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연지기 혹은 숭고의 시정신
―이근배의 시세계
이은봉
1. 사랑과 진실의 세계
사천(沙泉) 이근배(李根培) 선생은 스케일(scale)이 매우 큰 시인이다. 그의 호(號)는 사천(沙泉)이요, 이름은 이근배(李根培)이거니와, 호와 이름조차 범상치가 않다. 선생의 호 사천(沙泉)은 ‘사막 속의 샘’, 곧 ‘오아시스’라는 뜻을 갖고, 이름 이근배(李根培)는 ‘오얏나무 뿌리를 북돋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호와 이름을 지닌 그가 평범하고 예사로운 시를 쓰는 시인일 리 만무하다. 호 혹은 이름만큼이나 크고 웅장한 서정을 담고 있는 것이 그의 시라는 얘기이다.
이근배 시인은 1958년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선생으로부터 창작지도를 받으며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이렇게 문학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일까. 등단의 경로 자체가 평범하고 예사롭지 않은 것이 그이다. 그렇다. 그는 1961~1964년 사이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시, 시조, 동시가 한꺼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1963년 문공부 신인 예술상의 2개 부문(시, 시조)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64년 문공부 신인 예술상 문학 부문 특상을 수상한 바 있는 것이 그이다.
이처럼 밑동 굵은 왕대나무로 시작(詩作)을 출발한 만큼 그의 시 세계가 매우 광대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이유에서일까. 그의 시 세계를 생각하면 몇몇 핵심어가 먼저 떠오른다. 가족, 나라, 전통, 국토, 사랑 등으로 요약되는 것이 이때의 핵심어이다. 이들 중에서도 ‘사랑’은 각각의 핵심어에 두루 걸쳐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말하자면 가족 사랑, 나라 사랑, 전통 사랑, 국토 사랑 등으로 현현되는 것이 그의 시에서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그의 시에 나타나 있는 가족 사랑, 나라 사랑, 국토(자연) 사랑, 전통 사랑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의 시가 가족 사랑, 나라 사랑, 국토(자연) 사랑, 전통 사랑 등 크고 거창한 가치를 노래하더라도 그것이 나날의 일상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크고 거창한 가치를 노래한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구체적인 일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족, 나라, 국토(자연), 전통 등의 크고 거창한 가치도 나날의 삶이 지니는 사랑과 이별을 바탕으로 현현되기 마련 아닌가. 바로 이러한 점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시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살다가 보면」이다.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살다가 보면」 전문
이 시는 “살다가 보면”이라는 조건절을 전제로 하여 발상되고 있다. 이를테면 “살다가 보면/넘어지지 않을 곳에서/넘어질 때가 있다”는 경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이 시라는 뜻이다. 이 시의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는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사랑은 늘 이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을 말하는 만큼 누구에게나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눈물을 보일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다기한 것이 사랑이라는 얘기이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그는 “살다가 보면/사랑하는 사람을/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떠나보낼 때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때의 사랑이 사람살이의 진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에게도 사랑을 잃는 것과 진실을 잃는 것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떠나보내고/어둠 속에 갇혀/짐승스런 시간을/살 때가 있다”라고 노래할 때의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 그의 삶에서는 사랑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랑과 진실이 이루는 상호 관계를 이해하다 보면 그의 가족 사랑이, 곧 그 자신의 개인적인 진실이 어떻게 역사적 진실과 상호 뒤얽혀 있는가도 쉽게 알게 된다. 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이 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남에 대한 사랑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그의 시는 국가적이고도 민족적인 것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발상되어 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정신적 외상과 가족 사랑
사천 이근배 선생은 시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매우 큰 사람이다. 이는 우선 그가 서라벌 예술대학에 장학상으로 입학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자긍심 큰 것은 그가 자신의 시 「자화상」의 모두(冒頭)에서 “너는 장학사(張學士)의 외손자요/이학자(李學者)의 손자라/머리맡에 얘기책을 쌓아놓고 읽으시던/할머니 안동김씨는/애비, 에미 품에서 떼어다 키우는/오줌 못 가리는 손자의 귀에/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을 못 박아주셨다”라고 노래하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전통적인 사대부 가문의 후손으로, 곧 “장학사(張學士)의 외손자요/이학자(李學者)의 손자”로 태어난 것이 그라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의 성장 과정이 늘 편안하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이 시의 이어지는 구절에 따르면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집에는 못 들어”온 것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스승 면암(勉唵)의 뒤를 이어/조선 유람을 이끌던 장후재(張厚載) 학사의/셋째 딸”인 어머니가 “시집 와서/지아비 옥바라지에 한숨 마를 날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열 살이 되었을 때/겨우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와 “그제서야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아버지가 “한 해 남짓 뒤에 삼팔선이 터져/바삐 떠난 후 오늘토록 소식이 끊”겼다고 하니 아버지를 비롯한 할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과 관련해 그가 큰 애환을 갖지 않았다고 하기에 곤란하다.
