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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에서 대구 앞산까지
병술 사월 스무이틀
prologue
신청자 아홉의 정성도 헛되이 정기산행은 취소되고 망연자실 다리모시 빵구 탓만 하고 있는데 이십일 인가? 전화가 왔다 지리개굴님이다 간단다 비슬산으로, 그런데 전화선을 타고 오는 음성엔 뭔가 비밀스런 기운이 묻어난다
특히 개굴님의 그 마지막 한 마디, 내가 ok 하지 않으면 바톤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간단다 거의 반 협박조에 홀린 듯 가마 하고 점조직의 은밀한 포섭같은 산행 팀의 조직에 나는 그렇게 흡수된다 그리고 산길 21k 장장 10시간의 고행 끝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 와 꼬박 하루를 앓아 눕는다
간산님이 뒤에서 엉덩이를 받치고 등을 밀어 준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마치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 진 것 같아 우습기도 하다 아직은 살짝만 까스르면 영낙없이 냄새가 폴폴 난다 초보 냄새가...
비슬산의 군락지 진달래는 날씨 탓에 아직 봉오리를 열지 않는다 아쉬움을 안고 굽이굽이 구절양장 닮은 능선을 따라 머나먼 콰이강의 다리 같은 대구 앞산까지 간다 케이블카를 타고 400번 버스를 타고 운지랑 지하철역에 내려서 부근의 호호막창 집에 앉아 소주5병으로 뒷 풀이를 한다
동대구역에서 max님과 주마간산님의 침 튀기는 설전 끝에 개텍스라고 욕을 바가지로 들이 붓고 울며겨자 먹기로 ktx의 4인용 탁자좌석에 앉아 캔 맥주와 오징어 땅콩으로 구포역 까지 세포를 달래다가 지하철 구포역에서 우리들의 자가용 영원한 공짜 지하철을 탄다
개굴님과 간산님은 덕천에서 max님은 만덕에서 나는 미남에서 내린다 울 집 문턱을 넘어 서니 땡 열두시다 멀고도 멀었던 앞산... 그 산은 결코 앞산이 아니었다
7시 정각
현풍가는 버스는어김없이 사상 시외버스 터미널을 빠져 나간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승객은 열 댓명 정도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고 이내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차창 밖의 하늘은 먹장구름으로 산행나선 이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어디 쯤에서 였을까 이미 빗 방울은 차창에 맺히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우중산행(雨中山行)이 되려나 아무 준비도 못한 처지라 더럭 겁이 난다 그나마 빗 방울이 오락가락 하여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본다 마산 IC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는다 우포늪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보이는 걸 보니 창녕인가 보다 다리 밑으로 물길이 제법 길게 열려있고 풍성한 모래밭은 물길 따라 길게 늘어섰다 스쳐 간 풍광(風光)이 긴 잔상(殘像)으로 남는다
“드르륵” 갑자기 버스가 몸서리를 치듯 이상한 소리를 낸다 또 “드르륵” 수상타 생각는데 버스가 갓 길에 선다 기사 아저씨 한 말씀 하시는데 “에 차가 이상함다 문제가 생긴 것 같슴다 요 앞에 창녕에 들러 한 20분 손 좀 보고 갑시더 가다가 퍼지는 거 보단 낫다 아입니꺼 죄송함다”
