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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크리스토프 빌란트의 동화 <룰루 또는 마술피리>를 비롯한 여러 동화와 대본 참고
대본 에마누엘 쉬카네더
초연 1791년 빈 비덴 극장
배경 기원전 587년(예루살렘 제2차 공략 시대), 예루살렘과 바빌론
<2000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 151분 / 한글자막>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프란츠 뵐저-뫼스트 지휘 / 조나단 밀러 연출
타미노..............자바의 왕자.............................표트르 베찰라(레제로 테너)
자라스트로........태양의 나라 대제사장................마티 살미넨(베이스)
밤의 여왕.......................................................엘레나 모슈크(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파미나..............밤의 여왕의 딸.........................말린 하르텔리우스(리릭 소프라노)
파파게노...........새잡이. 밤의 여왕에게 고용됨.....안톤 샤링거(바리톤)
파파게나...........파파게노의 짝..........................율리아 노이만(소프라노)
모노스타토스.....무어인. 사원의 감독관...............폴커 포겔(악역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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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01 파리 가르니에 공연 영상물 내지 해설 인용 / 박종호>
마술피리
진실을 찾아가는 긴 여정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많은 오페라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 <마술피라>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오페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특이한 작품의 하나이다. 징슈필이라는 민속극 수준의 장르에 속했지만, 그러면서도 놀라운 음악성과 다양한 의미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는 걸작이다.
물론 그의 오페라들 중 오페라 부파인 <돈 조반니>나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 세리아인 <황제 티토의 자비>같은 정통 고전 양식의 가극이 이룬 위대하고 압도적인 음악성과는 방향이 좀 다르긴 하지만, 민중적이고 세속적인 장르에서 거둔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또 다른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오페라에는 모차르트의 다양한 사상과 취향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시각들을 구석구석에 숨겨놓았다. 그래서 <마술피리>를 알게 되면 알수록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하나하나 벗겨지는 그 천재성에 감탄을 그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마술피리>는 사실 결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도, 쉬운 오페라도 아니다. 겉으로 보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들은 심각하다 못해 어깨를 눌러 내릴 정도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마술피리>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그들의 나이와 경험과 수준에 따라서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다들 칭송하는 작품도 <마술피리>다. 그러므로 결국 이 걸작 감상의 본령은 그 깊이 감추어진 신비스런 코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독일의 전통적인 민중극인 징슈필에도 편견 없는 관심을 보여, 이미 12세 때 징슈필인 <바스티안과 바스티엔>을 작곡하였다. 징슈필에 대한 그의 애착은 계속되어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차이데>를 만들었으며, 이어 <후궁탈출> 같은 본격적이고 수준 높은 징슈필 작품을 만들게 되었고, 결국에는 <마술피리>에 이르게 된다. 이상의 네 작품만을 놓고 보아도 모차르트는 징슈필이라는 한 장르에 깊은 관심과 또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대중적인 분야에서 그는 최상의 솜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만큼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대표작의 하나일 뿐 아니라, 징슈필이라는 장르에서도 한 시대를 마감하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모차르트가 이렇게 징슈필에서 큰 위업을 이루자, 그것은 독일 출신의 후배 작곡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즉 베토벤의 <피델리오>나 베버의 <마탄의 사수> 같은 명작들도 <마술피리>가 거둔 위업을 보고 작곡된 것들이며, 징슈필이 아니더라도 바그너의 악극을 비롯한 독일의 대부분의 낭만주의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마술피리>는 그들의 방향과 정신을 비추어준 커다란 등불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이 작품을 쓸 때 그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경제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힘들었고 그의 심신은 피폐하여 크게 지쳐있었다. 고향 같은 잘츠부르크를 떠나서 부양가족과 함께 빈으로 온 그는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어 자신의 작곡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과로가 겹쳐서 모차르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거의 탈진한 단계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주문이 오는 일들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어떻게 아름답고 동화적인 이런 창작이 나올 수 있었을까?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모차르트는 오래 알고 지내던 지기(知己)인 배우이자 제작자 겸 흥행사였던 요한 엠마누엘 슈카네더의 제의로 슈카네더가 직접 대본을 쓴 이 <마술피리>를 작곡하게 된다. 슈카네더는 모차르트와 같은 잘츠부르크 출신이었는데, 동향일 뿐 아니라 모차르트와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프리메이슨의 일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흥행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작은 순회극단을 만들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곳곳을 전전하면서 징슈필이나 연극 같은 민중극 공연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빈에 오게 되었고 빈의 비덴 극장에 자신의 극단이 정착하여 시민들을 상대로 대중적인 공연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는 빈곤에 허덕이던 모차르트가 생각났던 것이고, 모차르트의 재능이라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엿다.
그리하여 그는 모차르트를 위한 <마술피리>의 대본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 결국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최후의 오페라로 남게 되는데,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근처에 와 있던 모차르트로서는 이 허접한 장르의 징슈필 안에 그의 음악적인 창작욕은 물론이고 사상과 인생관까지 아낌없이 다 담아낸 그의 고백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동안 슈카네더가 쓴 <마술피리>의 대본에 대해서는 그가 정통 문학가가 아니었다고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주류였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본의 우수함과 슈카네더의 놀라운 기지에 대해 많은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이 대본의 원전(原展)의 유무나 표절의 정도에 무관하게, 이제 이 뛰어난 리브레토는 슈카네더의 새로운 창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슈카네더와 모차르트는 이 오페라를 함께 만들면서 그들이 비밀결사단체 프리메이슨에서 경험한 형식과 제도뿐 아니라 프리메이슨의 많은 가르침과 이념들을 이 오페라를 통해 세상에 은유하듯이 내비쳤다.