그러한 까닭에서일까. 한낱 풀꽃에 지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너는 사상을 모른다/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냉이꽃」)라고 노래하기까지 한다. 이 시야말로 어머니의 현존으로부터 비롯되는 그의 설움과 비애가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거야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냉이꽃」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너 여리운 풀”인 ‘냉이꽃’에게까지 말을 걸고 있다. ‘냉이꽃’한테 그가 말을 걸고 있다고 했지만 어쩌면 ‘냉이꽃’한테 넋두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꽃이 된” 것이 ‘냉이꽃’이라고 하더라도 ‘냉이꽃’이 한갓 풀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시에서 정작 중요한 구절은 “너는 사상을 모른다/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형편으로 볼 때 이때의 사상은 진보적인 사상, 곧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쓸 당시 그로서는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을 사신 어머니가 안타깝고 안쓰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처지의 어머니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면 그러한 아버지를 둔 자신의 처지도 안타깝고 안쓰러웠을 것은 뻔하다. 이 시의 배후에는 시인 자신의 자기연민도 자리해 있다는 뜻이다. 자기연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사상가를 아버지로 둔 덕분에 그가 겪었을 정신적 트라우마는 다음의 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내가 문을 잠그는 버릇은
문을 잠그며
빗장이 헐겁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한밤중 누가 문을 두드리고
문짝이 떨어져서
쏟아져 들어온 전지 불빛에
눈을 못 뜨던 버릇은
머리맡에 펼쳐진 공책에
검은 발자국이 찍히고
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
겨울 문풍지처럼 떨며
새우잠을 자던 버릇은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던 버릇은
내가 자라서도
죽을 때까지도 영영 버릴 수 없는
문을 못 믿는 이 버릇은
―「문」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문’을 매개로 하여 자신이 받은 정신적 상처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문’을 매개로 하여 그가 받은 정신적 상처가 이 시에 완성된 하나의 문장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끝내 불완전한 문장으로 제시되는 이 시에서의 ‘문’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완전한 문장 자체가 그의 불완전한 삶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시의 모두(冒頭)에서 시인은 “내가 문을 잠그는 버릇은/문을 잠그며/빗장이 헐겁다고 생각하는 버릇은/한밤중 누가 문을 두드리고/문짝이 떨어져서/쏟아져 들어온 전지 불빛” 때문이라고 말한다. “쏟아져 들어온 전지 불빛에/눈을 못 뜨던” 시인의 “버릇은/머리맡에 펼쳐진 공책에/검은 발자국이 찍히고/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겨울 문풍지처럼 떨며/새우잠을 자던 버릇”으로 남는다.
그래서일까.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던 버릇은” 그가 “자라서도/죽을 때까지도 영영 버릴 수 없는/문을 못 믿는 이 버릇”으로 남게 된다. “문을 못 믿는 이 버릇”이 그의 정신적 외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정신적 외상은 “머리맡에 펼쳐진 공책에/검은 발자국이 찍히고/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겨울 문풍지처럼 떨며/새우잠을 자던 버릇”으로 구체화 된다.
