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느냐?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마음이 잉태되어 자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따게 됩니다.
유명한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은 마음 나름이다. 세상에는 복이나 화가 따로 없다. 다만 생각 여하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성공의 길이 따로 없습니다...... 성공하는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면 성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 행복한 집이 따로 없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중요합니다.
오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으면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마음을 위로부터 우리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하고 인간에게 있어야 할 마음을 우리 마음에 채워주십니다.
사람은 본래 선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 능력 있는 마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행복한 마음을 무한히 가지고 있는 자원이 우리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무가 뿌리까지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고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장 9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고 이사야 1장 4절......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썩어버리고 부패해져 버린 것입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을 부패한 대로 놔두면 안됩니다. 음식물이 부패하면 버리면 되지만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최고의 작품인데 부패한 인간을 그대로 두면 되겠습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 부패한 마음을 고치고 회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시편122편은 법궤를 옮길 때 지었던 노래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던 즉시 영적인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되면 바쁘고 할 일이 많은데 가정먼저 하고 싶은 것은 오벳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옮겨오면서 그렇게 기뻐합니다.(삼하7장)
왕이 되면 기뻐할 일이 많습니다...... 금은보화, 온갖 보화에도 기쁨이 있고 수많은 궁중의 온갖 여인들과 함께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함께 날마다, 날마다 기뻐할 일이 그렇게도 많은데도 다윗은 어디에 기쁨을 두었는가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하여 기쁨을 누리는 일에 다윗은 늘 충만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예루살렘이란 단어가 4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2절 3절 6절에서는 두 번이나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구심점이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도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중심지가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다윗시대 때 이스라엘백성들이 다윗에게 와서 ‘우리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자’고 요청합니다. 이들은 해년마다 절기 때 면 3번 예루살렘에 올라와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와야 하기 때문에 오직 예배를 위해 힘들고 먼 여행을 마다 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시온산 꼭대기에 있었고, 이스라엘은 산에 나무가 없기 때문에 사방 멀리에서도 예루살렘은 보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보이면 아무리 먼 길을 와도 한번에 피곤이 사라집니다. 산을 향해 굽이 굽이 길을 올라가면서 예루살렘에 가까워 질 때 마다 사방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모여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사방에서 모여온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마음이 더욱 설레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도시에 들어가 보니까 예배드리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데,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흥분이 되고 설레이고, 기대가 커지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유월절때면 예루살렘에 100만명이 모인다고 하니까 인산인해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만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으면 예수님의 가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왔는데 이때가 예수님 12살 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의 부모과 예수님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절기 때는 예루살렘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이제 1절을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오는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알 수 있습니다.
1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다윗은 고백입니다.
성도여러분!!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높든지 낮든지, 있든지 없든지 교회인 아버지 집을 중심해서 아버지 집에 올라갈 때 기쁨이 있습니다. 임금이 됐든지 가난한 농부가 됐든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 집으로 향하여 가야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 기쁨이 아닙니다. 아버지 주시는 기쁨은 영적인 기쁨, 마음의 기쁨, 영혼의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는 위대한 민족이 되려면 아버지가 계시는 성전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성전은 올라가야 곳입니다. 내려가는 곳이 아닙니다. 집으로 가는 것은 내려가는 길입니다. 세상으로 가는 것은 내려가는 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가는 길은 내 영혼이 올라가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또한 1절에 보면 아버지 집은 올라가자고 서로 말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해야 되고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얘들아, 오늘 아버지 집으로 가자, 예배드리러 가자. 