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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세기 무렵부터 BC 4세기에 걸쳐 그리스에서 활약한 지식인들의 호칭. 아테네를 중심으로 당시의 그리스 전역을 편력하면서 변론술과 입신출세에 필요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가르쳐, 많은 보수를 받았다. 아브데라의 프로타고라스, 레온티니의 고르기아스, 엘리스의 히피아스, 케오스의 프로디쿠스 등이 유명하다. 소피스트란 원래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거의가 지방출신 학자들로, 각기 자부하는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어 개인이나 국가에서 돈을 받고 그것을 제공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장 중요한 과목은 변론술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신(一身)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선(善)을 도모하고, 언론이나 행위에서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청년들에게 가르친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가르친 것은, 개인이나 국가에 대해 선이란 이런 것이라는 지혜가 아니라, 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하는 기술만을 가진 데 불과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힌 것이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다. 이후 ‘소피스트’란 말은 ‘궤변을 일삼는 무리’를 의미하게 되었고, 궤변학파라고도 불리었다.
소피스트(Sophist)란 누구인가?서양에서의 철학의 기원은 기원전 6세기 밀레투스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이오니아 학파 로 불리워지는 이들 초기 자연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관한것이 었다. 하지만 이들 이오니아 학파의 관심사는 자연이었고 철학의 관심사가 인간의 세계로 전환된 것은 기원전 5 세기에 나타난 소피스트에 의해서였다.
1. 그리스 철학의 성립
만물의 원리와 원인을 추구했던 최초의 철학자들이 탄생한 곳은 이오니아 식민지의 밀레토스이다. 식민지에 나 온 사람들은 타향살이에서 전통적인 풍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 닦은 생활 기반에서 오는 여유에 의해 모든 편 견에서 벗어나 자연에 대해 활기 있는 질문을 하였다. 만물이 그것으로 이루어지고 최초로 그것에서 생성되고, 또 마침내 그것에서 소멸되는 것, 실체는 변하지 않고 모습만 변하는 것, 그런 근원이 무엇인지를 추구하였다. 이오 니아 학파에 속했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각각 그것을 <물> <무한한 것> <공기>라고 하였다. 이들의 탐구 방식은 자연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설명이었다. 한편, 이오니아 지방에서 태어나 남이탈리아로 이민 한 사상가들이 있다.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가 그들이다. 영혼의 불멸을 믿고 하느님과의 합일을 희구하는 남 이탈리아의 종교적 분위기에서, 그들은 이오니아 사람들의 경험적 태도와는 달리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자세를 취 하였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라고 하면서도 철학하는 목적을 영혼의 정화에 두고 종교 교단을 창설하였으며, 크세노파네스는 그리스 대중이 신봉하는 의인적인 신화를 비판하면서도 전체로서 보고 듣고 생각하 는 인격적인 유일신을 소개하였다. 이탈리아 학파라고 불리는 이들의 철학적 유산에 의해 그리스 철학은 감각에 의해 알 수 있는 것과 정신에 의해 알 수 있는 세계로 구분하였다. 엘레아 출신의 파르메니데스는 정신의 활동이 감각의 활동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말하여 훌륭하다는 것을 말하여 플라톤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실 제는 부동.불변의 <있음>이라고 보았던 파르메니데스에 맞서 '만물은 유전(遺傳)한다'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에 페소 출신으로 이오니아의 흐름을 받았다. 한편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부정한 데서 초기의 자연철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사물의 홉합과 분리라는 방향으로 추구하여 다원론(多元論)이 대두되었다. 여기에 엠페도클레스의 , 아낙사 고라스의 <씨앗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原子)>가 나온다. 여기에도 이탈리아와 이오니아의 흐름의 특 질이 있어, 엠페도클레스는 시칠리아 출신으로 혼의 정화를 외쳤고, 아낙사고라스는 클라조메네 출신으로 이오니아 의 과학 정신을 이어받아 태양은 신이 아니고 불붙은 돌덩이라고 외쳐서 화를 입었으며, 데모크리토스는 압데라 출신으로 이오니아의 흐름을 따라 기하학적으로 분할할 수 있으나, 물질적으로 더 분할할 수 없는 원자를 말하였 다.