이러한 그의 정신적 외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역사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신적 외상과 함께할 때 그의 자아가 겪게 되었을 아픔과 괴로움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가 다른 시에서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나는 정처 없다/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비틀걸음으로 떠다닌다/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겨울 행」)라고 노래하는 것도 이러한 정신 외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온갖 방황과 고통에 처해 있을 때 그가 기대고 의지해온 것은 어머니인 듯하다. 그동안 그가 어머니에게 기대고 의지해온 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고 깊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 「겨울 행」의 이어지는 대목에서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오른다/아궁이 앞에서 생솔을/때시는 어머니”라고 하는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은 미군정과 민족분단, 그에 따른 6·25 전쟁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 시인 이근배의 ‘가족 사랑의 정신’이다. 전통적 사대부였던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들에 이은 아버지, 어머니가 받은 정신적 상처의 배후에 나라 사랑의 정신이 자리해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이러한 자신의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 좀 더 큰 차원의 사랑에 이르러 있다는 점이다. 사적이고 개적인 정신적 외상에 함몰되고 있지 않은 것이 그의 높고 깊은 사랑의 정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나라 사랑과 숭고의 정서
진보적 사상가였던 이근배의 시인의 아버지는 아무래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듯싶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가 갈고 닦아온 애국의식까지 비극으로 생을 마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해 아버지로부터의 애국의식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에서 일부 인용했던 그의 시 「자화상」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이 시 「자화상」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늘 그에게 “애비 닮지 말고 사람 좀 되라고” 이른 것 같다. 사람이 되는 길을 할아버지는 “비례물시非禮沕視하며/비례물청非禮勿廳하며/비례물언非禮勿言하며/비례물동非禮勿同하며……”로 이어지는 “율곡栗谷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듯하다.
하지만 그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말하는 대로 살아오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할아버지의 그러한 가르침과 관련하여 그는 “나는 예 아닌 것만 보고/예 아닌 것만 듣고/예 아닌 것만 말하고/예 아닌 짓거리만 하며 살아왔다”고 노래한다.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붓을 잡을 줄 모르면서/지가 무슨 연벽묵치(硯壁墨癡)라고/벼루돌의 먹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면서 살아온 것이 그 자신이라는 것다.
이 시의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는 “자다가도 문득 깨우고/길을 가다가도 울컥 치솟는 것은/저놈은 즈이 애비를 꼭 닮았어!/할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그 꾸지람”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에는 그가 “애비를 꼭 닮아” 나라 사랑의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할아버지는 “속 썩이는 큰아들이 미우셨겠지만/아니지요 저는 애비가 까마득히/올려다 보이거든요”와 같은 이 시의 이어지는 구절을 통해서도 이는 확인된다. 할아버지의 “고마운 꾸중을/끝내 따르지 못하고” 나라 사랑의 정신을 쉬지 않고 노래해온 것이 그라는 것이다. 그의 시 「자화상」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그의 애국의식은 초기 시 「노래여 노래여」에 의해 더욱 증명된다.
푸른 강변에서
피 묻은 전설의 가슴을 씻는
내 가난한 모국어
꽃은 밤을 밝히는 지등처럼
어두운 산하에 피고 있지만
이카로스의 날개 치는
눈먼 조국의 새여
너의 울고 돌아가는 신화의 길목에
핏금 진 벽은 서고
먼 산정의 바람기에 묻어서
늙은 사공의 노을이 흐른다
이름하여 사랑이더라도
결코 나뉘일 수 없는 가슴에
무어라 피 묻은 전설을 새겨두고
밤이면 문풍지처럼 우는 것일까
―「노래여 노래여 1」 전문
이 시 「노래여 노래여」는 1964년 문공부 신인 예술상 공모에서 문학부 특상을 받은 작품이다. 위의 인용 부문은 세개의 대목으로 이루어진 그의 이 시 「노래여 노래여」의 첫 번째 대목이다. 그의 초기 장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위의 첫 번째 대목부터 그의 시 세계 일반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 두루 관심을 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 시에 담겨 있는 그의 의도가 단번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구체적인 의미보다는 막연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이 이 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몇 핵심어를 중심으로 의미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 시의 핵심어가 “푸른 강변”, “피 묻은 전설”, “가난한 모국어”, “꽃”, “밤”, “어두운 산하”, “이카로스의 날개”, “눈먼 조국의 새”, “신화의 길목”, “핏금 진 벽”, “먼 산정의 바람기”, “늙은 사공의 노을”, “사랑”, “나뉠 수 없는 가슴”, “피 묻은 전설”, “밤”, “우는 것” 등임을 유의해야 한다. 