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23.06.13 03:30
혀의 이모저모
▲ /그래픽=진봉기
"메롱!" 친구를 놀릴 때 내미는 혀는 밥을 먹고 말을 할 때 꼭 필요한 중요한 신체 부위입니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혀를 통해 척추동물의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고, 로봇을 만드는 영감을 얻기도 하거든요. 혀에 대한 이모저모를 함께 알아봐요.
육지동물로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
척추동물은 물속에서 시작했어요. 지금으로부터 4억8000만 년 전 물고기(어류)가 가장 먼저 등장했죠. 물고기는 혀가 필요 없어요. 턱을 크게 벌리면 자연스럽게 물이 입안으로 들어오고, 그 안에 있는 먹잇감을 먹을 수 있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어류는 물 밖으로 나오게 됐어요. 육지로 삶의 터전을 옮긴 동물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혀예요. 물속에서와 달리 육지에서는 먹잇감을 입에 넣은 뒤 식도로 넘겨야 하거든요. 혀는 입안에 들어온 음식물이 식도를 통해 잘 넘어갈 수 있게 해줘요. 지금 우리가 음식을 먹는 원리와 같습니다. 육지로 올라온 초기 척추동물은 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먹이를 먹을 때마다 근처 호수나 바다를 오가야 했어요.
척추동물은 점차 육지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혀도 점점 커졌어요. 혀를 지지할 수 있는 아래턱뼈와 근육이 자리 잡았죠. 더는 먹이를 먹으러 물가로 갈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렇듯 혀는 척추동물이 물에서 나와 육지 동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답니다.
동물마다 혀의 역할이 달라요
혀는 음식을 먹는 데만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동물마다 혀의 기능과 능력이 다양해요. 우선 먹이를 먹는 방식에 따라 혀의 형태가 달라요. 도롱뇽은 먹잇감인 곤충이나 절지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혀가 끈적끈적한 상태예요. 몸의 움직임이 비교적 느린 카멜레온은 혀를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죠. 꿀을 모으는 새들은 꿀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혀가 빨대 모양이에요. 뱀의 혀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고 해요.
고양이의 혀는 빗 역할을 해요. 고양이는 활동하는 시간의 4분의 1가량을 털을 손질하는 '그루밍(grooming)'을 하며 보낸다고 해요. 미국 과학자들은 고양이 혓바닥에 주걱처럼 생긴 돌기가 있고, 돌기 밑바닥에 빈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털 밑 피부에 침을 공급하는 거예요. 침이 돌기 속에 갇혀 있다가 피부에 닿는 순간 흘러나온답니다.
카멜레온처럼 혀로 물건을 낚아채는 로봇
혀는 과학자들이 로봇을 만드는 영감을 얻는 원천이 되기도 해요. 서울과학기술대 연구팀이 만든 로봇 '스내처'는 카멜레온의 혀를 모방한 로봇이에요. 카멜레온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혀를 움직여 사냥해요. 그 속도가 1초당 3~5m 거리에 닿을 수 있을 정도지요. 평소에는 긴 혀를 둥글게 말아뒀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자기 몸길이의 1.5배까지 잽싸게 뻗어 낚아챕니다. 스내처라는 이름도 '빠르게 잡아챈다'는 뜻의 영어 단어 '스내치(snatch)'에서 유래했어요.
스내처는 매우 작고 가벼워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0㎝로 작은 장난감 크기이고, 무게는 120g이 채 안 돼요. 카멜레온처럼 혀 부분을 빠르게 내미는데, 80㎝ 떨어져 있는 30g짜리 물건을 0.6초 만에 낚아챌 수 있어요. 스프링을 아래로 꾹 눌렀다가 손을 떼면 모여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튕겨 오르는 것처럼, 스내처도 팔 부분이 돌돌 말려 있다가 튀어나가고 다시 돌아오는 식이에요. 스내처는 드론에 붙이면 공중에서 물건을 집어 올리는 일을 수행할 수 있답니다.
'전자 혀'는 맛 감별하는 현대판 기미상궁
과거 왕이 살던 궁에는 기미상궁이 있었습니다. 왕이 식사하기 전에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했죠. 이제는 사람을 대신해 먼저 맛을 감별해주는 현대판 기미상궁, '전자 혀'가 있답니다.
우리 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톨도톨한 돌기가 수없이 많이 있어요. 이 돌기는 1만여 개가 넘는 미뢰(맛봉오리) 세포로 이뤄져 있지요. 음식이 미뢰 세포에 닿으면 전기 신호가 발생하고, 이 신호가 뇌로 전달돼 단맛이나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을 느낄 수 있지요. 전자 혀는 사람처럼 5가지 맛을 구별할 수 있어요. 20여 년 전 일본 규슈대 기요시 도코 교수가 처음 전자 혀를 개발했지요.
2020년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 혀는 5가지 맛 이외에 떫은맛도 느낄 수 있어요. 덜 익은 감을 먹을 때 느낄 수 있는 떫은맛은 원래 미각에 포함되지는 않아요. 타닌과 같이 떫은맛을 내는 분자가 혀 표면에 있는 단백질과 만나 엉겨 붙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이 혀의 표면을 자극해서 느끼는 감각이지요. 연구팀은 떫은맛을 내는 분자를 만나면 물질을 만들어내는 '뮤신'을 이용했어요. 이 물질이 만들어지면 전기 신호가 달라지고, 전기판이 이 신호를 감지해 떫은맛을 알아챌 수 있답니다. 와인이나 덜 익은 감, 홍차 등을 사용해 실험한 결과, 종류에 따라 떫은맛을 구별해낼 수 있었다고 해요.
물컹물컹함, 딱딱함 등 음식의 식감을 구별하는 전자 혀도 있어요. 영국 과학자들은 식감을 느끼는 전자 혀를 만들기 위해 실제 혀 표면의 모양을 똑같이 만들었어요. 연구팀은 3차원 현미경으로 성인 15명의 혀 표면을 들여다보고, 혀 돌기의 지름과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혀에 돌기가 얼마나 빽빽하게 있는지 관찰했어요. 그리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실리콘을 쌓아 올려 혀의 구조를 완벽하게 재현했어요. 이 실리콘 혀에는 음식이 닿을 때 실제 사람 혀와 같은 수준의 마찰 힘이 생겼어요. 그리고 음식마다 그 힘이 달라져 아삭함, 부드러움, 질김 등을 각각 느낄 수 있었어요.
전자 혀는 맛을 시험해볼 수 없는 독성 물질이나 신선하지 않은 음식, 불량품이나 오염 물질을 판별할 수 있어요. 신약 테스트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의료 분야에서는 식도암이나 폐암에 걸리기 쉬운 사람을 찾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답니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