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이 스미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근질거린다. 어디 쉼이 있는, 아니면 낯설어 마음 더 설레게 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다. 무한경쟁시대에 살면서 지친 우리이기에 간절함은 더하다. 어디 고단한 몸을 재충전하면서 탐욕으로 얼룩진 마음을 내려놓고 올 수 있는 아늑한 휴식의 땅 없을까?
무릇 여행이란 내가 익숙한 곳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던 곳에서 일탈하는 행위다. 하지만 나를 가두고 있던 벽을 넘어 나서 보라! 안식을 찾기보다 덤벙댐으로 인해 당하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을 터.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 젖히게 하는 쉼터를 표시한 지도란 없다. 마음의 나침반을 따라,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을 내딛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는 의미다. 해서 유명인사들이 추천하는 여행지를 통해 실패와 후회 없는 떠남의 힌트를 얻어 보자.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 듬뿍”
제주도·설악산·완도·피지 채시라 배우 겸 탤런트나는 드라마나 영화가 끝날 때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항상 발길은 먼저 제주도 쪽으로 향하는 것일까? 넓게 펼쳐진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부는 바람…. 여기에 맑은 날씨에 따뜻한 햇살마저 내리쬔다면…. 아! 살아 있는 느낌 그 자체다.
특히 산방산휴게소에서 10여 분 걸어 내려가 만나는 수려한 용머리 해안의 절경! 수천만 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 해안에 부닥쳐 부서지는 파도의 오묘함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아니면 설악산이다. 울창한 숲과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노라면 도시의 거친 삶에서 쌓인 피로가 씻기는 듯하다. 굳이 정상을 밟지 않아도 좋다. 멋진 경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를 떠올리며 되새기면 그만이다. 하산길 켄싱턴호텔에서 머무르는 하룻밤은 어떤가? 여기에는 스타들의 이름을 딴 객실이 있는데, 나에게는 내 이름자가 붙은 ‘채시라 객실’이 주어진다. 내가 제공한 것도 있지만 다 어디서 구했는지…. 데뷔 초부터의 자료와 사진, 소장품이 전시돼 있어 느낌이 남다르다. 내 지난 연기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완도 또한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의 섬이다. 드라마 <해신>의 촬영지로 인연을 맺은 후 지금은 그 옛날 소년 장보고가 꿈꾸었던 세계 제패의 호연지기를 함께하는 매력에 파묻힌다. 소박하면서도 신비감이 깃든 섬 완도! 구계등에서 보름달이 뜨는 밤, 달빛과 하얀 파도가 연출해 내는 흰 물보라는 가히 환상적이다. 그 섬에 갔다 온 후 며칠 동안은 다도해에 펼쳐진 그림 같은 곳으로 돛을 올리는 꿈만 꾸게 될 정도니까. 완도의 또 다른 매력 하나는 생선회다. 세계적인 청정해역에서 갓 잡은 싱싱한 자연산 놀래미와 감성돔 맛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쳐 몸을 오그라들게 하는 계절이라면 남태평양의 진주 피지로 떠나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피지는 자연환경뿐만이 아니라 문화가 다양한 도시로 이슬람사원·성당·교회·문화센터 등이 함께 공존해 좋다. 여기에 스노클링이나 카누·바나나보트 등과 함께하는 바닷물놀이는 얼마나 즐거운가? 물살이 높지 않을 때 맛볼 수 있는 패러세일링 등 해양스포츠는 더 매력적이다.
“붉은 흙에서 자라는 보리 그 소박함 또 보고 싶어”
함평박정자 연극인나는 연극배우다. 배우라는 직업은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통찰력과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은 눈,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신념이다. 누구도 이런 경지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그러한데, 여행을 통해 이것을 배우고 체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데서 통찰력과 이해심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함평의 인상을 잊지 못한다. 3년 전쯤 보리가 막 자랄 때 거기 간 적이 있? 붉은 흙에 파란 보??자라고 있고, 하천에는 작은 쪽배가 다니고 있었다. 또한 유채꽃을 비롯한 야생화들의 모습에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연상은 당연히 어린 시절로 치닫고….