위의 이들 핵심어에는 “밤”과 “피 묻은 전설”이 두 번씩이나 반복되거니와, 무엇보다 이를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피’라는 말이 세 번씩이나 출현하니만큼 이 시가 밝고 환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 핵심어를 통해 드러나는 시인의 의식이 그다지 희망 있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시에 드러난 그의 의식이 완전한 절망이나 포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일단은 먼저 첫 문장에 들어 있는 내포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푸른 강변에서/피 묻은 전설의 가슴을 씻는/내 가난한 모국어”가 첫 문장이다. 이 첫 문장에서 ‘남쪽의 조국에서 잊지 못할 전쟁의 상흔을 씻고 있는 우리 말’이라는 내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어지는 “꽃은 밤을 밝히는 지등처럼/어두운 산하에 피고 있지만/이카로스의 날개 치는/눈먼 조국의 새여”가 두 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에는 ‘꽃은 어두운 산하를 밝히며 피고 있지만 아직도 별로 가능성이 없는 통일에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조국이여’ 정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너의 울고 돌아가는 신화의 길목에/핏금 진 벽은 서고/먼 산정의 바람기에 묻어서/늙은 사공의 노을이 흐른다”가 세 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 역시 조국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전쟁은 통곡 속에서 끝나고, 다시 피 묻은 휴전선은 그어지고, 먼 산정에나 희망이 있는 지금 옛 애국자들은 늙어갈 뿐이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사랑이더라도/결코 나뉠 수 없는 가슴에/무어라 피 묻은 전설을 새겨두고/밤이면 문풍지처럼 우는 것일까”가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시를 매조지하는 이 문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른, 결코 나뉠 수 없는 가슴으로 치른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피 묻은 전쟁의 상흔을 새겨 두고 조국은 밤이면 문풍지처럼 우는 것일까’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는 6·25 전쟁이 휴전한 뒤 10년쯤이 지난 1963년~1964년 무렵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로서는 이 시를 위에서처럼 해석해도 좋을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를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그 무렵의 현실에 대한 시인 나름의 슬픔과 연민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는 하다, 물론 이때의 슬픔과 연민을 두고 밝고 환한 긍정적 정서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시의 정서가 웅장하고 숭고한 호연지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그는 이 시에서도 이들 장엄하고 웅장한 정서를 통해 나라 사랑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그가 이 시를 통해 드러내는 나라 사랑의 정신은 이어지는 시 「노래여 노래여 2」의 몇몇 구절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강가에서/연가의 꽃잎을 따서 띄워 보내고/바위처럼 캄캄히 돌아선 시간/그 미학의 물결 위에/영원처럼 오랜 조국을 탄주彈奏한다”와 같은 구절 말이다.
이상의 논의로 미루어 보면 시인 이근배에게는 시업(詩業) 자체가 나라 사랑의 길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의 시에 실현되고 있는 시 정신은 늘 애국의식과 함께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도 시인 이근배에게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시 정신, 곧 계관(桂冠)의 시 정신이 부여된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에는 비록 계관시인의 제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시에는 짐짓 계관시인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그의 시가 지니는 이러한 특징은 시집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문학세계사, 2004)와 『백두에 바친다』(시인생각, 2019)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계관의 시 정신을 지향하는 그의 시가 쪼잔하고 자잘한 가치를 추구하고 옹호할 리 만무하다. 그의 좋은 시는 계관의 시 정신을 지향하는 만큼 늘 웅장하고 장엄한 기상을 바탕으로 한다. 이처럼 웅장한 호연지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그의 시이거니와, 따라서 그의 좋은 시가 장엄한 정서, 곧 ‘숭고의 정서’를 고무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다.
4. 국토 사랑과 전통 수호
사천 이근배 시인의 시에서 나라 사랑의 정신은 곧바로 국토 사랑의 정신으로 전이되고는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토 사랑의 정신은 동시에 자연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자연 사랑의 정신이 독특하고 차별성을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는 국토 사랑의 정신과 함께하는 자연 사랑의 정신 또한 애국의식의 한 변형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시를 통해 그가 백두대간을 노래하고, 금강산을 노래하고, 독도를 노래하고, 한강을 노래하고, 금강을 노래하고, 동진강을 노래하는 것도 나라 사랑의 정신이 이루는 구체적인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시에서는 국토의 자연을 노래하는 것이 모두 나라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옳다.
