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들의 화끈한 성격만큼이나 얼큰한 맛이 과연 경상도의 맛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경상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山岳(산악)이 많고 평지가 적어 논 농사보다 밭 농사가 중심이다. 地主(지주) 계급이 적은 반면, 수려한 자연경관만큼이나 걸출한 人材들이 많이 배출됐다.
조선역사지리서인 「擇里志(택리지)」에는 「朝廷人才半嶺南」(조정의 인재 반이 영남인)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이들은 士大夫(사대부)로 국정에 참여했다. 경상 좌도였던 安東(안동)의 李滉(이황)과 경상 우도였던 陜川(합천)을 중심으로 한 曺植(조식)은 嶺南士林派(영남사림파)가 두 축이었고, 사림은 16세기 이후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內職(내직)에서 일하는 고관들은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여 궁중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사대부의 부인들은 연회 후 賜饌(사찬: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통해 궁중음식을 습득하게 됐다.
내직에서 일하다 外職(외직)으로 나가게 된 고관, 落鄕(낙향)한 사대부들은 궁중음식의 맛을 잊지 못하고, 그 맛을 찾아 즐기려고 했다. 궁중 요리는 이들을 통해 지방으로 퍼졌다. 절대 왕정을 이뤘던 프랑스 왕실의 요리가 프랑스 요리로, 중국 자금성의 요리가 민간으로 흘러넘쳐 다양한 중국요리의 원천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14세기 김치 담그는 법과 장 담그는 법, 식초 만드는 법, 茶食(다식) 만드는법 등 60여 가지의 요리가 기록된 「需雲雜方(수운잡방)」은 경북 안동의 光山(광산) 金씨 예안파 濯淸亭 金(탁청정 김유: 1481~1552) 선생이 썼다. 최초의 한글 요리책인 「음식 디미방」은 경북 영양의 大유학자인 石溪 李時明(석계 이시명) 선생의 부인이며, 李滉의 학맥을 이은 영남의 대학자 敬堂 張興孝(경당 장흥효)의 딸 貞夫人 張氏(장씨:1598~1680)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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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통요리를 엿볼 수 있는 최고의 요리서들이 영남의 사림파 가문에서 나온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光山 金씨 예안파 종택이나 재령 李씨 종택에서는 宗婦(종부)들이 인삼 정과, 호두 튀김, 송화 茶食 등 각종 茶食, 인절미·송편 등 떡과 경단 등 화려하고 맛있는 사대부 집안의 음식을 이어가고 있다.
安東 하회마을에 있는 西厓 柳成龍(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풍산 柳씨 종택의 안동식해는 다른 지방에서 맛 볼 수 없는 겨울철의 별미로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
고두밥에 무와 고춧가루, 생강 즙, 엿기름 물로 발효시켜, 무의 시원한 맛과 고춧가루의 맵고 달큰한 맛이 배어나 향취가 뛰어 난 계절음식이다(안동 민속음식의 집. 대표 조계행: 경북 안동시 상아동. 전화 054-821-2944).
조선 중종 때의 학자였던 沖齋 權(충재 권벌:1478~1548) 선생의 종가 古宅(고택)인 봉화 닭실마을의 靑巖亭(청암정)에는 오색 강정과, 넓게 튀겨 만든 산자(산과), 약과 등 전통한과를 가정의례가 있는 날이면 만들고 있다.
班家(반가)의 각종 한과 造菓(조과)법은 이미 상품화되어 일반에게 판매되고 있다(경상도 강정식품. 대표 이우헌: 경북 포항시 대련리. 전화 054-248-0033).
경남 거창 강천 마을의 桐溪 鄭蘊(동계 정온:1569~1641) 선생 古宅에는 수란과 육포, 전복 쌈 등 전통적인 요리가 宗婦에 의해 그 맛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
尙州牧(상주목)으로 큰 府(부)를 이루었던 경북의 중심도시 尙州에는 감나무 잎에 싸서 찐 방울 증편, 조기식해, 청포 지짐, 鹽銀口魚(염은구어), 꿀밤 시루떡, 콩죽 지짐 등 향토성 짙은 음식들이 尙州의 양반 가문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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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집안의 祭禮(제례)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경상도 음식으로 「헛제삿밥」이 있다.
이 헛제삿밥은 양반들이 春窮期(춘궁기)에 드러내 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스러워,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가짜로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낼 수 없는 賤民(천민)들이 한이 맺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만들어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얘기도 있다.
