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식..니 목숨 구해줬다고 태도가 싹 변하는구나? 맨날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더니만, 이젠 애뜻하다 못해 사무친다, 사무쳐.“
그러나, 매니저는 그전에 종혁과 상혁이 싸우던 때보다는
지금 이 상황이 백만배는 더 편하고 다행스러웠다.
그때는 이대로 해체하는게 아닌가..하고 다소 오바된 걱정까지 했었으니깐.
이젠 그런걱정 안해도 되겠지.
되겠지..했는데.
“뭘 그렇게 쪼개냐? 내 머리에 땜빵난게 그렇게 웃겨?”
김상혁...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종혁에게 화풀이중이다.
“김상혁, 너..그만 좀 해라. 형한테 쪼개냐가 뭐냐? 쪼개냐가.”
“괜찮어.......연석이형. 괜찮으니깐, 뭐라 하지마”
상혁의 목부분에 남은 흉터때문이였다.
상혁은 키가 크기 때문에 누가 일부러 보지 않으면 모를정도지만,
태형의 “10층에서 떨어져도 살더니만 10킬로짜리 쇳덩이를 맞고도 사는 재수좋은 놈”이라는
발언에 그만 종혁의 웃음보가 터져버린 것이 화근이였다.
하긴-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된건데 웃으니깐, 상혁도 열받긴 했을 것이다.
“어째 얼굴이 좋아보이네- 팔자 좋았나보구나? 짜식........”
“뭐..그럭저럭.”
연석의 옆에 붙어서서 상혁의 눈치를 보는 중인 종혁을 곁눈으로 보면서-
상혁은 대답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돌아가는건가?
태형은 다시 예전처럼 상혁에게 쥐여사는 종혁의 쫄은 모습에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이상한건 연석과 종혁의 관계라 아니라
(아니, 태형이 보기엔 연쫑의 관계는 그저 부녀관계와 같다..^^;;)
상혁과 종혁의 관계이다.
사실, 7명일때..아니, 호석이가 미국으로 가버리기 전까지는.
그걸 확실하게 느끼지는 못했었다. 상혁인 호석이와 친했었고.
그 둘은 상당히 통했었다. 또 모르지. 상혁이 호석에게는 뭐라 속마음을 얘기 했는지도.
여하튼, 뭔가 반대로 된듯한 상혁과 종혁의 상하관계는
태형으로선 이젠 이게 자연스럽다고 여길 정도로 오래된 일이다.
종혁의 시선이 아까부터-
계속 상혁의 뒷 목덜미에 꽂혀있다.
아까 태형의 농담에 웃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 거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종혁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시하는척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잘거니깐, 건들지마-” 라는 말을 남긴채.
그렇게 사고 이후, 둘의 해후는 상혁의 압승으로 마무리 되는 듯 보였다.
“상혁아, 스케줄 잡힌거 알지?”
“........오늘이죠?”
“그래, 준비해라”
실로 오랜만의 스케줄이였다.
공백기라고 해도 스케줄은 끊이지 않았던 상혁이였는데.
사고이후에 거의 한달을 줄창 쉰 거다.
아무도 없는 숙소안을 어슬렁거리다가, 매니저의 등장에 상혁은
코디도 없이 혼자서 옷을 꺼내 입는다.
코디가 챙겨주는 것보다 혼자서 입는게 더 편한 상혁이다.
멤버들끼리 옷을 같이 입긴하지만-
대충 스타일이 비슷한건 종혁뿐이다.
연석이나 태형은 상혁과는 좀 다른 분위기에- 사이즈도 달라서 잘 같이 입지 않는다.
사실, 같이 입는다고 해도 상혁의 옷을 종혁이 빌려입는 수준이다.
옷이나 악세사리에 관해서는 너무 무지한 종혁인지라-
(운동화만 빼고 말이다!!)
대부분 상혁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정도인 것이다.
응?
못보던거네-
방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옷장.
그 방, 악세사리들을 놓는 서랍안에 왠 목걸이 하나가 상자안에 담겨있다.
스타일로 봐서는 절대 연석이나 태형의 것이 아니다.
...종혁의 것인가?
“아- 그거 종혁이가 사다 놓은건데. 니가 갖고 싶어 했다며?”
“.......내가?”
그러고보니.........아아-
예전에........모브랜드 행사장에 갔다가 종혁에게 지나가듯이 마음에 든다고 했던
그 목걸이였다.