‘나라’라고 하는 것은 본래 국토라는 자연을 바탕으로 하기 마련이다. 국토라는 자연이 없이 국민 주권이 제대로 갖추어진 나라는 존재하기 어렵다. 국토라는 자연이 없는 것은 그 나라에 고유한 언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강조하거니와, 국토의 자연을 노래하는 그의 시에는 바로 이러한 뜻에서의 애국의식이 들어 있다.
이근배 시인의 시에 이 나라 국토의 자연을 나라 사랑의 정신으로 노래한 예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시는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라고 생각된다. 이 시는 지난 2005년 8월 12일 금강산에서 있었던 ‘세계평화시인대회’에서 그 자신이 직접 낭송한 적이 있는 시이기도 하다. 그 이후 이 시는 전국의 시낭송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낭송하는 시가 된 바도 있다.
새들은 저희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
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
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
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
내 나라의 금강산을 가는데
반세기 넘게 기다리던 사람들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
앞다투어 길을 나서는구나
참 이름도 개골산, 봉래산, 풍악산
철 따라 다른 우리 금강산
보라. 저 비로봉이 거느린 일만 이천 묏부리
우주 만물의 형상이 여기서 빚고
여기서 태어났구나.
깎아지른 바위는 살아서 뛰며 놀고
흐르는 물은 은구슬 옥구슬이구나
소나무, 잣나무는 왜 이리 늦었느냐 반기고
구룡폭포 천둥소리 닫힌 세월을 깨운다.
그렇구나
금강산이 일러주는 길은 하나
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 길 두고
우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구나
분단도 가고 철조망도 가고
형과 아우 겨누던 총부리도 가고
손에 손에 삽과 괭이 들고
평화의 씨앗, 자유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
오순도순 잘 사는 길을 찾아왔구나
한 식구 한솥밥 끓이며 살자는데
우리가 사는 길 여기 있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이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전문
이 시는 금강산 관광이 허용되었던 2005년 무렵 이 나라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창작된 시이다. 금강산 관광이 허용되던 그 무렵만 해도 이 나라의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는 열려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시라고 하더라도 분단의 현실은 엄연해 변화된 남북관계에 어떤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는 이 시의 첫머리에 “새들은 저희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시에서 시인은 새나 물고기만도 못했던 그동안의 남북 인간들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내 나라의 금강산을 가는데/반세기 넘게 기다리던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애정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시라는 얘기이다. 물론 이 시를 쓰던 당시 시인은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앞다투어 길을 나서는구나”라고 하며 남북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노래한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 간의 상황이 아주 나빠져 어떠한 소통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이름도 개골산, 봉래산, 풍악산/철 따라 다른 우리 금강산/보라. 저 비로봉이 거느린 일만 이천 묏부리” 운운하는 금강산 찬가가 어색하게 되고 만 셈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이후 “깎아지른 바위는 살아서 뛰며 놀고/흐르는 물은 은구슬 옥구슬이구나”라고 하는 등의 문장으로 이 나라 국토의 자연을 찬양하기는 어렵게 된 바 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금강산이 일러주는 길은 하나/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분단도 가고 철조망도 가고/형과 아우 겨누던 총부리도 가고/손에 손에 삽과 괭이 들고/평화의 씨앗, 자유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오순도순 잘 사는 길을 찾”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이러한 일을 포기하는 것은 이 나라의 내일에 대한 찬가나 송가를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계관의 시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그로서는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찬가나 송가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그에게 찬가나 송가를 포기하는 일은 결국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조국의 미래를 꿈꾸는 일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근대가 비록 비가(悲歌)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한강이 용솟음친다/펄펄 끓어 넘치는 한반도의 용암/지구촌의 하늘을 붉게 태운다/땅을 덮는다”(「크고 큰 나라 대~한민국이여」)와 같은 송가나 찬가를 부르고 싶은 것이 시인 이근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5, 옛것들의 의미망
이근배의 시는 국토의 자연을 노래하는 것으로 애국의식을 고양하기도 하지만 ‘옛것들’을 노래하는 것으로 애국의식을 고양하기도 한다. 물론 ‘옛것들’에는 ‘옛사물들’도 있고, ‘옛사람들’도 있다.
