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수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지문사냥꾼' 중의 단편소설인 '고양이' 입니다.
의미깊게 봐주시고 내용을 잘 이해하며 느껴보도록 합시다.
비교적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니 편하게 보시구요.
"재밌네요", "좋군요" 같은 단순한 리플은 받아들이지 않음.
그럼 시작하죠.
- 제불찰 씨 이야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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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시절, 학교 앞 문구점에서 얼떨결에 집어온 유리구슬 한 봉지로 인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받았을 때의 환희를 평생 동안 잊지 못했던 제씨는, 인생의 황금기였던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일평생 매진했다.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그에게 다시 한 번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축복을 빌어준다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말리라고 몇 번이나 다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 '모든 것'에 그가 아끼던 허리띠와 도자기 저금통, 그리고 초대형 스파이더맨 브로마이드 등 수십 가지는 제외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이런 제씨의 강철 같은 각오와 다짐 그리고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기적 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이 세계에서 눅누가가 누군가에게 눈을 맞추고 동시에 축복을 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확률론의 권위자인 도니븐 씽커바우릿 박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차라리 네스호의 괴물과 티베트의 설인, 그리고 북유럽의 트롤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할 날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순종적인 납세자들-와는 달리 영웅적으로 어리석었던 제씨는 마음 한구석에 헛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서른 해 남짓을 버텨갔다. 그가 가까스로 얻은 직업을 보면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데, 스물아홉 되던 해에 1.04 대 1이라는 경이적인 경쟁률을 뚫고 제 1회 2급 이구소제사 자격증을 획득했던 것이다. 의뢰인을 방문하여 그의 귓속에서 귀지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이 직업이, 제씨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으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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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찰 씨에게 '귀'는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잠깐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불행히도 제씨의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후에 일어난 '그 사건' 이후 조금이나마 드러난 바에 의존해 기술하자면, 그의 출생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기에, 그의 부모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생에 걸쳐, 가계에 파탄을 불러온 제씨와 그의 존재원인이라고 할 콘돔 제조업체를 줄기차게 저주했다고 한다. 그의 형제관계 역시 베일에 싸여 있지만, 제씨에게 배달느 누이가 하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익명의 증인에 따르면, 제씨와 누이 사이엔 특이한 남매애가 흘렀으며 보기에 따라선 다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할 만한 친밀한 접촉도 빈번했다고 한다. 종종 동네 노인들의 눈에 띄었던 장면은, 청명한 봄날 구질구질한 골목 평상 위에 앉은 누이와, 그녀이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제씨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대나무를 서툴게 깎아 만든 귀이개가 들려 있었다는데, 음란하게 키득거리는 제씨의 웃음은 폐혀와 같던 그의 유년 시절에서 분명 예외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귀'에 관련된,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귀 파기'에 관련되어 알려진 제씨의 작고도 귀한 추억이다. 사실 우리의 천박한 호깃미은 이 배다른 오누이의 관계까 어디까지 진전되었을까 따져 묻고 있지만, 이 누이의 이후 행적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없었다. 그 사건 이전까진.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사라진 고리'가 존재한다.). 혹자는-아마도 행동심리학자 워레버 유두 박사의 제자라고 우겼던 모씨였다고 기억된다-얼마 지나지 않아 오누이의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되었고, 그 계기가 다음과 같다고 주장했는데,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던 제씨를 위해 누이가 사다준 '타란툴라 거미'가 그를 물면서 촉발되었던 발작 및 폭행으로 둘의 관계까 어그러지기 시작한데다가, 누이가 제씨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급우들 중 우두머리 격인 소년과 눈이 맞는 바람에 도리어 그에 대한 린치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제씨가 'TV쇼'에서 두서없이 떠든 사실을 토대로 한 이 가정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모두 제불찰 씨의 머릿속에서 나온 환상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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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다시 우리의 시선을 이구소제사가 된 제불찰 씨에게로 돌려보자. 주지하다시피 제씨는 귀 파는 행위를 통해, 차가운 담벼락과 같은 다른 이들과 헛미탄회한 대화를 나누게 되길 꿈꿨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그의 희망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에게 이구소제를 의뢰한 첫 고객은(물론 직접 의뢰한 것이 아니라 한 이구소제 용역회사를 통해서였다. 대부분의 영세 이구소제사는 이런 용역회사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일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나마 보수의 60%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하는, 지극히 불평등한 계약조건에 매여 있었다) 깔끔한 외모의 세무사였는데, 날카롭게 세운 와이셔츠 깃에 목이 베이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는 제씨가 사무실로 들어와 어수룩하게 자기 소개를 하느 동안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서류더미에 코를 파묻고 있더니, 잠시 후 매우 간결한 손짓으로 제씨를 자신의 옆으로 불느 뒤 아무 말 없이 한쪽 귀를 내밀었다. 그것으로 긑이었다. 20분간의 작업시간 동안 사무실에는 가습기 소리만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고, 작업이 끝나자 그의 비서가 제씨를 불러내어 복잡한 영수증 작성 과정을 거친 후에 약속한 보수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던져주었을 뿐이다.
충격을 받은 제씨는 '첫날이라 그렇겠지, 내가 아직 능숙하지 못해서 고객이 긴장한 걸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자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해다. 요컨대, 의뢰인들은(수도 없이 국부를 강타하던 난폭한 개구쟁이부터, 늘어난 잠옷 사이로 가슴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연신 하품만 해대던 가정주부까지) 제씨를 진공청소기쯤으로 생각하는듯 표정 없이 귓구멍을 내밀 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제씨의 말에 귀기울이거나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의뢰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치기 어린 수사를 용서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제씨 앞에 열린 귀는 실상 굳게 닫혀 있었다.'
냉소와 회의를 제2의 본능으로 습득한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일이, 세상의 모든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무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 자명한 현실이, 돌연변이적으로 순진무구했던 제씨에겐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단지 생계를 위해 이미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에 가깝다고 판명된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그는 참을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을 느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씨는 의뢰인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되풀이하겠다. 그는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은유도, 수사도 아니다.
제불찰 씨는 어느 순간부터 실제로 작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