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암릉서 ‘짜릿’한 서울 구경
<산사랑, 산사람> 서울 불암산, 수락산
대구에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 대전에 보만식계(보문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가 있다면 서울엔 불수도북(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이 있다. 강남 7산과 더불어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에워 쌓고 있는 산군(山群)을 말하며 총 연장거리는 45km에 이른다. 강북에서 경기도 의정부-남양주에 걸쳐 있는 이 산의 종주여부는 서울의 산꾼들 사이에서 아마추어와 마니아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된다.
불암, 수락산은 전체가 바위덩어리로 보일 만큼 우람찬 암릉을 자랑한다. 흙산에 익숙한 일반인들에게 바위산행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기운찬 품세에 맞게 조망에 있어서도 압권이다. 남양주 쪽 축령산, 운악산의 원경(遠景)과 강북의 북한산, 도봉산 쪽의 시원한 눈 맛은 이곳 산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서울 수호산...역대 왕조·문인들 사랑 듬뿍
두 산은 도봉산, 북한산과 함께 서울을 지키는 수호산으로 여겨져 왔고 역대 왕조와 문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산자락마다 갖가지 사연들이 깃들어 세월의 무게를 더해준다. 임오군란 때 성난 군인들의 창검을 피해 민비가 숨어들었고, 계유정란 땐 세조의 쿠데타에 좌절한 김시습이 은신했으며, 6.25땐 적의 수중에 들어간 수도 회복을 위해 육사생도들이 유격전을 펼친 호국의 현장이기도하다.
불암산 초입부터 시작된 암벽과 기암괴석은 하산 길 수락산 유원지 까지 이어진다. 바위 사면에서 자일을 맨 등산객들이 아슬아슬한 암벽을 오르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수락산 정상까지 바위군락이 이어져 릿지 등산화는 필수다. 안전한 우회로도 있지만 조망과 스릴을 즐기기 이해선 적당한 ‘오프-로드’는 필요악이다. 자연은 용기 있는 자에게 조금 더 조망을 허락한다. 바위사면에서는 암벽과 사지(四肢)를 바짝 밀착 시킬수록 안전하다. 때문에 어깨와 손바닥의 혹사는 각오해야 한다. 수고 뒤엔 비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산꾼에게 이 정도 보상이면 충분하다. 다가간 만큼 시계(視界)는 열리고 열린 만큼 감동은 커지기 때문이다.
#갖가지 사연 간직한 바위들 시선 붙잡아
금강산이나 오대산 만물상의 기암괴석이 백화점식 전시형태를 띤다면 불암 수락산의 바위들은 적당한 단락과 테마를 가진 단편 영화관이다. 이 바위들은 모퉁이를 돌때마다 각각의 캐릭터대로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치마바위, 탱크바위, 하강바위, 기차(홈통)바위, 철모바위, 코끼리바위, 종바위, 배낭바위... 끝도 없이 펼쳐지는 바위의 파노라마는 곳곳에서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깜찍하게 튀어나와 등산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철모 바위엔 유격대원들의 호국 혼이 깃든 듯 늠름하고 직녀봉 근처의 종바위는 금방이라도 소리를 울릴 것 같은 긴장스런 배치다. 하강바위 근처에서 익살스럽게 누워있는 아기코끼리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재롱을 부릴 것만 같다.
#하산 길 더위 식혀주는 옥류·금류·은류폭포
수락산의 기암괴석의 파노라마는 정상너머 사패산-도봉산을 거쳐 북한산까지 이어진다. 육산(陸山)만 주로 밟아온 우리에게 암릉 산행은 일종의 별미 같은 것. 하산 길은 내원암을 거쳐 수락산 유원지 쪽으로 잡는다. 길 곳곳에 옥류폭포, 금류폭포, 은류폭포들이 이어진다. 암반 구릉을 따라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떨어진다. 물이 귀한 바위산에 폭포수는 무척 귀한 존재였을 터. 아마 ‘수락(水落)’이라는 이름도 이런 폭포수를 배경으로 얻어진 것이리라.
