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버스를 타려해도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기다렸다 타고서 다시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따지자면 걸어가는 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다 또 마을버스를 타려해도 기다리는 시간도 그러거니와 빙빙 돌아서 가는 탓으로 걸어서 가는만 못한 경우도 있기에 보통은 택시를 타고 가는 편이다.
내가 가는 목적지 역시 교통편이 그리 좋은 곳이 아니다. 전철 편으로 이동을 해서 의정부역에 내린 후 그곳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 타고서는 가야 하는데, 출발 시간은 매 시간 20분이고 목적지까지 약 50분이 소요된다. 시외버스도 있는데 기차역에서 약 10분을 걸어가야 하는데다 목적지까지 단번에 가는 차편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도에 다시 한번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 웬만해서는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
이러한 형편으로 인해 난 집에서 나와 늘상하던 습관대로 택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바로 택시가 오는 바람에 반도 채 피우지 못하고 꺼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아까운 생각을 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엔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여유가 그 이후에 얼마만한 짜증을 불러 일으킬지를 모르고선 말이다. 한개비의 담배가 다 꺼진 그 시간부터 꼬임은 시작되었다.
1. 꼬임의 서막이 오르다.
추석이라서 택시가 드문 드문 있을거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것이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빈 택시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택시 자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던 시간이 근 10분이 되가도록 내 앞을 지나 간 택시는 건너편으로 지나 간 숫자까지 합쳐봐야 겨우 서너 대 남짓이었으니 말이다.
'택시 타지 않고서 걸어갔으면 벌써 역에 도착했겠네' 하는 생각이 슬쩍 슬쩍 고갤 들면서 '걸어가면서 기다려 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지친 마음을 가다 듬는데 고갯길을 내려오는 택시가 보였다.
아직은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았기에 없으면 여기서 날 태우고 가라는 손짓을 미리부터 해 보였다. 그러나 곧 에이,하는 김빠지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울려나옴과 함께 멋쩍게 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지나쳐보냈던 택시가 약 20 미터 쯤을 지나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아휴, 뭐야 저거' 이런 마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난데없이 어디서 나타 났는지 두 사람이 마치 예약이라도 해 뒀다는 듯이 척하니 타더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 날의 꼬임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2. 발걸음이 꼬여가기 시작하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가는데 고개는 무슨 아쉬움이 그리 남았는지 자꾸만 고갯길을 바라보았다.
그리 걷던 걸음도 빨간 신호등에 걸려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멈출 수 밖에 없었는데 걸어 온 거리보다는 걸어가야 할 거리가 아직은 길었기에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쫓으려는 마음은 신호등을 무시한 채 건너편에 멈춰 서 있는 택시를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먹잇감을 혹여라도 놓칠까 싶어 안절부절 조바심을 떨어대는 양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택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를 하다 흘깃 옆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데 40대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의 예사롭지 않은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혹시 저 아저씨도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치는가 싶었는데 불길한 징후는 여지없이 적중을 하듯이 나를 살짝 지나쳐 그 아저씨에게 좀 더 가까이 멈춘 택시는 잽싸게 그 아저씨를 낚아 채더니 부웅 하는 포효소리를 남기며 사라져 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사라져 가는 꽁무니를 째려보는 눈길과는 달리 마음 속에선 부러움에 속이 끓고 있었다.
3. 꼬여감을 비웃다.
투덜투덜 걸어가는 발걸음은 불만스러움이 잔뜩 묻은 탓인지 꽤나 무거워 보였다. 발보다는 마음이 더 무거워진 탓에 횡단보도를 바로 건너기가 갑자기 싫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그래 어디 오늘 어쩌나 한 번 보자'는 별스럽지도 않은 고집을 앞세우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또 횡단보도가 보였지만 신호를 기다리기 귀찮다는 얄팍한 속셈으로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무단횡단을 감행하였다.
무사히 건넜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건너왔던 쪽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아마 벌써들 눈치챘겠지만 기가 막히지도 않는지라 이런 경우도 있냐고 하소연하는 심정에서 말씀드리자면 빈 택시가 실실 비웃듯이 가더란 말입니다. 나원참......
4. 혹시나? 역시나 '꽝', 꼬임의 반복
오늘 일이 이상하게 자꾸 꼬인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뭔가 이후로도 또 일이 꼬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뒷덜미에 끙하니 짊어 지고선 연신 궁시렁 궁시렁 거리는 추진음을 내며 겨우겨우 기운 빠진 걸음을 억지스레 끌고선 역에 당도를 하였다.
