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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 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일이 무엇이냐? 일은 동력, 즉 움직이는 힘입니다.
일용사日用事, 즉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이냐? 우리는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추우면 옷을 입고, 배고프면 밥을 먹습니다. 이것이 날마다 하는 일입니다.그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돌아다니고, 서 있고, 앉고, 눕고 하는 모든 것이 일용사입니다.이 일용사는 중생이나 성현이나 불보살이나 똑같습니다.『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공양 시간이 되자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서 음식을 빌어 와서 잡수시고, 다 잡수신 후 정리해 놓고 앉으셨습니다. 이것이 일용사입니다.여기에는 더한 사람도 없고, 덜한 사람도 없습니다. 벗어날 수 없고, 아무 허물도 없습니다.이 일용사만 하는 사람은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이 없다는 것은 이 일용사만 한다는 말입니다. 밥 먹는 일, 움직이는 일, 오고가는 일, 잠자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그런데 일이 있는 사람은 이것 외에 망상을 합니다. 망상은 근심걱정입니다.밥 먹어도 근심걱정, 잠을 자도 근심걱정, 돌아다녀도 근심걱정, 죽어도 근심걱정, 살아도 근심걱정을 합니다. 항상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한평생을 보냅니다.이런 사람들은 유사범부有事凡夫, 즉 일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일이 없는 사람[無事凡夫]은 요사범부了事凡夫라고 합니다.
요사범부는 근심걱정을 다 마쳤기 때문에 일이 없습니다. 근심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심걱정을 안 하는 요사범부를 도인道人이라고도 합니다. 죽어도 근심걱정 없고 살아도 근심걱정이 없고,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는 것이 요사범부입니다.
근심걱정은 무엇이 있고 없고 죽고 사는 일용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으로부터 나옵니다.
망상을 다른 말로 하면 번뇌입니다. 번뇌망상에서 근심걱정이 나오는 것이지, 무엇이 있고 없고, 죽고 사는 것 때문에 근심걱정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일이라고 하면 일상생할을 하는 일용사와 안 해도 될 생각을 계속해서 고통을 받는 망상사妄想事가 있습니다. 이 망상사에서 벗어나는 게 해탈입니다.
망상사에서 벗어나면 일체 일용사가 전부 해탈입니다. 밥 먹는 것도 해탈이고, 잠자는 것도 해탈이고, 태어나는 것도 해탈이고, 죽는 것도 해탈입니다. 망상으로 걱정이 생기고, 망상으로 슬픔이 생기고, 망상으로 괴로움이 생깁니다.
도가 높아지면 근심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죽을 때도 근심걱정이 없고, 살 때도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흐르는 물이나 구름이나 바람을 보고 "너 무슨 고민이 있니?" 하고 한번 물어 보십시오. 사람이나 구름이나 물이나 바람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몸이 바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구름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물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만 하나 다른 것이 있으니, 근심걱정하는 것만 다릅니다. 근심걱정은 허망한 생각에서 왔으니까 그것을 없앨 생각을 하지 말고, 허망한 마음을 돌아봐서 그것이 맑아지면 근심걱정은 하려야 할 수가 없습니다. 어른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꿈에서 깬 후에 다시 꿈꾸지 못하는 것처럼, 망상심이 사라진 후에는 근심걱정을 하려야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근심걱정 없이 사는 요사범부입니다. 성현이 아니고 그냥 범부인데, 근심걱정 하지 않고 사는 범부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망상이란 무엇이냐? 끊임없이 구하는 마음입니다.
