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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과 새해맞이가 엇갈리는 기간이라 다분히 시절에 맞춰서
해를 보내는 마음들이며 성탄절 전에는 조선 중기 이후 들어 온
야소교 이야기등을 주제로 삼았고, 새해들어서는 옛 선인들의
신년맞이 노래들을 새겨 봤다. 하루 하루 엮어가는 여덟개의 방송 코너 중
한개인 '고전기행 사설여행'은 이처럼 시절인연따라 주제를 잡기도 하고
중간에 나오는 춘향가 사설이나 선소리 산타령 사설 한구절을 뽑는 것도
역시나 시절 흐름과 무관하게 갈 수 없어 평양과 대동강을 둘러봤다.
그들의 연말과 새해맞이가 어찌 우리와 무관하랴. 이게 본전 까먹고 남은
동포애 아닌가도 싶어. 춘향가 사설 중에 한구절 들추는 것두 역시나
시절 이야기와 무관할 수 없더란 이야기다. 이게 방송의 특성 중 하나다.
그날 그때 그 무렵 물결을 타야하는걸 무시하고 작가가 좋아하는
고전 이야기 늘어 논다면 누가 귀를 기우려 줄 것인가?
그래서 작가가 정작 하고 싶은 고전 이야기는 항상 뒤로 떠 밀린다.
개인 사심을 버려야 하는 공적인 책임이란 걸 한 순간도 버릴 수 없는
숙명임을 순순히 받아 들여야 하는 것도 작가의 소임 아닌가 싶다.
우선 아래 두어번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급격히 대중 속으로 파고 든
<야소교> (예수교)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와 <천주실의>를 중심으로
종교적 접근을 시도했던 실학자들 이야기, <성탄>이란 말이 예전엔 어찌
쓰였던가에 대한 이야기들 간단히 돌아보고 가자.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안정복과 이사흥 예수문답 편지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인데요. 고전여행 어디루?
종구 조선 후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이 그 친구 이사흥과
주고 받은 편지를 잠시 돌아볼까요. 지금은 편지란 게
손안에서 달랑 문자 메시지 정도거나 이메일 정도잖아요.
희은 예전에 편지는 그냥 안부 편지 정도가 아니라
연구하는 분들은 그간 연구한 내용을 실어서 보냈잖아요.
종구 그러니 옛 사람 편지는 일상의 안부편지에서 학문을 논하는
논문편지며, 기행문 편지, 어떤 일을 알려주고 하소연하는 편지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 있었죠. 여기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순암 안정복이 친구인 이사흥에게 전한 편지 잠깐 보실까요?
희은 (낭송 대화톤) 이보시게 친구, 내 편지가 간지 한참 됐는데
답장이 없다니 우리 사이에 이럴 수 있는겐가? 내가 물었던게
다른게 아니라. 나랑 친한 사람이 지금 천주학에 빠져 있어서
그 학설이 우리 유교랑 어찌 다른가. 같은 곳도 있는가?
내가 혹여 천주학 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선입관을 가지고
덤비는 건 아닌가? 해서 자네 의견도 묻고 싶어 편지를
보낸건데 어찌 이리 소식이 없는겐가? 근자에 듣자니
내가 천주학 하는 사람들에게 화근거리 만들어 내는 괴수로
알려지고 있다니. 이래서 더나 이야길 하자는데 자네까지
답장이 없다는 것인가?
종구 순암 안정복은 45세부터 <동사강목>이란 역사서를 저술했던
역사가이기도 한데요. 그 당시 밀려 오는 새로운 정신사조였던
‘천주학’에 대해 나름 깊이 연구해 보려고 했던거죠.
희은 그래서 주변에 있는 지식계층 친구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천주학’에 대한 토론도 하고 좋은 점도 찾아내고자 하고
그런 과정에 친구인 이사흥과 편지가 두절되는 일도 있었군요.
종구 정조시대로 접어들 무렵은 벌써 천주학이 서민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더 이상 모른척 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연구를 해 봐야 했던거구요. 헌데 안정복의 친한 친구
이사흥이 편지 답변을 안해주는겁니다. 당시 천주교 문제나
예수, 야소교 문제에 잘못 휘말리면 큰 변을 당하기도 했었죠.
희은 그래도 순암 안정복은 다시 친구에게 ‘천주학’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것과 아직 모르는 부분이 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편지로 계속 물었던거군요.
종구 여기 순암 안정복이 그 당시 알게 된 예수에 대한 소견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 잠시 새겨 볼까요?
희은 (낭송) 예수란 <세상을 구제한다는 명칭>입니다. 이미 세상을
구제한다고 하였으니만큼 어리석은 사람을 지도하여
깨닫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질문해도 답하지 않고
그 책을 덮어 감추면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깨닫지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그게 과연 천주가 세상을
구제하는 뜻이란 말입니까?
종구 이게 230여년 전 당시 지식인들이 문제로 삼았던 예수에 대한
질의 응답 편지글 일부인데요. 요즘 말로 ‘응답하라 예수여!’
