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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호
[저자와 대화] '명랑하라 팜 파탈' 시인 김이듬 | ||||||||||
‘명랑하라 팜 파탈’은 시인의 호소에 해당한다. 명랑하게 살자. 죽지말자. 씩씩하게 살자는 말이다. 이 말은 여성주의자들을 향한 말도, 여성주의자가 되라는 채근도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불합리한 상황에 굴복하고, 주어진 삶을 긍정하라는 말도 아니다. 주류든 비주류든(무엇이 주류이고 비주류인지 알 수 없지만), 익숙한 여성상에서 탈락한 존재든 아니든, 잘났든 못났든, 세상이 살만하다고 여기든 아니든 자기혐오에 빠지거나 원한, 슬픔에 함몰돼 ‘죽음’에 이르지는 말자는 말이다. 어쩌면 시인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다짐일 것이다.
김이듬의 시를 읽다 보면 그녀가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대상에도 아무런 흐느낌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한 가지 모습이 그 사람의 전체 일 수 없고, 어떤 한순간의 느낌이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닐 것이다.
“사랑이 뭐냐고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네요.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질문일 수 있겠지만, 글쎄요. 나는 사랑, 특히 남녀간에 사랑, 그런 게 있다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무엇이라고 말해야 겠어요.”
그러면서 “만약 사랑을 절대불변의 무엇이 아니라 그러한 것에 대한 열망이다고 말해도 좋다면,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확실히 모든 것을 사랑해요. 돌, 소리, 색깔, 말, 몽상, 아이들, 광인, 백치, 부재중인 저 사물, 걸어가는 이사람, 고독한 사람, 아픈 사람….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제가 깔린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이듬의 시는 용감하다. 꼬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섹시하고, 몸이 아니라 몸뚱이를 경쾌하게 놀리고, 감각의 총화로서 몸을 이야기하고, 어쩌면 몸만이 즉각적이고 정직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고통을 이야기하는 데 쾌락을 슬쩍 흘리는 듯한 느낌 말이다. 시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와 닿는 것인지, 시인이 자신의 여성성을 은밀하게 살피는 것인지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시가 도발적이고 용감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여리다. 괄괄한 목소리가 용감한 성격을, 낮은 목소리가 여린 성격을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시적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의 간극은 멀다.
“시의 이미지와 시인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왜 그런지 저도 몰라요. 제 시에 수많은 타자들이 살고 있고 그래서 그들의 음성이 수백갈래로 찢어지는 게 아닐까요."
김이듬은 낮과 밤, 용감한 목소리와 겁먹은 듯한 목소리를 딱 갈라놓고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길이 없다고 했다. '아마 그 둘은 내 안에서 늘 만나고 이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답했다.
김이듬은 자신에게 시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바람은 왜 그렇게 부는지, 눈은 왜 저리 하얗고 솜털 같은지, 새는 어째서 허공을 쪼아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질녘 거리를 걸으면 왜 그토록 쓸쓸해지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늘 질문하며 산다고 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 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게’ - 세이렌의 노래-
김이듬은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에 실린‘세이렌의 노래’가 자신의 시 중 가장 아프다고 했다.
“나는 영원을 노래했는데 사람들은 이 시에서 절망을 읽어요.”해석이야 독자마다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 다른 해석이 시인에게 시작(詩作)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자, 아픔이라는 말이었다.
김이듬은‘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런 시다.
‘(상략)내 수염도 피를 흘리고 충치가 빠졌습니다/ (중략)소문대로 난 일 년의 절반을 지하실과 지상에서 공평하게 떠돕니다/ (중략)누가 봤을까요, 나도 날 못 봤는데/ 그러나 나는 아름다워요.’
“제목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는 이경수 비평가의 문학평론집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에서 빌려왔습니다. 그녀는 그 책에 ‘김이듬론’을 썼는데 그 작품론의 제목이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였어요. ‘푸른 수염’이라는 범상치 않은 동화의 내용과 결부해 내 시를 분석한 것입니다. 시집에 이 시를 넣을 때 깜빡하고 각주처리를 하지 못해 찜찜했었는데 밝혀둡니다. 나는 동화의 결말 이후를 상상하며 이 시를 썼어요. 금기를 깨고 비밀을 간직한 채 반전을 꿈꾸는 여자의 일생은 내 삶과 유사합니다.”
김이듬의 시는 낯설다. 익숙한 질서는 없고 왠지 거칠고 힘차다. 한 평론가는“김이듬이 대학시절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따로 창작 수업을 받은 적이 없고 늘 데모 대열에 끼어 대자보와 문건 작성에만 필력을 쏟았기 때문에 오히려 틀에 박히지 않은, 제멋대로의 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열중했어요. 문건을 작성하고 새벽까지 대자보를 썼습니다. 하루하루 기도를 올리는 심정으로 살았고, 순수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들은 짧았고 그다지 치열하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나는 지금 아주 멀리 와 있습니다. 그 시절의 나를 미화하거나 약간의 부채의식을 빌미로 시대를 왜곡하고 우려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래서 당시를, 현실을 시로 쓰지 못해요. 지금 나는 비천하고 영악하고 교활합니다. 긴 겨울가뭄의 도랑처럼 나는 말라갑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방식으로 이 비루한 세계에 저항하고 있다고 믿어요.”
거친어조, 낯선문법이라는 평가에 대해 그녀는“내 어조가 거친지, 문법이 낯선지 알지 못한다. 그다지 칭찬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평론가는 무슨 뜻으로 ‘낯설고 거친’이라는 용어를 썼을까. 어쨌든 김이듬의 낯설고 거친 화법은 매력적이다. 그녀는 일상에서도‘드물다’고 해도 좋을 것을 ‘많지 않다’,‘모른다’고 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김이듬은=부산 출생. 2001년 『포에지』 등단. 부산대 독문과 및 경상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경상대 국문과 강사. 시집으로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 '별모양의 얼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