이 때문인지 자연과 더불어 사는 함평사람들의 자연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사람 손때 묻지 않은 곳에서”
울릉도·봉평·크라이스트처치·멕시코 조세현 사진작가사진을 찍을 때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는 곳에서 촬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의 섬이 바로 그런 곳이다. 그러나 요즘 섬들은 이름만 섬이지 다리로 연결되어 실제로는 육지와 별다름이 없다.
울릉도! 육지와 연결된 다리도, 공항도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섬의 신비를 간직한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그래서 울릉도에 가면 마치 이상세계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울릉도는 해안과 해상에 자연이 만들어 놓은 기암절벽의 섬이다. 돌이 빚은 가지각색의 형상을 보노라면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소박한 산골마을이 그립다면 메밀꽃이 피는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에 봉평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설가 이효석이 학창시절 아침 저녁으로 오르내리던 고갯길과 개울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봉평의 장터가 그렇고, 대화로 넘어가는 고갯길 그리고 강가의 물레방아 역시 마찬가지다.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 금상첨화다. 도둑이 들지 않아 대문을 열어놓고 다닐 정도라니 그 훈훈한 인심이 되새겨진다.
가끔 산이 그리워질 때면 가야산을 찾는다. 고향과 멀지 않은 때문인지 유년시절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어 좋다.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옥양봉·일락산·수정봉·상왕산 등의 봉우리 배치가 절묘해 마치 학이 나래를 펼치고 창공을 나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정상에서는 서해바다가 아련하게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하다.
해외촬영을 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다. 에이번 강이 흐르고 도시 곳곳에서 영국산 우람한 나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포근함이 이를 데 없다. 또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영국식·고딕식·식민지식 등의 각기 다른 건축양식을 접할 수 있고, 웅장한 건축물과 우아한 공원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풍치 역시 매력적이다.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또한 잊지 못한다. 북극권에 가까워 겨울에는 밤이 길지만 초여름에 체험하는 백야의 이국적 풍경은 정말 특이하다. 그리고 멕시코! 태양과 정열의 나라, 마야와 아즈텍 문명과 스페인 문화가 복합된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 산악에서부터 사막과 정글 그리고 아름다운 해안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나라….
멕시코에 대한 이런 수사는 과장이 아닌 것 같다. 휴양지의 화려함과 동시에 경외심을 자아내는 고대 도시가 있고, 눈 덮인 화산을 따라 내려가면 소나무 숲과 사막 그리고 시원한 해안까지 모든 것이 한 나라 안에 모여 있으니 말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라틴음악의 리듬과 라틴미술의 색조가 보여 주는 특유의 느긋함이 멕시코인들의 모든 고뇌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 되새기며…”
한라산·내소사·두만강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국민의 파수꾼’ 역할은 뿌듯함을 주기도 하지만 시련과 아픔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내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한라산 정상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던 기억을 더듬는다. 한라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설경이다. 설경을 보면 그 순수함에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서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변산반도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지나온 시간과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중국의 팡촨(防川)에서 백두산까지 두만강변을 종주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길 왼편으로 회령·무산을 바라보며 차를 달리다 폭이 1m 이하로 좁아지는 두만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며 분단의 아픈 역사를 뼈아프게 느꼈다. 아니 한반도를 가슴에 새기는 기회라고 함이 옳을지 모른다.