양해 비스무리 한 공갈로 입 막음 하는데 이 무슨 개가 풀 뜯는 소린가 싶다 우린 곧장 현풍으로 가서 비슬산 휴양림가는 버스를 바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 차 놓치면 택시비 줄란가? 좌우당간 부엌에선 솥 뚜껑 잡는 늠이 젤이고 차는 운전대 잡는 늠이 젤 이라 카더마는 진짜네
창녕 터미널에서 버스는 꽁무니를 열고 진찰을 받는다 기사와 정비사가 주고받는 얘기가 가관이다 창자가 빵꾸가 나서 겔포스 좀 먹여야 겠단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냉각수가 하나도 없단다 어제 넣은 물이 죄다 빠졌단다 언 늠이 정비를 했는지 참 기가 찬다 당장 용 빼는 재주가 있남 토 하도록 물만 잔뜩 들이 붓고 출발이다 8시 25분 이다 아직 30분은 더 가야 하는데 휴양림 버스는 물 건너 가는 것 같다
“웽 우엥” 책임감이 투철한 우리 기사아저씨 밟기 시작한다 간산님과 나는 안전밸트 학실히 붙들어 멘다 뭐 빠지게 달려 드디어 현풍 터미널에 8시 45분 쯤에 도착한다 무려 10분이나 단축, 기록감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여유있게 김밥 집을 찾다가 찾다가 아이구머니나 길 건너 편의점에서 급히 삼각김밥 (산행가서 삼각김밥 먹어 본 사람 있음 나와 보라 그래)을 주워 넣고 냅다 뛰었다 근데 분명히 버스는 있는데 기사는 행방불명이다 물어봐도 속 시원히 말해 주는 사람도 없다 어째 자꾸 꼬이는 것 같아 찜찜하다
우린 8000냥에 택시를 탄다 윽 기사가 얼마나 골촌지 시트고 문짝이고 담배 냄새에 절었다 아마 출고 하고 이날 이때까지 걸레질도 한번 안 했지 싶다 그렇게 거의 고문에 가까운 상태로 10여분을 달려 9시 20분에 휴양림 입구에 떨궈 준다 심호흡 한 번에 허파를 대충 정리 하고 매표소를 지나는데 도열하듯 늘어 선 여자, 남자들의 이중삼중 태클성 입장요금 징수태도에 돈독 오른 관리소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
농촌사랑운동본부가 뭘 하는덴지는 모르지만 서명하면 목줄 달린 펜과 떡도 한개 준단다 공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일련(一連)의 수고가 있었지만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펜과 찹쌀 떡 앞에서 우리는 한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며 어디다 어떻게 쓸지도 모르는 개인신상의 정보를 그렇게 추호(秋毫)의 망설임도 없이 넘겨주고 말았다
길옆으로 꽃단장이 한창이다 참꽃 축제를 위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번 축제는 예상치 못한 기온 이상으로 축제기간에는 만개(滿開)의 황홀경을 보지 못 하리란다
9시 40분
20여분을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따라붙다 보니 벌써 땀이 흐르고 숨이 차다 어찌 알았으리 땀을 되도 아니고 말로 흘릴 고행(苦行)의 징조였음을
시멘트 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등로(登路)로 들어선다 이 길 부지런히 나아가면 비슬산 꼭대기 올라서 참꽃 진달래 그 고운 자태 한번 볼 수 있겠지 그런데 정말 숨이 차다 땀은 이미 등줄기를 흠뻑 적시고 목에 두른 작은 수건은 쥐어 짜면 주르륵 흐를 만큼 젖었다 무심한 님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앞으로 앞으로 자꾸만 간다
일행(一行)은 아직 저 만치 있고 나는 시계를 본다 10시 정각 40분을 걸었다 물 한 모금 마시면서 다리 쉼을 해 본다 얼굴은 불에 덴 듯 화끈 거리고 노폐물이 온통 땀으로 빠져 나가는가 보다 길가에 작은 현수막 하나 걸렸다 “개벽 실제상황 www.1588-1691.com” 참말로 내가 개벽이고 실제상황이네 빌어먹을...
