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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
이룸, 2007.
롭상로르찌 을찌터그스
1. 몽골과 롭상로르찌 을찌터그스
몽골은 동북아시아 내륙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울란바토르이다. 러시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총인구가 200만 명을 약간 넘는 몽골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몽골은 평균 고도가 해발 1,585m에 이르는 고지대 국가이며, 국토의 약 80%가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어 방대한 가축 떼를 방목할 수 있다. 그 나머지 지역은 삼림과 황무지, 사막이 반반이다. 아주 일부 지역에서만 농경이 가능하다.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13세기에 아시아 대륙을 통일했던 칭기즈 칸 이후, 원제국을 수립한 민족의 후예로 이루어졌다. 16세기에는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전래하였으며, 17세기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몽골을 흡수한 이후에는 불교가 더욱 고착화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전체 몽골 성인 남성의 3분의 1이 승려였을 정도였다. 1911년에 청나라가 무너지자, 몽골은 독립을 선언하고 1921년에 중화민국으로부터도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데에 도움을 준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으며, 1924년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몽골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몇 십 년이 흐르고 점차 공산권이 붕괴되자, 1991년에 몽골에서 혁명이 일어나 1990년대 초에 평화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져 몽골인민공화국이 무너지고 현재의 몽골이 수립되었으며, 다당제가 도입되었고 1992년에는 새 헌법을 제정하고 혼합 경제 체제로 전환이 일어났다.
롭상로르찌 을지터그스는 1972년 몽골 다르항에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났다. 몽골 연구, 저널리즘을 전공했으며, 신문사 기자, 편집장 등을 역임하였다. 시집으로는 『하늘에서 자라는 나무들』 외 4권, 산문집으로 『안경에 남은 영상들』 등이 있으며, 저서로 『몽골 시선집』, 『몽골단편선집』, 『몽골중편선집』등이 있다. 2002년 우수도서상, 2004년 몽골작가협회상 등을 받았으며, 2006년 미국인디애나 대학교 몽골연구소와 아이오와 대학교의 국제문학 프로그램 초청을 받았다.
2. 『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
시집 『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는 5부로 구성되었으며, 1부에는 15편, 2부 12편, 3부 14편, 4부 11편, 5부 14편으로 총 66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을지터그스는 각 부에서 자연과의 일체화, 몸의 오감을 통한 시적 승화, 사물과 자아, 시와 시인 등에 관한 서정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직조하여 시적 대상과의 내밀한 소통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시편들이 시적 대상과의 동일화, 또는 ‘몽골의 전통적인 서정성과 자연에 대한 관조적 색채가 깊이 배어’ 있다는 평을 받는다.
3. 동일화와 윤회, 생태학적 사고
이 같은 동일화의 저변에는 윤회적이며 생태학적인 사고가 두드러진다. 몽골의 주요 종교는 불교(티벳불교)로 윤회는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몽골에서 태어나 성장한 시인이 불교적 윤회사상에 영향 받았다는 추측은 여러 시편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
메뚜기 소리가 없는 도시의 가을은 쓸쓸하다
거리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내세를 얻지 못해 지친다
-「도시의 가을 」 전문, p.76
(나)
아, 나뭇잎이
대지 위에 떨어질 때
사람이 될 것을 소원하며
내 배를 부드럽게 스치고 갔네
- 「나뭇잎의 소원」 전문
위의 두 시에서만 보더라도 윤회사상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눈에 뜨인다. ‘거리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 내세를 얻지 못해 지친다’ 거나 ‘나뭇잎이 대지 위에 떨어질 때 사람이 될 것을 소원하며 내 배를 부드럽게 스치고 갔네’ 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 롭상로르찌 을지터그스의 시에는 자연친화적이며 불교적인 세계관이 드러나고 있다. 시인의 윤회는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 즉 시적 대상이 된 ‘나뭇잎’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여자의 배를 스쳐 간 뒤에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발상은 사람과 나뭇잎의 변용임을 말해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여자의 배’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역할을 하는데, 나뭇잎도 사람으로 탈바꿈시키는 생명환생의 장소가 된다. 이때 ‘여자의 배’는 가이아 여신의 대지로 환치시켜도 좋으리라. 시인의 불교적인 세계관은 다음 시에서 더욱 농후해 진다.