순암 안정복의 간절한 구도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구절이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안정복과 예수’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성탄일에 대한 고사— 이유원과 조두순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 시간이죠?
종구 성탄절을 앞두고 있죠. 그래서 옛 사람들과 성탄에 얽힌 고사
잠시 돌아볼까요?
희은 지금은 성탄이란 말이. 아기예수 탄생에 주로 쓰고 있잖아요.
예전에도 이 ‘성탄’이란 말을 썼나요?
종구 천자의 나라에서 천자가 탄생한 날을 ‘성탄’이라 했었죠.
우리 같은 주변 나라에서는 중국 천자의 생일날을
축하하기 위해 하정사라는 사절단을 보냈구요.
희은 그럼 우리 임금의 탄신을 때는 ‘성탄’ 소리 못했었나요?
종구 만세도 천자의 나라에서만 ‘만세 만세’ 하고 주변국에선
‘천세 천세’ 불렀죠. 그것도 우리 고종황제 때 우리도 실컫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구요. 성탄 소리도 예전엔 못했죠. .
희은 우리 대한제국 시절에 만세도 실컫 부르고, 황제의 탄신일을
성탄의 날로 축하하기도 했었군요. 그 전에는요.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에는 성탄일 어떻게 보냈나요?.
종구 중국 황제 생일날이 성탄일이었죠. 선물보따리 싸들고 가고,
문장가들 축하글 올리고. 여기 다산 정약용이 중국에 사절단을
보내는 <하정고 서> 몇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당 현종 2년에 신라가 급찬벼슬의 박유를 보내어
천자 생일을 축하했고, 11년에 신라의 하정사 김무훈이
다녀왔으며, 당 현종 때 신라와 발해가 해마다 천자 생일을
축하해 줬다. 고려가 송 나라에 대해서는 으레 성탄절을
하례하였고~~~
종구 바로 그 구절에 ‘성탄절’이란 말이 나오고 있죠. 다산이
이 ‘성탄절’이란 말을 쓴 것은 ‘고려가 송나라 천자 생일에
축하 사절단을 보냈다’ 그 시절은 성탄이란 말이 ‘천자의 생일’
이란 뜻으로 쓰였던 걸 알수 있죠.
희은 그럼 우리나라 임금 탄신일에는 ‘성탄’이란 말 못 썼던건가요?
종구 그게 조선 중기 인조 때 와서 마침내 우리도 임금 생일날을
성탄으로 쓰는 말이 나왔구요. 고종 때 이유원이 ‘고종생일을
성탄일‘이라 쓰자, 조두순이 깜짝 놀래 (의심) ‘성탄이란 말을
쓰다니 무슨 근거로 성탄 소리오?’ 이때 이유원이 말하기를
이유원(여-소신껏) ‘지금 대전마마 탄신일에 장수를 축원하는 글을
올리는데, 송나라 <책부원귀> 중 ‘성탄편’에 대전마마
탄신 때 성탄을 축하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근거가 없기는요?’
종구 이래서 구한말 우리 임금의 탄신일에도 성탄이란 말을 썼던
걸 엿볼 수 있는데요. 실학자 청장관 이덕무가 정조대왕 아들
문효세자가 홍역을 앓다 죽게되자 올린 만사의 글 잠깐 보세요
희은(낭송) 영조시대와 지금시대 성스러운 탄생 성탄복을 받았나 했더니
세자를 하늘로 데려가니 하늘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종구 예전엔 천자의 생일로 썼던 성탄, 조선후기들어 우리인들 ‘성스러운
탄생’이라 못하랴. 썼던 ‘성탄’. 아기예수 오신 ‘성탄절’이 다가오고있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성탄절’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 유행이나 명예 명성 같은게 그런 특성을 잘 탄다.
우리 선비사회에 고려 김황원이 남긴 평양을 그린 두구절을 가지구 그렇게
절창이다. 그 보다 더 좋은 평양묘사는 없다. 난리법석을 쳤는데. 한편으로
그걸 깨고 싶은 생각도 든다. 도대체 한번 보자.
長城一面溶溶水 긴 성 한쪽으로 늠실늠실 강물 흐르고
大野東頭點點山 넓은 들 동쪽 머리엔 점점이 산이로다
이게 평양을 묘사한 절창이라는데, '아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절창이냐'
치고 나선 연암 박지원 말이 맞다고 본다. 댓구로 따지거나 형식미로 따진다면
그 겉치레에 일면 의미가 있다 하겠으나, 이 미완성 두 구절을 가지고 조선시대
선비들이 왜들 그렇게 말이 많았는지. 그럼 날더러 남은 두 구절 이어서 써 봐라.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내가 평양을 그리 연모하고 사랑하는 맘이 없는데
내가 왜 억지 춘양 노릇을 하겠나?'