일행은 자꾸 멀어지고 빗 방울도 조금씩 많아지는데 마음은 콩 튀듯 한다 얼마나 갔을까 개굴님이 내려다보며 손짓을 한다 다 왔단다 힘 내란다 이상도 하지 분명히 나는 롱 다린데 어찌 이리 허덕이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다려 주는 이가 있어 다시 힘을 내 본다
비탈길을 올라서는데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넓은 평지가 나타나고 저 멀리 삼층 석탑이 첫 눈에 들어온다 대견사지 절터다 가람(伽藍)은 흔적만 남아 옛 영화(榮華)를 짐작케 하고 그 숱한 세월은 바람에 난분분(亂粉粉) 흩어져 시방(時方)으로 벼랑 끝 석탑위에 앉았다 그 앞에 서서 사진 한 장 찍어 보지만 서먹하기 그지없고 탑은 가는 이를 보내고 또 얼마나 긴 세월을 그렇게 남으려나
숨을 고르고 계단을 올라선다 이제부터 비슬산의 비경인 진달래 군락지가 시작된다 능선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 듯 돌아가고 그 능선의 경사면으로 온통 그야말로 진달래 천지다 천성산 화엄벌의 억새 군락만큼 엄청나다 그런데 아직 기온이 맞지 않아서일까 안타깝게도 꽃봉오리는 꼭꼭 닫혀 있다 저 꽃봉오리들이 한꺼번에 꽃잎을 열었을 때의 그 광경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산의 한 면을 캔버스 삼아 거대한 붓으로 채색한 자연의 빼어난 솜씨에 보는 이 마다 그저 탄성만 자아 낼 뿐이리라
비는 다행히(?) 오락가락 멎었는가 하면 내리고 내리는가 하면 멎어 버리고 숨바꼭질 하듯 멀리 가까이 그렇게 곁에 있다 능선위의 작은 오솔길은 오가는 사람들이 비켜가기에는 턱 없이 좁다 하지만 그저 그러려니 하고 섰다가는 가고 가다가는 섰고 하는 걸 보면 그들은 이미 순리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었나 보다
누렇게 말라버린 풀들이 모로 누웠다 지난겨울 껍데기로 남았던 저 풀들도 때가 되면 다시 푸르름을 되 찾겠지 어쨌거나 제1봉도 거의 다 왔으니 다리쉼도 하고 출출한 배도 채울 겸 모두 모여 앉는다 max님이 주섬주섬 방울토마토, 오렌지를 꺼내 놓는다 비는 어느새 또 조금씩 내리고 새콤달콤 목젖이 춤을춘다
11시 10분
비슬산 제1봉에 이른다 대견사지에서 거의 1시간 거리다 어느 산 할 것 없이 제1봉에는 그 산의 이름과 높이 따위가 새겨진 표지석이 있기 마련 여기도 바위 위에 표지석 하나 섰는데 거의 어른 키 만 하다 - 비슬산 대견봉 1083.5M - 반듯하게 다듬지 않고 생긴 그대로다 못 생겨도 참 정겨워 한 번 쓰다듬어 본다
디카에 비슬산 대견봉에 왔노라고 확실한 증거를 남겼으니 이제 일말(一抹)의 미련도 없이 앞산을 향해 가야겠지? 이정표를 살펴 본다 유가사, 헐티재, 용연사, 청룡산, 앞산 윽 ! 앞산 17km.... 대견봉 여기까지가 겨우 4km 남짓인데, 땀은 바가지로 쏟으면서 쎄 빠지게 온 게 꼴랑 4km인데 17km 라고 라고라? 아무리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지만 17km 라고 라고 라고라? 그것도 산길을? 으아 ! 그래 들이대! 들이대! 들이대~애
빗물인지 눈물인지 아님 콧물인지 아무튼 간에 한 가지 이상의 물을 얼굴에 달고 머나 먼 앞산을 찾아 간다 내려 갈수록 활짝 핀 진달래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미끈하고 허연 줄기가 마치 늘씬한 각선미를 보는 것 같다 그 가지 끝에 연분홍 꽃이 수줍은 듯 피었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참 곱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소박하다
약간의 기온 차이로 꽃이 피기도 하고 아니하기도 하는 게 여간 신비로운 게 아니다 잌 간산님은 2단 3단 신이 났다 하지만 언제나 선두는 개굴님과 max님이다 거 참 거시기 한 숏 다리들(죄송)이 아닐 수 없다 간산님이 앞에 서란다 중간에 끼워 놓고 아주 물고를 낼 모양이다 무서버라 가만 있어보소 냉각수 보충 좀 하고...이제 진달래는 점점 많이 피어있다 군락지 그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피면 어떠할까 새삼 궁금하다