2.소피스트의 활동
소피스트(Sophist)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소피스트 자신들이 이 말을 자신들을 자랑하 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B.C. 5세기 후반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아테네 민주정치는 시민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시민들은 정치를 하기 위해 온갖 교양과 지식을 습득해야 했고 소피스트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사례금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고그기아스 (Gorgis), 히피아스(Hipias), 프로디코스(Prodikos),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등이다. 이들은 주로 당시 민주 정치의 요구에 따라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졌던 변론술이나 웅변술, 수사학 등을 젊은 청 년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자기들은 훌륭한 태도, 사회적 성공의 기술, 웅변에 의해서 집회를 좌우하 는 방법, 정치적 출세를 위한 술책 등을 가르칠 수 있다고 호언 장담하였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들을 "부유하고 뛰어난 젊은 사람들을 돈을 받고 낚는 사냥꾼"이라고 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피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동은 그리스 철학의 발전에 있어서 중 요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적 관심과 탐구의 대상을 우주와 자연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초월 적인 것으로부터 현실적인 것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문법과 수사학, 웅변술, 시학(詩學),교유과 정치학 등이었다.
3. 소피스트의 사상
그들은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우주안에 살고 있는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들은 예의바르고, 세련되고, 세계주의적이었으며, 번영을 사랑학, 잘 사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소피스트라는 이름 이 오늘날에 와서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는 위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피스트를 비 판한 말과 동인한 의미로 쓰인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소피스트 중에서 대표적인 프로타고라스는 예로부터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각 개 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사물과 현상을 평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즉 그 사물과 현상이 나에게 감각되고 경험되는 것과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 즉 각 개인의 감각적 경험과 유용성에 의하 여 사물과 현상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실 판단은 각 개인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 람이 인정하는 절대적,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윤리,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正義)라는 것은 강한 자의 이익을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공동체 안에서 정의로 통하는 것이란, 자기에게 복종 하는 약한 대중에게 자기의 기호나 취미를 강요하는 가장 강한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도덕 법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힘이 곧 도덕이 되는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변론하는 재능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진리의 문제나 윤리, 도덕의 문제에 관하여는 절대적, 보편적, 객관적인 것이 없다고 하는 회의적인 분위기를 일으켰는데, 이는 비 판 정신을 자아내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회의하고, 부정하고, 개인 의 편리에 따라 살아가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회의론을 주장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그리스의 자연 철학이 우주와 자연을 주제로 삼은 대하여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주제는 모두 인간 이었다.
그러나 소피스트가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인간과 진리를 철학적 대상으로 삼은 데 비하여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소피스트들에 대한 대항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변론술과 수사학을 가르쳤던 사람들로서,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는 절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감각적 경험이나 개인의 유용성에 따라 모든 가치를 판단하였고, 보편적 진리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소피스트들의 생각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라는 말에 잘 나타나는데, 이 말은 인간의 감각적 경험과그 유용성이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므로 절대적인 진리나 행위의 기준은 없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보편적 이성에 활동에 의해 보편적·절대적으로 실재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진리 판단의 기준은 시대나 사회, 경우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절대주의적 진리관을 갖고 있었다.
소피스트(Sophist-sophia(지혜) -賢者, 知者, 궤변론자)
소피스트란 본래 지자 혹은 학자를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그 후 궤변론자라는 비난적인의미로 쓰인다. 그것은 그들의 태도가 학자로서의 성실함을 버리고 궨변을 논함으로써 상대방을 논파하는 교양이나 변론술을 보수로 받고 가르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면에 있어서 경험주의적 입장으로부터 인간지식의 심리학적 연구에 종사함과 기성의 관습과 율법 또는 도덕에 대한 비판적인 자유사상이기도 하였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1~411.B.C): 감각적인 지식을 중시하고 인간의 지식을 모두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것이라고 함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고르기아스(Gorgias, 483~374, B.C)
-윤리적 행위의 주체 : 인간[sophia(지혜) -賢者, 知者, 궤변론자]
-진리 : 감각적 경험으로 증명되며 쓸모 있는 것
-개인주의적, 상대주의적 인간관·윤리관·진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