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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강의실에서 만난 6.25 한국 전쟁(1/2)---------------------- 이동근/문숭리
금년 여름은 필부가 이제 겨우 지천명 중반을 살아오면서 그 어느 해보다 무더운 한해였다. 한, 두해 전에 귀향, 귀농과 더불어 집필에 대한 여생의 꿈을 갖고 내 고향 충청도 충주근교 필명이 문숭리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농가주택에 기거 하면서 에어콘은 말할 것도 없고, 선풍기 없이 초/중/말복을 무던히 넘겼다. 게다가 농촌 인력시장에서 탄방 막장에 비유되는 잎담배따는 일을 해 보기도 하면서 내 농사라고 손바닥만한 사과농장과 수 백평의 옥수수 농사도 직접 지으면서 세월을 낚고 있다. 그 와중에 모교 초등하교와 충주 시내 한 두 곳에서 하모니카 강사도 하면서 천방지축으로 생을 영위한다는 것도 이미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은 다 아는 바다.
거두절미하고 오늘 이번 이야기는 필부가 주관하고 있는 충주 시내 하모니카 교실의 하나인 충주시 노인복지 회관에서 만나 6.25 한국 전쟁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필부는 58년 무술년생 개띠다. 그런고로 6.25 한국 전쟁의 후미에 세상에 얼굴을 내 민 것이다. 직접적으로 6.25 한국 전쟁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6.25 한국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수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머리로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참상이나 그 진실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한때는 6.25 사변이라고 했는가 하면, 민족 동란이라고도 했고, 현재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부의 아버지가 가족을 이끌고 경상도 문경지역으로 피난을 다녀온 이야기, 아버지가 일당을 받고 유엔군 전사자 시신을 묻어준 이야기, 그리고 피란처에서 전염병으로 두 자식을 잃고 온 이야기, 그리고 어린 형님들이 동냥을 해서 그 피난 시절을 겨우 연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러다가 필부 모교인 충주시 신니면 소재 동락초등학고가 한국전쟁의 최초 승전지에 얽힌 모교 초임 김재옥의 여고사의 기치로 인한 승전의 기회를 잡은 이야기, 그 여교사와 그 전투에 한국군 소대장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고, 그 후 인제에서 그 유명한 고재봉 도끼사건에 희생양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성장과정의 6.25에 대한 전부였다가 중부 전선 철원에서 33개월 군 복무를 했다.
철원평야를 서로가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했다던 백마고지, 철원평야를 남한에게 빼앗기고 1주일을 통곡하면서 철원평야를 내려다 보았다는 김일성 고지, 그리고 그 후 제2의 땅굴이 필부 군복무 지역에서 발견되어 군 시절 그 속에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수 십년이 지난 어느 싯점에서 군 관련 당시 근무를 같이 했던 전우들과 선, 후배들이 모여 전우회 활동도 간헐적으로 하고 있고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
(2011.10.4. 군 복무 연대 본부 신청사 준공시 6.25 참전 선배 전우와 함께- 당시 참전 용사로 구성된 청성부대 유해발굴단 활동을 하시는 군 선배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필승!) - 필부는 군 전우회 모임에서 글을 쓴다는 명목으로 홍보국장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ㅎㅎㅎ)- 우측 둘째줄 1번 -
그러다가 다시 필부가 6.25에 대하여 한 번 되돌아 보게 된 것은 현재 마을에서 남자로서는 최고령인 86세 오씨 아저씨가 현존하는 유일한 6.25 참전 군인이었다. 무공훈장도 받았는가 하면 참전 전우회 활동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11. 4.23일 필부 귀향, 귀농겸 집필실인 농민문학관 개관행사때 문숭리 농민문학 집필실 현판식에 마을주민 대표로 현판식 세러머니를 했었다. 아래 사진 참조.
(사진 가운데 모자를 쓰고 있는 분으로 현존 86세인데 아버지 생존(85)시 보다 한 살 더 사시고 있는 마을에서 최고령이다. 지난 1978년 필부가 서울에 있는 모 중견 사립대에 합격하자 필부 아버지는 등록금을 이 오씨 아저씨에게 빌려서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 필부가 귀향을 하여 필부 집필실 행사에 마을주민 대표로 모시었다. 좌로부터 하모사랑 이웃사촌님, 필부, 오씨 아저씨, 하모가리님, 당시 한옥 수리에 15일 정도 수고해 주신 우정화가님.. .2011.4.23)
그러다가 지난 7월 다시 필부는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6.25를 다시 만난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 충주시 노인복지회관 하모니카 교실이었다.
이미 필부와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충주시 노인복지 회관이 필부에게 첫 하모니카 강사로서 데뷔였고 하모니카 교실 자체로서 국민의례 예식을 진행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으로 하모니카 교실 개강식을 했었다.
대부분 6.25 한국전쟁을 겪으신 분들이어서 정말 애국가 제창을 하면서 그 여느 사람들 보다 가슴이 뭉쿨했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하모니카 개강식을 하면서 국민의례를 할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젊은 강사?(55) ... 수강생 최연소가 58세이고 최고령이 83세, 평균 연령이 69세이다 보니 필부는 이제 그 분들의 막내 동생이나 아들 정도에 불과한 젊은이였던 것이었다.
처음 충주시 노인복지회관 하모니카 교실이 2월말 부터 12월까지 하기로 하고 시작을 했는데 그 중간에 여름방학이 실시된다는 것은 미처 몰랐었다. 지난 7.12~8.28까지 한 달반 정도 복지관이 휴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ㅎㅎㅎ 충주시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회관이다 보니 운영상 한 방편이란다.
상반기 종강일이었다. 수강생 중 한 분인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김영기라는 분이 책을 한 권 건너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중간에 몇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책 발간식 모임에서 자신이 하모니카로 애국가를 연주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그 자리에는 6.25 참상을 알리기 위한 충주시내 충주문화 사랑회 회원들 뿐이 아니라 지역 국회의원도 동석하기로 되어 있노라고 말이다.
하모니카를 배우고 있고, 개강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한 두번이지만 애국가를 하모니카로 부는 것을 연습을 해 보았으니 자신이 자청하여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참 고무적인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 행사에서 그렇게 자신이 서투른 애국가를 하모니카로 연주를 했노라 했고... 그렇다면 어디 실제 수강생님들 앞에서 한 번 직접 들려주시기 않으시겠노라고 했는데 그 모습을 필부가 오래전에 동영상 저장을 해 두었다가 이에 오늘 틈을 내서 그 분이 직접 쓰신 글을 소개와 더불어 그 애국가 동영상을 통하여 우리가 과연 지금 평화의 시대인가? 아니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 전쟁인가를 되돌아 보고자 한다.
(2012. 7월 충주시 노인복지회관 하모니카 교실 수업중에서)
이 글을 쓰면서 6.25에 대한 공식 명칭을 찾아보는 가운데 EBS 에서 특별 제작한 동영상[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6.25]가 있어서 링크를 한다. <--- 클릭하면 시청이 가능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충주시 노인복지회관 하모니카 교실 김영기 어르신이 기고한 [우리 마을을 지켜온 분들]이라는 6.25이야기와 충주문화사랑회에 대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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