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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중심으로 세우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꽉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축하할 일
어느 여자가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차 있자 친구가 물었습니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
그러자 그 여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어제 차장이 됐어.”
그러자 친구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축하할 일이잖아?”
그런데 그 여자가 긴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전엔 부장으로 있었거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부장이 차장보다 높은 직급인 줄로 알고 있나 봅니다.
회사 직급을 잘 알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교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 알지 못하면 낙심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교회의 질서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교회를 잘 섬기며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교회와 이웃과 성도님들을 잘 알아갈수록 그만큼 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P4.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턱대고 되는대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실 때에도 철저하게 이미 계획된 메뉴얼에 의해서 창조해 나가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차근차근히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해 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에서 천 가지, 만 가지, 억만 가지를 다 계획을 세워서 천지 만물을 창조해 나가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미리 계획된 메뉴얼에 의해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지구촌, 아니 온 우주계를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다르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께서 친히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만들어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면서 생령이 되게 하시면서 사람이란 존재를 만들어주셨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주셨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근본부터 다르다.
피조물은 아무리 뛰어나고 유능하고 능력이 탁월하다 해도 피조물은 피조물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밖에 없을뿐더러, 또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하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상실하고 만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잃어버린 사람이란 존재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연인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구원받을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능력, 구원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의로움을 찾아갈 수 없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본인의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히 진행시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일이건 미리 계획하지 않고 진행되는 일은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간이란 존재는 허점이 아주 많은 존재이다.
빈틈없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여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허점투성이인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는데도 불시에 불의의 사건들이 발생하곤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변수가 발생한다.
예상했던 변수가 발생했다면 필요적절하게 대책을 세우면 해결할 수 있지만, 전혀 예기치 않았던 변수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다면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 변수도 돌이킬 수 없는 일,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사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손에는 손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발에는 발로, 귀에는 귀로 복수하는 법 곧 동신복수법(洞神復讐法)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면 역시 살인으로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이 원리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 철저하게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이라면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를 당해야 합당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살인하고자 하는 계획이 하나도 없었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불의의 사고로 이루어진 살인사건이라면,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다시 살인을 당해야 한다면 너무나 억울한 처지가 되는 것이다.
어쩌다가 본인의 의도가 전혀 없이 이루어진 살인사건이라면, 한순간의 실수로 저질러진 살인사건이라면, 한순간 너무나 갑작스럽게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면, 본인은 살인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악의와 모함에 의해서 살인 누명을 쓴 것이라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이런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은 하나도 없다.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문제 때문에 하나님은 도피성이라는 제도를 정해 주시면서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살인사건에 연루된 누군가를 동신복수법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도피성 제도는 어떤 제도인가?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도피성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D4.
① 도피성을 제정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불의의 사고로 살인죄를 범했거나 살인죄 누명을 쓴 사람을 동신복수법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도피성 제도를 정해 주신다.
도피성에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나그네들, 이방인들까지도 피할 수 있는 제도이다.
15절에서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방인들도, 나그네들도 포함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불의의 사건으로 살인죄를 저질렀거나 살인죄 누명을 써서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면 가장 빠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도피성으로 피신하면 당장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하려던 사람은 살인자가 도피성에 거주하는 동안에는 더 이상 복수할 수 없도록 막아주신 제도가 도피성 제도이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각출하여 레위 지파 사람들을 위하여 48성읍과 그에 따르는 초장, 목초지를 주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도피성 제도를 지정해 주시기 위하여 민수기 35:6에서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레위 지파에 배당된 48성읍들 중에서 6성읍을 도피성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10-1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라고 말씀하면서 도피성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13-15절에서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도피성으로 지정해 주신 6성읍도 실제적으로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는 성읍이다.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는 삶의 터전이지만, 특별하게 도피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시면서 도피성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호수아서20:7-9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기업을 분배해 준 이후에 실제로 도피성을 제정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제정해 주시는 것일까?
도피성을 제정해 주시는 목적이 있다면 무엇일까?
ⓐ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이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의 손에 놓여 있기 때문에 복수자의 원한에 의하여 한 생명이라도 잃게 되는 것을 막으시기 위하여 도피성 제도를 제정하시는 것이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신다.
생명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육식을 하더라도 피채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기도 하신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비록 짐승의 피라 할지라도 피를 먹으면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경시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피채 먹은 사람의 생명을 거두어가시기도 하실 정도이다.
ⓑ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요,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다른 누군가가 복수하여 죽일 때, 이미 누군가가 죽었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피하여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도피성을 제정해 주시는 것이다.
