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편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요절: 6절
내용 관찰
61편은 l-4절과 5-8절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부분은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1)한 간구요, 둘째 부분은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8)한 서원이며, 핵심은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6)는 말씀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언약에 근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압살롬의 반역에 쫓겨나서 멀리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2)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를 드립니다.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그 나이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하고 언약을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왕"은 궁극적으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2:6)하신 그리스도에게로 귀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왕으로 장수케 하사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라'는 말씀은 다윗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다가 그 자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배척당하여 쫓겨난 상황 하에서도 이를 바라보며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부분의 서원에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8)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시면"이란 뜻이 1차적으로는 다윗의 왕위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만, 주목해야 할 점은 4절과 7절의 대조점입니다. 4절은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했는데, 7절에서는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하고 인칭이 ‘나"에서 "저"로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6절의 왕이 궁극적으로 하늘에 있는 참 지성소에 들어가실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합니다. 영원히 주의 장막(성막)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자는(4) 쫓겨난 다윗일지라도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실 분은(7)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며 왕이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5절의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한 기업이 다윗에게는 이 땅에서의 왕위로 주어졌으나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5)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아직 이르지는 못하고, 나타나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이미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그 신분과 지위와 기업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하시면"(8)이 아니고 그리하여 주셨으므로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서원을 이행함이 마땅합니다.
묵상해 봅시다.
61편의 역사적 배경이 무엇입니까?
두 부분의 중심 주제는 무엇입니까?
왕으로 장수케 하사의 구속사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
적용: 찬양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드려야 할 "영원한" 것이지만 서원은 사는 날 동안 "매일"(8) 드려야 함을 명심하십시다.
암송: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8)
제 62 편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요절: 1절
내용 관찰
62편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1상),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2하).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2)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1-2)이 5-6절에서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하고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이 62편의 중심점입니다.
62편에는 탄식도 없거니와 부르짖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사태평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신앙은 탄식보다도, 부르짖음보다도 깊고 높은 신앙입니다.
이 말씀은 불안에 떨고 초조하고 조급하며 마음에 정함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물론 신자들 중에도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l4)에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함은 평안할 때만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일제히 공격해 오고 그를 왕위에서 떨어뜨리려고 온갖 술책을 다 꾀하고 있는 (3-4) 그런 상황에서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합니다.
둘째 부분(5-8)에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함은 꼭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8)고 평상시에도 그러하여야 함을 말씀합니다. 혹자는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정상적인 신앙 자세는 아닌 것입니다.
셋째 부분(9-12)에서는 의지할 것이 못 되는 것들을 먼저 말씀합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9-10)하십니다. 신분의 고하는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9), 남보다 힘이 있다고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그것을 의지하듯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지어다(10) 하십니다. 이러한 것들은 의지할 것이 못됩니다. 연후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11)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구원해 줄 수 있는 권능은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12)하고 응답합니다. 그렇습니다. 권능만 있고 인자가 없으시다면 폭군이 될 것이요 인자는 있고 권능이 없으시다면 무능한 자가 되어서 결코 구원자는 되실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62편에서 하나님은 “나의 구원”(1;2,6,7), “나의 반석(2,6)", “나의 요새"(2,6), “나의 소망"(5), “우리의 피난처"(7,8)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 분이 누구이십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로 오시었습니다. "하나님만"(1,5), "오직 저만"(2,6) 하고 유일 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진실한 신앙이란 환경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1,5)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37:7) 하십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 하십니다.
형제여!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125:1)
하십니다.
묵상해 봅시다.
첫 부분(1-4)의 중심점이 무엇입니까?
둘째 부분(5-8)의 중심점이 무엇입니까?
셋째 부분(9-12의) 중심점이 무엇입니까?
적용: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신앙인 만나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형제가 그러한 사람이 되십시오.
암송: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