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이 생질을 고발했다.
큰외삼촌인 류 진사가
막내 여동생의 아들 이 초시를 패륜아로 몰아세운 것이다.
사또 앞에서 류 진사가 부르르 살점을 떨면서
생질에게 삿대질을 하자
열아홉살 이 초시는 고개를 떨군 채 한숨만 토했다.
류 진사의 격정적 토로는
스무해 전으로 돌아간다.
양반 대갓집 류씨네 막내딸 류실이가
뼈대 있는 집안 이씨네로 시집갔다.
그러나 새신랑은 신혼의 단꿈도 깨지기 전에 드러눕더니
속절없이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신부 류실이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헛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유복자를 낳았다.
바로 지금의 이 초시다.
청상과부 류실이는
금이야 옥이야 유복자에게 온 정성을 쏟았다.
한눈팔지도 않았다.
가끔 냇가에서 빨래를 할 때
매파가 다가와 은근슬쩍 떠보았지만
류실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돌아섰다.
류실이는 유복자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서당에서 다른 학동들이
<사자소학(四字小學)>이나
<동몽선습(童蒙先習)>에 매달려 있을 때
유복자는 사서(四書)에 빠졌다.
유복자가 책씻이를 할 때
류실이가 떡을 해서 서당에 가면
훈장은 유복자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했다.
서당은 고개 넘고 개울 건너 4~5리나 가야 했지만
유복자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어린 나이임에도 효심이 가득했다.
유복자는 열일곱에 소과에 붙어 이 초시가 됐다.
류실이의 재촉에 유복자 이 초시는
곧 신부를 맞아들였다.
“저놈이 제 어미를 그렇게 모시더니
장가를 가자 색시한테 빠져서 어미를 내쫓은 거요.
사또 나리, 저 불효막심한 놈을 벌하시고
그 어미를 찾아주십시오.”
막내 여동생이 시집가자마자
청상과부가 된 게
항상 마음에 걸려 가슴 아팠던 류 진사가
사또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동헌 마당이 꺼져라 한숨만 토하는 이 초시에게
사또가 물었다
. “어미를 쫓아냈느냐?”
“아닙니다.
소인이 어떻게 제 어미를 쫓아내겠습니까!”
“그럼 제 발로 집을 나갔느냐?”
“모르겠습니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던 이 초시가
모깃소리로 대답하자
사또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봐라. 이놈에게 곤장 열대를 벌하고
옥에 가두어라.
” 엉덩짝이 피투성이가 돼 걷지도 못하는 이 초시를
옥졸들이 양 겨드랑이를 잡아 질질 끌어 옥에 넣었다.
사또의 명을 받고
이방이 포졸을 시켜 사람을 찾는다는 방을 붙였다.
류 진사도 하인들을 풀어
막내 여동생을 찾아 나섰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매화 꽃잎이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는 어느날 밤.
동헌 난간에 기대어 달을 쳐다보며
자작을 하고 있는 사또 앞에
잠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찾아왔다.
“쇤네는 옥에 갇혀 있는 이 초시의 안사람이옵니다.”
사또의 주기(酒氣)가 달아났다.
“체면이다,
가문의 명예다,
자존심이다 모든 걸 던져버리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제가 사또 나리 앞에서 모든 걸 털어놓은 걸
제 신랑이 알게 되면 저는 쫓겨나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침을 한번 꼴깍 삼켰다
. “쇤네가 이씨 가문에 시집와 차린 신방은
시어머님이 거처하시는 안방과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건넛방입니다
. 그런데 저희가 밤일을 치를 때마다
시어머니가 마루로 나와 건넛방에 귀를 기울이고는
안방으로 돌아가 흐느껴 우셨습니다.”
여인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시작했다.
“시어머님 친정은 양반 대갓집 류씨 집안이고,
시집은 양반 이씨 집안으로
앞집 뒷집이 전부 가까운 친척입니다.
게다가 저희 친정도 그놈의 양반 집안입니다.
친정과 시집이 양반 집안인 것도 모자라
사돈집도 양반이니
시어머님은 감히 재가할 엄두를 못 냈지요
. 시어머님 연세가 이제 서른여섯입니다.”
여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 “시어머님은 보쌈을 당해서
서른여덟 홀아비 훈장님께 갔습니다.”
사또가 철철 넘칠 정도로 술을 부어 단숨에 마셨다
. 여인이 말을 이었다.
“보쌈을 꾸민 것은 쇤네의 신랑 이 초시이옵니다.”
그 말에 사또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천하의 효자로다.
여봐라.
이 초시를 당장 풀어주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