부모님 아버님 여보 아버지 집으로 갑시다, 집사님 오늘 아버지 집으로 나갑시다, 이렇게 말 한마디 라도 하고 함께 나오는 예배는 우리에게 갑절의 큰 기쁨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집으로 올라갑시다. 성전으로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성도의 영혼은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나라 최근역사를 보면 5년, 내지 10년 만에 한 번씩 국가적인 큰 기쁨이 올 때가 있었습니다. 국가의 큰 행사가 있으면 춘천 막국수 집은 막국수를 온 동리에 그냥 주고, 냉면 집은 냉면을 막 다 주면서 온 나라가 다 기쁠 때가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갈 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은 그 날로 끝납니다. 또 오지를 않습니다. 요즘 그런 기쁨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기쁨은 잠깐의 기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먹는 기쁨, 보는 기쁨, 육신의 기쁨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 영혼의 기쁨은 샘솟는 기쁨, 능력 있는 기쁨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2절입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내 성문 안에 섰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발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십시다. 성전,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서는 그 발걸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성전 밖에 있는 발걸음이 많습니다. 교회에 설령 나온다하여도 발이 밖에 있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에도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으로 들어오라, 하물며 내 발걸음이 하나님의 성전 문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것은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저도 성전 문, 아버지 집 문 열고 확 밀고 들어올 때 제 영혼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어요!! 이것은 성전 밖과 1미터 차이뿐이 나지 않지만 성전 안 밖은 그 차이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이것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도피성처럼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천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성전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내 발걸음이 하나님의 성전 문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입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 되었도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보고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아름답습니다. 잘 지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서 아름다운 것 아닙니다....... 사람이 이렇게 있어서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아름답습니다. 할렐루야!! 요즘 우리나라도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시대가 열려 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돈 많이 들어 건축하는 것 원치를 않습니다만 그러나 교회역사에 남을 만한 교회들도 필요하면 짓겠지요 그러나 보이는 성전보다 내 안에 성전을 사랑하는 이런 마음, 아름다운 마음이 내 안에 먼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베드로 성당입니다. 로마에 있는 그 성전을 따라갈 성전이 없습니다. 국가의 힘으로 100년 동안 지었으니 말입니다. 한번 예배드리는데 10만 명이 들어가서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는 이 자리는 가히 앞으로도 수천억을 들일지라도 이 짓는 방법 자체를 모른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작품을 설계를 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들여도 100년 동안 지은 이 성전을 이제는 지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세계적인 성전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과 같은 또 아름다운 성전이 러시아에도 있습니다. 러시아 “ 피터스버그”에 있는 교회인데 이 성전은 전부 보석으로만 지었습니다. 기둥 전체가 다 보석입니다. 얼마나 보석이, 기둥 하나 그냥 문틀 하나만 뜯어도 모두 몇 억입니다. 건들면 몇 억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마디로 아름다움에 극치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지었을 정도로 러시아가 한 때는 예수를 잘 믿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답운 성전을 지었지만 마음의 성전안에 보화가 없으니 지금은 여행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지금은 그 민족이 복을 못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잘 지어야 하지만 내 마음이 성전을 사모하는 이 아름다운 보화, 하나님 사랑하는 이 믿음의 보화가 내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불행이나 부끄러움, 좌절이나 실패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하나님의 성전에 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파입니다, 12지파입니다. 선민의 백성 택한 사람만이 옵니다. 성전은 누구나 사모하거나 누구나 찾아오는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하나님의 지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곳이 성전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왜 나오느냐? 성전에 왜 우리가 나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감사하기 위해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날마다 천 가지, 만 가지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00:4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라고 감사로 찬양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향해 베풀어주신 은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 축복, 그리고 나의 미래 영원히 나의 길을 인도하실 소망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감사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전에서 잠자던 내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영혼이 살아나고 새로운 심령으로 예배드리고 감사하는 순간 내 영혼에는 새로운 바람, 성령의 바람이 불어나서 모든 생명이 정신적인 이 능력 있는 생명들이 살아나는 줄로 믿습니다. 5절입니다.........