내원암에서 올려다 본 수락산엔 아직 눈과 진달래가 어색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눈이 더 머무르려 하는지, 꽃이 한발 먼저 왔는지 계절은 혼란스럽다. ‘철’이 없기는 무슨 리스트, 리스트로 시끄러운 산 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첫댓글 아주 오래전 산을 모를적에 불암산 정상을 올라 본적이 있다. 구두 신고 친구들과 그리고 정상 어디에 우리의 정표를 묻었는데 그때 지도가 없어져서 지금은 마음으로만 새기구 있다...ㅎㅎㅎ
올해 내 꿈(?)중 하나가 불수사도북인디........
김샘, 각오 단단히 해야 할껴. 설악산이나 지리산 종주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더구만. 40도는 좋게 넘어 보이는 암벽들이 곳곳에 널려있더라구.
800m ~ 1,200m정도의 등반은 10손가락이 한 두어개 부족하나! 대단들 하이...4년전 인대로 고생한 뒤로는 더군다나...동네 청량산이나 가끔씩...
동네 청량산 하니까 생각 나는게 있으니! 내가 그 일대에서 (레이다 부대) 근무를 했는데 그곳이 문학산 이었다는거 아냐! 그 레이다 부대에서 시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안개속에서 피어나는 도시라고나 할까? 고구려에서 남하 후손중에 비류의 한이 서려 있다는 미추홀의 어느 산성에서 내가 근무를 했다오! 그 산에서 바라보면 안개에 가려진 도시중에서 성냥갑 높이쌓은 건물부터 나타나는데 서울쪽에는 63빌딩과 서울타워 , 인천에서는 계양산과 주안일대! 지금은 거대한 성이 되어버린 동춘동 일대( 그때는 바다 매립 작업중 이었는데 지금은 큰 도시가 되어 버렸더군) 그때(군대생활때) 얘기 해도 되나?
처가하며 인천과 인연이 많으이...인천에서 결혼생활 포함 24년을 주안에서 6년, 문학산근처 관교동에서 15년,청량산근처 송도경제자유구역청에서 3년 문학산 청량산 일대가 나의 무대라네...지금도 무진기행의 안개 처럼 이곳 신도시는 안개가 많지. 그때는 63빌딩을 볼 수 있었다니...인근 수원이나 서울에서도 이곳 포스코 건물이 보인다 하던데, 같은 시기에 겹쳐지는 부분 있었겠네, 군시절과.
나도 삼촌댁이 있는 석남동 경인여고(옛 경인여상) 근처의 철마산은 서너번 올랐는데. 다음엔 계양산, 문학산, 청량산도 올라가야건네.
다른산 얘기하다 이야기가 이쪽으로 흘러도 되나? 글 쓴사람 기분 나쁘겠는데? 미안하지만 그래도 하던 얘기 하야겠는데,주안이라는 동네는 어리버리한 이등병 시절 평택에서 버스타고 다음 전철로 갈아타고 인천의 어느역에서 내렸는데 그곳이 주안이라는 역이었고 그곳에서 3번이나 4번 시내버스 타고 인하대 지나서 문학산 밑에서 내려 해발 200여미터 그 산을 올라야 했는데,그곳이 내가 3년동안 군대생활을 하며 맺은 인천하고의 첫 인연이 되었다오. 5.3 주안사태도 산위에서 지켜 보았고,나중에 주안의 민가로 내려갔을때 그곳이 1번지 활락가였다는것도 알았고...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겠네요.
그시절 마음에 밀려있는 회색노트는 없는고라!?...^^ 다음, 언제, 철계문청(?) 그러세들.ㅋ
회색노트는 없고 추억록은 있는데, 그때 얘기가 벌써 우리 아이들(군대간) 얘기가 되는건가? 세월참 빠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