예부터 안동 헛제삿밥, 晉州 헛제삿밥, 大邱 헛제삿밥이 유명했다(까치구멍집. 대표 손차행: 경북 안동시 성곡동. 전화 054-821-1056. 晉州 헛제사밥 대표 이명덕 : 경남 晉州시 평안동. 전화 055-743-3633).
崔永年(최영년)이 쓴 海東竹枝(해동죽지) 中篇(중편) 飮食名物(음식명물)에 보면 大邱의 별미로 甘酒(감주)와 함께 虛祭飯(허제반)이라고 하는 「大邱 헛제삿밥」이 나온다.
『大邱府(대구부) 내 음식점에서 판매하는데, 맛이 있어 유명했고, 일명 헛제삿밥이라 불렀다』
大邱 헛제삿밥은 안동이나 晉州 헛제삿밥과 달리 제사 음식으로 흰 쌀밥에 콩나물, 다시마 등 여러 가지 나물을 섞어 볶은 일종의 비빔밥이다. 大邱에서 맛본 헛제삿밥은 제사 나물을 밥에 넣어 비빈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大邱 헛제삿밥 나름의 독특한 조리법이나 맛을 살리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大邱 헛제삿밥 못지않게 유명한 음식으로 「大邱식 육개장」이 손꼽힌다.
伏中(복중)에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를 푹 고아 손으로 잘게 찢어 국 위에 얹어 개장국 대신 땀을 흘리며 먹던 음식이 육개장이다. 大邱식 육개장은 쇠고기를 잘게 찢지 않고 쇠고기 덩어리를 가마솥에 넣고 흐물흐물하게 푹 고는 식으로 육개장을 끓여 낸다.
六堂 崔南善(육당 최남선)이 쓴 「朝鮮常識問答(조선상식문답)」 향토명물 요리품에 나오는 大邱湯(대구탕)이 바로 大邱식 육개장이다. 서울 등 다른 지방에서는 밥을 육개장에 미리 말아 나오는 데 비해 大邱에서는 밥과 국이 따로 나온다 해서, 「따로국밥」이다.
大邱에서도 다른 지방의 육개장처럼 밥을 육개장에 말아 내놓았으나, 1946년 문을 연 「국일 따로국밥집」의 손님들이 육개장을 주문할 때 『따로!』 하며 밥과 육개장을 따로 시키면서 「따로국밥」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국일따로국밥. 대표 최영자: 大邱시 중구 전동 1. 전화 053-253-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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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시대부터 『경남 기장 沿岸(연안)이 갈치의 산지로 유명하여, 기장 갈치가 서라벌(慶州)로 진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 때 「칼」을 「갈」이라고 했는데, 생선의 생김새가 칼 같다 해서 「갈치」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량의 당질이 있어 고유한 풍미로 감칠맛이 나는 갈치구이는 예부터 慶州가 유명했다(단골식당. 대표 최금숙: 경북 慶州시 노서동 171-4. 전화 054-743-9633).
기장을 중심으로 釜山, 김해 등지에서는 기장 갈치, 소금, 엿기름, 쌀밥이나 조밥을 섞은 다음 파, 고추, 마늘 등 향신료를 넣고 삭힌 「갈치식해」가 유명하다(두레마을. 대표 김기순: 경남 김해시 어방동 1103-7. 전화 055-324-2233).
釜山에는 갈치식해 외에 鳴旨(명지) 대파산적 전골과 겨울철에 별식으로 먹는 鳴旨 海苔羹(명지 해태갱: 김국)이 있다.
낙동강 하구언과 연한 鳴旨는 옛날부터 김의 산지였고 그 맛이 뛰어났다.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鹽田이 파괴될 때까지 300년 동안 소금의 산지로 유명했다. 지금은 바다를 메운 땅에 파밭이 들어섰다.
이 대파로 고기와 함께 散炙(산적)하여 氈骨(전골)을 끓여 먹는 「명지 대파산적 전골」이 釜山의 향토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황토방 가는길. 대표 박정숙: 釜山시 강서구 녹산동 산양마을. 전화 051-972-1133).
釜山 사람들은 냉면보다 밀면을 더 즐긴다.
釜山의 밀면은 냉면 못지않게 시원하고 쫀득한 맛이 있다(소문난밀면. 대표 김원철: 釜山시 금정구 부곡동. 전화 051-517-1183).