춘향가에도 인용된 김황원의 미완성 평양 노래, 우리가 진정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 평양 경치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습 아닌가? 그들이 지금 어찌
사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앞으로 그들과 이웃사촌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차라리 이게 오늘의 문제다 싶어 춘향가 한구절 빗대서
슬쩍 던져 본 말이라고 봐 줬으면 싶다. 요즘도 한시 좀 짓는다 하는 반쪽 선비들
이 미완성 뒷구절을 자기가 노래해 봤노라. 가보지도 않은 평양타령 늘어논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행여 당신 작품을 누가 알아 줄까? 허깨비 요행수 바라지 말구
평양의 봄날 우리가 대동강에서 사진 한장이라도 찍고 오는 그날을 기도나 해보라고.....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춘향가 중 광한루 구겅 長城一面溶溶水’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사설여행’ 자리이죠? 어떤 구절인가요?
종구 춘향가에도 나오고 경기 선소리 앞산타령에도 나오는
이 한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다른 소리에서도 인용하기도
하는데요. (성독조) 장성일면 용용수요/ 대야 동두 점점산이라
희은 그 구절이 춘향가에도 나오고 경기 선소리 산타령 앞산타령
에도 나온다구요? 어떤 내용인가요?
종구 긴 성곽 한쪽으로 대동강 물결 용솟음쳐 흐르고
평양의 넓은 들 동쪽으로 점점이 솟은 산이로구나.
희은 평양과 대동강을 배경으로 지은 구절이군요.
이 구절이 어째서 그렇게 유명해 졌대요?
종구 고려 때 김황원이란 분이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서
그 두 구절을 지어 놓고 뒷구절을 잇지 못하고 남긴 미완성
노래거든요. 후세 사람들은 참 절창이다. 미완성이라 아쉽지만
희은 한문으로 음미하는 맛이 있겠지만, 그렇게도 멋진 구절인가요?
종구 한시 운율로 봤을 때, 서로 댓구를 이루는 조화로 보나
묘사하는 운치로 봤을 때, 평양경관 묘사로는 절창이다. 했었죠
그래서 후세 이름난 문장가들이 그 ‘장성일면 용용수/’ 구절
뒤를 잇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구요. 여기 보세요.
조선 정조대왕 때 판서 이만수의 홍석주가 남긴 건데요.
희은 (낭송) 늘어선 일만 집집에 누대는 하늘 중천에 솟았고
사시에 풍악 소리는 달 속으로 돌아가누나/
황학 천년에 사람은 이미 멀어졌는데 /
석양에 뱃사공은 흰구름 사이로 돌아오네 /
종구 많은 시인묵객들이 고려 때 김황원이 평양 대동강 부벽루에서
노래하다 그친 미완성 노래를 완성해 보려고 했던거죠.
이 ‘장성일면 용용수/ 대야동두 점점산’ 이 김세종제 춘향가 중
방자따라 광한루 구경 때, ‘앉었다 일어서’ 대목에 나오죠.
희은 김세종제 춘향가, 강산제 보성소리, 그 유파 춘향가 사설에
나오는 이 구절은 그럼 남원 광한루 풍광도 멋지다 그런 뜻?
종구 남원의 멋진 풍광을 이리 저리 풀어나가면서 슬쩍 이 구절이
끼어들죠. 그리고 그네타는 춘향 그림으로 넘어가는데요.
‘장성일면 용용수/ 대야동두 점점산’ 같이 멋진 풍광이 남원이라
없을 소냐? 그런 역설이기도 하죠.
희은 긴 성을 끼고 용솟음쳐 흐르는 대동강에/ 넓은 들판은 동쪽으로
점점이 산이로구나/ 이게 꼭 평양 대동강 쪽만 이런 그림일까요
종구 그래서 연암 박지원이 이 구절에 쓴소리를 남겼죠.
‘대동강이 무슨 장강대하라고 용용수라 한단말인가? 그리고
평양동쪽으로 무슨 평야가 있다고 ‘넓은 들판-대야’ 소린가?’
희은 그렇게 쓴소리 남긴 분도 있지만, 판소리 춘향가나
선소리 산타령 앞산타령에도 등장하는 유명구절이됐군요.
종구 그림 같은 그 대동강변 요즘 풍광을 보고도 그리 노래할 수 있을까요
여 ‘고전기행 사설여행’ ‘장성일면 용용수’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동지잠 이야기는 여타의 생각들 접어두고, 우선 열아홉의 노숙함. 그걸 잠시
돌아보자는 뜻이다. 이상정이 퇴계학통을 이어서 어떤 연구실적과 반듯한 일생을
살았는가는 따로 논평할 일이다. 그때 열아홉 청년이 이토록 원숙한 자기 성찰을
했던 풍토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요즘 열아홉이면 잘해야 대학1학년생이다.
근데 이상정은 열아홉에 한해를 보내면서 자신을 향해 매우 준엄한 자기 성찰의 글을
꽤 길게 남겼다. 여기에 그의 <동지잠> 전문을 공개하는 건 오히려 번거로울 뿐이다.