안양역사를 새로 짓는다고 한참동안 공사를 하였던 참이라 여전히 그러려니 하였는데 아주 멋드러지게 새워진 역사를 보니 내가 이곳에 와봤던지도 꽤나 오래 전이었구나 싶었다.
안양에서 의정부까지 직접 가는 전철은 없고 중도에서 내려 인천방향에서 오는 전철로 갈아 타야만 하기에 역사로 들어오는 순서대로 전철을 타면 되는지라 골라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행운은 그게 전부였다. 기다림이 짧았던만큼 서서 가야하는 시간은 길었기 때문이었다. 갈아타기 위해 종로5가까지 가는 50여분 동안에 꼬인 사람이 자리에 앉아 갔을리는 만무하였기에 말이다.
나보다 늦게 중도에 탄 사람들은 어찌 그리들 일어 설 사람들을 척척 알아 보는 것인지 얼마 안있어 잘도 앉아 가더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내 앞에 앉은 사람들만은 요지부동 꿈쩍도 않더니만 내가 내릴 요량으로 출입문 앞에 기대어 섰더니 그제서야 마치 자다가 깬 양 몸을 비비적 꼬며 고개를 들어 두리번 거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지 출입문이 열리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선뜻 양보(?)하며 일어서더니 천연덕스럽게 미소까지 지어보이고선 유유자적한 걸음걸이로 나보다 먼저 출입문을 빠져 나갔다.
지지리 복도 없음을 씁쓸한 웃음으로 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내게는 의정부까지 소요되는 30여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었기에 그러한 불운을 떨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어보며 굳어있는 표정을 다듬어 폈다.
다음 정차역이 어디라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내리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짐짓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눈치를 흘리기를 수어차례 했건만 전철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종점에 이르기까지 일어설 줄 모르고 자는 척 졸고 있는 사람들의 뒷통수만을 밉상스레 째려보다 끝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긁어봤지만 역시나 '꽝'으로 버려지는 즉석복권처럼 그렇게 구깃구깃 주름진 인상을 쓰며 부글대는 속을 가까스로 삭혀 개찰구를 빠져 나와야 했다.
5. 10분. 간발(?)의 차이 그러나 긴 꼬임
위에서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설명을 한바 있듯이 의정부역에서 다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방편으로는 매시간 20분에 출발하는 기차편이 있다고 했는데 역에 도착함과 동시에 시간을 보니 기차가 출발한지 딱 10분이 지난 11시 30분이었다.
제대로 택시를 탔거나 조금만 빨리 걸었더라면 기차시간에 맞출 수 있었을텐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기에 늦어버린 10분으로 인해 다음 기차 출발시간인 12시 20분까지 5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성질 급한 마음은 재빠르게 시간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50분 동안에 버스를 타고 간다면 그 50분에 목적지까지 소요되는 50분을 더 한 시간인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다는 답이 떨어지자 그렇다면 조금은 귀찮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욕심이 서둘러 발길을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끌고 갔다.
늦어진 10분을 보충하고자 좀 더 빨리 움직이려 했던 조급한 욕심이 또 어떻게 꼬여가게 될런지는 그 때까진 전혀 모른체 마음은 벌써 목적지에 도착해서 한참 후에 지나칠 기차를 웃음 속에 맞이하고 있었다.
6. 순간의 선택이 꼬임을 좌우한다.