가랑잎에 떨어지는 비 소리가 점점 커 지는 걸 보면 빗 방울이 굵어지는 모양이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자브락 자브락...” “자블자블...” “사박사박...” 먼 듯이 가깝고 가까운 듯 아득하다 비 소리, 산행 중에 듣는 가랑잎 적시는 비 소리는 소나무 숲 사이로 핀 연분홍 진달래와 어우러져, 가는 이의 수고로움을 한결 덜어 준다 산은 그렇게 시시각각 소리도 모양도 달리 하면서 앞산으로 우릴 보내고 있었다
12시 32분
용연사 약수터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1시간 20여분 앞만 보고 앞산으로 내 달렸더니 아프고 고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무릎과 발가락 관절이 아프고 배도 고프고 술도 고프다 김 펄펄 라면이랑 때깔 고운 삼각 김밥을 생각하니 침이 절로 꼴딱이다
그런데 도대체 밥 먹을 생각들을 안 하니 갑자기 인간들이 미워진다 (밥 이나 믹이 감서 끌고 댕기라 뜨벌) 근데 귀가 번쩍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더 가서 좋은 자리 골라서 밥 묵잔다 흐미~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사람들 아믄 금강산도 밥 묵은 뒨겨 꼴까닥! 앞산 이정표가 보인다 11.5k 그래 아즉 11.5k가 아니고 벌써 11.5k다
12시 45분
드디어 라면이 3개나 나오고 김밥이랑 쇠주 한병이랑 거기다 삼빡한 안주까지 아이고 좋아라 이게 웬 떡 아니 족발이냐 우선 쇠주 한 잔에 야들야들한 족발 한 점 캬아~ 꿀처럼 달다 돌아가며 한 잔 씩 권 커니 잔 커니 하는데 이 무신 알콜에 물 타는 소리여 버너에 불이 안 붙다니?
그라믄 김 펄펄 라면은 우짜고 생라면 뜯어 묵을끼가? 아니 벌써 라면3개는 물 속에 퐁당 스프까지 뿌려놨네 그랴 이 장면에서는 미치는게 딱 맞지 싶어 막 미칠라 카는데 있어봐! 개굴님이 머시기 거시기처럼 생긴 머시기를 꺼내든다 화염 방사기다 그때 간산님이 그랬지 싶다 “그걸로 라면 끼리것소?” 존말 할 때 가만히 있으소 내 눈에는 끝내주는 화염 방사기구마는
방사기는 소리도 우람하게 코펠을 달구고 드댜 김이 나면서 라면이 설설 끓는다 아이고 놀래라 관절 아픈 것도 다 잊었네 사상초유의 산중 삼각김밥을 꺼내 든다 나는 경험이 있는 터라 능숙하게 포장비닐을 벗겨 낸다 그런데 간산님 좀 보소 이리주물 저리주물 알갱이는 만져 보지도 못 하고 애만 태우고 있다 그 모양이 우스워 한 마디 했지 “줘도 몬 묵나”
13시 10분
달디 단 점심을 끝내고 산행 제 2막을 시작한다 똥똥배는 가면서 가스를 뽑기로 하고 짐을 챙긴다 길은 거의 외길이다 게다가 대구앞산이라고 적은 동그란 패찰이 교통 표지판처럼 곳곳에 있어 눈만 뜨고 간다면 걱정 없겠다
가끔 갈림길이 보이기는 하지만 헷갈릴 정도는 아니다 단지 그때마다 간산님이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이길 저길 돌았다가 합류하곤 한다 으아 부럽다 나는 땀으로 범벅하고 관절이 자꾸만 더 아파 와서 걱정인데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닌겨 짐승인겨
낙엽과 길섶에 오두마니 선 진달래가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마주오는 이도 드물고 사위(四圍)가 조용하니 산중(山中) 세상은 또 이러한가 싶다 어울림의 미학이 뭔지는 몰라도 산과 사람과 나무와 꽃이 이렇게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 이것이 진정한 어울림 인가 보다
14시 30분
1시간을 넘게 능선을 탄다 알게 모르게 모두들 가스는 거의 뽑았지 싶다 길은 고개로 봉우리로 이어지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몸만 따라 준다면 정말 하염없이 가고도 싶다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휘휘 늘어진 가지를 마치 바람에 날리듯 멋진 모습으로 섰다 모두들 입을 대는데 개굴님이 한 조크 날린다 뽑아만 주믄 가져 갈 낀데... 진짜 함 뽑아 줘?
