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활개 치는 '막장'
남편이 아내를 성폭행하고… 쇠파이프로 사람 두들겨 패고…
부부 간 성폭력, 의붓남매 간의 키스, 청부살인…. '아내의 유혹' 종영과 함께 잠시 잠잠했던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들이 최근 다시 선정적이고 패륜적인 화면을 쏟아내며 막장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막장 경쟁에 맛을 들인 지상파 방송사들이 결국 시청률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자극적 설정을 도입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더욱 패륜으로 치닫는 가족관계
MBC TV 일일 드라마 '밥줘'가 요즘 가장 뜨는 막장 드라마. '이 여자가 사는 법', '그 여자가 무서워' 등을 통해 비상식적 인물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뤄온 서영명 작가의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지난 3일 방송에서 외도를 한 남편 선우(김성민)가 침실로 가려는 아내 영란(하희라)에게 억지로 입을 맞춘 뒤 욕실로 끌고 가는 장면에 이어 영란이 홀로 욕조에 앉아 무릎을 껴안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우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은 "명백히 부부 간 성폭력을 연상시킨다"며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런 비난에도 막장 설정은 계속됐다. 화가 난 영란이 남편이 자고 있는 서재 문을 못질해 막아버리고 휴대폰을 망가뜨리는 내용(6일), 영란이 별장에서 외간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며 '맞바람'을 피우는 내용(20일)이 잇따라 방송됐다. MBC TV 수목 드라마 '트리플'에서는 9일 방송에서 유부남인 의붓 오빠 활(이정재)에게 동생 하루(민효린)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가 논란을 빚었다.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현정'씨는 "입맞춤 장면을 초등학생인 아들, 딸과 봤는데 민망해서 혼났다"며 " '저 두 사람은 사실은 남남과도 같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에서 활의 절친한 친구 현태(윤계상)는 별거 중인 활의 아내 수인(이하나)에게 적극적으로 애정 고백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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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방송된 MBC TV ‘밥줘’의 한 장면. 외도를 한 남편이 억지로 아내를 끌고 들어가고 있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은 “부부간 성폭행 장면 아니냐?”며 비난을 쏟아냈다.
◆상식을 뛰어넘는 과도한 폭력 묘사
8일 방송을 시작한 SBS TV 수목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는 초반부터 과도한 폭력 장면으로 시청자 눈길 잡기에 나섰다. 15일 방송에서 건달 정우(지성)가 선상 시위를 벌이다 잠이 든 선원들에게 석유를 뿌리는 장면,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납치범들을 쫓아갔다가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흠씬 두들겨 맞는 장면 등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정우가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는데 여자 종업원이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클로즈업돼 전파를 탔다. 16일 방송에서는 정우가 "가격만 맞으면 청부살인도 한다"고 하자, 친구가 "와우 나 당장 계약해야겠다. 끈질기게 안 떨어지는 계집애 하나 있는데 좀 죽여줄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갔다. 동명(同名) 영화를 리메이크한 MBC TV 주말 드라마 '친구'에서는 원작과 비슷한 수준의 폭력 장면과 욕설이 등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이 심의를 의식해 쇠파이프·칼 등의 흉기와 담배, 문신 등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다 보니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까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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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일 방송된 SBS TV ‘태양을 삼켜라’. 이날 방송에서는 납치, 협박에 이어 쇠파이프·야구방망이 등이 난무하는 집단 폭력 장면이 전파를 탔다.
◆'막장'은 계속된다.
올 하반기, 막장 드라마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막장 전문 작가'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하늘이시여' '인어 아가씨')와 문영남 작가('조강지처 클럽')가 비슷한 시기에 각각 KBS와 MBC에서 주말 드라마를 집필할 예정이기 때문.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도 올해 중에 새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SBS는 올해 가장 뜨거운 막장 논란을 빚었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대해 상반기 최우수 작품상을 수여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SBS 드라마국 고위 관계자는 "물론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유혹'이 막장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도 충분히 고려했다"며 "하지만 이 드라마가 방송사측이 광고시장에서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던 죽은 시간대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상을 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강형철 교수는 "경기가 어렵다 보니 방송사들이 일단 시청자들 시선만 붙잡아놓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막장 드라마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시청률 면에서 성공하기만 하면 아무리 황당한 드라마도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