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구리무
백화 문상희/ 시인 수필가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렇게 살아왔고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 또한 그렇게 살아내셨으니
그 시절은 고생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었다.
헛껍데기 무명 저고리 한벌에
북풍한설 스며드는 냉기
온몸으로 부딪치며 버텨냈던 시절
그때 그 서러움을 지금 세대들이 어찌 알 수나 있을까?
육이오 한국전쟁 몇년이 지나서 태어났지만
그 이후 굶주림에 배고팠던 시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집안일에 거들어야 했다
야산 국유지 쓸모없는 땅
잡풀 베어내고 돌 덩어리 골라 돌담 쌓아
야산에 화전밭 일구어 양동이로 물 길어서
그렇게 일구어낸 무허가 화전밭 이었다.
그 지절엔 관청에서도 묵시적으로 인정한 토지였고
겨울 내내 보리쌀에 고구마 갱시기로
끼니를 때우던 그 시절
그 식단을 그대들은 아시는가 모르겠다.
첩첩산중 외떨어진 산골 오지마을
약이라고는 자연에서 얻은 민간요법이 전부였고
농사일에 멍들고 풀에 베인 상처는 부지기수였으니
피나는 상처엔 만병통치약 아까징끼 (머큐 크롬)
뿐이었고 영양제라고는 도회지 친척이 선물한
고소한 맛 국민 영양제 에비오제가 전부였으니
그마저 맛이라도 보면 부잣집이었다.
고약 하나로 피부병을 고쳐낸 사연을
그대들은 아시는가 모르겠소!
또한 집안 애경사로 떡이나 음식을 할 때면
품앗이하듯 오가며 동네방네 시끌벅적했으니
그러다 정든 처녀 총각들 한동네 사돈이 되었다.
고구마 감자라도 이웃과 조금씩이라도 나눠먹으며
온정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인정으로 소통하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며
새마을 운동으로 다 함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으려나!
지금이야 피부미용실에 미용 식단에
영양 화장품까지 가짓수가 수도 없다지만
그 시절엔 화장은 사치로 여겨졌다.
그 시절 부잣집이나 도회지로 유학 나간 자식들이
명절에 주는 최고의 선물은 동동구리무였다
함지박 속 예단 아래 곱게 포장한 동동구리무,
시어머니 예물함에 이 선물이 없으면 큰 실수요,
그 귀한 동동구리무가 필수였다는 사실을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대들이 어찌 알 수나 있었을까?
얼음 깨고 설거지 빨래해 내며 얼어 터진 손등!
그 시절 바르던 유일한 화장품 아닌가?
그시절 장터에 가면 콧수염에, 커다란 딸기코 분장에
큼지막한 북을 지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구두를 신고
허리에 비까 번쩍 멋진 가짜 권총까지 찬 약장수!
경쾌한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기막힌 동작에
쿵짝ㆍ 쿵짝ㆍ 쿵 짜자ㆍ 쿵짝!
중간중간 동동구리무는 중간 광고였으니
신기한 쇼에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들었지!
물건을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장터 다방 마담이 이것을 사 들고는 유세를 떨었으니
가난이 무슨 죄일까 만,
다방 아가씨 한번 보려고 씻나락 팔아
그 비싼 다방에 들락거린 남편을 째려보면서
동네 아줌씨들은 그저 남편 원망이 앞섰다
춥고 배고픈 시절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농야독에 학교에 가면 기성회비 낸 아이들은
앉아서 공부하고
어려운 형편에 못 낸 아이들은 무릎 꿇고 손들고 벌 받은 일,
그것도 모자라 대나무자로 손바닥 맞은 일,
지금 같으면 인권위에 고발을 하고도 남았겠지!
애들을 닦달해야 부모가 돈을 준다는 것은
그 시절에도 분명 잘못된 편견이었다.
아이들을 족치면 육성회비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편견!
그 당시엔 은행이 있었나, 카드가 있었나!
대출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 아닌가?
춘궁기 집안에는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시대가 바뀌어 전화 한 통이면 신용대출에
앱으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소액대출까지,
있으면 있는 대로 쓰고 없으면 카드깡까지
내일은 내일이요 오늘에 만족하며 사는 일부 젊은이들!
그렇다고 모든 젊은이들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요,
물론 대다수를 비약하는 것도 아니다.
잊혀져 가는 그 시대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현실에 살고 있는 젊은이는 모를 거야,
아니야, 아니야,
젊은 그대들은 진정 모를 거야!
부모덕에 호의호식했으니 알 수가 없었겠지!
아마도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겠지!
마지막 남은 우리의 윗세대,
그리고 베이비붐에 태어난 우리 세대,
그마저 모두 떠나고 나면 잊혀진 기억 속에서
다큐멘터리처럼 색 바랜 역사가 될 테지!
세상은 변하고 변해 회괴한 비트코인이 판치고
민간 우주선이 달나라로 화성으로 가는 시대
성냥갑처럼 지어진 숨 막히는 아파트
방문만 닫으면 완전히 독단적인 사생활
점점 더 메말라가는 이웃 간의 정
사촌도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아니면 볼 수 없으니
세상은 이런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등 따시고 배부른 현시대의 행복에 겨운 일상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시절을 감내한 모진 고초,
고생과 눈물이 오늘날 평안의 밑거름이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땀 흘린 대가가
작금에 이나라 부강국가의 초석이었다는 사실!
날마다 지나치며 보게 되는 태극기를 사랑하라!
태극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랑스러운 단군의 자손임을
절대로 잊지 말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은공을 잊지 마시라!
그놈의 글쟁이 오지랖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젊은이들이 고진감래의 뜻을 헤아려주길 바라며
선비집 자손으로서 문필가로서의 책무감으로
사랑방 이야기로 꾸민 글이오니
고운 눈초리로 보아주시길 부탁드리면서
"미래를 설계하려면 과거를 공부하라,,
라는 공자의 말씀을 전해 올린다.
* 이 글은 수정본으로 타 문예지에 올라갈 작품입니다
*그 시절 장날이면 오던 동동구리무 장사꾼(펌 사진)
첫댓글
그 시절 부잣집이나 도회지로 유학 나간 자식들이
명절에 주는 최고의 선물은 동동구리무였다
함지박 속 예단 아래 곱게 포장한 동동구리무,
시어머니 예물함에 이 선물이 없으면 큰 실수요,
그 귀한 동동구리무가 필수였다는 사실을...........
- 본문중에서.
글 ~~~
재미있게 읽고서,
던져 주시는 메시지를 맘에 담고 갑니다!
-{문예빛단 문인회}의
- '白華 文 相熙' 작가 카페지기님!
대단하십니다!
힘 찬 박수를 보냅니다! 팟팅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