살짝 비탈을 넘어서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 서려는데 max님이 빠른 길을 잡는다 위 아래 묘소가 여러기(基) 있고 살펴보니 뉘집의 선산(先山)인가 보다 그 사이로 막 길이 나려 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의 선산 한 가운데로 길이 나서 일까 보기가 좀 흉하다
얼마나 갔을까 대구앞산표시가 한 번 나올 때가 되었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는 중에 모두들 정말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걸음을 멈추고 5만분의1 등고선 지도를 꺼내서 나침반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가늠해 본다 우선 방향이 정 반대다 북으로 가야 하는데 남으로 가고 있으니 분명 길을 잘못 들었는게 확실하다
그제야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고 중간 목표지점인 청룡산을 찾아 본다 북쪽에 크게 섰는 한 봉우리를 어렴풋이 가늠하고 되 돌아 나온다 max님은 30분 까 먹었다고 애통절통이고 개굴님은 어른들 묘소옆을 함부로 밟고 다녔으니 동티가 났단다 그런데 부실한 관절과 체력을 가진 키 큰 아자씨 좀 보소 얼씨구 입방정을 떠는데 “그라믄 어디가서 30분 벌지?” 무덤을 팠지 그것도 비 오는 날
15시 10분
또 하나의 표지판을 만난다 앞산7.2k 대견봉에서 4시간, 산행 시작 6시간만이다 청룡산은 코앞이다 저 산만 넘으면 앞산도 보일 거라는데 몇 달 만에 산에 들어 생각 없이 첨부터 고수들 (하이에나급-이보다 상위는 치타급 이라함, 오늘 들은 이바구) 따라 붙는다고 무리를 했으니 앞산이 보일 때 쯤이면 관절이 남아 날라나 숨이나 쉬고 있을라나 몰라
16시 02분
청룡산(794m) 꼭대기다 건너 쪽에 평평한 능선위로 초소와 또 다른 시설물이 보인다 저기가 앞산 이란다 예상소요시간은 2시간 남짓 힘을 내잔다 뭐? 2시간? 그것도 대충 통빡으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통빡으로 잡은 시간은 절대 맞아 떨어지거나 단축 된 적이 없다 있으면 발톱 밑에 고압선 박는다 참말로
평지보다 오르막이 걷기가 수월하다 내리막은 그야 말로 죽을 맛이다 무릎이 시큼시큼 한 게 꼭 바람 든 무 같다 다행히 체력은 견딜 만하다 마지막 남은 비스킷 한 봉지를 뜯어 개굴님에게 권해 보는데 싫단다 비스킷 보다는 쵸컬릿을 준비 하지 그랬느냔다 우쉬 없는 쵸컬릿 만들어서 묵으까 어제 쵸컬릿 보다 더 좋은 쇠고기 육포까지 준비 했는데 아침에 보니 뭔 늠의 육포가 물이 질퍽질퍽 하노 그래서 지금 묵을 끼 요것 밖에 없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개굴님이 쳐다 본다
17시 10분
또 1시간을 걸었나 보다 개굴님이 파스를 바르잔다 그거 바르면 훨씬 낫단다 신 벗고 양말도 벗고 철벅 거리며 발가락으로 발등으로 발목으로 그리고 무릎까지 온 산이 진동 하도록 발라본다 약발로 다시 걸음을 옮기고 앞서간 두 사람은 소나무가 있는 넓은 터에서 기다리고 있다 예의 힘 좋은 간산님은 너무도 씩씩하게 물 뜨러 계곡으로 내려가고 개굴님과 나는 뒤 처지지 않기 위해 먼저 일어선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아까 보았던 초소 건물이 성큼 눈 앞에 나타난다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시방 내 형편에 그리 할 수 있나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데 갑자기 개굴님의 휴대폰이 울린다 곁에 멀그니 서서 들어보니 간산님 인가보다 그런데 건너 쪽 어디 에선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희한하게 그 소리와 전화기에서 주고받는 얘기가 실시간으로 맞아 떨어진다 순간 윽 내가 헛 걸 듣나? 개굴님은 여전히 휴대폰에 대고 얘길 하고... 알고 보니 간산님은 샘 찾아 물 담고 올라와 보니 가는 길목 이란다 그래서 기다리지 말고 보따리 가지고 빨랑 오라는 전화 였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대낮에 귀신 볼 뻔 했네
