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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4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 - 1. 서운하고 섭섭합니다!
본문 : 마태복음 25장 18절(14~30절)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새번역>
옛날에 돈이 정말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많은 종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먼 길을 떠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집에 있는 많은 종들 중에 3명을 불렀습니다. 평소에 눈 여겨 보던 종들이었습니다. 종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부자는 그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 종은 너무도 놀랐을 것입니다. 새번역 각주에 달린 대로 한 달란트가 노동자의 15년 품삯이라고 한다면 무려 75년 치의 품삯을 자신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종을 불러서 두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다섯 달란트에 비하면 적은 액수였지만 그래도 무려 30년 치의 품삯을 자신에게 맡긴 것이었기에 두 번째 종도 상당히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명의 차례입니다. 부자는 아직은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맡길 능력은 되지 않았기에 그 종에게는 한 달란트만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 치의 품삯이라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곧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언제 돌아올 것이라는 기약이 없습니다. 아마 정해 놓은 여행이 아닌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떠난 일이기에 언제 돌아올 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함께 나눈 본문의 배경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이 3명의 종은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것도 주인에게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기분 또한 너무도 좋았을 것입니다. 다른 종들이 바라볼 때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만약에 이 종들이었다면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주인이 이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라고, 이윤을 남겨야 한다고, 어떤 분명한 기준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금 자신들의 손에는 엄청난 돈이 들려 있습니다. 주인은 언제 돌아올지 모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가만하여 여러분은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일단, 이 돈으로 편안하게 쉬면서 천천히 고민해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가장 적게 받은 종도 무려 15년 치의 품삯입니다. 매일의 품삯만큼의 돈을 펑펑 쓰면서 1년을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어도 14년 치가 남는 돈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아마 이대로 먼 곳으로 도망치더라도 아무도 그를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어딜 가든 대접 받을 만 한 돈을 가졌기에 만약 도망치더라도 어디서든 정착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조금의 쉼과 고민도 없이 이렇게 기록을 이어갑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태복음 25장 16절, 새번역>
가장 많은 돈을 받았기에 가장 안일하게 행동해도 괜찮았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장사’를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맡긴 돈을, 마치 자신의 능력 테스트라고 생각한 듯, 다섯 달란트를 활용하여 놀랍게도 다섯 달란트를 벌게 됩니다. 아무리 큰 돈을 밑천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장사가 쉽겠습니까? 이윤을 남기기가 쉬웠겠습니까?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정말로 주인이 본 능력대로, 그 능력을 잘 발휘한 것입니다.
그러자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자극을 받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이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결과까지 동일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태복음 25장 16절, 새번역>
이쯤 되면 주인의 안목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두 종은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먼 길을 떠나며 이 종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고, 현재까지 두 명의 종은 그 기회를 잘 살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최대의 기회를 놓치고 않고, 최선을 다하여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자연스럽게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로 시선이 향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사람에게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마태복음 25장 18절, 새번역>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자였던 주인이 집에 금고가 없어서 자신에게 돈을 맡겼겠습니까?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땅에 숨기게 됩니다. 분명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능력을 인정받았던 종들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분명 주인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니 앞의 두 종을 보아 틀리지 않았기에, 이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충분히 한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곧바로 땅을 팝니다. 돈을 묻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을 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아무 일도 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동안 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한 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마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을 보며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왜 저렇게 큰 돈으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고 비아냥 거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도착해서 3명의 종들을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집주인이 종들에게 재산을 맡긴 이유가 등장합니다. 분명히 주인은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의 테스트였던 것입니다.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마태복음 25장 19절, 새번역>
분명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면서, 그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 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종들에게 기회를 줘서 그 능력을 한 번 마음껏 펼쳐 보기를 바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입장에서 이 정도 달란트를 3명에게 나누어 줄 정도면 보통 부자가 아닐 것이기에 만약 셈을 하다가 돈이 줄어들었거나 장사에 실패하여 다 썼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소한 몇 십 달란트나 몇 백 달란트가 주인에게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8달란트나 나누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튼 그렇게 부자인 주인은 종들과 셈을 시작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마태복음 25장 20절, 새번역>