“...미친.......이 비싼걸.......돈도 없는 거지가..............”
명품이 아니면, 특히 악세사리는 무조건 메이커를 고집하던 상혁이였다.
그렇다고-
종혁에게 이런걸 받길 원한건 아니다. 이런 고가의 악세사리를.
상혁이 신경질적으로 굵은 은색의 특이한 스타일의 목걸이를
도로 상자속으로 집어 넣었다.
*00놀이동산
매니저의 설명을 들으며 상혁이 도착한 곳은-
산장에서 놀이동산으로 바뀐 예전에 그 미팅프로장소였다.
상혁이 부상으로 도중하차한 동안, 산장미팅은 끝나버렸고.
그 대신 그 2탄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매니저의 설명은 들으나마나였다.
그저그런 주의사항정도.........뭐 상관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약간 수줍어하면 그걸로 땡이니깐.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촬영이라 그런지-상혁은 내심 긴장됐다.
종혁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녹음을 하느라 며칠째 스튜디오에서 지내는 종혁이였다.
태형이나 연석은 자주가서 종혁을 보고 오는 모양인데-상혁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네- 오늘 클릭비의 김상혁씨 나와주셨습니다-!”
엠씨의 소개에 상혁이 웃으며 인사를 했고.
늘상 그렇듯.....준연예인 쯤 되는 여자출연자들은 눈웃음으로 상혁을 반긴다.
예전에..상혁의 파트너였던 그녀는.
지금은 없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걸 보면...확실히 그녀가
상혁을 등에 업고 스타덤에 올랐다는걸 느낄 수 있다.
여기 나오는 남자출연자들은 여자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들이
대부분이니까-
어설픈-천조각으로 가려놓은 여자출연자들-
그림자로 봐서는 4명이 나온 듯 한데.
하나같이 실루엣이 가늘고 아름답다.
상혁도 다른 남자출연자들과 마찬가지로 웃으며 그녀들을 환영했고..
곧 엠씨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이런 프로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부분....대학가에서 이쁘다고 소문난 얘들일 것이다.
잡지모델이나 씨엡도 몇편 했을테고....단역도 했겠지.
상혁의 무미건조한 표정속에서.......
여자 4번의 차례가 되었는데-
엠씨가 물었다.
“여자 4번, 소개해 주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여자 4번 유리에 이 입니다. 일본 T대학 한국어과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재일교포 2세고요. 이곳에 프로에 나오고 싶어서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김상혁씨!!!“
4번째 실루엣인 여자는.
갑작스럽게 상혁의 이름을 불렀다.
일본에서 왔다면서 전혀 일본인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발음이 인상적이였다.
다른 출연자들과 엠씨.그리고 스테프들과 매니저들-
다들, 놀라 소리를 지르는건..다른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4번여자가 상혁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였다.
그러나...
상혁은 아니였다. 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진건.
종혁의 이름이 나온 직후부터이다.
이제야..좀 사태파악이 되는 상혁이였다.
데뷔의 이유가 종혁에 있었으니.......초창기땐 그런 말을 몇 번 했던걸로 기억한다.
“종혁이형이 이상형이에요”라는 말.
하지만.......그 후엔 매니저의 저지도 있었고. 또..연쫑이라는 존재 때문에.
당연히 상혁의 발언들은 묻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
다들 상혁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상혁은 마이크를 입에 대지도 않고 4번 여자의 실루엣을 본다.
그 눈빛은...호감의 눈빛이라기보다 적대감에 가깝다.
종혁의 이름이 나온 것 만으로도 이렇게 발끈해버리다니.
..상혁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면서 애써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 별명이 여자 오종혁입니다. 일본배우 하마오카 마야를 닮았다는 말도 듣지만, 오종혁씨를 닮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어요. 어떠세요, 김상혁씨. 제 얼굴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고.
웃음섞인 그 말투는......진심같았다.
“오종혁군하고 닮았다면........우와~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상혁씨? 어떠세요?”
“...................................”
엠씨는 아무말도 안하고 어색하게 웃고만 있는 상혁의 표정을.
그저 수줍어서 그런거라 생각했는지-
“좋습니다-”하고 말을 넘겼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상혁의 시선은 온통- 4번실루엣의 그녀에게 가있는 것이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4번분~ 블라인드 공개!!”
예상대로 4번 앞에는 상혁이 서있다.
이건..대본대로다. 원래 여자쪽에서 관심을 보이면 그 앞에 서줘야 한다는건.