ⓒ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32-34절에서 “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죽이고 또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면 가나안 땅은 피로 얼룩진 땅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거룩한 하나님의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민족을 대이동시키면서 가나안 땅의 토속 민족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업으로 주시려고 하는 것인데,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피에 얼룩진 땅으로 변해간다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인 계획을 세워서 살인했을 경우에는 이미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는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반드시 죽임으로써 피의 값을 갚도록 하는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살인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더 이상의 피 흘림으로 피의 값을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생명을 보존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이다.
② 도피성에 거주할 기간을 정해 주시는 하나님.
그러면 평생 도피성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살인죄를 범했을 당시에 살아 계시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모든 살인죄가 용서를 받게 된다.
일반 제사장은 기름 부음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상속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반드시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기름 부음을 받는 대상은 메시야이고,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는 것은 메시야이시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십자가 대속의 그림자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죽어서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는 복음의 그림자요 모형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 도피성에 피해 있는 살인자는 살인죄를 용서받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인자가 속전을 내어서도 감면받을 수 없다.
대제사장이 죽었을 경우에는 모든 살인죄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동신복수법에 의하여 복수하려던 사람은 더 이상 복수할 수 없게 된다.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에는 도피성에서 벗어났다는 명목으로 복수자가 복수했다면 도리어 그 복수자가 살인죄를 범하게 된다.
26-28절에서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권자로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악을 속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는 것은 백성들의 모든 죄악들을 용서하셨다는 증표가 된다.
그래서 살인죄도 용서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정해 주신 것이다.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하려던 사람은 자신이 직접 복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할 수도 있지만,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믿음으로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③ 살인죄의 고의성 여부를 재판하게 하시는 하나님.
도피성으로 피신한 살인자는 재판을 받게 된다.
살인자가 불의의 사건으로 발생한 살인사건인지, 살인 누명을 쓴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살인할 계획을 세워서 살인한 사건인지에 대하여 재판받게 된다.
하나님은 22-25절에서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불의의 사고, 아무런 살인계획도 없이 발생한 살인사건이라면 도피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도피성에 거주하게 되면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하려던 사람이 복수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다.
만약에 도피성에 피해 있다가 언제든지 도피성에서 벗어나면 복수하려던 사람은 언제든지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할 수 있다.
도피성에서 벗어났을 때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를 당해도 억울해 할 수 없다.
도피성에서 벗어났을 경우에는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복수하더라도 27절에서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누군가를 살인하기로 작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고의적으로 살인한 죄는 반드시 피의 값을 받도록 정하고 계신다.
도피성은 불의의 사고로 발생한 살인자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이다.
도피성은 고의적으로 구체적인 살인 계획을 세워서 살인한 살인자의 생명까지 보전하기 위한 제도는 아니다.
하나님은 16-21절에서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 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고의적으로 살인계획을 세워서 살인 무기를 사용하여 살인했다면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고의적으로 구체적인 살인 계획을 세워서 살인한 자인 경우에는 아무리 도피성에 피신해 있다고 하더라도 살인죄에 대하여 재판을 하고, 재판의 결과에 따라서 마땅히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죄의 값을 받도록 하라고 하신다.
이 사람은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을 업신여기고 손상시키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명을 거둠으로써 모든 죄의 근원을 제거하려고 하신다.
그렇지만 이 사람의 생명도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반드시 재판을 통하여 증인이 입증되어야 동신복수법에 의해서 죽일 수 있다.
30-31절에서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라고 말씀하신다.
한 사람의 증언은 모함하는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살인자를 죽일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인정하는 살인죄가 성립이 되어야만 그 사람의 생명을 죽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하찮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죄의 값을 받으신다는 말씀이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다.
거룩한 땅에는 거룩한 백성들로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B4 & L4.
도피성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요 모형이다.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 도피성으로 피해 있으면 살 수 있듯이, 어떤 죄든지 죄를 범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살 수 있는 것이다.
도피성을 통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가 되어주듯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상천국에서 살고, 천상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꽉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꽉 붙들고 살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① 항상 믿음의 고백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며 사는 것은 신앙인의 기본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언제나 주님을 진심으로 만나며 살아가는 삶의 기본자세이다.
신앙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아들과 딸로서 살아가는 길은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만나주시고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덧입혀 주시는 것이다.
② 항상 예수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감사드리며 살아야 한다.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드리는 삶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기만 하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감사드려요. Thank You,”라는 고백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안 하든 신앙인의 입에서는 항상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감사드리며 사는 삶은 도피성이 되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고 있다는 고백이다.
③ 성령의 감동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인 안에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가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 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쫑끗 세워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신다.
신앙인들은 언제나 감동 주시는 성령의 세미하신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에 가만히 가만히 찾아오셔서 감동 주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오직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꽉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견인해 가신다.
언제 어디서나 도피성이 되어주시면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영원한 천상 천국으로 이끌어 가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 넘치시는 삶이 되시길 소망한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한상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