저는 이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의 표정이 너무 상상이 갑니다. 현장에서 그 표정을 직접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위풍당당’ 했을까요?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 있는 주인의 마음 또한 행복했을 것입니다. 믿어 준만큼 믿음에 보답한 그 종에게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태복음 25장 21절, 새번역>
종의 입장에서 주인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과 인정이 무엇이겠습니까? ‘착하고 신실하다’라는 평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싱글벙글 웃으며 주인 앞에 나왔을 것입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25장 23절, 새번역>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이런 셈을 해 주니 주인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동일한 말을 해 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말을 해 주었다는 것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크게 두 가지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라는 능력에 따른 금액의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금액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인이 시킨 그대로 행동했던 착하고 신실한 종들이라는 같은 결과입니다. 받은 금액에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동일하게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많이 남겼다고 더 좋은 자리를, 더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21절과 23절은 토시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한 달란트 받은 이의 결과도 동일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둘째는, 집 주인의 입장에서 다섯 달란트를 맡긴 것도, 두 달란트를 맡긴 것도, 한 달란트를 맡긴 것도 결국은 앞으로 더 큰 일을 맡기기 위한 적은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집 주인의 입장에서 여덟 달란트 정도를 쓰는 일은 아주 적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섯, 둘, 하나 집 주인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적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배려해 준 것 뿐입니다. 이 적은 일을 통하여 앞으로 많은 일을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테스트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종의 차례입니다. 이미 주인의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집 안 분위기도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동일한 일이 이어지길 바랬을 것입니다. 아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인의 안목이 딱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인정받은 특별한 3명이었기에, 당연히 결과도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찬물을 쏟아 부은 듯 냉랭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마태복음 25장 24~25절, 새번역>
어려운 말처럼 느껴지십니까? 공동 번역으로 조금 더 쉬운 말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25장 24~25절, 공동번역>
그래도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메시지 성경으로 한 번 보겠습니다.
‘주인님, 제가 알기로 당신은 기준이 높고 경거망동을 싫어하며 최선을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서, 숨겨 두기 적당한 곳을 찾아 돈을 잘 보관했습니다. 여기, 일 원 한 푼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왔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4~25절, 메시지성경>
방금 전까지 축제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 앞에서, 대부분이 주인에게 속한 사람들 앞에서, 주인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 돈을 자신에게 맡기면서 자신을 테스트한 것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상하리만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저, ‘두려워 숨겨 두었다.’ 라고만 말하면 되는데, 주인에 대한 평가가 너무도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이상함은 저만이 감지한 게 아닙니다. 주인도 바로 눈치를 챘습니다. 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지 주인의 답을 한 번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26~27절, 새번역>
동일하게 공동번역으로도 좀 더 쉬운 단어들의 답변을 한 번 보여 드립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면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25장 26~27절, 새번역>
메시지성경은 더욱 더 적나라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격노했다. ‘그것은 비참하게 사는 길이다! 그렇게 조심조심 살다니 한심하다! 내가 최선을 요구하는 줄 안다면서, 어째서 너는 최소한에도 못 미치는 행동을 했느냐? 적어도 그 돈을 은행에라도 맡겼더라면, 내가 약간의 이자라도 받았을 게 아니냐. <마태복음 25장 26~27절, 메시지성경>
그리곤 주인은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게 됩니다. 주인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그 종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 종들과 같은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인 것은 도대체 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런 행동과 말을 했을까요? 분명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주인의 눈에 들어 돈을 받은 자라면 평소 행실이 달랐기 때문이고,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요? 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하시면서 이런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왜 이런 사람을 등장시키셨을까요?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을까요? 누구를 향해 이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비유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래서 이 많은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 비유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안에 꿈틀대고 있는 불편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능력도 있고, 주인의 인정도 받은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주인에게 표현하는 것은 한 가지 마음뿐일 것입니다. 주인이 무서워서 그랬다기보다, 주인에게 섭섭하고 서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오해한 첫 단추가 바로 자신은 다섯 달란트 이상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부른 3명 중에 가장 적게 받은 것에 대한 섭섭함과 서운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는 것입니다. 무시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인에 대해서 폭로하듯, 자신의 섭섭함과 서운함을 쏟아낸 것입니다. 무시당한 자신의 자존심을 사람들 앞에서 주인을 무시함으로 갚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님, 섭섭합니다. 저를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저도 어쩔 수 없네요. 그냥 땅에 묻어 놓고 모른척하는 수밖에! 내 능력을 몰라준 당신에게 서운해서라도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주셨어야지, 이렇게 불러 놓고 꼴찌로 사람을 평가하시다니 너무 서운하고 섭섭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나 하나님께 했던 적은 없으십니까?