요즘 열아홉 청춘에게 묻고 싶다. 첨단 문명의 세기에 그대들 보다 원숙한 정신으로
자신을 촘촘하게 비판하면서 준엄하게 나무라며 목표 설정을 일신한 그런 옛사람이
아직도 쿠태의연하게 보이냐고?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이상정의 동지잠 중 日新箴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 어떤 구절인가요?
종구 앞전에 조선 영조 정조 때 이상정과 동지잠 고사 돌아봤었죠?
희은 옛 선비들은 동지 무렵 자신을 반성하는 잠언을 쓰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는 게 생각나는데요.
종구 그렇죠. 이상정은 안동출신으로 영조 때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퇴계선생의 학통을 깊이 연구했던
학자로 살았거든요.
희은 과거에 합격했는데 벼슬길 사양한 것은 학문을 연구하겠다
그런 의지로 봐야 할까요?
종구 그렇죠. 오늘 그 이상정이 열아홉 동지 무렵 자신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남긴 ‘일신잠’ 몇구절 돌아볼까요?
희은 (낭송) 탕 임금도 세숫대야에 일일신 우일신 새롭거라 외쳤지.
증자가 기록하기를, 자신도 새롭고 백성도 새롭게 하라 했지.
새롭게 함은 어찌 함인가? 낡은 습관 개혁하고 본성을 찾아야지
타고난 좋은 성품 회복하고 나면 하늘 이치도 화목하고
조화롭게 물욕에 종이 되지 않는 법이라/
이게 영조 때, 열아홉 이상정 글이라구요?
종구 그 푸른 청춘에 이런 글을 지어 성찰한걸 보면
옛 사람들이 얼마나 일찍 세상사는 도리와 자기 수양에
일찍 눈을 떴는지 짐작할 수 있죠. 여기선 일신하라.
일신했다는 그곳에서 다시 또 일신하라며 채찍질 하고있죠.
희은 무슨 일을 새롭게했다. 일신했다. 이런 소리는 지금도
우리가 쓰고 있는 살아 있는 구절 아닌가요? 열아홉 이상정이
이토록 자신을 향해 일신하라 또 일신하라. 외치는 뜻이 뭘까요
종구 낡은 습관을 개혁하고, 좋은 성품을 회복하자는 목표가
뚜렷한 외침이기도 하죠. 사람마다 타고난 좋은 성품들이 있다.
그 성품을 살리고 못된 습관을 개혁해야. 남에게 사표가 되고
남을 선도하거나 다스릴 수 있다는겁니다.
희은 옛 선비들이 겉치레로 점잖을 빼고 예의바른 척 했던게
아니라. 속으로 이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행실을
고치는 수양을 했던데서 우러난 행실이었군요.
종구 그래서 이상정은 동짓날 다가오는 새해를 앞에 두고서
현재 자신이 가장 경계할 점이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
일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철저히 성찰했던겁니다.
여기 이 부분 계속 살펴 볼까요?
희은 (낭송) 내 맘부터 바르게 하고 지향하는 뜻을 성실히 실천하라/
이 마음을 바깥으로 미루어 남에게 미치면, 집안과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지니~~~
종구 어떻습니까. 이게 예전 열아홉 선비의 신년 새해를 앞둔
자기 성찰의 좌우명 이었던겁니다. 자기를 철저히 반성하고
곧게 실천해서 남과 사회로 펼쳐 나가자는 이 정신으로
새해맞이 어떨까요?
희은 ‘고전의 샘터’ ‘이상정 일신잠’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마의 해라 말 이야기를 몇번 돌아봤다. 우선 실학자 이덕무가 남긴 한 구절
買馬獻陛下 '나는 말을 사서 전하께 바치려네' 얼른 보면 임금한테 말로 뇌물 쓰련다.
그렇게 보일 것이다.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처럼 '만약 지도자가 죽을 말 뼈다귀도
사준다면 천리마가 절로 모여들 것이다!' 인재가 모여들게 하자. 진정 국난을 헤쳐갈
인물이 나서게 하자는 게 이덕무의 뜻이다. 이덕무가 임금에게 말을 바치겠노라 했던건
뇌물이 아니라. 시대를 구할 인재를 말하는 것이다. 새해 우린 기다리고 있다.
어려운 때를 진정 사심없이 멸사봉공 위국헌신하는 자세로 일할사람, 그 기다렸던 인재들이
몇이나 등장할 것인가?
백마타고 오실 님 기다렸더니/ 땅바닥에 고개 박으라 외치는 말탄 놈들
청마타고 오시는 님 손꼽았더니/ 내 낮바닥 새파래 지도록 분탕질 세상이라면
청룡인들 날아올까 봉황인들 나오실까......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이덕무의 <말 사서 바치리> 買馬獻陛下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고전기행 편이죠. 오늘은 어떤 구절을 고르셨나요?
종구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때이죠. 더구나 내년엔
갑오년 청마의 해, 말띠잖아요. 그래서 청장관 이덕무가 남긴
‘매마 헌 폐하’ 한구절 돌아볼까합니다.
희은 청장관 이덕무가 남긴 ‘매마 헌폐하’ 궁금하네요. 청장관이라면?.
