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는 바울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이며 구원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기록한 유언적인
서신이지만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이미 갔다 온 적이 있는 교회에
다른 복음이 들어 온 것을 보고 기록한 서신입니다. 따라서 지적할
것을 지적하는 상대적이며 실제적인 적용이 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은 보존되고 전수되면서
그 시대마다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흐름을 보면 성경이 기록되고 보존과 전수가 되어 땅 끝까지 전파되고 난 후에
전파된 말씀에 대한 계시로 성취되어 갑니다. 바로 사도행전과 로마서의 차이입니다.
로마서는 이미 전파된 말씀에 대한 계시입니다. 이미 로마에 복음이 전해져 믿는
자들이 있었습니다(롬1:8) 그러나 바울은 그가 가야만 그들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롬1:11) 이와 같이 말씀이
전파 된 후에 계시를 가진 복음 전도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견고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 전체는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3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1)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이 어떻게 순수하게 받아들이느냐?
2) 그 뜻을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할 것인가? 진리의 성령에 대한 지식이 중요합니다.
3)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에게도 말씀을 적용시킬 것인가? 하는 겁니다.
말씀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길과 방법, 그 비밀을 알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중요한데 바로 진리의 성령의 임재가 필수선택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역자들에게 요14-16장을 매일 읽으시라고 권면을 하는 이유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술했고, 갈라디아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과 변질된 복음을 비교해서 진술을 했습니다. 따라서
로마서의 주관과 갈라디아서의 객관을 가지고 복음을 제대로 정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성경에 기록한 모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여 받아들일 때가 있고,
본인에게 확정된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 줄 때가 있습니다. 헬라어의 수동태와
중간태와 능동태가 있듯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수용할 때가 있고 자신의 확증을
거쳐 드디어 남에게 나누어 주는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때부터는 전달과정에
오해가 있을까 매우 조심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두렵고 떨었다고 합니다.
로마서는 자신의 개인 구원을 위해서이며 갈라디아서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는데 있어서 복음을 적용할까 하는 측면에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갈라디아서는 복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복음 속에 율법적 요소가 들어 온 것을 지적합니다. 로마서가
율법은 영적인 것이지만 아담 안에 태어난 인간 속에 있는 죄로 인해 마음만
원일 뿐 필연적으로 몸은 율법을 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롬7장)
갈라디아서는 율법의 개념을 행위적인 것 곧 믿음이 아닌 것임을 말합니다.
히브리서는 모형과 그림자, 참 것과 거짓 것을 대칭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히브리서는 영적인 것을 예표하는 것이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견해가 약간 달라 보이지만 원래의 뜻은 같은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율법관은 반드시 행위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특히 4장은 땅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하며 어느 쪽이 참 교회냐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약간 다릅니다. 로마서는 초보적인 신자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줘야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긍정적으로 시작하지만
갈라디아서는 아주 강하게 시작합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서로
비교하고 보완해서 온전한 복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갈라디아서를 다시 정리하여 강해를 해 보려고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는 학자의 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