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곧추세운 해룡,바다 박차고 승천하는 듯
거대한 기암으로 절경 이룬 연대봉은 중국 삼청산과 흡사
가덕도(加德島)의 봄은 연대산(煙臺山) 등산로에 돋아난 잡초의 연푸른 새싹으로부터 오는가 보다. 마른 풀숲 사이로 돋아난 어린 새싹이 가덕도에 봄이 옴을 알리고 있다. 마른풀은 수많은 발길에 밟혀 으스러지면서도 봄을 맞이한다. 잡초의 얄궂은 운명에서 내 삶의 봄날을 생각해 본다.
가덕도의 봄은 연대봉 깎아지른 단애에도 찾아와 있었다. 거기 매달린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모진 눈보라, 해풍(海風) 속에서 동지섣달 긴긴 밤을 바위 틈에서 지새우다 춘삼월 훈풍에 연분홍 여린 꽃잎을 피워 봄을 알리고 있다.
가덕도는 서ㆍ북쪽에서 바라보면 유순한 육산이지만 남동쪽 해안선은 가파른 해식애로 천길 낭떠러지다. 어느 곳은 절벽의 높이가 100m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거룡(巨龍)의 잔등 같은 바다로 이어진 암릉은 머리를 곧추세운 해룡(海龍)이 검푸른 바다를 박차고 포효하며 승천(昇天)이라도 하는 듯 기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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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편에서 바라본 연대봉의 위용.
섬산으론 높은 편인 300~400m급 봉우리 즐비
가덕도는 섬 전체가 산으로 이뤄졌다. 주산인 연대산(459.4m)을 비롯해 웅주봉(339m), 응봉산(314m), 매봉(359m), 삼박봉(310.9m) 등 300m가 넘는 봉우리만 해도 다섯 개나 되며 그 외에도 강금봉, 두 개의 국수봉, 구곡산, 갈마봉, 성토봉 등 여러 봉우리가 솟아 있다.
부산의 영도가 뭍처럼 변했듯 가덕도 또한 거가대교가 완공되고 부산항 규모보다 크다는 신항만 공사가 끝나면 뭍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 전에 섬산행의 낭만을 느끼고자 서둘러 가덕도를 찾았다.
이른 아침 부산 녹산항에 도착했다. 임시 여객터미널로 사용하고 있는 녹산항은 왠지 어수선하고 가덕도 안내 팸플릿 하나 없다. 여러 가지 안내장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려 노력하는 다른 섬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진영호를 타고 가덕도 선창항에 도착하니 텁수룩하고 나이 지긋한 사람이, “연대봉 등산할 사람들은 저기 앞 차를 타이소”하며 두 대의 미니버스 중 앞쪽에 대기한 차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버스는 뱃시간에 맞춰 한 시간에 한 번밖에 없다. 입추의 여지도 없이 많은 사람을 태운 버스는 털털대는 해안가 도로를 따라 선창항의 반대쪽인 천성항으로 이동했다. 선창과 천성 간은 15km로 약 30분이 소요된다.
버스 종점인 천성에 도착, 준비해간 지도를 꺼내 ‘천성~연대봉~매봉~누릉령~응봉산~생교마을(약 5시간)’로 계획을 세우고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 옆 돌담길을 지나 거대한 거가대교 접속도로 공사현장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비탈진 뙈기밭에는 이제 막 유채꽃이 꽃대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등산로 초입부터 이곳저곳에 ‘소나무 공동무덤’이 즐비했다. 재선충으로 인한 소나무 절단목을 청색 비닐로 덮어 놓았다. 모든 생명은 유한한 것이지만 이런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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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봉수대의 웅위로운 기암봉.
좁고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20여 분을 오르니 대항에서 세바지로 넘어가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마주쳤다. 산불감시초소와 천가동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입산신고서에 서명하고 완만하고 널따란 황토길로 접어드니 산책 나온 기분이었다. 산속의 표시 리본은 때론 요긴한 길잡이가 되지만 저렇게 철조망에 수없이 매달아 놓은 표시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연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평상복을 입고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도 보이고 아빠 손을 잡고 따라 오르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이런 곳으로 그림산행을 왔나 하는 생각에 약간 실망하며 그림 소재가 궁핍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연대봉에 올라 응봉산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불안감은 감탄사로 변했다.
산불경방기간이라 다른 코스는 통제하고 천성에서 연대봉으로 오르는 가족단위 등산로만 개방해 놓았다. 그래서 선창에서는 산행을 못하게 했나 보다.
검정 염소 몇 마리가 한가롭게 돌아다니며 새싹의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을 지나 큰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풍수지리학을 전공했다는 강달형씨는 쌍봉 묘 뒤에 쭈그리고 앉아 건너편을 바라보더니 “이곳이 명당인데” 라고 말하며 풍수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에서 봄바람에 실려온 솔향에 취하다 숲을 빠져나오니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봄날의 연가를 노래한다. 그 너머로 연대봉의 봉수대가 고고한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따라 나선 손녀는 고사리 손으로 땀을 훔쳤다.
중국 삼청산 빼닮은 연대봉 기암
가파른 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물개바위가 망부석처럼 국수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항 국수봉 자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등대가 있다. 외항포에는 매년 봄이 되면 숭어떼가 몰려와 160여 년 전통의 재래식 숭어 어로법인 ‘숭어들이’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숭어는 봄이 제철로 육질이 부드럽고 향긋한 단맛이 일품이라 예로부터 수라상에 진상된 가덕도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물개바위에 올라 멀리 거가대교 공사현장을 내려다봤다. 산을 오르며 마주친 공사현장은 온 섬을 모두 파 뒤집어 놓은 듯했는데 이곳에 올라 바라보니 어릴 적 소꿉장난처럼 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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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개바위에서 바라본 국수봉.
