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그 아름다운 소통
평소 옷 욕심이 많은 나는 공직생활 30년 가까이 하면서 대략 자유로운 의상을 고집해왔었다. 퇴직 이 후까지 입고자 하는 마음으로 옷을 사거나 오래도록 입을 수 있을 만큼 비싼 옷들은 아니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고 제2의 직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미용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1년 가까이 미용사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일상의 부분에서 달라졌고 날마다 출근복에 신경을 써야 했던 때와는 달리 편안함과 작업하기에 편리함이 우선인 의상을 찾게 되었다. 또는 색상도 조금은 화려해도 괜찮았고 정장보다는 케쥬얼에 가깝게 챙겨 입다 보니 집안에는 점점 입지 않은 옷들이 차고 넘치고 있었다. 비단 퇴직이 아니라도 이 나이쯤 되면 지극히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집안에 들이는 것보다 비우자는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입던 옷을 정리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옷걸이의 옷을 차근차근 내리기 시작했다. 수시로 내려도 또다시 내려야 할 옷들이 생기면서 계절과 관계없이 많은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옷을 구매할 때 경제는 어려웠지만 큰 맘 먹고 장만했던 추억이거나 몸무게를 관리하며 수십 년을 내 몸과 함께 움직였던 기억들이 옷 방에 가득해지는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나의 발걸음을 충분히 만족하게 해 주었던 세월과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던 의상들이 새롭고 아련하게 피어올랐다. 이렇게 많은 옷들을 남 주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 뿐더러 동네마다 턱 하니 앉아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넣기에는 추억에게도 미안하고 옷걸이에서 내려와 수북이 쌓아놓은 옷들을 바라보자니 가슴이 휑해지는 기분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동안 안 입는 옷이 쌓이면 종량제봉투에 넣어 미련 없이 버린 적도 적잖았었는데 이렇게 계획적으로 정리를 하자니 우리나라 버려지는 헌 옷이 연간 330억 벌이나 된다는 부분에도 새삼 옷이나 환경에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옷에 관한 추억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모두가 곤란한 생활이었던 60년대 나의 이모할머니께서는 일본에 살고 계셨다. 그 때 일본에서는 헌 옷들을 많이 보내왔고 소포가 도착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그야말로 흥분된 마음들로 모여 각자 자기에게 맞는 옷을 챙기면서 대단히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가계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러한 기억으로 하여금 문득 지금 내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얼마 전 미용실에 남자 손님 한 분이 오셨다. 어디에서 오셨는지 첫 인사를 여쭙는데 북한에서 오셨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인데 근처 아파트 공사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이미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 그리고 다문화 가정과 다문화 가정의 2세 등 유학생은 물론이며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일상생활권역 안에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노동현장에서 기꺼이 고생하고 있지 않던가? 농사철이면 외국인 인력이 아니면 힘들 정도이며 식당에를 가보아도 외국인 인력이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비단 돈을 벌기 위하여 타국에 온 그들이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대단히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한 생각의 끄트머리에 정리를 해야겠다는 작정으로 쌓아 놓은 정든 내 옷가지들을 보면서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물론 인터넷을 더듬어 보면 헌 옷 기부랄지 포장만 해 놓으면 알아서 가져가는 헌 옷 수거 사이트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하지만 멀리 외국에서 날아와 같은 생활권의 정서에 젖어 살아간다는 것도 소중한 인연이며 그들과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는 의미가 나에게는 작은 행복일 것 같았다. 곧바로 지역 구석구석 활동하고 다니시는 보험설계사 한 분께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옷을 주거나 받는 이보다 더 좋아하시며 흔쾌히 도와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보내야 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수시로 내리기만 했던 내 소중했던 추억까지 계절과 스타일별로 분리하고 하물며 남편 옷까지 들썩거려서 차곡차곡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동안 내가 즐겨 입던 옷들을 보낼 곳이 생겼으니 마음조차 기쁨이었다.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들이 뭉쳐서 살고 있는 숙소를 찾아 전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입을만한 옷까지도 주고 싶어 안달하면서 말이다. 옷을 받아들고 환히 웃는 그들의 모습은 헌옷이라서 미안함 보다는 나눌 수 있어서 나에게 감사가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화는 당연히 통하지 않지만 어느새 친구가 되어 미용실을 찾게 되고 머리를 맡기고 해질녘이면 퇴근길에 믹스커피 한 잔을 나누는 각별한 이웃이 되어 있었다. 내가 입지 못하는 옷 몇 가지 나누었을 뿐인데 내게는 크나 큰 고객이며 내국인보다 훨씬 진솔한 친구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계에서는 외국인 거주자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글로벌 교류의 확산 추세와 국내 노동력 부족 현상을 감안할 때 향후 국내 외국인 거주 인구와 다문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정서 속에서 세상이 많이 냉정해졌다고는 말하지만 어둡고 추운 골목에 밤마다 어김없이 따뜻한 등불이 피어나는 까닭은 너의 사람 나의 사람이 아닐뿐더러 외국인과 자국민의 차별 없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은 참으로 기막힌 의미이다. 분명 사람의 마음과 마음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길이 있다. 그리고 문이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건너 함께 젖어드는 것은 참으로 소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몸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가 함께 오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사는 것은 문화를 나누고 섞는다는 것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주는 일 또한 나눔이며 그에 따라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바로 소소하고 아주 작은 나눔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나누고자 하는 마음들이 따뜻하게 전달되어 소통의 아름다운 출구가 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