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관수의 『단군신화는 천문학이다』 / 환웅, 웅녀 그리고 범의 사랑이야기
전관수의 『단군신화는 천문학이다』,
가. 신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신화를 이야기하면 그리스나 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신화는 흥미진진하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 서사가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양의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신화는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나 출발점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다. 고대에 문자가 없거나 기록이 원활치 못했을 때는 주로 구전에 의존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자라는 세대들에게는 하나의 역사이자 서로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끈이었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단군신화를 비롯한 많은 신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화는 어쩐 일인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의 이야기로 평가절하 되어 외면 받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이러한 평가절하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부정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단군
그런 참에 전관수의 ‘단군신화는 천문학이다’라는 책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단군신화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이 분명하다. 이로 인해 단군신화가 본격적인 우리의 관심 대상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군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화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연관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신화의 존재 이유이며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범과 곰, 마늘과 쑥은 그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나. 신화와 별자리
신화 속에는 별 혹은 별자리가 들어가 있다. ‘계절을 알려주는 밤하늘 별자리의 움직임(하늘의 이야기), 계정을 알려 주는 자연의 변화(땅의 이야기), 특정한 때에 벌어진 일(사람의 이야기)’라는 세 개의 톱니바퀴가 하나가 되어 움직여가는 것이 바로 신화의 원리인 셈이다.
“오늘날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 달나라에 가지만, 고대인들은 신화를 만들어 이미 달나라에 갔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망원경 속을 들여다보면서 우주의 끝에 있는 별들을 별자리로 묶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 가지 않았지만 그곳에 간 것이고 그곳에 살지 않았지만 그곳에 산 것이다.”(22쪽)
신화는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함께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인간들의 꿈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우주의 알레고리일 수밖에 없다. 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조화 속에 신화를 바라보는 연구분야를 천문신화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책은 천문학적 방법 –혹은 천문신화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단군신화를 해석하였다. 단군신화를 천문학적으로 읽어낸다는 것은 단군신하 속에서 별 혹은 별자리드의 움직임을 찾아낸다는 것과 같다. 전 세계 대부분의 신화에는 별이나 별자리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다. 단군신화 다시 읽기
단군신화는 중국 길림성의 고분들에 그림으로 남아있다. 단군신화의 대부분의 요지는 ‘고기(古記)’라는 문헌의 기록을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고기에 기록된 단군신화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범으로 이루어져 있는 토템문화는 신석기 문화의 흔적이고, 환웅처럼 중요한 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우리의 건국신하에서 자주 보이는 선민의식으로 국가가 형성되는 청동기문화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곰에서 웅녀로 변했고, 그의 짝이 되기 위해 환웅이 ‘잠깐 변했다’는 말에서 수렵, 어로, 채집의 생활은 환웅의 등장에 의해서 ‘웅녀-홍웅-신단수‘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생활로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쑥과 마늘을 통해서 기자 집단의 유입을 설명하고 있다. 쑥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이고 마늘은 외래종이다. 이 둘이 서로 어울려 지냈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쑥홰와 마늘 다발은 핼리 혜성을 상징한다고 읽기도 한다 .
라. 곰의 동굴생활의 신화적 의미
단군신화는 곰, 범, 환웅, 신단수 등이 핵심 용어들이다.
고대천문학적으로 신단수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실로 곰과 범의 천문학적 정체를 규명해 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적용해 보면 곰과 범은 처음의 짝으로 부부였지만, 곰이 범은 웅녀로 변하고 나서 환웅과 결혼하고 단군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를 해모수와 유화의 주몽신화에 대입해 보면, 곰과 웅녀는 달, 달의 신, 시조모신이고, 범과 환웅은 해, 해의 신, 시조신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해와 달은 만물을 낳고 기르고 열매 맺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은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을 설명하는 신화적 공식이다.
따라서 곰과 범이 동굴생활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말해준다. 즉 낮에는 사냥, 어로, 채취를 하러 다니고 밤이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쉬었음을 의미한다. 즉, 달과 해의 운행에 따라서 밤이 되고 낮이 되는 자연현상에 대한 신화적 설명방식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범이 간략화한 것은,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서 웅녀와 혼인하는 것은 바로 ‘곰과 범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들이 차지하고 있던 평양성(아사달) 지역을 환궁이 차지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범이 제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 이주 집단과 기자
기자는 역사 속의 특정 인물이 아니라 상나라가 멸망하면서 동쪽으로 이주하게 된 이주지단들을 대표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이주 집단들이 고조선 사횡에 정착하면서 기존의 집단들과 함께 만들어낸 것이 단군신화로 봐야 한다.