애취심愛取心, 즉 좋아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망상입니다.옛날 시골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똑같이 보는 TV가 있었습니다. 밝은 달이 TV입니다. 그 달을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이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때 그 시절엔 TV도, 아나운서도 참 멋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똑같은데도 아주 굉장했습니다.그 옛날 아나운서가 해 준 이야기입니다. 조선의 어느 왕 때,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진실한 말으 하면 움직이고, 거짓말을 하면 안 움직였답니다. 그래서 그 버드나무를 보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왕과 중전, 그리고 신하 중에서 제일 높은 영의정이 그 나무 앞에 갔습니다.제일 먼저 왕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비록 조선의 왕이지만, 나는 저 넓은 중국의 천자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버드나무가 설렁설렁 움직였습니다. 중전도 속에 있는 말을 해 보라고 하니까 중전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비록 조선 여자로서는 가장 높은 지위인 내명부의 수장이지만, 나는 중전보다는 왕에게 사랑받는 후궁이 되고 싶다. 매일 밤마다 찾아와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또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움직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의정이 머뭇거리다가 말합니다. "말씀드리기 참 송구합니다. 내가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영의정이다. 나도 한번 조선의 왕이 돼서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 평소에 이런 말을 하면 역심을 품었다고 목이 날아갑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버드나무가 또 설렁설렁 움직였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엄청난 철학과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이 사람들의 소원대로라면 다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합니다. 왕은 중국의 천자가 되고 싶고, 중전은 사랑받고 싶고, 영의정은 왕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중국이 천자가 되면, 사랑받는 후궁이 되면, 영의정이 왕이 되면 더 이상 구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영원히 구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망상으로 구하다가 죽고, 찾다가 죽습니다. 그래서 현재 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나한테 없는 것만 계속 찾다가 가는 것입니다. 현재 편안해도 그것을 모르고 앞을 걱정하다가 죽습니다. 마치 종기가 나면 어쩌나 걱정하며 멀쩡한 살을 미리 긁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이것이 아주 심각합니다. 아이들은 편안하게 잘 노는데 부모님들이 걱정하느라고 아이들을 달달 볶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부모님의 말씀 들어서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버지 말씀대로 왕을 했으면 얼마 안 가서 목숨도 다 잃고 나라도 망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버지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걱정도 안 돼냐?" 그런 말 절대 하지 마십시오. 걱정할 줄만 알지 살 줄 모릅니다. 목마를 때 물 마시고, 올 때 오고 갈 때 가고, 할 일 있으면 하고 없으면 쉬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용사입니다. 그 외의 근심걱정은 전부 허망한 생각에서 옵니다.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을 쓸데없이 구합니다. 조선의 왕으로 살면 되는데 왜 천자가 되려고 하고, 중전으로 살면 되는데 사랑받는 후궁이 되려고 하고, 영의정으로 있으면 되는데 왕이 되려고 그 난리를 치느냐 말입니다. 요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전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시간에도 휴대폰만 들여다봅니다. 집에서도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 하고 게임만 합니다. 게임에서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떻습니까?
또 지하철 광고판에 '성형 전, 성형 후' 이 따위 사진이 많습니다. 성형 전 얼굴을 성형 후로 바꿔 놓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성형한 얼굴을 보면 거의가 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전부 성형을 하면 한국 사람들이 다 똑같아질지도 모릅니다. 성형이 아니라 근심걱정이 없어져야 달라집니다. 장기를 두다 보면 장기판이 세상살이와 똑같습니다. 이기느냐 지느냐 그 순간은 심각한데 딱 판을 엎어 버리면 이기고 지는 것이 없습니다. 바둑을 둘 때도 죽느냐 사느냐 심각하지만 딱 엎어 버리면 그저 흰알 검은 알일 뿐입니다. 이 근심걱정이라는 것은 순전히 망상에서 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다가 죽는 것이 이것 하며 살다 죽으나 저것 하며 살다 죽으나 똑같습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계획은 또 얼마나 세웁니까? 죽고 사는 게 전부 일용사입니다. 하는 일 중에는 태어나는 일도 있고 죽는 일도 있고 다 있습니다. 사는 것만 일용사가 아닙니다. 왜 꼭 안 죽어야합니까? 안 죽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무조건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은 망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100살이 넘었는데 기어코 더 살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반면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을 망상사라고 합니다. 망상 때문에, 근심걱정 없는 세상에서 근심걱정 하며 살아갑니다.
요사범부了事凡夫라는 말은 중국의 방거사龐居士?~808라는 분이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몸을 부처님 얼굴처럼 꾸며 내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에 근심걱정이 없어지는 것이 도道입니다.지족知足, 만족할 줄을 알면 범부가 아닙니다.그러면 어떻게 만족하느냐? 그냥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구하면 모자라고 구하지 않으면 모자람이 없습니다. 지금 삶으로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200살을 살아도 더 살아야겠다고 구하면 만족이 안 됩니다. 만족할 줄 알면 범부가 아닙니다. 방거사는 도인이라 이런 법문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여여如如하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여여하다는 것은 마음이 망상 근심을 일으키기 전 그 본래 마음과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본연평상심本然平常心, 즉 마음이 구하는 생각을 일으켰다든지 다른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은 평상심을 가지고 있으면, 바깥 대상 세계도 본연평상입니다. 내 마음이 망상을 일으키면 세상도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고, 내 마음이 본연평상심이 되면 저 바깥세상도 본연평상의 대상이 됩니다.
