히 일부밖에 흡수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산으로는
온전히 시외버스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거가대교가 뚫리기 이전엔 동남권 주요 지역으로 가려면 무조건 마산을 경유해야만 했기에
이쪽으로의 노선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가대교 개통 이후 수요에 큰 타격을 받아 횟수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
있고, 경로가 다른 진주행까지 같이 붙어있어 가독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마산, 창원, 진주방면 승객들도 물론 이 시간표를
봐야겠지만, 이건 차라리 고현, 통영, 고성으로 가는 손님들을 위한 시간표에 가깝다.
진주로 가는 직행버스는 50분 간격으로 균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모든 차량이 고현을 경유하여 노선 자체가 분리되지도 않았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인해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져서인지
은근히 버스가 자주 다니는 편이다.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 옥포에서는 1시간 30분, 고현에서는 1시간 10분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동남권의 전통적인 3대 도시 부산, 마산, 진주행을 제외하면
다른 노선은 상당히 드문 편이다. 그나마 서울 가는 노선은 전국 어디에도 있으니 당연히 여기에도 있을 것이고, 중간정차가 많아
전환고속으로 운영된다. 고현을 경유하기 때문에 거의 완전한 서울-거제간 노선이고, 배차간격은 상당히 들쑥날쑥한 편이어서 4시간
가까이 벌어질 때도 있고 불과 20분 뒤에 차가 올 때도 있다. 이외엔 대전 3회, 광주 2회, 창원 4회가 전부다. 전국적으로
노선망이 발달한 통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갖춰진 고현에 비하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고현과도 노선이 이리 차이가 난다는 것은 고현까지만 운영하는
노선이 상당수라는 뜻이다. 어차피 20~30분 거리인데 장승포까지 들어오면 조금이라도 더 돈이 되지 않을까 싶겠지만, 현실은
우리의 상상만큼 녹록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주차장 문제다. 고현조차도 주차장 문제로 몸살을 앓는 판에 거의 일개 정류장
급으로 협소한 장승포에서 그 많은 노선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고현 노선을 연장시킨다면 고현의 주차장 문제가 해결되어
리모델링 선에서 충분히 문제를 덮을 수 있겠지만, 장승포는 그야말로 지옥이 된다. 마을 앞 도로까지 점령해가면서 불법 주차를
일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근처의 다른 공터에 새로 버스터미널을 짓고 그쪽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는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산동네다. 맞이방 뒤쪽에 걸려있는 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거제도는 거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고, 여기서 가장
동쪽에 있는 장승포는 동네 자체가 산 위에 있는 지형이다. 이미 산 중턱까지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이곳에 가로세로 100m
이상의 넓은 부지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
그렇다고 옥포로 터미널을 옮기자니 그쪽도 이미 포화상태인 건
마찬가지고, 그나마도 얼마 남지 않은 땅이 있다 한들 이미 장승포에서 출발하는 구조로 자리 잡혔는데 한순간에 옥포까지 나가서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 장승포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책을 세우라는 요구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거제도 시내 중에서
가장 교통이 불편한 장승포 주민들이 시외버스에 의존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쪽 동네에선 특히나 더 민감한 문제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도시라면 거의 모든 노선을 연장해서 두 시내에서 모든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겠지만, 거제시는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중심부에 있고 가장 수요가 많은 고현터미널이 노후화와 부지 문제로 더 이슈가 되지만 정작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장승포터미널이다. 이 문제의 실마리를 잘 해결해서 사람들이 편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거제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먼 길을 떠났다. 가보고
싶은 관광지야 많았지만 날씨도 안 좋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빗길의 드라이브를 즐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안 그래도 꼭 한 번쯤은
타보고 싶었던 거가대교를 직접 밟게 되니 너무 기쁘고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날씨가 좋았다면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섬을 떠나 육지로 들어가는 일정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 사뭇 궁금해진다.
첫댓글 마지막 사진을 보니 거가대교 한 번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정말 좋아요! 부산여행 갈일 있으면 꼭 이용해보시길 바랍니다. ^^
아예 야산 하나를 깎아내지는 않는 한 어려우려나요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동안 각 지역별로 세세히 하시다 보니 이제는 리뷰 올린 터미널이 안된 터미널 보다 더 많은 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흠 그런가요? 한번 숫자를 세봐야겠군요 ㅎㅎ
고현 행 시외 시내 갑니다
비오는 장승포의 모습, 유럽의 어느 항구같은 풍경입니다! 서울노선의 배차 간격이 좋은건 아닌것 같습니다. 경유 직행이던, 부분 직통이던, 우등 좌석이던간에 소요시간대비, 이용객 집중시간 대비해서 적절한 배차가 필요해 보입니다. 서울행인데 3시간씩 벌어진다면, 시각표를 꼭 숙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비자 중심의 시각과 입장을 배려한다면 개선되어야 겠습니다.
인구, 거리 대비 횟수는 준수한 편입니다만 배차가 들쭉날쭉한 게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조정은 필요해 보여요.
터미널 부지가 협소하네요 명절이나 대수송기간에는 매우혼잡할것 같은데요
건물이 주차장 뒤쪽에 있어서 더 혼잡할 것 같아요.
정독을 하면서 잘 보았습니다. 내고향 경남 거제시 능포동입니다. 예전에 95년도 이전에는 경남 장승포시여서 장승포터미널였는데, 지금은 경남 거제시 능포동에속하며 능포동 아래(?)에 장승포동이 있지요. 오래전부터 현부지의 포화상태로 인해 능포동 바닷가쪽으로 터미널을 옮기는 방안을 세웠으나, 지금 그 부지를 경원여객(고속) 차고지와 숙소로만 이용 할뿐입니다. 저또한 추측컨대 장승포터미널의 시작은, 현재 말도많고 탈도 많은 대우조선해양(구.대우중공업)이 생긴 80년대 초쯤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당시 대우중공업이 들어선 자리에 원주민들을 이주시킨 마을이 '옥수마을'이라 하여 터미널 옆 옥수시장 오른편의
집들이 그시절 옥수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능포동이긴 하나, 능포동은 바닷가쪽을 능포라하고, 보통은 터미널이있는 그 지역을 지도상에는 없는 '옥수동'이라고 부릅니다. 타지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낄수있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