그러므로 이 오페라의 내용은 단순히 대본가의 것만은 아니고, 다분히 모차르트의 사상의 집약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모차르트가 가담했던 프리메이슨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지적인 교양인들의 모임으로서 평화로운 이상향의 건설을 목표로 하였고, 그들이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내세운 미덕은 자유, 평등, 박애였다. 거기에는 황제와 가톨릭 성직자들도 가담한 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기독교적 요소와 전제주의적 요소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있다. 프리메이슨은 전제적인 군주들의 통치보다는 철학과 지성으로 무장된 존경받을 만한 계몽적인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으며, 시민들에게도 보다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하였다.
<마술피리>의 이야기의 시작은 무척 쉽고 간단하다. 파미노라고 하는 한 왕자가 있었다. 그는 사냥을 하다가 밤의 여왕의 시녀들을 만나게 되고, 왕자는 밤의 여왕과 연결된다. 밤의 여왕은 왕자에게, 자라스트로라고 하는 나쁜 두목에게 납치.감금되어 있는 공주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왕자는 파파게노라는 방자(房子)를 데리고 공주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 그때 그들에게 여왕이 마술의 무기를 주는데, 왕자에게는 마술의 피리를, 파파게노에게는 마술의 철금(鐵琴)을 준다. 그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떠난다. 여기까지는 마치 흔히 들어왔던 동화의 모험담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쩌면 너무나 뻔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라스트로의 성에서 결국 공주를 찾아낸다. 그러면 이제 일은 다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자라스트로는 악한이 아니었던 것이다. 악당은 바로 밤의 여왕이었다. 어떤 딸이든 그러하듯이 공주도 당연히 자기 어머니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의 말을 믿으며 자랐다. 그리나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중간에 선과 악이 뒤바뀌면서 공주는 정체성의 갈등을 일으키고 그것은 아무 생각없이 오페라를 즐기던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더 이상 오페라가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의자에서 등을 떼고 진지하게 무대에 몰입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
<마술피리>에서는 두 세계 - 즉, 밤의 여왕으로 대표되는 '밤의 세계'와 자라스트로가 다스리는 '낮(태양)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중 후자는 바로 프리메이슨의 형식과 사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두 세계는 처음에는 전자가 선(善)이고 후자가 악(惡)으로 보이듯 하지만, 극이 점차 진행되면서 그 상황이 역전된다. 이 점은 오페라를 처음 보는 이들이나 이분법적인 생각에 젖은 이들에게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이란 것이 세상에서 그렇게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니 만큼, 이 점이 도리어 이 오페라의 높은 정신적 수준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제주의적 사상은 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데, 전제군주로부터 이성적 판단의 기회를 박탈당한 민중들(파파게노와 파미나가 여기에 해당된다)은 여전히 그들의 세계가 옳다고 행동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들의 여왕이 자신들을 기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술피리>는 비록 형식적 분류상 징슈필에 놓여있지만, 막상 그 뚜껑을 열어보면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로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다. 특히 오페라에 나오는 여러 명의 주역들은 각기 다른 성악적 스타일로 노래하면서 자신들 그룹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는 전형적인 징슈필적인 가수들로서, 그들은 오페라 부파풍의 노래를 하거나 빈 풍의 민속음악적인 노래도 허용된다. 타미노와 파미나는 독일 리트 풍의 노래를 부른다. 밤의 여왕은 전형적인 오페라 세리아 스타일인데,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프리마 돈나들이 구사하던 초절적인 콜로라투라를 사용하게 된다. 자라스트로는 독일의 오라토리오나 글루크 풍의 고전적인 가창을 보이고 있다. 또한 모노스타토스는 독특한 독일풍의 악역 테너로서, 뒤에 <니벨룽의 반지>의 미메 등에 계승된다. 그렇듯 각기 같은 그룹은 그들만의 같은 스타일로 노래하고, 다른 그룹과는 음악적으로도 차별화되어 자기들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그것은 음악적으로도 그러하여 실제 이탈리아 오페라만 부르던 소프라노와 독일 리트만 부르던 바리톤이 처음으로 함께 음악적인 작업을 하는 무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차르트는 주어진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놀라운 음악 세계를 창조하였다.
이 오페라는 또한 여러 가지 점에서 상징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먼저 여기에서는 '3'이란 숫자가 많이 나오는 데에 주목하게 된다. 세 처녀, 세 소년, 세 제사, 세 시련, 세 노예가 나오며, 음악에서는 세 개의 화음을 이용한다. 심지어는 시녀들이 뱀을 세 토막으로 내며, 대표적인 삼각형인 피라미드를 무대 배경으로 자주 이용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세 개의 모토를 상징하는 것이며, 3이란 모든 것의 조화를 이루는 완전한 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술피리>는 악보와 대본의 곳곳에도 암호처럼 수수께끼가 숨어 있어, 많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여전히 끌고 있다.
그리고 역시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이 암시적으로 많이 용해되어 있다고 보고 있는데, 너무나 많은 견해와 이론들 속에서 흔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표적인 내용만 살펴보자. 자라스트로를 빈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이그나츠 폰 보른으로 보고, 밤의 여왕은 프리메이슨들이 적으로 생각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파미나는 여제 아래에 있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평민들이며 타미노는 프리메이슨의 지도자인 요제프 2세가 된다. 이런 것이 꼭 정확한 해석이라고 볼 수만은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마술피리> 안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숨어 있어서 실제 공연을 감상하거나 음반을 들을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가는 것도 흥미롭다.