종구 청장관은 이덕무의 아호이구요. 조선 정조 때 규장각이란
도서관에서 서적을 편찬 연구했던 실학자였죠. 서자 출신이라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지만 정조대왕이 그 재주를 아껴서
규장각이란 도서관에서 검서관으로 일하게 해줬구요.
희은 그 시대에서 법을 넘어서서 인재를 아낀 정조대왕, 그 덕에
조선후기 서적편찬사업이나 연구사업이 잘 진행됐겠군요.
종구 서자 출신에다 몸도 약하고, 가난해서 제대로 배울 길도
없었지만 이덕무는 스스로 힘으로 공부 해서 마침내
정조대왕이 아끼는 인재 대접을 받았던겁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서적 중에 <청장관전서> ‘청비록’ 이 구절 한번 보세요.
희은 (낭송) 이기는 권세가에게 줄창 뇌물 바쳐 출세했고/
전의는 황제 옆에 환관에게 선물 보내 감투 썼더라/
난 다르고 말고/ 말 한필 사서 임금께 바치리라/
종구 바로 그 구절이 ‘매마 헌 폐하’ 대목이거든요.
희은 앞에 두 사람을 끌어왔군요. 이기란 사람과 전의는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종구 당나라 때 뇌물 쓰고 출세한 이기란 사람, 황제곁에 내시한테
선물 바친 전의란 사람.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인
뇌물과 선물로 벼슬자리 사고 파는 자들 이야기죠.
희은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안한다. 말을 사서 임금에게 바치겠다.
왕에게 직접 선물하겠다는 소린가요?
종구 거기에 흥미로운 고사가 있죠. <전국책> 연책편에 이런
이야기가 전하거든요. ‘곽외란 사람이 말하기를 <한 임금이 거금을
내려서 천리마를 사 오너라. 했는데 한 사람이 죽은 말의
뼈를 가져와 말하기를
책사 (여-) ‘지금 죽은 말도 사들인다면 앞으로 천리마를 팔려는 자가
수없이 찾아 올 겁니다. 임금께서 저 같은 사람을 인재로
대접하면 천하에 이 곽외보다 잘난 인재가 수도 없이 찾아 올
것입니다요.
종구 청장관 이덕무가 말을 사서 바치겠노라 했던 말은 바로 이거였죠
‘저 정도 백마 흑마가 대접을 받는다니. 그 보다 잘난
이 말을 한번 보십시오~~’ 하고 인재들이 몰려 들 길을
트겠다는 소리거든요.
희은 이기는 권세가에게 뇌물을 썼고, 전의는 환관 내시한테
선물을 바칠 때 청장관 이덕무는 ‘말을 사서 바치겠노라’ 이 말은?
종구 결국 인재들이 몰려 들 출구를 마련하겠다는 뜻이죠.
자, 갑오년 청마의 해가 오고 있습니다. 천리마 인재들도 함께
달려와야 할 새해 아닌가요?
희은 ‘말을 사서 임금께 바치겠노라. 인재들이 줄지어 등장하게 하자’
‘고전기행 사설여행’ ‘이덕무 청비록’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제야의 노래들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고전 속에 오늘을 생각하는 자리, 오늘은 어떤 구절인가요?
종구 우리 선인들이 제야의 밤, 섣달 그믐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신년맞이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잠시
돌아볼까요? 여기 조선 중기 문신 상촌 신흠의 ‘제야의 노래’
한번 보세요.
희은 (낭송) 타향살이 두메산골에서 제야의 밤이라니/
작은 등불 앞에 질화로 향도 다 타버렸구나/
괴로운 나그네 심사를 이 산골 사람들이 어찌아랴/
윷을 던지고 소리치면서 엽전 따지는 소리 없구나/
종구 타향에서 제야의 밤을 맞이한 상촌 신흠이
작은 등불 앞에서 질화로에 향을 사루면서
조용히 한해를 마무리 하는 모습이죠. 그 동네 사람들이
나의 괴로운 심사를 어떻게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한쪽에선 윷을 던지고 소리치고 요란한데
홀로 깊은 상념에 잠긴 상촌 신흠의 송년 모습 떠오르죠.
희은 그땐 화롯불 잔불에다 향도 사루고 그랬나 보군요.
요즘 제야의 모습도 다르지 않겠죠. 한쪽에선 떠들썩하니
후끈 달아 오른 모습이지만, 그늘진 한쪽에선 깊은 한숨과
외로움, 고통을 달래는 분들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종구 여기서 잠깐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가
해넘이를 어찌 했는지 돌아볼까요?
희은 ‘적벽부’의 그 소동파 말이죠. 소동파의 송년 노래는
우리네 정서하고 어땟을까요?
종구 (낭송) 벗님네 천리길 떠나려는가?
이별할 자리에 머뭇머뭇 거리기는.....
사람이야 가도 다시 올 수 있잖수
다만 오늘 이 해가가면 언제 또 보겠수?