이 세계란 완전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하게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죽는다고 서러워하거나 산다고 좋아할 것이 없습니다. 완전하게 없는 것도, 완전하게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입니다.
무엇 하나 이루어지면 그것이 천년만년 갈 것 같고, 없어지면 큰일 날 것 같지만 다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생긴다고 해도 거기에 목을 매지 말고 없어진다고 해도 거기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는 데 얽매이지 말고 죽는 것도 싫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고 죽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순전히 망상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할 이유가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는 그걸 왜 좋아하느냐?"라고 합니다.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냥 좋아하고 그냥 싫어하는 것입니다. 망상으로 싫어하고 망상으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있는 게 없고 없는 게 없습니다. 이 없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건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 있는 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을 외우기만 하면 좀 부족합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입니다.
그러니까 방거사가 말했습니다. "유역불관有亦不管 무역불구無亦不拘 불시현성不時賢聖 요사범부了事凡夫." 있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없는 것에도 매이지 않으면, 현인이나 성인이 아니고 일을 마친 범부입니다. 여기서 요사범부가 나옵니다. 그래서 도를 닦으면 근심걱정을 다 마친 요사범부가 됩니다. 우리가 근심걱정 하는 것은 전부 내 어리석음과 망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무지와 내 욕구, 내 망상, 내 번뇌에서 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릅니다.
경봉 큰스님께서 "하찮은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고 법문하셨습니다.
'하찮은 마음' 은 달리 말하면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던 분이 보광전 선방에서 참선하다가 망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내일 부산에 가야 하는 데 차비가 있는지 걱정이 돼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세어 봅니다. 이런 것이 하찮은 마음입니다.
내일 확인해도 될 텐데, 생각이 떠올라 거기에 딸려 가니까 망상입니다. 눈앞에 보이면 보이는 데 딸려 갑니다. 그게 망상입니다. 보여도 딸려 가지 않으면 지혜입니다.
생각이 억만 번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딸려 가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도 내버려 두면 됩니다. 저 앞에 온갖 게 다 보여도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됩니다.
불관不管이면 평상平常입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종종 "내가 저 꼴을 안 봐야 된다."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멀쩡한 눈을 왜 감습니까? 눈 뜨고 보되, 관계하지 않으면 됩니다. 생각이 일어날 때 더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좇아서 생각하지 않고 막념莫念을 하면 억만 번 생각이 일어나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평상심平常心을 가지는 묘법妙法입니다.어떻게 생각이 안 일어납니까? 억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도 그 일어나는 생각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해결됩니다. 눈 감지 말고 보고 듣되 관계하지 말아야 합니다.단풍으로 유명한 오대산에 가서 단풍은 보지 않고, 기암괴석이 많은 금강산 만폭동에 가서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앉아 있습니다.오대산이나 금강산은 단풍이나 기암괴석을 보러 간 것 아닙니까? 거기 가서 보되, 거기에 집착한다든지 연모하는 마음을 갖는다든지 하지 않으면 평상심입니다.막념莫念공부가 있고 불관不管공부가 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것에 관계하지 않고 자기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되짚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막념 공부입니다.그러면 심여즉시좌心如卽是坐라, 마음이 여여하여 평상심을 가지면 그것을 앉는다고 합니다. 몸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항상 여여하게 본연평상심을 가지면 그게 앉는 것입니다. 경여즉시선境如卽是禪이라, 경계가 여여하면 그게 바로 선禪입니다.방거사는 무엇을 보더라도 거기에 관계하지 않는 것이 선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도 거기에 따라가지 않는 게 좌坐입니다. 그렇게 되면 화중련火中蓮, 즉 불 속에 핀 연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근심걱정 하고 사는데, 이 사람은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 희귀한 것이 불 속에서 핀 연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불가사의하고 희귀하다는 뜻입니다.
鼻孔遼天 비공료천
兩脚着地 양각착지
欠少什麽 흠소습(십)마
欠少什麽 흠소습마
콧구멍이 저 멀리 하늘과 통하고
두 다리가 땅을 디디고 있다.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도사 아미타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