이렇듯 우리가 <마술피리>의 여러 의미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파미나가 세상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우리도 파미나나 타미노와 함께 진리를 향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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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4월 21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마술피리 KV620
특성 : 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소박한 징슈필 형식의 오페라
정보 : 쉬카네더의 대본에 의해 1791년에 완성, 빈에서 초연.
오페라의 고향인 유럽의 음악학자들이 꼽는 모차르트 3대 걸작 오페라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로, 모두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화려하고 세련된 희극 오페라들입니다. 그에 비해 [마술피리]는 당시 외국어(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소박한 징슈필(Singspiel,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이었습니다. [마술피리]가 초연된 빈의 극장 역시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장터에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 서민적인 곳이었답니다. 그런데도 왜 이 오페라는 공연 때마다 거의 티켓이 매진될 만큼 늘 인기가 좋을까요?
모차르트 시대의 뮤지컬 [마술피리]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마술피리] 극의 구조가 옛날 이야기나 오늘날 TV 드라마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죠. 아름답고 품위 있고 진지한 주인공 커플(파미나/타미노)의 러브 스토리 곁에서 볼품없고 우스꽝스러운 조연 커플(파파게노/파파게나)이 방자와 향단이처럼 개그를 펼치는 것이 기본적인 틀입니다. 거기에 여주인공의 괴팍하고 파워풀한 어머니(밤의 여왕)가 등장해 남자 주인공의 후견인이나 다름없는 성주(城主) 자라스트로와 대결을 벌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마술피리]의 음악이 모든 장르를 다 섞어놓은 종합선물이라는 점입니다. 모차르트 걸작 오페라 세 편이 일관성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을 택한 것과는 달리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마술피리](1791년 9월 30일 빈 프라이하우스 극장 초연)에는 소박한 가곡, 익살스러운 민요, 진지한 종교음악, 화려한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이 고루 섞여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도 편안하고 다채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지요.
사실 모차르트 당대에는 오페라라기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 작품이었답니다. 특히 초연 당시는 풀리지 않는 고대의 수수께끼나 주술과 마법이 크게 유행하던 시대여서, 뛰어난 흥행감각을 지닌 대본작가 에마누엘 쉬카네더는 환상적인 요소로 가득 찬 핀란드 동화집 속의 고대 이집트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마술피리] 대본을 썼답니다.
그 무렵 모차르트는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후원하던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났고, 새로 즉위한 황제는 모차르트 오페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 ‘3대 걸작 오페라’의 대본을 전담했던 유명작가 로렌초 다 폰테까지 여자 문제로 오스트리아에서 도망쳐, 더 이상 흥행이 보장되는 대본을 써 줄 작가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기 때문에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했지요. 그때 친구 쉬카네더가 모차르트에게 서민극장용 징슈필 작곡을 부탁했고, 모차르트의 간절한 소망대로 [마술피리]는 초연 극장에서 100회가 넘게 공연되면서 그의 오페라들 중 가장 훌륭한 흥행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공연 시작 두 달도 채 안 되어 모차르트는 병석에 누웠고, 그해 12월 5일에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답니다. 병상에 누운 채 모차르트는 저녁마다 시계를 쳐다보면서, “아, 지금은 파파게노가 등장할 시간이야.” “이제 주인공 두 사람은 물과 불의 시련을 다 통과했겠군.” 하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작품을 깊이 사랑했던 것이겠지요.
왕자의 미션과 프리메이슨의 이상
[마술피리]의 줄거리는 상당히 길고 복잡하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밤의 여왕의 부탁으로 왕자는 마술피리를 받아 들고 여왕의 딸인 공주를 구하려 갑니다. 갈 때는 공주를 가둔 남자가 악당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여왕이 악당이고 공주를 데리고 있는 남자는 의로운 철학자입니다. 왕자는 그 철학자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함께 간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침묵수행을 하고 나중에는 공주와 함께 물과 불의 시험을 통과합니다. 짝이 없어 슬퍼하던 파파게노도 자기에게 꼭 어울리는 파파게나를 만나 행복해지고, 밤의 여왕의 세계는 무너집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 남녀가 갖가지 시험과 고초를 통과해 마침내 결혼에 이르는 ‘고대 시련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모차르트는 이 스토리 속에 당시 자신이 가입하고 있던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이상을 엮어 넣었습니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석공들의 동업조합에서 비롯된 근세 유럽의 남성 엘리트 비밀결사를 뜻하는데, 당시 모차르트가 살던 빈의 학자, 예술가, 계몽귀족들은 자유, 평등, 박애의 인본주의 사상과 관용의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프리메이슨에 참여해 그들끼리 은밀한 모임을 가졌답니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현명한 지도자 자라스트로의 성은 바로 이 프리메이슨의 세계를 구현한 곳으로, 지혜와 이성과 자연이 삼위일체를 이뤄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절도있는 삶의 길을 가르쳐주는 세계입니다. 오페라에서 자라스트로와 합창단이 부르는 엄숙한 노래 ‘오, 이시스와 오시리스여!’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이집트 신과 여신에게 바치는 노래이며, 실제로 프리메이슨 단원들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의식 및 상징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지요.
음악이 인간을 조화로운 세계로 이끈다
고결한 마음과 인내심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주인공 타미노와 파미나.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복과 자식 얻는 기쁨을 노래하는 희극적인 주인공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이 두 커플의 대비는 이 오페라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타미노 왕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물과 불의 시련을 통과할 때 파미나는 마술피리의 유래를 이야기하며 그 피리소리로 왕자를 이끌어줍니다. 그 피리는 마법사였던 파미나의 아버지가 천 년 묵은 떡갈나무를 베어 만든 주술적인 악기로, ‘음악이 인간을 조화로운 세계로 이끈다’는 철학의 상징입니다.