釜山의 영주동에는 직접 내린 재래식 소주와 곰탕이 유명했다. 잔술로 파는 소주와 곰탕의 맛을 잊지 못해 釜山 사람들은 영주동 곰탕집을 자주 찾았다. 지금도 영주동 골목에서 광복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도라무집」으로 불리던 곰탕집들이 있다.
드럼통에 연탄불을 피워 곰탕 뚝배기를 올려 뜨거운 국물과 함께 소주를 즐기던 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집이 있는데, 2대에 걸쳐 지금까지 그 손 맛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천안곰탕집. 대표 한상숙:釜山 중구 광복동. 전화 051-245-5695).
馬山하면 아귀찜을 연상케 할 만큼 아귀찜은 馬山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그러나 아귀를 제일 먼저 술안주로 내놓은 곳은 부산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중반 부산의 서면 미군부대 물 탱크 옆에서 할머니 두 분이 생아귀를 푹 쪄서 숙육 상태로 양념장에 찍어 먹을 수 있게 술안주로 내 놓았다. 처음에 이 요리의 이름은 「물꽁찜」이었다. 예전에 釜山·경남 사람들은 아귀를 아구라 부르지 않고 물꽁이라 불렀다.
지금도 釜山 토박이들은 생아귀를 주 재료로 찜을 한 釜山의 아귀찜을 물꽁찜이라 부른다(보수동 물꽁식당. 대표 홍계순:釜山시 중구 보수동 中釜山 세무서 앞. 전화 051-257-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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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매년 10월 「웅천(지금의 鎭海)의 대구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고, 일제시대에는 일본 사람들이 깽이 바다의 도미, 청어, 대구 맛을 못 잊어 진해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釜山이나 진해의 옛 지명 웅천에 속했던 가덕도 일대의 바다를 일명 「깽이 바다」라고 불렀다.
이 깽이 바다가 대구의 산란장으로 유명했고, 이곳에서 겨울철에 잡히는 두 貫(관) 이상 나가는 대구어를 일명 「누렁이」라는 애칭을 붙여 최상급으로 여겼다고 한다.
1670년경 安東 張氏가 쓴 「음식디미방」에 보면 『대구 껍질을 삶아서 가늘게 썰어 무친 것을 대구 껍질채라 했고, 대구 껍질과 파를 길게 묶어 초간장에 밀가루 汁(즙)을 한 것에 찍어 먹는 것을 「대구껍질 강회」라 했다』고 기록되었다.
경상도 지방 班家에서 가난한 선비들은 『대구 한 마리면 다른 반찬 100가지를 당한다』고 했다. 생(膾)으로 먹고, 말려(乾)먹고, 국(羹) 끓여 먹고, 전(煎) 부쳐 먹고, 구워(燔) 먹고, 포 떠(脯) 먹고, 김치에 넣어 먹고, 암놈은 알을 생으로 먹고, 수놈은 곤(이리:魚白)을 특미로 쳤다(진상. 대표 송희: 경남 진해시 이동 650-5. 전화 055-547-1678).
馬山의 전통요리는 아귀요리보다 이 지방의 전통 歲時飮食(세시음식)인 미더덕찜이다. 馬山 진동을 중심으로 한 거제해협과 진해만 인근에서 잡히는 미더덕을 이 지방에서는 남자의 그것 같다 하여 일명 「조꼴래이」라고 부른다.
정월 대보름날 미더덕에 들깨 가루와 찹쌀가루를 넣고, 하얗게 범벅 쑤듯 만들어 함지박에 담아 먹는 것이 바로 馬山지방의 미더덕찜이다(옹기골. 대표 최영희: 경남 합포구 진전면 율티리 옥동마을. 전화 055-271-0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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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이 즐비했던 오동동 골목에 馬山의 향토음식으로 대표되는 아귀찜 집들이 들어서 아귀찜 골목을 이루고 있다. 1968년경부터 馬山 오동동 오두막 초가집에서 장어국을 술 안주로 끓여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있었다. 이때만 해도 어부들은 아귀가 못 생기고 재수 없다고 버렸다고 한다. 이 할머니가 명태처럼 말라버린 아귀를 주워다가 양념을 하고 쪄서 술안주로 내 놓은 것이 「馬山 아구찜」 요리의 시작이다.
아구찜은 馬山의 향토 음식이었던 미더덕찜, 장어국, 馬山 곰탕을 제치고 馬山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 되었다.