희은 이별을 앞두고 머뭇거리는 친구에게 슬쩍 너스레를
떠는군요. 사람이야 떠났다가 돌아오면 되지.
근데 이 가는해는 한번가면 언제 또 만날 수 있겠는가?
종구 그 친구와 보낸 시간, 함께했던 세월이 가고 있는 걸
돌아보게 해주는 소동파 송년시인데요.
(성독조) ♬인행 유가복이나/ 세행 나가추오~~~
사람은 가도 다시 오면 된다. 근데 한번 간 이해는
언제 다시 만나보겠느냐? 다시 우리 선인들 제야의 노래볼까요
조선 중기 청음 김상헌의 송년 시 몇구절 여기보세요. .
희은(낭송) 흰 기러기는 구름 너머 소리 전해 주고 / 白鴈已傳雲外響
다듬이는 다시 달빛 속에 옷을 두드리는데 / 靑砧更擣月中衣
하늘 운행 끊임없고 사람일도 돌고 도네 / 天機袞袞兼人事
가는 세월 전송하며 어디로들 돌아가는가? / 催送年光底處歸
종구 병자호란 때 침략자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 외쳤던 김상헌.
그 송년을 마음을 엿보게 해주는 구절이죠. 사람 사람들이여.
이 가는 세월 전송하구서, 우리 함께 돌아갈 평안한 곳은 어딘가?
역시 가정이요. 내 나라 내 땅 밖에 더 있겠소. 묻는 구절이기도하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송년노래’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옛 선인들의 새해맞이 노래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갑오년 새해 첫날입니다. 오늘 고전기행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네요.
종구 옛 선인들도 새해 첫날에는 각별한 감회를 시로 지어
노래했구요. 편지글로 지인들과 남다른 정취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여기 고려말 목은 이색이 만년에
외롭게 맞이 한 새해 모습 잠깐 보세요.
희은 (낭송) 궁벽진 조용한 곳에 다시 맞은 새해라니/
찾는이 없어도 홀로 조용히 향을 사룬다/
난간 앞에 소나무가 제일 반갑고 말고/
이끼가 따뜻한 곳을 찾는지 방으로 기웃거리네/
저 창에 비친 새해 첫날 해는 누굴 위해 더디 가는고?
종구 목은 이색이 만년에 궁벽진 촌에서 맞이한 새해 첫날
개성에 있었더라면 찾아 오는 사람들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을 것인데. 기울어 가는 고려의 황혼녁을
바라 보면서 쓸쓸히 맞이한 목은 이색의 새해 첫날 모습이죠.
찾는 사람 없어도 홀로 향을 사루며, 난간 앞에 소나무가
그래도 반갑다고 위로 하구요. 따뜻한 곳을 찾아 오르는
이끼마저 지긋이 웃음짓고 바라보는 목은 이색의 새해첫날
적적함 속에 감도는 맑은 기상이 엿보이죠.
희은 새해 첫날 해가 누구를 위해 저리 더디 갈까.
그 구절엔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외로움 같은게 느겨지는데요.
종구 그렇죠. 북적북적 거리는 사람들 속에 웃으며 환담을
나누다 보면 중천에 떴던 해도 어느새 저물고 그렇게 훌쩍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됐을텐데. 적적하게 맞이 한 새해 첫날
더디 가는 목은의 시간이 느껴지는 대목이죠. 여기
조선의 문신 서거정이 새해 첫날 감회를 노래한 작품 보실까요
희은 (낭송) 어제 밤 섣달 그믐날 대궐에서 요란도했지/
배우들 가면 쓰고 재액 막기 나례 놀음도 하고/
봄날도 오겠지. 대궐 태액지 연못에 저 누런 버들잎에도/
새해 되니 소양 정원 매화 피어 백설 빛이구나/
백관이 신년새해 하례할 때, 천둥같은 숭호소리 진동하리/
종구 조선 시대 섣달 그믐날 대궐의 풍속도가 얼핏 보이죠.
그땐 나례를 행했는데요. 대궐에 각종 가면을 쓴
배우들이 새해맞이 액막음 놀이를 했거든요.
희은 가면 쓴 배우들이 제야의 밤에 대궐에서 나례라는
액막음 굿을 하고 놀았다니 흥미롭군요. 어떡게 놀았을까요?
종구 십이간지, 열두개의 신들로 변장한 가면 배우들이
한달 한달. 재난과 액살을 막는 나례굿을 펼쳤던건데요.
서거정이 맨 뒤에 노래한 구절 있죠.
희은 (낭송)백관이 신년새해 하례할 때, 천둥같은 숭호소리 진동하리/
이 구절 말이죠? 숭호 소리가 뭔가요?
종구 대궐에서 신년하례 때 백관들이 새해 새날 새 기운을 힘껏
불러 들이면서 만세 삼창을 하면서 태평성대를 축원했던건데요
2014년 새해, 태평성대 축원하는 마음으로 만세 삼창
함께 불렀으면 싶은 오늘 아닌가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새해노래’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청마고사 —유총병과 청총마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고전기행 오늘 어떤 구절인가요?
