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맛있게 삶는 법 ~ 윤재윤 님 변호사
두어 해 전부터 아침에 삶은 달걀 1개씩을 꼭 먹고 있다.
의사인 가까운 친구가 달걀은 완전식품으로 매일 먹어야 한다면
(달걀에 있는 콜레스테롤이 해롭다는 주장은 무시해도 된단다)
달걀을 맛있게 삶는 방법을 알려 준 것이 시작이었다.
물에 달걀을 넣고 가스 불을 켠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즉시 가스 불을 끄고 그릇 뚜껑을 덮은 뒤 7분 동안 기다린다.
그 후에 식혀서 먹는다.
반숙을 원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7분 아래로 적당히 조절한다.
이렇게 하니까 가스 불을 꺼야 할 때를 쉽게 알 수 있고,
가스도 절약되며, 무엇보다도 달걀이 늘 맛나게 익어서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전에 달걀을 삶을 때면(특히 내가 삶을 때) 반숙이 되거나 너무 삶아지고
하였는데 그런 일이 없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전해 주었는데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삶은 달걀을 먹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흔한 일에 서도 이전에는 몰랐던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구나!
삶은 달걀은 가장 흔한 음식인데
이렇게 완벽한 방법을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달걀을 삶는 데 이처럼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우리 생활의 다른 부분에서도
자신이 모르는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것 아닐까.
더 좋은 방법은 사물을 다루는 경우엔 정보나 지식이라고 말하고,
인간의 내면이나 관계에 관하여는 지혜라고 말한다.
어떻게 표현하든 지식과 지혜는 앞서 그것을 경험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경험이 부족한 뒷사람들에게 전해 준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결국 달걀을 맛있게 삶는 법 처럼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법 도
배우고 찾을 수 있는것 아닐까.
며칠 전 후배 변호사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능하고 밝은 성품으로 주변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무능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는다면서
몹시 괴로워하였다.
맡았던 사건들의 재판 결과가 나쁜 데다가.
과중한 업무가 우울증의 원인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제의 진짜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과 세상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결코 바뀔 수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의 장점을 말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변호사 특유의
논리로 피해 가기만 하였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마치 달걀을 더 맛있게 삶는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사람 같았다.
몇 년 전 춘천 지방 법원에 근무할 때 일이다.
춘천시 외곽에 있는 닭백숙집에 종종 가곤 하였다.
허름한 방에 테이블이 몇 개있는 작은 집이었는데
70세 가까운 할머니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한적한 농가인 데다가 음식 맛도 좋아서 서울에서 친구들이 오면
그 집을 일부러 찾곤 했다.
어느 날 음식을 기다리던 중 방의 벽에 걸려 있는 글과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서툰 글씨로 써 놓은 시구절과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들인데
초등학생 수준으로는 내용이 좀 유치하면서 조숙하기도 하고
(인생이란? 제목도 있었다.) 엉뚱해서 재미있었다.
할머니에게 손주들 솜씨가 좋아요. 라고 했더니
천만뜻박의 답이 돌아왔다.
당신이 만든 것이라면서 깔깔 웃었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몇 년 전 자원봉사자로부터 글씨와 그림
그리기를 배웠다는 것이다.
글씨를 배우고 나니 너무 신나서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자주 쓴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즉시 위 작품을 모두 사진 찍었다.)
여러 사정으로 보아 평생 편한 삶은 아니었을 텐테 할머니는 말을 시원시럽게
하고 괘활하면서 전혀 주녹 들어 보이지 않았다.
자기 집의 닭백숙은 다른 집의 것과는 맛이 좀 다를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하였다.
일류 변호사와 무학이 할머니를 더올리면
인생은 자신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는냐 가 결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결국 먹는 달걀을 삶는 데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냐와 연결되어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자신을 넘어서는 지혜가 있다는 믿음,
이를 배우면 현대의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달걀을 먹으면서 종종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 특효약 ~ 김철권 님 동아의대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
50대 여성이 두 팔이 마비되는 증상을 보여 입원했다.