지금처럼 마른 아귀에 콩나물을 넣고 찜을 하기 시작한 사람은 馬山 오동동의 「진짜초가 아구할매집」 박영자 할머니다. 아귀를 물꽁이라고 부르던 馬山에서 아귀를 아구찜으로 부르게 된 사연은 이렇다.
흑산도에서 16년간 유배생활을 한 丁若銓(정약전)이 1814년에 쓴 「玆山魚譜(자산어보)」에 「釣絲魚(조사어)」라는 물고기가 나오는데, 俗名이 「아구」로 기록돼 있다. 아구는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의 방언이다.
마른 아귀에 콩나물을 넣고 현재와 같은 찜으로 만들기 시작한 박영자 할머니의 고향이 전남 신안이다. 신안에서 馬山으로 시집 온 새댁이 「물꽁찜」을 「아구찜」이라는 이름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인천, 군산, 釜山 등지에서는 생아귀어로 아구찜을 하지만, 마른 아귀를 이용해야 「馬山 아구찜」이라 할 수 있겠다.
1980년대 이후 馬山에서는 집집마다 처마 밑에 아귀를 건조시켰다
지금도 馬山에는 아귀 덕장이 유일하게 남아 있어, 12월 한달 동안 馬山 공동 어시장으로 들어오는 생아귀를 사다가 일년 동안 쓸 아귀를 말리고 있다(오동동 진짜초가집 원조아구찜. 대표 이현점:경남 馬山시 오동동 151-5. 전화 055-24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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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요리 하면 우리는 일본 요리를 연상한다.
접시바닥이 보일 만큼 얇고 아름답게 담아 내는 복 사시미와 복 샤브샤브, 복 지리(국) 등 요리명 자체가 일본어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복어요리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16세기 鄭載崙(정재륜: 1626~1723)이 쓴 「公私見聞錄(공사견문록)」에 보면 「仁祖는 복어요리를 즐겨 먹었다」고 쓰여 있다. 1700년대 작자 未詳(미상)인 「京都雜誌(경도잡지)」에는 『복숭아꽃이 떨어지기 전에 복어국을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1795년 李德懋(이덕무)가 쓴 「靑莊館全書(청장관전서)」에는 『2~3월 사이에 복어국을 먹고 죽는 자가 많다. 죽는 줄 알면서도 먹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생명을 잃을 각오를 해가면서 먹던 음식이 복어 요리였다. 1815년 憑虛閣(빙허각) 李氏가 쓴 「閨閤叢書(규합총서)」에는 복어의 특징과 해독법이 나온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鰒白湯(복백탕)을 즐겨 먹었다. 남해안 지방에서는 늦겨울에 잡은 복어를 처마 밑에 매달아 말린 다음 된장을 풀어 끓여 먹음으로써, 긴긴 겨울밤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복어 속에 잔류된 微量(미량)의 독이 진통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馬山 해안도로 어시장 오동동에 가면 복어요리 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남성식당. 대표 김숙자: 경남 馬山시 합포구 오동동 251-8. 전화 055-246-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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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의 음식을 알면 경상도 남부지방의 班家 음식을 모두 알 수 있다.
요리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救荒(구황) 음식류의 서민음식이 아니라, 얌전하고 맛깔스런 班家 음식이 晉州를 중심으로 많이 남아 있다.
우선 조선의 3대 비빔밥 하면 해주의 嬌飯(교반), 全州의 비빔밥, 晉州의 花盤(화반)을 들 수 있다.
황동 놋그릇에 밥과 나물, 청포묵이 어우러져 일곱 색깔이 난다는 晉州 비빔밥은 그 화려함이 꽃과 같다 하여 「꽃밥」이라 불렀다(갑을가든. 대표 심의용: 경남 晉州시 신안동 24-6. 전화 055-742-9292).
1849년에 쓰인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에는 『겨울철 時食(시식)으로 메밀국수에 무 김치, 배추 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냉면은 메밀이 많이 생산되던 평안북도와 경상남도 산간지방에서 서민들이 메밀로 국수를 해 먹던 방식이다. 이 메밀국수가 평양이나 晉州의 妓生文化(기생문화)와 접목되면서 「밤 음식」으로 발전했다.
북한 평양에서 발행된 「조선의 민속전통」 1편 식생활 풍습편에 보면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 냉면과 晉州 냉면이 있다』고 했다. 맥이 끊겼던 晉州 냉면은 1980년대 마지막으로 晉州 냉면을 하던 김점순(60세) 여사에 의해 되살아났다.