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 예배의 대상으로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정치적인 하나님, 통치자의 보좌가 바로 성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심판대 앞에서 대통령부터 보좌하는 참모진 경영진이르기 까지 특권심판대 채찍 앞에 두 손이 묶인 채로 줄줄이 나오고 증인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거 하나만 놓고 보아도 심판의 회오리가 겨울 찬바람 앞에 무섭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심판의 보좌앞에 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도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적인 중심지뿐만 아닙니다. 모든 정치에도 중심지입니다.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전에 나오는 사람은 길이길이 다스리시고 우리를 통치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성도의 길을 영원히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6-8절......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평안을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예루살렘 성전이 평안하고 형통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자신이 편하려고 기도하고 자신이 잘 살려고 우상 앞에 나가 빕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 성전이 평안하고 형통하기를 늘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의 첫째가 아버지 집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치 상수원과 같습니다. 아버지 집이 잘 되면 그 물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가 퍼서 먹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누가 잘 되느냐?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이 평안하면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모두 잘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너무 자기 집이 평안해야 되고 교회를 흔들어 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해서 소히 교회를 해방 놓는 안티들이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흠잡을 것이 없나 두리 번 두리 번 하다가 작은 티끌이라도 있으면 부풀려서 교회를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교회를 온갖 뉴스에 나오게 합니다.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교회이기에 대통령도 나와 예배드리고 하는데 왜! 아버지 집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는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아버지 집을 그렇게 합니까? 아버지 집이 잘 되어야 자신이 잘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아버지 집의 평안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항상 여러분이 형통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선해서 사는 사람은 그 나라, 그 민족이 잘 됩니다. 영적으로 아버지 집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 높이는 민족이 잘 됩니다.
지상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 제일 살고 싶은 나라, 가장 행복한 나라는 스위스가 아닙니까? 스위스는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 나라 법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운 나라, 이렇게 1조가 바로 그렇습니다. 헌법 첫째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역사를 아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스위스는 종교개혁자 칼빈이, 제네바가 칼빈의 종교개혁이 있던 곳입니다. 칼빈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대로 하나님, 성경 그대로 나라 건설한 오리지널이 바로 스위스입니다. 얼마나 그 나라가 복을 받습니까?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그 나라가 수 백 년 동안 얼마나 형통합니까?
세계 제일 부자나라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모두 스위스 은행에 맡깁니다. 여러분은 돈이 없어서 그것을 몰라서 그렇지 돈 벌어 보십시오. 돈 벌면 모두 몇 억 불 가진 세계 부자들 국가 모두 이 부자들은 전부 스위스에 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의 국제기구가 제일 많은 나라, 세계 평화를 위해 사는 나라가 스위스입니다. 스위스에 국제기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UN 본부도 스위스에 있습니다. 제네바에 있습니다. 세계 무슨 보건기구, 아무튼 국제기구 모두 거기에 있습니다. 잘삽니다.
중공업 하나 없어도 시계 하나 만들어도, 이 시계 하나가 수만 불씩 합니다. 미국과 일본, 독일이 그렇게 잘 살아도 스위스 시계를 못 따라갑니다. 일본이 스위스의 시계 따라가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일본이 카메라 렌즈는 독일 것 뺏어왔습니다. 독일 다 따라갔습니다, 미국 뭐 따라갔지만 시계는 어느 민족도 스위스를 따라간 민족이 아직 없습니다. 시계 하면 스위스입니다. 제일 시계 스위스제입니다. 결혼 예물도 스위스제를 사야 괜찮습니다. 스위스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어디에서 왔느냐? 하나님을 첫째로, 성전 중심, 그 민족의 생각이 그 민족을 평화의 나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평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가정에서도 평안이 없습니다. 싸우고 불평하고 불만이 일어납니다........ 가는 곳곳 마다 부딪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참 평안은 성전을 통하여 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놀라운 축복, 놀라운 능력, 인간이 가져야 할 이 아름답고 위대한 이 생각들은 성전에서 나옵니다.
주의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다윗과 같이 성전 중심의 삶을 평생 살아가면 다윗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쁨을 누리는 성도에게 9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내가 너를 위하여 구하는 복이 어디서부터 입니까?..... 여호와의 집 교회임을 믿으십니까?
2017년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우리 주향교회로 통해서 반드시 복을 받아야합니다. 아버지의 집..... 여호와의 집..... 주향교회로 통해 우리성도님들의 삶의 안식처가 되고 평안이 되어 기쁨을 누리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