상혁의 얼굴이, 표정을. 읽을수가 없다.
마치 종혁을 대할때처럼.
쫘륵-
엠씨가 천조각을 떼어내자-
우와~
출연진들은 왜 그렇게 스테프들이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닮은 정도가 아니다.
완전히- 똑같다.
그녀는 허리까지 오는 긴머리였고.
종혁과는 다르게 피부에 여드름도 없이 깨끗했다.
얼굴형과 쌍커풀진 커다란 눈.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건.
종혁의 코처럼 그녀도 뭉뚝하지만 귀여운 주먹코를 가지고 있었다.
웃을때 생기는 눈밑에 애교살까지-
그녀는 상혁을 올려다보면서 맑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상혁은 마치 종혁이 16살 소년시절때를 재연시켜 놓은 것처럼.
너무나 신기하게 닮은 얼굴에 멍해졌을 뿐이였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친구들도 대부분 한국인이고 코리아타운에서 자랐습니다.
한국이름은 이유리이고요. 상혁씨와 동갑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팬이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중간-
잠깐 쉬는 시간동안 그녀는 상혁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미는 오른손.
상혁이 그 손을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
이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이 또 있을거라곤 생각한적 없었는데.
상혁이 종혁을 닮은 재일교포 2세를 만나는 동안-
종혁은 며칠동안의 녹음을 일부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있었다.
거울을 보면서 입을 아-한채 편도선을 살펴본다.
제발-아무 이상 없어야 할텐데.
며칠째 목이 뻣뻣한것이. 영 불안했다.
목에 생기는 물혹쯤이야, 가수라면 훈장같은 것이지만서두.
그게 아프다는건 이미 알려져 있는터라 은근히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였다.
“나르시즘에 빠진 공주 같구나? 우리 종혁공주님?”
키득거리면서, 거울을 보고 있는 종혁을 놀리는건-
의심할 것 없이 연석이다.
종혁의 머리를 애정어리게 몇 번 만져주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라디오를 끝내고 오는 길인가보다.
“태형이형은?”
종혁이 쫄랑거리면서 연석이 세수를 하는 욕실 문고리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집에 갔지. 집 가까운 놈이 뭐가 아쉬워서 여길 오겠냐? 상혁이는?”
“....스케줄 갔겠지, 뭐.........나도 며칠 못봤어......다들 바쁘니깐.....”
종혁이 얼굴에 비누칠을 하고는 어푸어푸-세수를 하는 연석을 보면서
약간은 풀이죽은 목소리로(사실은 너무 노래를 불러서 잠긴 목소리임ㅡ_ㅡ) 말했다.
“그래서? 우리종혁이가 심심했구나? 녹음은 잘 했어? ”
“뭐...그런대로.......근데..형. 나........부탁 한개만 해두 돼?”
“무슨 부탁?”
연석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종혁을 말갛게 보았다.
종혁이 씨익-웃으면서 “잠깐만-”하고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왠 까만 상자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이게 뭐냐?”
“어......이거.......상혁이건데.......형이 샀다고 하고..주면 안돼?”
“엥? 그게 뭔말이야?”
“내가 주면..분명히 또 뭐라고 그러면서 안받을거야. 그치만, 형이 주면 좋다고 받을테니깐..”
“.....너네 둘다 진짜 이상해”
“..응?”
연석이 수건을 저쪽으로 던지면서, 종혁을 쏘아보았다.
너네 둘다 진짜 이상해.
솔직한 연석의 심정일 것이다.
“상혁이도 그렇고 너도. 둘다 왜 그래? 서로 엄청 갈구다가도 이러는거 보면...
...너네 둘이 하는 꼴을 보면 꼭 뭐같은줄 알아?“
“..................................”
연석의 쏘아붙임에 종혁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놀라고 있었다.
손에 든 까만 상자만 만지작 거리면서.
“서로 마음만 있고 확인은 못한 남녀사이같어. 알아 듣겠어? 상혁이가 너한테 하는걸 보면
꼭 자기 여자친구 쥐고 흔드는 남자같고. 넌.......됐다. 그만하자“
연석이 종혁의 손에 든 상자를 뺏듯이 건내 들었다.
그리곤 열어보았다.
헐- 명품이네? 니가 돈이 어딨어서.
젠장..이러고 있으니깐,
꼭 중간에서- 종혁과 상혁 둘다...연석을 엿먹이는 것 같아서.
또 빈정 상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