(가)
풀은 모두 나무
돌마다 산
넓은 이 세상
사물은 모두 중심
깃은 모두 새
새마다 하늘
풍요로운 이 삶의
모든 날들이 새롭다
- 「새마다 하늘」 전문
(나)
나뭇잎을 밟는다
나뭇잎의 심장을 밟는다
나뭇잎을 밟는다
나뭇잎의 눈을, 입술을 밟는다
보이지 않는 아픔
들리지 않는 슬픔
미움 없는 죽음
발아래 누운 성스런 부처님
텅 빈 액자에 절하는 사람들
쓰레기와 함께 신들을 쓸어 태운다
-「보이지 않는 아픔」 전문, p.77.
불교적인 세계관이 중심이 된 이 시에서 생태학적인 생명중심 사상과 윤회사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시의 기법상 (가)는 부분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환유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이다. 환유적 상상력은 권력이 중심이 되어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수직적 상상력이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연결하면서 부분이 곧 전체로 평등하게 이어지는 수평적 상상력에 가깝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우주의 중심이며, 우리 모두는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수평적 사고관이 가능하다. 모두가 다 귀한 존재요, 우주의 주인인 것이다.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사고로 천지의 모든 인간은 존귀하다는 불교적 세계관으로 본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우주의 중심임을 설파한 석가의 사상이 응축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 된다. 이러한 시각은 곧 모든 사물에 부처가 깃들인 두두물물(頭頭物物)의 세계가 된다.
(나)에서 시인은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조차 성스러운 부처임을 깨닫는데, 불교적 연민과 존중이 함께 하는 서정성이 함유되어 있다. 두두물물(頭頭物物), 그 각각의 중심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평화와 공존의 세계는 ‘텅 빈 액자에 절’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4. 공존, 견딤과 기다림
을찌터그스의 시에는 견딤과 기다림의 미학이 자주 눈에 띈다.
별을 향해 자라는 나무 꼭대기에서
둥지를 틀고 편안히 지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세상일을
하늘 가까이에서 살피며 오래오래 누워 있고 싶습니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
보이는 모든 형체가 변할 때
둥지에서 고개를 한 번 살짝 들어 보이고는
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
가지가 나를 가지라 여길 때까지
침묵의 작은 부분이 될 때까지
팔십, 구십, 백 년을 꾸벅꾸벅 졸며 있고 싶습니다
고독할수록 살아있다는 사실이 절실해지고
매 순간을 음미하며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 「아름다운 기다림」 전문
‘별을 향해 자라는 나무꼭대기에’ 새처럼 둥지를 틀고, 세상이 변하고, 상대가 나를 받아들일 때까지 느긋하게 견디며 기다리는 자연친화적인 시이다. 별을 향해 자라는 나무와 일체가 되고 싶은 시인은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 / 보이는 모든 형체가 변’하는 순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 / 가지가 나를 가지라 여길 때까지 / 침묵의 작은 부분이 될 때까지 /팔십, 구십, 백 년을 꾸벅꾸벅 졸며 있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상대가 전적으로 자신과 동일하게 인정하고 전체를 받이들이는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나뭇잎이 잎사귀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먼저 수용하고 다가서는 자세로부터 연유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동일화의 변화를 기다리는 일, 다툼이 없고 갈등이 최소화한 상태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내 몸의 반은 심장 / 그 반은 노래”인 시인의 세상, ‘주위에 존재하는 위대하고 작은 삶’과의 공존을 꿈꿔 보는 것이다.
나와 함께 나란히 있는 삶
내 방 가득한 어느 누군가의 세계
바로 앞에서 응시하며 고뇌로 속삭이는 듯한
보이지 않는 자의 들리지 않는 소리…
어떻게 하면 내가 너희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어떤 욕망을 거절하고, 너희들의 결박을 풀 수 있을까?
나의 예민함과 슬픈 사랑의 노래를 견디는 자
자유가 나의 조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
주위에 존재하는 위대하고 작은 삶…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너희들의 잠을 깨운다면
잔에 든 술을 집어던지며
큰 소리로 놀라게 한다면
고요함 속에 풀어져 내린
머리핀 소리에 너희들이 놀란다면
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희망과 고통에서 태어나는지도 모르는
내 자식들
아니, 내 친구들
어떻게 나는 너희들처럼 소리 없이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지고 살면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을까?
- 「공존의 삶」 전문, p.114
나무 잎사귀, 바람, 머언 하늘
‘나의’, ‘벗’, ‘파라솔’
떠도는 단어들, 이 같은 슬픔, 남쪽 산비탈의 세 그루 백양나무
하늘이시여!
견디며 남고 싶도록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
-중략-
봄비, 시, 멀고 먼 곳
어디선가 구부러진 길
떠도는 상념, 이 같은 소원, 어머니……
하늘이시여!