이성의 세계(자라스트로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데 ‘마술’피리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성이 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세계(밤의 여왕의 세계, 마법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음악의 궁극적인 이상’임을 모차르트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술피리] 대본에는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종종 비난을 받습니다. 이 책임은 당시 시민계층 관객의 입맛을 맞추려 한 대본작가 쉬카네더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네요. 실제로 당시 작품 제작에 관련된 기록을 보면, 쉬카네더가 대본에 넣어놓은 저급한 유머들을 모차르트가 화를 내며 상당부분 빼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초연된 1790년대 독일 라인란트 지역 공화주의자들은 프랑스 대혁명(1789)과 이 오페라를 연관시키는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밤의 여왕’은 전제군주 루이 16세를 상징하며, 타미노 왕자는 민중을, 파미나 공주는 자유를 상징한다는 해석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오페라의 핵심사상은 새로운 입법을 통해 민중을 전제정치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이런 작품 해석은 모차르트와 대본작가 쉬카네더를 ‘자유의 투사’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러나 군주제를 옹호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이 작품을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밤의 여왕’은 자코뱅파 급진주의를 상징하고 그 딸인 파미나는 공화국의 상징이었습니다. 전제군주 정치의 상징인 타미노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것은 공화국을 살려내 제정시대로 되돌린다는 의미였지요. 그러나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는 이런 상반된 해석 중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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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6월 9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나는야 새잡이
모차르트 <마술피리>
모짜르트(모차르트, Mozart 1756~1791)와 대본 작가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가 가맹하고 있던 비밀결사 후리메이슨(프리메이슨, Freemason) 사상의 큰 영향을 받아 비교(秘敎=비밀 의식을 행하는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화를 소재로 하여 고대 이집트를 무대로 삼은 이 오페라는 인형극으로도 즐겨 공연되는 즐거운 작품이다. 양식적으로도 매우 다양하여 천재 모짜르트의 경험이 갖가지 형태로 통합되어 있다.
인형극으로 공연되는 즐거운 작품
고대 이집트이다. 왕자 타미노가 큰 뱀에게 쫓기다 정신을 잃었을 때 밤의 여왕의 세 시녀 3명이 구해준다. 그리고는 여왕의 딸 파미나를 구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요술피리를 받는다. 수다스럽고 허풍쟁이인 새잡이 파파게노도 요술 방울을 받고 그를 따라 간다. 이윽고 이집트 풍의 자라스트로의 궁전에 들어간다. 악한(惡漢)이라고 알고 있던 고승(高僧) 자라스트로가 실은 밤을 정복하고 있는 여왕이야말로 사악(邪惡)한 여자임을 알려준다. 고승은 도망 나온 파미나가 타미노의 손을 잡고 서로 사랑하게 된 모습을 인정한다. 고승은 파미나를 구하려면 시련을 극복하여 정화(淨化)되어야 한다고 알린다. 젊은 두 사람은 침묵과 물불의 시련을 이기고 선(善)과 광명의 세계에서 맺어진다. 시련을 이기지 못한 서민적인 파파게노도 귀여운 아가씨 파파게나를 얻는다. 밤의 여왕의 악(惡)과 어둠은 나락(奈落)으로 떨어져 버리고 태양의 세계로 바뀐다. 제1막과 제2막에서 등장인물의 선악(善惡)이 뒤바뀐다. 오페라는 전 2막의 징슈필(singspiel=독일, 오스트리아의 민중 음악 희극)이다.
'나는야 새잡이'
나는야 새잡이
언제나 즐겁다네, 하이사, 호프사싸!
새잡이인 나는 유명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고장에서는 다 아는 일.
피리로 새를 불러들이는 것은 누어 떡 먹기
피리 부는 재주는 천하제일 일세.
즐겁고 쾌활하게만 지내면
새는 죄다 내 것.
나는야 새잡이
언제나 즐겁다네, 하이사, 호프사샤!
새잡이인 나는 유명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고장에서는 다 아는 일.
아가씨가 걸리는 그물이 있다면,
남 몰래 한 다스 씩 잡으련만,
그러면 내 곁에 가두어 두고,
아가씨는 죄다 내 것.
아가씨가 죄다 내 것이 되면,
사탕과 잔뜩 바꿀 수 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에게는,
사탕은 그대로 주어 버리지.
그 애가 부드럽게 입 맞추어 주면
그 애가 아내 되고 나는 서방 돼야지.
내 곁에서 잠을 잔다면,
어린애처럼 재워주지.