응급실에서 여러 검사를 시행하였지만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어 정신과로 입원했다.
회진하면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팔이 마비되었는데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남 이야기하듯이 곧 좋아지겠죠,
지금도 거의 풀렸어요. 하며
내 앞에서 두 팔을 흔들며 밝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정신과적 병명은 전환장애다.
심리적 갈등이 육체적 마비 증상으로 나타나는 병이다.
주로 손발이 마비되고,
때로는 앞을 보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만큼 마음이 많이 괴롭다는 의미다.
이 괴로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길 없으니
몸으로 말하는 것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은 온통 신체 증상에 쏠리고 그 만큼의 갈등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시는 일이 뭡니까?
내가 물었다.
도넛 가게를 합니다.
혼자서 하는 가요?
아니에요,
남편과 둘이서 합니다.
남편은 만들고 저는 팔고 늘 함께하지요.
1년 365일 일해요.
피곤하겠습니다. 쉬는 요일은 없는가요?
하루라고 쉬려고 하면 애들 학비가 생각나 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많이 괴로워요
남편은 자주 친구를 만나러 가지만
남편이 가고 나면 누군가 가게를 지켜야 하기에 저는 하루도 쉬지 못해요.
팔이 마비된 것이 이번이 처음인가요?
아니예요,
벌써 네 번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일이 생깁니까?
예를 들면 혼자 있을 때나 아니면 피곤할 때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나 혹시 남편이 없을 때 그런 일이 생기는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녀가 말꼬리를 흐린다.
네 번 모두 남편이 없을 때 그런 일이 생겼는가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하지만 그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에요.
그녀가 대수롭잖게 대답한다.
인간의 마음에서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은 필연이다.
네 번 모두 남편이 없을 때 팔이 마비되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남편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도넛 가게에서 팔이 마비된다는 것은 장사하기 싫다는 의미였다.
전형적인 상징이다.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는 남편에 대한 분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병의 발병에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것은
반대로 남편이 그녀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 상태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회진하면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내주었다.
내가 말하고 그녀가 노트에 받아 적게 했다.
첫째, 내가 남편에게서 말하지 못했지만,
가장 힘든 것은?
둘째, 내가 가장 슬플 때는?
셋째, 내가 가장 두려울 때는?
넷째, 내가 가장 외로울 때는?
다섯째, 내가 가장 화가 날때는?
여섯째, 내가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때는?
일곱째, 내가 남편에게 받고 싶었는데 못 받은 것은?
여덟째.내가 남편에게서 받고 싶지 않았는데 받은 것은?
아홉째, 내가 지금 남편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똑같은 문제를 남편 대신 아내 라는 단어로 바꾸어
남편에게도 과제로 주었다.
두 사람이 적은 것을 놓고 대화를 나누면 서로에게 공감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병원에 입원한 아내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참 많은 내용을 적어 왔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남편은 각 질문에 대해 짤막하게 적어 왔다.
아내에 대해.아내의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의미가 있다.
나는 먼저 아내와 남편이 적은 것을 서로 바꾸어 읽게 했다.
그리고 한 문제마다 상대방이 적은 내용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 말하게 했다.
주로 말하는 쪽은 아내였다.
남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렇지만 남편의 얼굴은 아, 내가 지금 까지 그것을 몰랐구나! 하는
느낌을 역력히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토록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어요.
대화가 끝나 후 아내는 흡족해했다.
그리고 그녀가 보였던 마비 증상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토킹큐어 말하는 것이 곧 치료라는 진리를 다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퇴원하는 날,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분이 아내를 치료한 것입니다.
치료가자는 남편입니다.
고맙습니다.
내 말에 남편이 쑥스러워했다.
부부 관계에서 치료제는 따로 없다.
배우자의 말을 들어 주는 것,
그 자체가 특효약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특효약이다.
말 자체가 지료 효과를 가진다는 것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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