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석의 미로]
2022. 11. 16. 글 /지 운
(박산향로 영산석)
(머그잔 영산석)
백제는 무왕12년(612)에 승려들을 통하여 일본의 추고 천황에게 영산석이란 수석을 선물하였는데 이 때 연출기구로 박산향로형 수반을 같이 보낸 일이 있다. 이 영산석(靈山石).이 바로 일본수석의 시효가 된다.
백제문화의 절정기를 이루던 무왕(武王 12(612)년에 일본 땅으로 건너간 관륵(觀勒)이라는 스님은 『일본불교략사(日本佛敎略史)』에 의하면 백제 무왕2(일본 추고 천황 10)년, 그러니까 602년에 처음 일본으로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 세천류 분석 상전인증(日本 細川類 盆石相傳印證)
(日本樹石1968년 2월호)
내용 : 우리나라(일본) 수석의 시작은 인황 추고천황 20년대에 백제국에서 사신이 건너와 역서(歷書)를 헌납할때 그 가운데 박산향로가 포함되어있었다.
그 모양은 상부는 불기(佛器)같고, 속에 향을 채우며 아래쪽에는 배모양같이 되어있어 열탕을 넣는다. 맨 꼭대기에는 분이 있고 그 가운데 영산을 닮은 산이 놓여있다. 일찍이 없던 무류의 명석(銘石)이었다.
<<일본서기>>권 22 그 7년 후 609년에 나라 지방에 ‘아스카사(비조사 飛鳥寺)’가 완공되었는데, 이때 백제의 승려 열한 명이 일본에 들어갔다. 3년 후(612년)에 다시 관륵 스님이 일본에 들어갈 때는 백제의 역본(曆本)과 천문지리서(天文地理書), 둔갑, 방중술 등의 서책과, 선가사상(仙家思想)을 수양하는 데 이용되었던 수석(영산석 靈山石)을 박산향로형수반(博山香爐形水盤)에 올려서 전달하였다고 한다.
자료 출처: 한국애석문화발전연구소
구산(九山) http://blog.daum.net/gusan0579/
첫댓글 <영산석 미로>
구산 장동균 선생의 애석문화 기고문
<영산석의 미로> 제하의 글.
나는 평소에 선생의 애석 정신을 기려왔던 바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
생활 다기 찻잔의 괴목 두껑에 작은 경석을 올려서
현대판 <머그잔 영산석>을 시도한 것이다.
나는 이 머그잔을 늘 곁에 두고 애용하는데
오늘 새벽에 기침하여 머그잔에 커피 한 잔을 타서
영산석 두껑을 덮어 두어 숙성시킨다음
두껑을 열어 조금씩 음미하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산석 미로 애석기를 올리게 되었다.
나는 늘 <생활 속의 수석>을 추구해왔다.
석실을 따로 둔 것도 아니고
그저 서재 탁자 위 몇 군데 생활 기물속에 어울려서
몇 점의 작은 돌과 전 서각작품을 연출하여두고
즐기고 있다.
이 현대판 <머그잔 영산석>도
생활수석의 한 방편이다.
아
오래 전에
부산 구덕산 꽃마을 높은 곳
부산항 푸른 바다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구산 선생 자택의 양석장 서재를 찾아서
오르막 경사로를 헉헉대며 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구산 선생은 잘 계시는지
그때의 동행 석우는 가고 없는데
나 홀로
옛 추억에 젖는다.
(종일농석) 지운.
예. 영산석에 대해서 들은 바 있습니다. 생활 속의 수석 좋은 말씀이네요.
보통은 장식장 등에 연출 전시해놓고 생각날 때 가서 보곤하는데 생활과 함께 수석을 즐기면 더욱 수석 취미 활동이 깊어질 것 같습니다.
커피 향을 맡으며 수석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멋집니다.^^
머그잔 영산석이라
다실이
석실이요
석실이
다실이라
茶香千里
石香萬里네요
역사의현장 잘읽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구산선생의 애석정신을 잘 옮겨주셨군요
좋은 글 잘 음미합니다.
구산 선배님은 오래 전에 부산에서 뵙고 동호인 석실도 방문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코론 때문에 뵈온지 오래 되었는데 80대 중반이시지만 아마도 건강하실 것입니다.
<수석노사>
돌을 사랑하는 수석인들은 대체로 장수합니다.
제가 아는 수석 원로분들이 대개 80수 이상 90수까지 장수하시는 것을 보고
참 애석활동이란게 건강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애석의 기본인 탐석은 물론이고,연출 전시 관람 수석이론과 수석수필 투고 활동
애석사 상고사 연구 , 구체적으로는 좌대 제작, 수반 연출 연구 등
육체적 정신적 활동으로 건강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산 두연 두분 원로분도 수석여로를 함께 하신 평생 지기입니다.
두 분의 성품은 다소 차이가 있어
한 분은 강직, 또 한 분은 유연한 성품으로서
서로의 장단점을 상호 보안해가면서 수석인생길 80고지를 여행중입니다.
구산 노사께서는
수석 연출이론으로서는 정점에 이르렀고
독자적인 우리 상고사 연구로서 재야사학자 반열에 오르신 분입니다.
두연 노사께서는
생불 별명을 얻을 만큼 선불교 사상에 젖어
일평생 돌의 말을 빌려서 공즉시색 설법을 펼치고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두 분은 저의 수석인생 롤모델인 셈인데,
오늘 여기에 구산 선생의 애석사 연구의 한 자락인 <연산석의 미로> 글발을 되살려보고
짤막한 저의 소견을 덧붙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