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메아리 골을 돌아 다비문 외는 걸까
억새풀 늙은 꽃이 고개 숙여 조아린다
가진 것 죄다 내주고 동안거에 드는 산협.
바람 잔 관목 숲의 고요도 겨운 참에
몇 낟씩 남루한 꿈을 땅에 묻는 저문 삽질
마른 잎 어깨 툭! 치고 앞장서서 길을 연다.
호명하라, 호명하라, 깊이 잠든 이름까지
바스락 소리에 푸른 빛 재가 되고
한줌 흙 나이테 속으로 풍화하는 하늘 길.
[당선소감]
진주성 서장대는 늘 내 곁에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저녁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삶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던 중, 참 가뿐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살다가 이만한 설렘을 또 접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우리말을 아끼며 가꾸고 다듬느라 몇 해 동안 열병을 앓았습니다. 시조 사랑방의 가마솥에 향기 솔솔 기가 넘치는 날, 생의 한 끄나풀을 잡고 계속해서 시조가락을 뽑아 올리겠습니다. 이웃들에게 따끈한 차 한 잔 같은 시조를 실꾸리에 감겠습니다.
아직도 미흡하고 여물지 못한 저에게 당선의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큰 절 올립니다. 그리고 경남신문사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더욱, 글쓰기에 힘찬 채찍질로 정진하라는 뜻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아울러, 시조의 길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항상, 제 곁에서 여러모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B H 형, 승엽이, 길주, 승환이 그리고 열렬하게 성원을 해준 주위 분들에게 지면을 빌려 고맙다는 뜻을 전합니다.
일찍 여윈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가난의 설움을 비봉산 그늘에 묻어둔 수목장입니다. 올곧고 착하게 살아온 우리 형제, 가족이 떠오릅니다.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젖습니다. 이 겨울밤을 보내기 전에 지난날을 다시 회상하며, 아는 친구 후배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1956년 진주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월 차상 입선 △경상대학교 학사관리과 재직 중
[심사평]
투고자 수는 예년과 비슷했지만 작품 수준은 향상되었다. 제목도 내용도 시조의 고답적인 것에서 현대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 번 읽고 끝나는 작품들보다 다시 읽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는 달리 시조를 시조이게 하는 ‘음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투고자가 있어 아쉽기도 했다. 시조는 시가 아니다. 그 정형을 지켜야 시조가 된다. 무릇 운율이란 것을 득음했을 때 리듬을 풀고 조이는 것이 가능한 것인데 무조건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시조는 결코 시를 따라 가는 형식이 아니다. 시조는 우리시다. 민족시다. 시를 뛰어넘어야 하는 경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이번 심사의 중요한 잣대로 삼아 마지막에 ‘잠실누에, 넉 잠들다’ ‘석탑’ ‘겨울 수목장’ 등 3편의 작품이 남았다.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삼아도 좋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당선작이 바뀌는 치열한 경합이 있었다. ‘잠실누에, 넉 잠들다’는 서정성과 구체성을 동시 확보한 작품이다. 함께 보낸 작품에서는 감각적인 수사와 주제를 풀어내는 힘이 돋보였다. ‘석탑’은 가장 시조적인 작품이다. 튼튼한 음보가 석탑이란 제목처럼 튼튼했다. 바둑의 정석 같은 힘이 신뢰감을 가져다 주었다.
‘겨울 수목장’은 단아하고 이미지가 선명한 작품이었으나 위의 두 작품에 비해서는 흠이 많았다. 더러 운율이 흔들리고 단순한 반복법이 옥의 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새해 아침에 수목장이란 이미지를 당선작으로 소개하기에는 부담감이 컸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오랜 토론 끝에 ‘겨울 수목장’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이유는 이 작품이 가장 신인답기 때문이었다. 신춘문예는 신인의 등용문이다.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심사위원은 100%보다 여백이 가진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는 앞으로 뼈를 깎는 퇴고로 시조의 진경을 펼쳐 주리라 기대한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모든 투고자들에게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등용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우걸·정일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