“장로님, 섭섭합니다. 저를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저도 어쩔 수 없네요. 그냥 모른척하면서 사는 수밖에! 제 능력을 몰라준 장로님께 서운해서라도 저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저를 알아봐 주셨어야죠. 제가 얼마나 잘하는지 아시잖아요. 그럼 인정해 주셔야지 이렇게 대접하시면 저 서운하고 섭섭합니다. 장로님 진짜 무서운 사람이시네요.”
“하나님, 섭섭합니다. 저를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저도 어쩔 수 없네요. 그냥 모른척하면서 사는 수밖에! 내 능력을 몰라준 당신에게 서운해서라도 저는 말씀읽기도, 찬양도, 기도도, 감사도, 예배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겠습니다. 더 많이 주셨어야죠.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죠. 잘 되게 해주셔야죠. 제 기도를 들어주셔야죠. 이렇게 불러 놓고 제 뜻대로 해주시지 않으니 너무 서운하고 섭섭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무서운 하나님입니다.”
많은 종들 중에 3명에 뽑혔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3명 중에서 꼴찌라는 것에 서운함과 섭섭함을 느끼는 모습!
내 능력에 맞게 배려해 준 주인의 마음도 모른 채 나의 능력이 과소평가 당했다는 서운함과 섭섭함!
너무도 많은 것을 주셨는데, 내가 원하는 그 한 개를 안 주실 때 그 서운함과 섭섭함!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에 감격하면서도, 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찾아오는 그 서운함과 섭섭함!
비교 의식으로 인해,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람을 의식함으로 인해 찾아오는 그 서운함과 섭섭함!
오늘 우리의 ‘감사’를 막는 가장 큰 적이며, ‘은혜’가 은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저주로 보이도록 현혹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을 자꾸 들여다보라며 부추기는, 그 서운함과 섭섭함! 우리는 모두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 약점을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기에, 우리의 이런 약점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비유를 통해 그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분이십니다. 진짜 하나님이 그런 약점을 가진 우리 모두를 바깥 어두운데 쫓아내려고 이 비유를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을 비유로 들려주시며, 우리에게, 서운함과 섭섭함으로 무장한 우리에게, 찬찬히 주신 은혜를 살펴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통하여, 먼저 나의 서운함과 섭섭함을 풀어주시고, 그 서운함과 섭섭함을 가진 이들의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설명해 줄 수 있는 우리의 강점으로 만들어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이 자리에게 계신 모든 분들의 강점이 되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지금 잠잠히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합니다.
첫째, 나는 너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지명한 것이란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이사야 43장 1절, 새번역>
둘째, 나는 너의 능력을 배려해서 일을 맡긴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A, 새번역>
셋째, 나는 너를 시험(테스트)해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단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새번역>
넷째, 나는 너에게 더 큰 일을 맡기고 싶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2절A, 새번역>
다섯째, 결국 나는 너와 함께 영원토록 기쁨을 누리고 싶단다.
주님께 속량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입니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사야 51장 11절, 새번역>
이것이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서운함과 섭섭함에 가려져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오해로 인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에 우리를 기다리는 곳 바깥 어두운 데이며 책망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서운함과 섭섬함이란 약점을 가진 이들에게 오히려 그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 시켜 주시면서, 아무도 그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셔서 지명하신 하나님!
나의 능력을 배려하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맡기신 하나님!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
나에게 더 큰 일을 맡기고 싶은 하나님!
나와 함께 영원한 기쁨을 나누고 싶은 하나님!
분명하게 하셔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한 달란트든 그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이 하나님의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8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모든 예배자 여러분, 동역자 여러분들! 서운함과 섭섭함이란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의 서운함과 섭섭함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펼쳐지는 8월엔 모두가 이 축복의 음성을 들으시길 소망합니다!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태복음 25장 21절, 23절>
결단 찬양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 돌아서지 않으리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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