판 피리(Panflöte)를 불며 커다란 조롱(鳥籠)을 메고 새털로 온몸을 감싼 옷을 입은 파파게노가 제1막 서두에서 부르는 민요조의 유쾌한 자기소개의 노래이다. 이 오페라는 이상적인 배역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출연 횟수는 많지 않지만 콜로라투라의 기교를 구사한 재빠른 노래와 극적인 강한 표정을 노래하는 힘을 양립시켜야 하는 소프라노의 지극히 어려운 역할과, 깊숙한 음성으로 위엄(威嚴)있는 노래를 해야 하는 저음역의 기교가 몹시 까다로운 베이스 역의 자라스트로를 두 축으로 하면서 갖가지 목소리의 질, 그리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 20명에 가까운 가수들이 그 축 속에서 활약하는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들을 만한 음반과 DVD
[CD] 클렘페러 지휘, 휠하모니아 관현악단/합창단(1964) 발터 베리(Br) EMI
클렘페러 80세 생일 기념으로 녹음한 음반이다. 그가 남긴 4개의 모짜르트 오페라 전곡 중 가장 출중한 명반으로 꼽는다. 호화로운 배역진은 다른 어떤 음반도 비교가 안 된다. 청초하고 가련한 야노비츠(Gundula Janowitz)의 파미나,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콜로라투라로 압도하는 포프(Lucia Popp)의 밤의 여왕, 세 시녀가 슈바르츠코프, 루트비히(Christa Ludwig), 헤후겐(Marga Höffgen) 등 이 음반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당대 최고의 여가수를 동원했다는 점 외에, 베리(Walter Berry)가 부르는 파파게노의 경쾌한 아리아까지, 충실한 배역진의 노래의 향연이 오페라에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마술피리]의 특징인 징슈필을 모두 생략했다는 점이다. 물론 클렘페러의 의도는 음악만을 순수하게 들으라는 뜻이겠지만 그래도 노래극의 분위기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CD] 뵘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 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1955) 베리(Br) DECCA
아직 젊고 발랄하던 뵘(Karl Böhm)의 모짜르트 표현이 인상적이다. 당시 빈 국립 가극장 음악 감독으로 있으면서 터득한 숱한 공연의 경험이 빚어내는 lrtnr한 솜씨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또 그 무렵 빈의 음악제를 주름 잡던 우수한 가수가 망라되어 있어 오히려 1964년의 스테레오 녹음반(DG)이 지닌 몇몇 배역의 불만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모노랄 녹음(그러나 음질은 우수함)에 벌 거부감만 없다면 연주의 질을 스테레오 반 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 전성기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이 자아내는 유려하고 우아한 음색 역시 매혹적이다. J. 크리프스(Josef Krips)의 [돈 죠반니(돈 조반니)](1955), E. 클라이버(Erich Kliber)의 [휘가로의 결혼(피가로의 결혼)](1955)과 함께 요즘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든, 전통적인 빈 양식의 모짜르트를 간직한 귀중한 음반이다.
[CD] 오트마르 스위트너 지휘, 드레스덴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라이프찌히 방송 합창단/라이프찌히 방송 합창단(1968) 귄터 라이브(Br) Eurodisc
슈라이어(Peter Schreier)의 타미노, 도나트(Helen Donath)의 파미나, 아담(Theo Adam)의 자라스트로, 게스티(Sylvia Geszty)의 밤의 여왕, 라이브(Gunther Leib)의 파파게노, 호후(Renate Hoff)의 파파게니 등 당시 최고의 동독 가수들이 총동원된 특이한 음반이다. 비록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동화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아늑함과 청순함이 은은한 향기를 자아낸다. 음악은 정교하고 세련되었으나 결코 그 아름다움을 과장하지 않고 드넓은 들판에 호젓이 핀 한 떨기 이름 모를 들꽃처럼 자연스러운 소박미(素朴美)를 간직하고 있다. 가사를 완벽하게 갖춘 징슈필은 마치 노래하듯 아름답다. 무엇보다도 밤의 여왕 게스티의 노래는 클렘페러 반의 포프(Lucia Popp)를 능가할 정도이다. 슈라이어의 타미노 또한 그지 없이 순박하고 진지하다. 이 음반을 듣고 이 음반을 듣고 있으면 어느덧 모짜르트의 장난기가득한 미소를 대하듯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DVD] 레바인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1982) 크리스티안 보슈(Br) 폰넬 연출 TDK
잘쯔부르크 음악제에서의 폰넬(Jean-Pierre Ponnelle)의 연출은 1978년 이래로 오랜 전통이 있는 프로덕션이다. 그루베로바(Edita gruberova)의 밤의 여왕 역은 1983년의 바이에른 국립 가극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성기의 목소리로 콜로라투라의 어려운 곡을 비길 데 없이 아름답게 노래한다. 타마노 역에서 이미 15년이나 제1급의 평가를 받고 있던 슈라이어도 돋보이지만 탈벨라(Martti Talvela)의 자라스트로, 코트루바스(Ileana Cotrubas)의 파미나 등 기라성 같은 가수진의 각각 개성 있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레바인의 지휘도 메트로폴리탄의 9년 뒤(1991년) 녹화 보다 훨씬 우아하고 유연한 빈 휠하모니의 연주로 뒷받침하고 있다. 1982년도 잘쯔부르크 음악제 실황 녹화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야 새잡이 - 모차르트, [마술피리]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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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1월 17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
모차르트 <마술피리>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이 마지막 오페라 [요술피리](마술피리)이다. 모차르트는 굴루크가 개혁한 궁정극장용의 오페라세리아(opera seria=정가극)에서 18세기가 되어 생겨난 새로운 민중극으로서의 오페라도, 또는 이탈리아 오페라도, 독일·오스트리아 및 불란서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오페라뿐만 아니라 교회음악 양식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수용하여 오페라라는 것을 전례 없이 강대하고 유연한 표현을 가진 예술형식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그러한 모차르트의 광범위한 형식과 양식(樣式)의 융합을 이해하는 데 가장 알맞은 작품이 이 [요술피리]이다. 형식의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은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중 희극음악 징슈필이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서곡과 21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밤의 여왕의 두 개의 아리아 등은 그 역할에 알맞게 오페라 세리아 양식으로 썼고 징슈필 본래의 민중 희극의 분위기를 띤 민요풍의 ‘파파게노의 아리아’와 그 파파게노가 파파게나라는 좋은 짝을 만나 노래하는, 모든 오페라의 2중창 중에서도 가장 천진난만(天眞爛漫)한 ‘파파게노의 2중창’과는 양식적으로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등 다채롭다.