딱 한 번 가 본 중국 윈난(雲南)성에 있는 리장(麗江)도 가슴에 남아 있다. 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리장에는 고성(古城)이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한국의 하회마을을 생각하면 되는데 규모는 리장 고성이 훨씬 크다. 현재도 나시(納西) 소수민족이 고성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내가 머무른 숙소 옥상에 노을을 보러 올라갔다. 탁 트인 곳에서 보니 나지막한 기와집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온 시가지가 기와로 가득하니 나지막하게 노래하듯 출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두 번 울었다. 우선 너무 아름다워서 울고, 또 한 번은 우리는 우리 문화를 왜 이렇게 보존하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저절로 닿는 발길”
속초(설악산·대포항)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예나 지금이나 나는 에너지자원 문제, 나아가 한국 산업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가끔은 나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음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묘한 아이러니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공적·사적 임무 수행에 몸과 마음을 던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휴가랍시고 어디를 본격적으로 떠나기도 쉽지 않다. 일은 차치하고 나 자신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탓일 터다. 그런데 어떤 때는 곧장 쓰러질 것 같은 업무 스트레스가 엄습한다. 이때야말로 잠깐의 휴식이 명약 아닐까?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속초로 길을 떠난다.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속초는 내게 늘 신선한 자극제로 다가선다. 설악산의 위용과 넉넉함,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겨울바다…. 게다가 대포항의 왁자한 생기를 벗 삼아 먹는 회 한 접시의 맛이란?
특히 신년 해맞이 때 힘겨운 야간등반 후 맞는 동해바다의 일출 광경을 잊지 못한다. 얼마나 장엄한가? 거기서 나는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군더더기 생각들을 떨치고 빈자리에서 다시 뛰어야 한다는 꿈과 소망을 담아 돌아온다.
삶이 지치고, 그래서 생기의 근원을 찾고 싶을 때 속초는 내게 항상 그립다.
“파도·계곡물 소리에서 꼴찌의 아픔 잊는다”진해·웅산·한산도 감사용 국제디지털대 야구감독나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 경험한 고향 진해 앞바다의 거침없는 파도를 그리며 산다. 야구에 대한 꿈도 파도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만년 꼴찌팀 삼미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시절까지….
나는 한 번도 ‘국가대표’나 ‘실업야구’ 선수로 뽑힐 만큼 뛰어난 야구선수가 아니었기에 무수히 실망과 좌절에 빠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진해의 바다를 떠올린다. 파도가 친다. 파도소리가 귓전을 울린다.희미해진 꿈을 다시 되살린다.
요즘에도 가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면 고향 근처의 바다를 찾는다. 마치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외도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꿈꾸는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섬을 가득 메운 진한 꽃향기, 해금강의 절경과 푸르디푸른 바다, 상큼한 바닷냄새…. 프랑스식 정원의 벤치에 앉아 조용히 흐르는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사색에 젖어든다. 예술의 향기가 가득해진다.
한산도!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곳이다. 해서 피로에 지친 선수들과 이곳을 찾아 이순신의 전략과 기백을 익히고 되뇌기에 안성맞춤이다. 가급적이면 바다뿐 아니라 망산에 오르는 것이 더 좋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의 광대한 소나무 숲을 지나 정상에 올라서면 한산도의 전경과 다도해, 그리고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들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
진해 시내에 자리한 웅산도 매력이 넘친다. 바다와 벚꽃을 같이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기 때문이다. 웅산 정상에는 바위가 놓여 있는데 마치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시루봉으로 불린다. 시루봉에 오르면 진해와 남해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탁 트인 조망이 열린다. 특히 4월에 가면 진해의 만발한 벚꽃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끔 산과 계곡을 찾기도 한다. 덕유산의 무주구천동 계곡의 70여 리 길은 수려함이 빼어나다. 계곡의 물소리 또한 마음을 잡아당긴다. 문득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이곳에서 산행을 하며 산과 계곡의 멋들어짐을 함께 즐긴다.
“잃어버린 그 무엇 다시 찾았다는 느낌 충격적”
앙코르와트 김덕수 국악인‘내일’만을 바라보고 살기에도 바쁜데 과거를 생각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는 것이다.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고 싶다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가 보자.
사람들은 캄보디아라고 하면 ‘전쟁’의 일그러진 면만 떠올린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옛날 찬란했던 인도차이나 반도의 주인공이었다.
이곳에 가서 나는 옛 영화와 자존심을 간직한 캄보디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앙코르와트의 전경을 바라보노라면 완벽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입구에서 본당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본당 전체의 균형미, 하늘과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을 음미하노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진한 감동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