종구 새해부터 청마가 화제에 오르고 있죠. 갑오년이 청마의 해다.
60년만에 오는 청마띠에 대한 기대감도 대단하구요.
희은 백마의 해다. 청마의 해다. 그런건 뭘 근거로 결정되는건가요?
종구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를 보통 10천간이라구 하죠.
여기에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십이간지가 서로
돌고 돌아 육십갑자가 되구요. 근데 백마의 해다
청마의 해다. 말하는 근거는. 그 갑을병정으로 나가는
천간에 각각 색깔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거든요. 여기 보세요.
희은 색깔배치로 보면 갑을은 청색에 해당되는군요.
병정은 적색이구요. 갑오년이니깐 갑이 청색이고.
그래서 청마의 해가 되는거군요.
종구 만약 경오년 말띠다 싶으면 경이 백색이니깐 그 경오년은
백마의 해가 되는 셈이죠. 여기 우선 청마띠 갑오년과 관련된
기분 좋은 고사 한구절 돌아볼까요?
희은 지나간 갑오년 중에 기분 좋은 갑오년, 슬프고 한 맺힌
갑오년 돌아 볼 일들 많을텐데요. 기분좋고 기세 오르는
갑오년이라면 어떤해였을까요?
종구 고려 성종 13년이 갑오년이었거든요. 서기 994년이었던
그해 갑오년에는 서희가 전쟁없이 외교적 담판으로
거란족 소손녕 80만 대군을 물리치고, 그 여세를 몰아서
압록강 동쪽에 강동육주를 건설해서 우리 국토를 넓힌 해였죠.
희은 올해도 우리 국운이 그렇게 펼쳐졌으면 싶은 갑오년이길
빌어야겠군요. 그런데 갑오년에 동학란도 일어났고 그랬잖아요.
종구 개혁을 해야했던 갑오년 시대도 있었죠. 여기 잠시
임진왜란 다음해 청총마, 청마와 관련된 고사를 돌아볼까요?
명나라 구원병 4만을 이끌고 들어 온 총병 유정이 조선의
선조임금에게 이런 요청을 올렸거든요.
희은 (낭송) 저는 작은 말 보다 크고 흰색 바탕에 갈기와 꼬리쪽이 푸른
청총마를 좋아합니다. 대왕께서 조선의 청마를 내려 주신다면
그 청마를 타고서 왜적을 무찌르는데 앞장 서 달릴 것입니다.
종구 이게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 11월에 명나라 구원병을
이끈 총병 유정이 선조대왕에게 조선의 청마를 내려 달라
요청한 부분인데요. 그 말을 타구서 왜적을 쓸어 버리겠다.
희은 명나라 총병 유정이 조선의 청마를 요청한걸 보면, 우리
청마가 승리하는 명마란 뜻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종구 바로 올해 우리가 각각 이 승전의 말, 청마를 타구서
열두달을 힘차게 달려 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 ‘고전기행 사설여행’ ‘갑오년과 청마고사’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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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년 초 부터 <작심3일> 갈등하는 분들이 많을 때다. 담배 끊어보자며...
내게도 서글픈 친구가 있다. 작가에겐 운명보다 질긴 빈대가 있다. 담배다.
때로는 석삼년 넘게 절교 했다가도, 글을 쓰다 타는 속을 담배불로 달랜다.
세상도 타고 내 가슴도 따겁게 타들어가는 그 찰라에 소식이 온다.
그냥 책상 앞에서도 오는 소식이련만, 그때 온다고 믿는다. 그럼 뻐끔뻐끔
붕어새끼 물 쳐 먹듯이 급히 빨고 돌아가 서둘러 글질을 한다. 그리구 후회한다.
세상이 날 태우는데 니놈까지 내 폐를 그리 태울 일 뭐냐고?
돌아보니 다산 선생도 귀양살이를 담배로 달랬다구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일본에서 들어 온 담배가 계곡 장유의 말을 빌리면 백사람 중
한사람이나 안 필까. 남녀노소 담배질 천지다. 한탄한 소리다. 그땐 중국사람도
담배가 어디에 좋니, 어디에 약이라느니 하면서 태워댔고. 보다 못한 장유가
했던 말이 지금도 유용하다. '저 독한 것이 폐를 상하게 할 텐데 몸에 좋다니.....'
난 올해도 사실 담배랑 싸워야 할 사람이다. 그냥 바라봐도 보이는 만치 보일
세상인데. 꼭 담배를 쳐 물어 빨아야 알딸딸하니 세상이 더 보인다는 착각도
접어야겠다. 지금 이 정도 몸이라도 보중함이 늦지 않으리라 다둑이면서
저놈과 올해 절교를 해야지 입술을 질끈 깨물어 본다. 참 몹쓸 절친이라니.....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담바귀 타령과 다산의 담배노래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사설여행인가요?
종구 우리 경상도민요에 담바귀타령이있죠.