18시 05분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시멘트 포장 임도다 이정표도 하나 섰다 마침내 앞산 이라 표시 된 이정표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장형 내 아직 숨 쉬고 있젱 “ 딱 딱따르르르 ” 마침표를 찍듯이 선명하고도 경쾌한 울림이 숲 어디에선가 연거푸 들려 온다
딱따구리? 개굴님도 그렇단다 그런가 전혀 생각지 못한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를 듣고 보니 괜시리 기분이 좋으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긴 부리 꼬랑지머리 그것만 해도 우스운데 쎄가 빠지게 앞뒤로 헤딩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찌 아니 우스울까
길옆으로 산벚나무가 소담한 꽃을 피웠다 파릇한 잎새와 작고 앙증맞은 꽃잎이 너무 잘 어울린다 산아래 화사한 벚꽃이 화장기 있는 도시처녀 같다면 산벚나무는 맨얼굴 그대로의 수수한 옛적 우리들의 시골 누나 같다 뒤 따라온 간산님과 max님이 보인다
마지막일 것 같은 간이 화장실을 지나서 언덕을 넘고 다시 작은 고개로 내려간다 쑥 솟은 봉우리 하나, 앞산이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찾아 온 앞산의 꼭대기엔 통신중계 탑이 떡 하니 흉물 스럽게 버티고 섰다 접근도 못 하게 철망으로 둘렀다 이게 앞산이던가 앞산의 실체가 이 따위 였던가
딱히 무얼 보자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속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앞산 꼭대기에 올라만 볼 수 있었어도 아니 저 따위 고철 조각으로 버티고 섰지만 아니 했어도 허탈함과 배신감은 덜 했을 것을...
18시40분
케이블카 안내 표지판이다 온통 바위다 안전 철책 너머로 대구 시가지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분지 위의 도시답게 사통팔달(四通八達) 막힘이 없다 어스름 지는 해 속에 낯선 타향의 도시는 뿌연 황사로 덮여있고 그 속에서 이방인(異邦人)을 가만히 지켜 보는 것 같다
이제 우린 저 회색빛 도시 속으로 돌아간다 무엇이 아픈다리 끌고 10시간 가까이 걸어 오게 했는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회색의 도시에 드는 순간 이 산이, 이 푸르름이, 이 가슴시린 자유가 그리울 것 이라는 것이다
그 자유를 그리워 하며 또 얼마나 긴 시간을 나는 콘크리트 벽 속에서, 혼란한 소음 속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자폐아처럼 지내야 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누릴 수 없는 자유는 그리워 할 수록 절망에 빠지지만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그리워 할 수록 가슴 설레고 행복감에 젖게 한다 벗님들이여 오늘 밤 마음껏 자유를 그리워 하고 잠 깨면 산으로 갈지어다
첫댓글 우리 카페 명문이 하나 더 늘었네요. 수고하셨슴다~~~
고생하셨습니다. # 참고: 앞산케이블카 마지막 운행 시간 19시20분 요금 1인당 대인 3500원
ㅋㄷㅋㄷ 하이에나들에게 끌려가서 고생 억수로 했네요... 조만간 한 번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