기자는 좀 더 포괄적으로 ‘곰-범-신단수’로 이루어진 기존의 천문학적 체계보다 발달된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천문학적 체계’를 가지고 고조선으로 들어와 고조선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상나라 유민들로 이루어진 이주 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농경문화 흔적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바람을 다스리는 풍백, 비를 다스리는 우사, 구름을 다스리는 운사를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신들은 농사철에 필요한 바람, 비, 구름으로 이루어졌으며 농경과 함께 각광받는 신임이 분명하다.
또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환인은 환웅에게 곡식, 수명, 질병, 형병, 선악을 맡기고, 무릇 인간살이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서 다스리고 교화토록 했다. 이 가운데 곡식이라는 말은 당연히 농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말이다.
바. 곰과 환웅의 사랑 이야기의 의미
단군신화 가운데 곰과 환웅의 이야기는 “환웅은 잠깐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고 아들을 가져서 낳으니 이름이 단군왕검이라고 했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낸 첫날밤은 어디였을까 하는 세속적인 궁금증이 생긴다.
물론 신화에서는 환웅과 웅녀가 동굴로 들어가는 것으로 남과 낮이 되는 것을 표현했지만 문명의 발달에 따라 새롭게 움집을 거초로 삼는 시절에는 해와 달이 움집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러한 움집이 단군신화에서 빠진 것은 기수를 중심으로 하는 천문학 체계를 가지고 있는 기자 집단에 의해서 단군신화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움집이라는 과거의 별자기는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미 지상가옥을 짓기 시작한 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인들은 새해 첫날을 정할 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밤하늘이나 자연환경 등의 영향을 받았다. 고조선 사람들은 기수 혹은 ’기수와 남두육성‘이 합쳐진 별로 이루어진 움집이라는 별자리’가 나타날 때는 대략 양력으로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 무렵이다.
이때가 바로 ‘더운 계절의 끝점’이면서 ‘차가운 계절’의 출발점이다. 단군신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역시 추수가 끝난 것을 제의로 축하하면서 겨울나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서둘러 움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행사를 거행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때가 ‘새해의 첫날’이 되는 것이다.
사. 신령한 쑥과 마늘
곰과 범은 동굴 속에서 함께 지내면서 먹던 것이 정확히 “신령한 쑥홰 한 다발”과 “마늘 스무 포기”였다. 쑥홰는 쑥을 뜯어다 말려서 다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쑥댓불은 쑥홰에 불을 붙인 것을 가리킨다. 불을 붙이면 담뱃불처럼 불빛을 달고 오래 탄다.
마늘 포기 그림은 핼리 혜성과 닮아있다. 환웅이 곰과 범에게 건네준 쑥과 마늘은 단순히 지상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쑥홰이고 마늘 포기이다. 그리고 쑥홰와 마늘 포기는 바로 기원전 980년에 조고선 하늘에 출현했다고 사라진 핼리 혜성이다.
원래 살고 있던 고조선 인들과 새롭게 이주한 기자 집단은 이 특별한 하늘의 신비를 특별히 기억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이 맞이할 새로운 시대의 발판으로 삼기 위하여 자신들의 신화 속에 담아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환웅을 기자와 등치시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쑥은 우리나라 지천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이고, 마늘은 외부로부터 전래된 식물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단군신화를 만들 때 새로 외부로부터 도래한 기자 집단과 기존의 집단들은 각자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자신들의 흔적을 마치 토기의 무늬처럼 신화의 한 구석에 새겨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에 더욱 와 닿기 때문이다.
단군신화에 대한 얼개를 이렇게 차근히 들추어본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다만 별자리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중서라면 그런 부분을 우리에게 보다 친근한 말들로 순화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는데는 별 저항이 없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할 것 같다. 이런 연구서가 연구서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기왕에 대중서로 세상에 나왔기에 하는 말이다.
어떻든 이 책은 단군신화는 단군의 이야기를 넘어 고조선 의 출발을 은유적으로 품은 구전 역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