프리메이슨 사상을 담은 오페라
이 오페라의 성립과 대본에 대해서는 18세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어지럽게 나돌았으나 1968년에 모차르트 신전집 중 오페라 편 서문에 의하면 프로모터이고 대본작가이며 초연 당시 연출가와 파파게노 역을 겸한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가 대본 작가인 것은 틀림없고 또 안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모차르트와 곧잘 상담하고 그가 직접 고치면서 완성했다고 한다. 완성된 대본은 당시 빈의 관객이 좋아할만한 내용을 탐욕스러울 정도로 담아 오락 중심의 풍성한 요정극(妖精劇) 종류이며 또 계몽군주 요제후 2세(요제프 2세)가 죽은 뒤의 정국(政局) 풍자를 섞었다고도 볼 수도 있다.
파파게노 역도 당시 빈의 민중극에는 반드시 나오는 희극 역할의 한 가지 변형(變形)이었다. 그렇지만 대본뿐이 아니라 음악도 함께 잘 검토해보면 그러한 색채의 요소를 포함해 각 부분을 잇는 일관된 한 줄기의 상징적인 끈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끈이란 이 오페라의 사상적인 배경이 되어 있는 후리 메이슨(Free Mason, 프리메이슨)의 사상이며, 작품 전체가 후리 메이슨의 선전과 그 비의(秘儀) 소개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적이나 신앙의 종교적인 신조 및 신분에 관계없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인정하며 서로 돕는다는 것이 후리 메이슨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봉건주의나 전체주의에게는 항상 적이며 18세기 무렵에는 가톨릭 교회와도 날카롭게 대립했다. 유럽에서는 진보적 사상의 대명사처럼 되고,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인이나 정치가를 회원으로 수용했다. 다만 [요술피리]에도 슬쩍 보여주듯이 회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비밀의 상징을 중히 여기고 의식(儀式)을 비밀리에 거행하기도 하는 조직을 지키는 은밀함이 중세 이후 지금까지도 신비의 베일에싸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옥의 복수가…(밤의 여왕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가슴에 끓어 넘치고
내 둘레에 죽음과 절망이 타오른다!
자라스트로가 네 손에 의해
죽음의 고통을 맛보지 않는 한,
너는 이미 내 딸이 아니다!
물리치라 영원히,
내 버려라 영원히,
어미 딸의 관계는
영원히 부서져 버리는 것을,
자라스트로가 네 손에 걸리지 않을 때!
들어라! 복수의 신이여! 들어라 이 어미의 맹세를!
파미나의 방에 나타난 밤의 여왕이 딸에게 자라스트로를 찔러 죽이라고 명령하는 격렬한 복수의 노래이다. 콜로라투라의 초절 기교와 극적인 격분(激憤)으로 가득찬, 최고의 음을 요구하는, 어렵기 그지없는 유명 아리아이다.
추천 음반 및 DVD
[CD] 카라얀 지휘, 베를린 휠하모니 관현악단/독일 가극장 합창단(1980) 오트(S) DG
아라이자(Francisco Araiza)의 타미노 역은 당시 슈라이어(Peter Schreier)의 후계자로 인정되고 있었고 리릭 소프라노로 전성기를 누리던 마티스(Edith Mathis)의 파마나 역이 짝을 이루었고 자라스트로 역은 반 담(Jose van Dam), 파파게노 역의 호미크(Gottfried Homik)이며 여기에 3명의 시녀는 토모와-신토우(Anna Tomowa-Sintow), 발짜(Agnes Baltsa), 슈바르츠(Schwarz) 등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가수진을 갖춘 카라얀 다운 호화로운 배역진이다. 여기서도 다채로운 색채와 투명감이 있는 베를린 휠하모니가 청중을 황홀경으로 몰고 간다.
[DVD] 자발리쉬 지휘, 바이에른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3) 그루베로바(S) 에버딩 연출 Philips
동화적인 세계와 종교적인 세계를 아울러 갖춘 [요술피리]의 무대는 사실적인 것에서부터 동화 그림책 같은 것. 또 때로는 공상과학 같은 것 등 갖가지이나, 이 바이에른 국립가극장의 에버딩(August Everding) 연출은 이 견실(堅實)한 연출가답게 두 개의 세계를 균형 있게 결부시키고 있다. 파파게나를 비롯한 동화적인 부분은 아름답게 양식화(樣式化)한 질 좋은 그림책 같은 무대이며 어른의 동심(童心)을 만족시키고 자라스트로 등의 종교적인 장변은 사실적인 연출로 모차르트가 이 오페라에 담은 후리 메이슨의 사상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참신하지는 않지만 평균점이 높고 누구든 충분히 만족한다는 점에서 [요술피리]의 입문편(入門篇)으로 권하고 싶다. 자발리쉬(Wolfgang Sawallish)가 펼치는 연주도 뛰어나다. 아리이자의 타미노, 포프(Lucia Popp)의 파미나, 몰(Kurt Moll)의 자라스트로 그리고 당대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고 찬사를 받은 그루베로바의 노래뿐만 아니라 역할에 꼭 맞는 모습도 수려하다. 앙상블이 뛰어난 것도 이 연주의 매력이다. 카메라는 아름답고 충실한 무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영상(映像)은 전체적인 색이 좀 연한 편이지만 상쾌하다. 음역(音域)은 넓지 않고 스케일도 그리 크지 않으나 충실한 음향으로 연주를 담아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옥의 복수가 … - 모차르트, [마술피리]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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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2016년 6월 17일 네이버캐스트 / 글 김수빈 자유기고가>
예술과 영성
모차르트는 왜 열렬한 프리메이슨이 되었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논하는 데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가 빠질 수 없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던 모차르트는 기독교인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이다. 수준급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에 행한 인터뷰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모든 비극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로 모차르트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바 있다. 개신교 신학의 거두 칼 바르트는 자신이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모차르트를 찾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신교 신학자가 칼뱅이나 루터가 아닌, 가톨릭 신자를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한다니 그의 모차르트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프리메이슨의 영향
