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기, 같은 이탈리아라 해도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의 미술은 피렌체나 로마 등지와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물론 이들 모두 사진 같은 사실감과 ‘조각같이 완벽한’, 즉 이상화된 인체 묘사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피렌체나 로마가 회화에서의 ‘선’의 우위를 고수했다면 베네치아는 대기와 빛에 몰두했고, 자연스레 그 변화를 ‘색’으로 잡아내는 데 더 고심하곤 했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자연의 풍경을 그저 등장인물을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 그림은 주요 내용을 이루는 인물들을 제외한 뒤 남은 배경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하나의 풍경화가 될 수 있을 정도다.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완성도 높게 그린 것은 대기와 빛의 변화에 민감하던 바닷가 사람들의 기질 탓일 수도 있고, 플랑드르 화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어찌 되었건 베네치아 화가들의 눈에 자연은 빛을 담은 색의 향연이었다.
조반니 벨리니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번뇌〉 목판에 템페라 / 81×127cm / 1465년경 제작 / 내셔널 갤러리 62실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26~1516)는 밝게 반짝이는 색감으로 풍부하게 자연의 빛을 잡아내는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은 이탈리아 미술에서 최초로 새벽녘의 빛을 묘사한 그림으로, 동틀 무렵의 분홍빛 하늘을 묘사한 것이 압권이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이 새벽빛을 기념해 ‘벨리니’라는 이름의 스파클링 와인까지 만들어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은 예수가 열두 제자와 더불어 최후의 만찬을 끝낸 뒤 마지막으로 올리브 산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면서, 앞으로 닥쳐올 죽음에 대해 ‘인간적인’ 고뇌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간밤의 만찬으로 곯아떨어진 제자들을 뒤로 한 채 예수는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라며 처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멀리 유다를 앞세운 로마의 병사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그 어떤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는 신의 약속이었다. 예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허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피하고 싶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 할 고통의 잔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하얀 천사가 ‘고통의 잔’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