견디며 살아남고 싶도록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
-「견디며 남고 싶도록 아름다운 세상」 부분
시인은 ‘나와 함께 나란히 있는 삶/ 내 방 가득한 어느 누군가의 세계 / 바로 앞에서 응시하며 고뇌로 속삭이는 듯한 /보이지 않는 자의 들리지 않는 소리…’등으로 모든 사물에 보이지 않는 고요한 물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나의 예민함과 슬픈 사랑의 노래를 견디는 자 / 자유가 나의 조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이다.
극도로 예민한 감성이 발현되는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로 인한 사소한 행동에 ‘너희들이 놀란다면 / 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극단적인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들을 통해 시인은 ‘지고 살면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공존의 삶을 배우고, 갈망하면서 ‘소리 없이 견딜 수 있’ 도록 하는 그 이유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찾는다. 사물과의 공존과 자연과의 일체화된 서정시의 세계에서는 분열과 고통보다는 동일화와 공존이 우선적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분열과 타협 없이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에 좋은 시가 찾아 오고 쓰여질 수 있을 때까지 자연 속에서 동일화를 이루고 사물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견딤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을찌터그스에게 시를 쓰기 위한 견딤과 기다림의 이유는 다음 시에서 실존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시를 쓴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이 하늘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기 위해
여기서 떠나가지 않기 위해, 여기에 남지 않기 위해 시를 쓴다
찢기는 심장을 더 찢으려고
울 수 없게 된 사람을 대신해 시를 쓴다
세상의 진실, 일상의 거짓에 지칠 대로 지쳐…
도저히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살아 있다는 것을 믿기 위해
삶을 믿었다고 스스로를 믿게 하기 위해
모든 비열한 것들과 결코 타협할 수 없기에
스스로 울면서 시를 쓴다
- 「시작(詩作)」 전문 p.99
아이를 낳지 못해 괴로워하는 산모의 진통을
끝내고 마침표를 찍지 않은 시를 음미한다
혜안을 열어 나래를 펴지 못했던 생각
죽을지도 모를 자식, 살지도 모를 생명
-「나의 시」 전문, 93.p
시 쓰기의 이유와 창조적 진통 과정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이 진통에 동참하는 사물은 방안의 책상이다.
1
벗어 던진 하얀 망사 속옷, 다르마파다, 흉노시대 자기
뚜껑을 움켜쥔 립스틱, 립스틱으로 그린 붉은 초상
꺼져 있는 휴대전화, 개의 눈 그림, 수면제
길고 긴 밤에 지쳐 희미하게 깜빡이는 조명등,
죽어 소멸해 버린 세월들
나의 책상
써지려 하고 있는 시, 살아나려 하고 있는 종이―
만세, 만세!
지혜의 빛을 가진 지성의 세간
나의 책상, 나의……
깜깜한 밤에 빛을 뿌리며 부르는 놀라운 이여, 신이한 이여!
때로 그 위에 올라가 서서 노래할 때는
가장 높고, 가장 낮은
나의 무대
낡고 못쓰게 되어 버려지고
애무하고 포옹하며 잠들어 버릴 수 있는
나의 친구여!
세상일 견딜 때 도움을 주고
그때마다 이기게 해 준
나의 스승이여!
비오는 밤 깊이 침잠할 때 고운
나뭇잎 냄새를 풍기는 듯 하고
짧은 생을 살다가 죽을 때
단단하고 좋은 관을 만들게 할
나의 책상!
2
낡고 초라한 책상 앞에
낡아질 때까지 앉아 있었네
손가락이 굳을 때까지, 등이 저려올 때까지
옷이 바랠 때까지 앉아 있었네
많은 세월이
날 버려두고 갈 때까지 앉아 있었네
많은 세월이 나를 그리워하며
돌아올 때까지 앉아 있었네
삶을 노래하며
죽음 가운데 앉아 있었네
죽음을 노래하며
무(無)가 되라 하듯 앉아 있었네
낡은 책상 앞에
낡아질 때까지 앉아 있었네
낡아질 때까지 앉아 있다 일어나자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해 있었네
-「책상 예찬」전문, 82p
시인은 책상 앞에 죽은 듯이 앉아서 견디고 기다리는 시간을 보낸다. ‘낡은 책상 앞에 / 낡아질 때까지 앉아 있다 일어나자/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이 변화의 순간을 위해 시인은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에 동화되고 사물을 불러내어 자신과 합치시키면서 견디고 기다렸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