하지만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을 불편하게 만들 만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Freemason)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그가 35세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유를 다름 아닌 프리메이슨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프리메이슨이 조직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물론 근거와 정황이 부족한 억측이기는 하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1784년 12월 14일, 비엔나에 있던 프리메이슨 ‘자선(Zur Wohltatigkeit)’ 지회에 견습 메이슨으로 가입하였다. 이듬해인 1785년 1월 7일에는 장인(journeyman)의 지위에 올랐고, 곧이어 가장 높은 지위인 마스터 메이슨이 되었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자신이 가입한 ‘자선’ 지회는 물론이고 다른 지회의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여 작곡가와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기부했다. 그러한 헌신적인 활동 덕택에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내부에서 가장 훌륭한 회원으로 평가받았다.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에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는 그의 작품 목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프리메이슨의 장례음악(Maurerische Trauermusik)>이나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인 <작은 프리메이슨 칸타타(Kleine Freimaurer-Kantate)>는 제목에서부터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오페라를 포함한 음악극의 줄거리와 테마에서도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다. <피가로의 결혼>을 예로 들어보자. 프리메이슨이었던 피에르 드 보마르셰(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1799)의 희극을 바탕으로 한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프리메이슨의 계몽주의와 평등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천한 태생의 피가로가 주인공이며 귀족인 알마비바 백작은 악당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비엔나에 정착하여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기 이전에도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저작들에 친숙했다. 그가 1773년에 쓴 <이집트 왕 타모스(Thamons, Konig in Agypten)>는 프리메이슨과 유사한 사상을 그리고 있는 희곡이며, 1778년에는 나중에 모차르트가 가입하는 비엔나의 ‘자선’ 지회의 마스터였던 게밍겐의 프리메이슨적 오페라 대본 <세미라미스(Semiramis)>를 멜로드라마로 만들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1770년 중반에 완성한 <우정의 성스러운 유대(O heiliges Band)>에서도 프리메이슨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모차르트의 대표작인 오페라 <마술 피리>는 가장 두드러지게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또한 프리메이슨이었던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 1751~1812)의 극본에 음악을 입힌 것이다. 극중의 배경에는 이집트가 등장하는데, 이집트의 상징들은 프리메이슨이 숭상하여 애용하던 것이다. 극중에서도 꾸준히 이집트의 주신인 이시스와 오시리스가 언급된다.
<마술 피리>의 제2막은 주인공인 타미노가 여주인공인 파미나를 얻기 위해 겪는 시련들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음악학의 기틀을 닦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소르본 대학의 음악사 교수 자크 샤이에는 이 2막이 신입 회원이 프리메이슨에 입문할 때 치르는 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마술 피리>의 시작에서 타미노가 큰 뱀을 만나 기절하는 장면 또한 프리메이슨의 입문 의식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신입 회원은 입문식에서 엎드려 누워야 하는데, 이는 과거의 행동과 사고방식의 죽음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파미나를 납치한 사악한 존재인 것처럼 묘사되나 극이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일종의 스승 같은 존재로 표현되는 자라스트로 또한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이것은 세인들에게 숱한 오해를 사고 있지만(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우애 증진과 발전을 목표로 삼았던 프리메이슨 조직 자체에 대한 은유였을 수도 있다. 자라스트로의 캐릭터는 당시 모차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메이슨인 이그나츠 폰 보른(Ignaz von Born, 1742~1791)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라스트로라는 이름이 조로아스터교의 시조인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와 비슷하다는 것도 재미있다. 조로아스터는 고대 페르시아 종교의 창시자로서 후대에 많은 신비주의자와 마법 연구가들의 추앙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와 쉬카네더가 <마술 피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지혜가 있다. 그것은 세인들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잘 다루면 인간을 깨달음으로 인도해준다. 이들에게 프리메이슨은 그러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형제들의 집단이었다.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음모론의 역사
이쯤 되면 프리메이슨을 이런저런 음모론의 단골손님쯤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은 대체 모차르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러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에서는 프리메이슨이 ‘세계 정복을 획책하고 각국의 정부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탄의 조직’이라는 식의 설명들을 꾸준히 유포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너무나 과장된 이야기이다.
프리메이슨에 대한 음모론 또한 프리메이슨 못지않은 긴 역사를 자랑한다.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프리메이슨 조직이 형성된 시기는 대체로 영국에 본부가 생긴 1717년으로 본다. 한편 프리메이슨을 프랑스 혁명의 배후에 있는 조직이라며 비난한 최초의 음모론 저서가 나온 시기는 1797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프리메이슨 음모론의 시초가 되는 책이 영국과 프랑스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1797년이라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본래 물리학자였으나 말년에 음모론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영국의 존 로비슨(John Robison, 1739~1805)의 [음모의 증거들(Proofs of a Conspiracy)]과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인 오귀스탱 바뤼엘(Augustin Barruel, 1741~1820)이 쓴 [자코뱅주의의 역사에 관한 회고(Memoirs Illustrating the History of Jacobinism)]가 그것이다. 로비슨과 바뤼엘은 서로의 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음모론을 주장했다.