평양냉면은 동치미 국물과 꿩 육수를 이용해 동치미 무채를 웃기로 얹어 내놓는다. 晉州 냉면은 해물과 쇠고기로 육수를 내고 김장 배추김치를 채 썰어 웃기로 얹어 청신한 해물 향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晉州 냉면. 대표 김점순: 경남 晉州시 평거동 782-15. 전화 055-747-7428).
晉州는 晉州 비빔밥, 晉州 헛제삿밥, 晉州 냉면 외에 晉州 장국밥, 晉州 복쌈으로도 유명하다.
晉州 복쌈은, 쌈을 쌀 때 대부분 다른 지방에서는 상추의 바깥쪽을 손바닥에 놓고 안쪽을 위로 하여 그 위에 밥을 얹어 쌈을 싸 먹는데, 晉州 사람들은 거꾸로 부드러운 안쪽을 손바닥에 놓고 바깥쪽이 위로 올라와 그 위에 밥을 넣고 쌈을 싸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안쪽의 감촉을 상추의 맛과 함께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쌈을 싸는 것을 보면 晉州 토박이인가 아닌가를 구별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晉州 油果(유과)는 1960년대 초까지 그 맛이 전국에 알려졌다. 가까운 합천 의령 등지에 전통 한과 사업이 번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합천 한과는 유과·강정 등 전통한과를 미국, 일본, 독일 등지에 수출한다(합천전통한과. 대표 김상근: 경남 합천군 합천읍 금양리 838-1. 전화 055-933-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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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요리의 맛은 醬(장)이 좌우한다. 정월장, 이월장, 삼월장 식으로 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月醬(월장)이 있고, 재료 또는 담그는 방법에 따라 그리고 지방마다 가문마다 제 각각 다른 장맛이 난다.
경상도지방의 醬 중에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통장으로 막장, 담북장, 뺨장, 밀양집장, 진양집장, 거름장, 등겨장, 합자장 등이 있고, 고구마 고추장과 싸메 고추장, 晉州 비빔밥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晉州 엿고추장이 있다.
특히 三寶寺刹(삼보사찰) 중 佛寶(불보) 사찰인 梁山의 통도사는 1300여 년 동안 한 번도 戰亂(전란)이나 火災(화재) 등으로 廢寺(폐사)된 일이 없어 자장법사가 통도사를 세울 당시부터의 장독대와 장맛이 이어져 내려온다.
통도사 주지를 지낸 서운암의 性坡(성파) 스님이 통도사의 장맛을 그대로 간직하여 통도사 신도뿐만 아니라 일반 불자들에게 장맛을 나눠 주고 있다(서운암: 대표 성파스님,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전화 055-382-7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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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집 교자상과 궁중 수라상에 오른 왕갈비찜은 경남 함양군 안의가 유명하다.
안의에는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쇠부리」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고, 관북마을 들 한켠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白丁(백정)의 효자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정 하면 천민 중에 천민으로, 조선시대에 백정의 효자비가 세워졌다는 것은 파격적이다.
관북 금호강가의 백정 비석에는 「孝子白丁趙貴千之閭(효자백정 조귀천지려)」라고 쓰여 있다(안의 원조갈비집. 대표 김봉남:경남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전화 055-962-0666).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마지기(海草) 구조개(굴, 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고려시대 靑山別曲(청산별곡) 중의 한 구절이다.
중국의 「本草拾遺(본초습유)」에 보면 『신라 사람들은 조개를 많이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남강댐의 맑은 민물과 갯물이 교차하는 사천시 용현면 신진리 앞바다의 砂質土에는 조개껍질이 아름답고 깔끔한 白蛤(백합)이 많이 산다.
이곳에서는 백합조개를 참기름에 볶다가 찹쌀과 수삼, 마늘 등을 넣고 맛깔스런 백합죽을 끓여 낸다(해원장. 대표 박옥남: 경남 사천시 용현면 신진리 1001-1. 전화 055-854-4433).
우리 전통요리는 가급적 자극적인 향신료를 피하고, 요리의 주재료가 갖는 고유한 香(향)과 맛(味)을 살리고 있다. 경상도의 班家 요리는 五味(오미)가 어우러진 맛깔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강한 향신료와 자극적인 양념에 의존해 맛을 내는 구황식 수준의 서민음식이 경상도 음식으로 알려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