시외버스는 목적지까지 단번에 가는 직행버스도 있지만 드문드문 있는 탓에 기다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음을 전에 경험했던터라 일단은 조금 더디더라도 마냥 기다리야 하는 그 때의 지루함이 싫었기에 중도에 다시 갈아타야하는 귀찮음이 따르는 동두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꼬였던 하루의 운세가 풀리는 것일까. 딱 하나 남은 자리가 나의 차지가 되다니 말이다. 맨 뒷자리 왼쪽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는 순간 왜 그리 마음에 행복감이 밀리던지 실없는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서서 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이제 자는 척을 해서 그들로부터 부러운 눈총을 받아 봐야겠다며 억지스레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맨 뒷좌석 자리가 꽤나 불편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지만 차의 움직임에 따라 무방비로 서 있는 상태에서 전후좌우로 내동댕이 쳐지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그 정도는 감내할 용의가 있다는 여유로움으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나의 인내심은 예기치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지 한참이 지난듯 싶었는데도 차의 움직임이 별로 없는듯 싶어 눈을 떠 보면 겨우 몇 미터 이동하고 멈추고 몇 미터 이동하고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약간 정체가 있는 곳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할 정도로 꽉 막혀서 도통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움직임이 둔한 차량의 흐름에 신경을 쓰다보니 잠도 쉬이 오지 않았는데 에어컨 성능은 또 어찌나 좋은지 찬바람이 얼굴 정면으로 불어 오는데 얼마지나지 않아서 결국 머리가 띵하니 아파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풍향구가 고정식이라서 달리 어떻게 방향을 바꿀 수도 없어서 기사 아저씨가 에어컨을 끄지 않는한 그 고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맨 뒷자리의 구조상 다리도 쭉 펴지도 못하는 형편인데 찬 바람 때문에 허리도 쭉 펴지 못하고 반쯤 구부린, 결코 서서 가는 것보다 편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로 겨우 겨우 울렁거리는 속을 참아가며 동두천에 도착하니 이건 차라리 기차를 기다렸다가 타고 오는만도 못하다 싶었다.
7. 꼬인 일도 환불이 된다면
동두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는 중도에 정류장이 몇 곳 없는 직행이라 불리우는 버스와 정류장 표지판이 있는 곳마다 거의 빠짐없이 멈춰 성실하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완행격인 버스가 있다. 성질 급하고 시간에 쫓기고 있던 나는 앞뒤 가리고 재고 할 것도 없이 950원 짜리 표를 구입했다.
표를 들고 어디서 타야하나 살피는데 행선지가 표기된 안내판에 목적지가 뚜렷하게 적혀 있는 버스 한 대가 터미널 입구를 빠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타야하는데' 하는 순간적인 판단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그보다 약간 늦게 스타트한 '조금 있으면 또 오겠지' 하는 근거 전혀없는 낙관이 무서운 스퍼트로 따라 붙더니 면팔림을 무릎쓰고 뛰어가려던 판단의 뒷덜미를 낚아 채곤 발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낙관적인 기대의 마음이 비관적인 결과로 낭패를 보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 5분여가 지난 후 완행버스가 도착하였기에 '저거라도 타고 가자' 하는 마음으로 버스표를 당당히 내미는데 그 표는 직행표라서 이 차에는 태워 줄 수가 없다며 어서 내리라는 듯이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마치 초행길이라 서투른 사람인척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인 다음 이제 알았으니 가서 표를 바꿔오겠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선 매표소로 향했다.
사정이 급해서 표를 바꿔야겠다는 그럴싸한 구실로 매표창구로 표를 들이미는데, 그러게 진작에 뭘 제대로 알아보고선 표를 구입할 것이지 쥐뿔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표를 사고 보는 너 같은 놈들을 볼 때면 한심스러워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한데 차마 내색을 하지 못하고선 짐짓 공손한 척, 표를 환불하게 되면 수수료로 10 %를 공제하여야 한다는 친절한 대답이 창구 너머에서 들려 왔다.
표를 구입한 후 반으로 접지도 않고 그냥 그 상태로 그대로 아주 잠시 동안만 들고 서 있었을 뿐인데 그 댓가로다가 무려(?) 10 %를 요구하다니 너무 기가 찼다. 따지고보면 10 % 래야 100원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에는 사실 10 % 가 얼마인지 퍼뜩 계산도 안되었지만 그 보다는 그러한 처사에 대해 같잖지도 않다는 생각이 울컥 올라오면서 쓸데없는 오기가 발끈하였기에 규정을 들먹이던 매표원이 잠시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쩝쩝 입을 다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선 주머니에 표를 구겨 넣었다.
결국 차분함이 결여된 성급함과 득될 것 하나없는 오기로 인하여 지루함과 짜증으로 범벅된 20 여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낙관적인 기대로 처음의 직행버스를 떠나 보냈던 나의 시행착오는 끝이 났다.
8. 꼬이고 꼬여도 끝내는 도착하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 행 버스를 탄 후 채 3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아!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저만치서 철길건널목 차단기가 경고음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내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양편으로 늘어선 차량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하니 통과해 가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에는, 오늘 진짜 억세게도 재수 없다는 자조섞인 기분에 씁쓰레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내 모습이 차창에 오버랩 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기차가 사람들을 내려 놓고 떠난지 벌써 15 분이나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