연대산 정상에 올랐다. 오석으로 된 정상표지석과 ‘자양곡 산불초소 1.6km, 대항 새바지 1.0km, 어음포 산불초소 1.1km’를 표시한 삼거리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기암봉으로 이뤄진 연대봉(옛 봉수대) 암봉 아래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해 장관을 이뤘다. 몸집 큰 까마귀는 경계비행을 하듯 하늘을 맴돌았다.
연대봉 꼭대기에는 돌탑이 있다. “저곳에 스님이 1년에 두 번씩 올라 기도를 올리고 돌아가지요”하고 가덕도 토박이 산불감시원인 이봉익(58)씨가 말했다. 그는 또 “연대봉은 옛 봉수대인 이 봉우리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말하는 연대봉은 연대산이라고 해야 맞다”고 했다.
또한 연대봉(옛 봉수대 암봉) 정상에는 약간 넓은 공터가 있고, 옛날에 봉수대를 관리하던 관리인들도 오르내리기 힘들어 한 번 오를 때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올라가 며칠씩 지냈단다. 지금도 땅을 파면 그때 먹었던 홍합 껍질들이 나온다고 했다. 다만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암봉이라서 일반인들은 위험해 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연대산 정상에 ‘煙臺峰’이라 표기된 표지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세운 지 16년 되었다는 원통형 봉수대를 돌아 내려서는데 ‘녹산 농심 둥지회(회장 전우중)’에서 연대산 쓰레기 줍기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양로원, 요양원들을 찾아 정기적인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고 했다.
고목이 된 소사나무를 지나 응봉산으로 내려서는데 낙엽이 많이 쌓이고 가팔라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권오섭(미래기획 대표)씨는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과 멋스런 경관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키 큰 소나무가 있는 조망처에서 연대봉을 바라봤다. 지금껏 연대봉을 오르며 바라보았던 육산은 간 곳이 없고 거대한 기암절경으로 이뤄진 연대봉은 마치 중국의 삼청산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섬산에서도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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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대산 정상의 봉수대.
응봉산 정상은 기암, 동편은 천길 낭떠러지
기경을 뒤로 하고 조금 내려서다 앞을 쳐다보니 비스듬히 누운 응봉산 암봉은 쪽빛 바다 위에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처럼 고혹적이다. 길 옆에는 보랏빛 현호색 꽃잎과 하얀 바람꽃이 어우러져 봄날의 왈츠를 춤추고, 여기에 노랑제비꽃과 양지꽃, 산수유꽃을 닮은 생강나무 노란 꽃과 연분홍 진달래까지 합세해 천상세계를 느끼게 했다.
한가로운 산길을 여유롭게 걷다 보니 어음포 산불감시초소가 나왔다. 넓은 공간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매봉과 응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산불경방기간 중이라 통제한다. 등산로를 아예 어망으로 막아 놓았다. 가덕도를 소개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더니 산불감시원 서민수(58)씨가 일행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입산 신고서에 성명과 주소를 기재하고 겨우 허락을 받고 통과했다.
사람의 통행이 없으니 참으로 한가롭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매봉 정상을 내려서니 옛적에는 사람이 살았을 법한 넓은 공터에 도화꽃이 만발했다. 바로 옆에 산벚꽃도 만개했다. 외부의 모든 곳과 단절되고 오가는 이도 없으니 섬 속의 무릉도원이다. 코끼리 허벅지를 닮은 300년도 넘어 보이는 늙은 해송이 말없이 서서 떨어지는 도화 꽃잎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응봉산으로 오르는데 잡목의 가시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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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봉산에서 바라본 엄지손가락을 닮은 연대봉.
강달형씨는 계속 기(氣) 찾는 포즈를 취하며 걷고 있었다. 응봉산이 가깝다. 너럭바위에서 땀을 식히며 푸른 봄 바다에 희망을 띄워봤다. 어선 한 척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쾌속으로 달렸다. 제트 비행기가 푸른 하늘에 하얀 선을 긋듯.
누릉령에 도착하니 오거리가 된다.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응봉산으로 올랐다. 곳곳에 재선충으로 인해 절단된 소나무가 안타까워 보였다.
지그재그 가파른 길을 지나 암봉을 붙잡고 혼신을 다해 오르니 응봉산(鷹峰山) 정상이다. 시원스런 조망에 가슴 후련함을 느꼈다. 멀리 다대포 몰운대와 부산의 산들, 취서산, 신어산 그리고 불모산, 무학산 등 진해·마산 일대의 조망까지 멋지다. 응봉산 정상은 기암으로 이뤄졌으며 동편은 천길 낭떠러지다. 산자락 끝 바닷가에 기도원이 있었다. 강 선생은 이곳 응봉산은 약사신이 상주하고 있으며 엄청난 기가 서려 있어 아픈 사람이 찾아와 기도하면 틀림없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응봉산에서 바라본 연대봉은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듯한 묘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매가 살았다는 정상 암봉에 매는 없고 덩치 큰 까마귀만 까악 까악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맴돌았다.
괴송과 진달래가 어우러진 매봉산 정상은 그 자체가 신(神)이 그린 선화(仙畵) 한 폭을 보는 듯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 한 가지씩 소원을 빌고 동선동 생교마을로 내려섰다. 여객선을 기다리며 선창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을 따르니 응봉산이 그 속에 있었다.
월간산 / 그림·글 곽원주 cafe.daum.net/ksejung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