바뤼엘은 [자코뱅주의의 역사에 관한 회고]에서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자코뱅파의 배후에 볼테르, 루소 등의 자유사상가들이 속한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Illuminati) 같은 비밀 조직이 있으며 이들의 목적은 기독교와 왕정, 그리고 사회를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뤼엘은 평등주의, 계몽주의를 비롯한 프랑스 혁명을 낳은 당대의 철학 사조에 적대적이었다.
바뤼엘의 음모론은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정계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장 조셉 무니에는 바뤼엘의 음모론에 대해 프랑스 혁명은 사회적ㆍ정치적 긴장의 결과이지 계획된 음모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바뤼엘의 책은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이것이 여러 차례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대체 프리메이슨이란 무엇인가
프리메이슨은 기본적으로 명망 있고 학식을 갖춘 사람들의 고급 사교 모임에 가까웠다. 이들은 사상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했기 때문에 기존의 기독교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사상들이 섞여들었다. 그리하여 하나로 뭉뚱그려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질을 지니게 되었다. 프리메이슨에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로 무장한 철학자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장미십자회, 템플기사단, 연금술 등의 오컬트 사상에 심취한 학자들도 자유로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메이슨 내부에서도 항상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사상들이 모여 있다 보니 노선에 따라 파벌도 여러 개로 갈렸다. 각 파벌들은 각자 자신들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유일한 수호자라고 주장하면서 싸우곤 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 프리메이슨 회원의 편지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같은 회원) 형제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힐난하며, 어떤 지회들은 마치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처럼 서로에게 원한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어떤 쪽이었을까?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합리주의적인 면을 선호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모차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이그나츠 폰 보른은 ‘진정한 화합’ 지회의 마스터였는데, 자신의 지회에 연금술이나 템플기사단 교리와 같이 과도하게 미신적인 사상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모차르트가 친분을 나누었던 메이슨들은 대부분 교권주의에 반대하고 자연법 사상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모차르트는 또한 프리메이슨에 대한 장미십자회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가 내렸던 칙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신비주의적 면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개인 서재에는 프리드리히 외팅거(Friedrich Christoph Oetinger, 1702~1782)의 저서인 [화학과 관련한 형이상학]이 있었다고 한다. 외팅거는 기독교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의 추종자였으며 스베덴보리와 교류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모차르트는 말년에 친구들과 함께 자신만의 비밀결사를 만들 생각도 품고 있었다. 모차르트 사후 1799년에 그의 미망인 콘스탄체는 한 출판사에 모차르트의 전기에 대해 이런 편지를 썼다. 모차르트가 죽기 전에 ‘동굴(Die Grotte)’이라는 이름의 결사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콘스탄체는 그가 당시에 쓴 에세이의 일부를 모차르트의 친구이자 프리메이슨 동료였던 안톤 슈타들러에게 보내면서 이를 완성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 에세이는 이후 분실되어 현재는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가 왜 새로운 결사를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열렬한 프리메이슨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미루어보아, 오늘날의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자면 모차르트는 ‘이단’이 아닌가? 하지만 음모론이 부풀리고 왜곡한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의 (적어도 18세기의) 프리메이슨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가톨릭의 신부들이나 수도원장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열렬한 프리메이슨이 된다는 것이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가톨릭은 그가 자라온 전통을 상징한다. 그는 그 전통을 부정할 이유가 없었으며 결코 그리하지도 않았다. 프리메이슨은 그가 스스로에게 갖고 있던 자부심, 지위를 세습하는 귀족들과 자신이 동등하다는 주장에 관한 것이었다.” 모차르트가 남긴 2,000여 장의 서간문들을 정리하여 편집했던 독일의 학자 로베르트 스파틀링이 가톨릭 신문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에서 추구했던 것은 결코 기독교의 정신과 충돌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에서 추구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것을 <마술 피리>의 보조 캐릭터인 파파게노(papageno)를 들어 부연하고 싶다. 파파게노는 타미노의 고귀한 여정에 웃음을 더해주는 캐릭터로, 그저 오늘 하루 잘 먹고 잘 마실 수만 있다면 만족하는 비루한 새 사냥꾼이다. 만년 솔로로서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는 싶지만, 타미노처럼 공주를 구하기 위해 시련을 감내할 용기는 없다. 그렇지만 파파게노도 가끔 색다른 면모를 보여줄 때가 있다. 극중에서는 파파게노의 모자가 그의 양면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새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있을 때(이것은 인간의 자아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가 되기도 한다)의 파파게노는 그야말로 비루한 새 사냥꾼에 지나지 않지만, 모자를 벗고 있을 때는 타미노 못지않은 용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은 부박한 소시민의 면모와 영웅적인 면모 모두를 갖고 있다. 그가 고귀한 왕자님인지 한갓 새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류가 모두 평등하게 형제적인 우애를 다지면서 지금의 부박한 모습에서 벗어나 기독교적 구원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사회. 교권을 교회나 어떠한 개인이 독점하지 않는 공동체. 모차르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열렬한 프리메이슨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이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참고문헌
· Maynard Solomon, Mozart: A Life (Harper Collins Publishers, 1995)
· Jacques Chailley, The Magic Flute Unveiled: Esoteric Symbolism in Mozart's Masonic Opera (Inner Traditions, 1992)
· Jay MacPherson, The Magic Flute and Freemasonry, University of Toronto Quarterly, Fall 2007 (Volume 76, Number 4)
· Gary Lachman, Concerto for Magic and Mysticism: Esotericism and Western Music, Quest Magazine, July-August 2002 (Volume 90 Number 4)
· John L. Allen Jr., Mozart: Catholic, Master Mason, favorite of the pope, National Catholic Reporter, September 1, 2006
[네이버 지식백과] 모차르트는 왜 열렬한 프리메이슨이 되었나 -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 (예술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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