애국의식과 관련하여 그의 시에서 먼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옛사물들’이다. 그렇다. 그는 붓이나 벼루, 솟대나 초서, 잔이나 연적, 선죽교, 추사고택 등 ‘옛사물’을 시로 노래하는 것으로 저 자신의 전통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 ‘옛사물’을 통해 표현하는 그의 전통의식에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의지와 사랑이 담겨 있을 것은 분명하다.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의지와 사랑 또한 그의 애국의식과 맞물려 있으리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의 몇몇 예는 옛사물을 노래하는 것으로 저 자신의 전통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한 시이다.
붓이 뛰는구나
해와 달을 가슴에 품고
눈비와 어둠을 헤치고 달려와
이 눈부신 새 하늘을 여는 아침
북한산이 날개를 치며 오르고
한강이 황금빛 목청으로 노래하는구나
―「바르고 빠르고 곧은 붓이리니」 부분
벼루에 먹물이 풀리듯
나는 잠에 풀린다
잘못 살아온 날들이
머릿속에서
가시를 세우면
나는 자꾸 졸립다
―「잠―벼루 읽기」 부분
바람,
불지 마라
새,
날개 꺾여
울음 꺾여
장대 끝 끝에 앉아
누가 오나
누가 오나
―「솟대 사랑」 부분
위에 인용되어 세 편의 시에는 그가 친애해온 붓, 벼루, 솟대가 형상화되어 있다. 이들 시에 형상화된 옛사물에는 그의 전통의식이 들어 있고, 그것은 늘 그의 애국의식과 함께하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이들 옛사물을 통해 고유한 우리 것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이들 그의 시인 것이다.
붓을 노래하고 있는 첫 번째 시에서는 뛰는 붓과 호응하며 “눈비와 어둠을 헤치고 달려와/이 눈부신 새 하늘을 여는 아침”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 시에서 붓과 호응하는 것은 “날개를 치며 오르”는 북한산이기도 하거니와, 그것은 “황금빛 목청으로 노래하는” 한강도 마찬가지이다.
벼루를 다루고 있는 두 번째 시에는 “먹물이 풀리듯” 풀리는 시인의 ‘잠’이 주목되어 있다. 벼루 자체보다는 벼루에 풀린 먹물을 통해 시인의 현존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세 번째 시에 형상화된 ‘솟대’는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사물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바람,/불지 마라”고 하고 있지만 솟대의 새는 본래 바람이 전해오는 소식을 물어오는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시인은 “새,/날개 꺾여/울음 꺾여/장대 끝 끝에 앉아/누가 오나/누가 오나”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이들 옛사물들, 예컨대 붓이나 벼루, 잔이나 연적, 솟대나 초서, 선죽교나 추사고택 등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전통의식에는 무엇보다 ‘고유한 우리 것’에 대한 의지와 사랑이 담겨 있다. 비록 상고(尙古)적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들 옛사물을 통해 추구하려는 가치는 명확하다. 그것 또한 그의 나라 사랑의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이들 상고적 경향은 ‘옛사람’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도 현현되고 있다. ‘옛사람’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그가 정작 드러내려고 하는 물론 애국의식, 곧 나라 사랑의 정신이다. 이때의 애국의식, 곧 나라 사랑의 정신이 시인 자신의 전통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박팽년이나 성삼문, 정철이나 김장생, 송시열이나 추사 등 ‘옛사람’을 노래하는 것으로 저 자신의 전통의식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 그의 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옛사람’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전통의식은 그의 시집 『추사를 훔치다』(문학수첩, 2013)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이때의 전통의식 또한 ‘고유한 우리 것’에 대한 의지와 사랑에 닿아 있거니와, 이를 통해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 역시 분명하다. 이러한 의지와 사랑 또한 궁극적으로는 그의 애국의식, 곧 나라 사랑의 정신에 닿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서는 일단 두 편의 시만을 골라 그 일부만이라도 읽어 보기로 한다
능소화가 진다
낳았느냐 낳았느냐 낳았느냐
수리봉의 물음에 대구를 하듯
툭툭 능소화가 송이째로 지고 있다
ㄱㄴㄷㄹㅁㅂㅅ……
나랏말씀이 울려 퍼지던
그 하늘을 감고 오르다가
끝내는 다 오르지 못하고
노을빛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성삼문―노은리」 부분
나라가 들끓는다
봄은 어김없이 와서
자목련의 입덧을 받아주고
대숲의 바람은
술 항아리를 비우고 나와
산벚꽃의 볼을 붉힌다
무슨 일을 내려는가
산천이 저렇게 자지러지는데
이 심상찮은 봄을 두고
학처럼 훠이훠이
한 가락 들고 놓고 하던 이
훌쩍 떠나고
빈 둥지만 덩그렇구나
―「정철―송강정」 부분
앞의 시는 성삼문과 관련된 이미지와 에피소드를 노래하고 있고, 뒤의 시는 송강 정철과 관련된 이미지와 에피소드를 노래하고 있다. 성삼문은 조선 전기의 인물이고, 송강 정철은 조선 중기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호 지역의 정신과 맥락을 함께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상호 공통점을 갖는다.
