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2:24-34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예레미야 52장은 열왕기하 25장과 내용이 거의 일치합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멸망을 정리하며 예레미야서 전체를 마무리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오늘 24절에서 34절은 마치 마지막 남은 불씨가 바람에 꺼지는 장면과 같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예루살렘의 멸망은 단순히 고대 국가들의 흥망성쇄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거만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우리가 의존하던 세계와 체제의 완전한 파산"으로 해석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허황된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작업 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통해 민족을 이루는 것을 시작으로, 출애굽의 해방, 민수기에서 가나안 정복, 사사기의 구원의 역사, 그리고 왕국의 건국과 성전의 봉헌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대미가 결국 "실패와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긴 역사 속에 인간의 심령은 끝내 죄의 본성에서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긴 서사 속에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성전의 파괴입니다.
3년간의 포위 끝에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안으로 들어왔을 때, 시드기야왕은 성을 빠져나가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제사장과 부제사장 그리고 성전의 문지기를 사로 잡았습니다.
(24-27)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예레미야는 남유다인들의 신앙의 허구성을 고발했습니다.
7장에서 예레미야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불의를 행하고, 도둑질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도 당당하게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신앙이 종교적 행위와 형식으로 대체된 모습입니다.
그들은 심판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니아를 비롯한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바벨론의 멍에를 곧 꺾어버리실 것이며 평강이 임할 것"이라고 한 예언을 믿었습니다(렘 28장).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을 골라듣는 현상을 넘어, 그 이면에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에워싸고 굶주림이 극에 달했음에도, 그들은 끝까지 "성전이 있으니 버틸 수 있다"며 맹목적 적인 믿음 속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성전을 지키다 비참하게 자멸을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단순한 신앙적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신앙이 사람의 죄성과 만날때 일어나는 근원적인 문제 입니다.
그 이후에도 긴 역사 속에 그 형태만 바뀐 채 그 근원적 문제는 재현되었습니다. 지금도 변함 없이 그 문제들은 우리 안에 잠재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의 부조리와 영적 붕괴 앞에서 여전히 종교적 형식과 자기기만의 신앙에 취해 있을 위험이 큽니다. 예레미야의 이 경고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이유입니다.
예레미야는 오늘날 우리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희 자신의 신앙을 맹신하고 있는가?"
예레미야는 성에서 잡힌 포로 한 명의 숫자까지도 세어서 기록합니다.
(28-30)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예레미야 52장의 후반부는 정복된 나라 포로의 수를 남깁니다. 3,023명, 832명, 745명... 느부갓네살이 끌고 간 포로의 총수는 정확히 4,600명입니다. 이 숫자는 본래 바벨론 정부가 관리하던 포로 이송 및 인구 조사 문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학자들은 예레미야 52장의 후반부를 기록한 기자가 바벨론 정착민들을 통해 이 수치를 입수하여 인용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승전국인 바벨론의 입장에서 이 숫자는 그저 노예 장부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잿더미가 되고 남은 것은, 초라한 포로들의 명부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성경이 이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진실을 말해줍니다. 고대 제국들은 정복한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그들을 철저히 무명의 노예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 숫자를 굳이 명시한 것은, '하나님이 끝까지 기억하시고 주목하는 당신의 백성'으로 재정의하신 것입니다. 향후 하나님의 회복 역사를 이어갈 '씨앗'이 보존된 셈입니다.
이것은 치욕스러운 포로의 자리조차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것으로 모두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어 가시고 계십니다. 마치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아직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1-34)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면은 잿더미와 무덤이 아니라, 바벨론 왕궁의 '식탁'에서 끝을 맺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감옥에 갇힌 지 무려 37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인간적인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끝난 세월이었습니다. 다윗 왕조는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새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하여, 왕이 직접 여호야긴의 '머리를 들어 주고', 죄수의 낡은 옷을 벗겨 새 옷으로 갈아입히며, 바벨론의 다른 어떤 왕들보다 그의 자리를 높여 왕의 식탁에서 평생 함께 먹게 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그 영원한 언약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서가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희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죄와 실패로 무너지고, 비참한 현실 속에 바닥을 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죄의 본성을 끊어낼 수 없고, 우리의 의나 열심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철저한 파산 선고를 우리는 개인적으로 경험 합니다. 이 진실을 외면하면 값싼 은혜만 남게 되기에, 이 직면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신앙의 과정입니다.
인간은 신실하지 못했고, 왕도 제사장도 백성들도 모두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이 참혹한 심판이 임했습니다. 현실은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눈을 들어 자신이 속한 유다 사회와 자기 자신의 절망을 넘어, 하나님의 품성 자체를 바라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0절에서와 같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영적 바닥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동족에게 매국노로 손가락질당하며, 성벽이 무너지고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잿더미를 두 눈으로 목격한 선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암흑의 바닥에서 발견한 사실은 "우리가 완전히 진멸되지 않았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상황과 현실은 하나님의 자비를 증명할 수 없지만, 예레미야는 자신의 감정과 눈 앞의 폐허를 근거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폐허의 한 중간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긍휼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다"라는 진실에 자신의 영혼을 닻을 내린 것입니다.
예레미야처럼, 우리의 또한 그 캄캄한 현실 속의 잿더미 위에는 새로운 은혜의 식탁이 시작됩니다. 오늘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무궁하신 긍휼과 인자를 붙들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시고 긍휼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궁하심을 감사합니다. 예레미야가 부르짖었던 죄악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의 말씀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바랍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신실함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성전 안에 들어와 "우리는 안전하다"고 착각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혹시 내 삶 속에도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있던 종교적 형식이나 신앙의 울타리는 없습니까?
2. 내 한계와 죄성으로 인한 '바닥'을 마주할 때, 나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 실상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3. 제국의 장부에 적힌 포로의 숫자처럼 내 삶이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까지 함께하시며 나를 낱낱이 세고 계신다는 사실이 어떤 위로가 됩니까?
4.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여호야긴에게 왕궁의 식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의 변덕스러운 감정이나 눈앞의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무궁하심'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작성 : 조광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