앞의 시 「성삼문―노은리」는 성삼문이 태어난 고향 마을 ‘노은리’를 부제로 삼고 있다. 그와 동시에 꽃송이째 툭툭 지는 능소화를 시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서정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심미적 장치라는 것은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성삼문의 생애를 꽃송이째 툭툭 지는 능소화 이미지를 통해 상징하고 있는 것이 그의 이 시라는 것이다.
성삼문과 관련해서는 태어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라는 소리가 3번 들렸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3번째 소리가 들린 뒤에야 그가 태어나 이름을 삼문(三問)이라고 지었다고 하는 설화 말이다. 이 시에는 그 설화가 적절하게 응용되고 있어 무엇보다 관심을 끈다.
성삼문은 세종대왕 당시 같은 기호 지역 출신의 지식인 박팽년과 함께 한글 창제의 과정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의 다섯째 행에 “ㄱㄴㄷㄹㅁㅂㅅ……”과 같은 한글 자음이 인용된 것도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착안한 표현인 듯싶다. 물론 이 또한 심미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수사적 장치이겠지만 말이다. 이 시의 결구에는 성삼문이 “하늘을 감고 오르다가/끝내는 다 오르지 못하고/노을빛 울음을 터뜨리”는 능소화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어지는 시 「정철―송강정」은 그가 한때 거주했던 정자인 ‘송강정’을 부제로 삼고 있다. 중앙 정가에서 물러났을 때 그가 담양의 송강정으로 내려와 울분을 달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시는 “들끓는 나라”, “봄”, “자목련의 입덧”, “대숲 바람”, “술항아리”, “산벚꽃”, “학”, “한 가락”, “빈 둥지” 등의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점차 내용이 진전된다. 이들 이미지가 송강의 생애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주색을 좋아하고, 산천의 풍광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했던 것이 송강 정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자목련의 입덧”, “술 항아리”를 “비우는 바람” 등의 이미지에서 송강 정철의 생애를 연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학처럼 훠이훠이/한 가락 들고 놓고 하던 이”가 다름 아닌 조선조 최대의 서정 시인인 송강 정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 인물 이외에도 그의 이 시집 『추사를 훔치다』에는 아주 많은 ‘옛사람’이 시로 형상화되어 있다. 의상, 허균, 이승휴 김병연, 유정, 길재, 기화, 이황, 유성룡, 일연, 곽재우, 박인로, 원효, 이언적, 김종직, 최치원, 조식, 논개, 이순신, 윤선도, 휴정, 임제, 송순 등등이 바로 그 예이다. 이들 옛사람이 우리나라의 고유하면서도 전통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인물을 심미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일단은 이들 옛사람, 곧 전통적 인물의 재발견을 통해 그가 저 자신의 애국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들 옛사람, 곧 전통적 인물들을 끈질기게 시로 형상해온 까닭이 여기서 그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에는 좀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뜻이다.
근세에 들어서는 일제강점기를 겪고, 미국 군정기를 겪고 급기야는 조국이 분단되는 아픔까지 끌어안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러한 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로부터 크고 작은 간섭을 받고 있다. 그로서는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고, 줄곧 자주성을 지켜온 이 나라의 미래를 ‘옛사람’들을 매개로 하여 고무, 찬양하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국의 시인인 그가 이들 인물을 매개로 하여 저 자신의 계관 의식, 즉 일종의 호연지기를 고양, 추동하려 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방대하고 웅혼하고 호쾌한 것이 그의 시 세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포에지 충남》 202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