희은 새해 금연하자. 담배 뚝 끊으신 분들, 담배생각 나면 어쩌려구?
종구 지금 와서는 담배가 지닌 폐해가 얼마나 큰지. 다 드러났지만
역사를 보면 조선 중기부터 담배에 대한 기록이 늘어나죠.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귀양살이 시름을 담배로 달랬구요.
희은 다산선생이 애연가였단 말인가요? 고달픈 귀양살이를
담배로 달랬다 그건가요?
종구 여기 다산시문집에 실린 <연>이라는 ‘담배’ 노래 보세요.
희은 정말 다산 선생도 담배노래를 남겼군요.
(낭송) 새로나온 담바고야/ 귀양살이에 니가 제일이지/
가만히 빨면 향기가 물씬/ 슬그머니 내 뿜으면
실이 되어 간들 간들/ 아 이 봄날이 어찌 이리 지루할꼬~~~
종구 보세요. (성독조) 춘일 갱 지지러라.
‘이 봄날이 어찌 이리 지루하고 더디 가는고?’
그걸 담배로 달랬더란 노래인데요. 그 당시엔 담배 피해가
어느정도인지 정확히 몰랐었죠. 담배 들어오자 상하를
가리지 않고 급속하게 퍼진 유행을 막을 수 없었구요.
희은 지금 같이 담배가 건강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알았더라면 옛 사람들도 그렇게 마구 담배를 피지 않았겠죠.
종구 조선 중기 문신 계곡 장유가 남긴 담배에 대한 글을 보면
그 당시 중국에서도 급속히 담배가 유행했던 걸 엿볼 수
있는데요. 계곡 장유는 나름 담배에 대한 진단을
꽤 사려 깊게 했었죠. 여기 ‘남령초 흡연’이란 글 보세요.
희은 (낭송) 일본에서 왔다는 담박괴. 지금은 위로 공경대부에서
아래로 초동목수까지 피워댄다. 본초강목에도 나와 있지 않은
담배. 맛을 보니 독기가 있는 성 싶은데도 담배 안 피우는
사람 보기가 백사람 중 하나 볼까말까 싶을 정도다.
중국에선 연주니 연다라고 하는데, 담배가 독하고 열이 있어
마침내 폐를 상하게 할텐데, 엉켜 있거나 응체된 기운을
풀어 준다고들 한다. 이게 이치에 맞는건지 모르겠다.
종구 계곡 장유의 말로 보면 담배가 들어 온 시점이 15세기 쯤으로
짐작 되는데요. 장유는 폐를 상하게 할 것이란 걸
나름 진단하고 있거든요. 그 당시 담배열풍은 남녀노소
안가리고 대단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기록이죠.
희은 그래서 훗날 ‘담바귀타령’이 나오기도 했던거군요.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는 고달픈 귀양살이 달래준 친구였구요.
이름이 담바고, 담바괴, 담바귀 그렇게 부르기도 했군요.
종구 한때 정조대왕도 담배를 널리 권장하자는 말을 했을 정도였죠.
모르고 피웠던 담배, 그 해악이 이제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분들. 새해 1월 다시 금연 시도해~~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담배’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요나 잡가에 가사들을 보면서 때로는 되는대로 막 갖다 붙여놨구나. 했다가도
뭔가 스토리가 있다는 데 눈길을 멈추게 된다. 왜 그 사설을 넣었을까? 왜 그 가사가
살아남아 있는 것인가? 사라진 사설들, 그리고 살아 남은 사설들 존재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요즘은 살아 남은 사설들과 이야기를 해본다. 조금 엉뚱한 대화법이지만
그 가락을 흥얼 흥얼 불러 보면서 '넌 왜 그 모양으로 거기 있는건데?' 그럼 가사는
이렇게 응답한다 '넌 흉내쟁이지만 난 그 시대를 살았거든, 내가 산걸 모르면 말을 마'
맞다. 그 사설이 생긴 시절을 나는 살거나 뼈저리게 아파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민요나 잡가 하다못해 지금도 입에 줄줄 외우는 시조사설도 사실은 오래된 남의 이야기라
선뜻 감동하지 않다가 글자 너머 그들이 살았던 시절로 상상여행을 하고 보면
조금씩 문이 열린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나 펄썩 나지요. 이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안난다' 이 경기민요 가사는 해방이전 일본놈들 압제 속에 끙소리 못하고
살면서 가슴 속에 김도 못 내고 벌겋게 타 들어간 그 시절을 안 살아 본 사람이면
석탄백탄 가사에 감동하겠는가? 그 시절을 상상이라도 하면서 다시 봐야 석탄백탄보다 더
뜨겁게 탔을 빼앗긴 나라에 대한 분노와 설움 한이 느껴지는 거 아니겠는가?
선소리 산타령 '잦은 산타령'에 들쭉 날쭉하는 사설들. 그도 청산에 드러누운 <자부송>
눈길로 돌아보자는 거다. 누웠지만 차마 눕지 못할 그 소나무처럼, 그 산타령 가사에다
춘향전, 심청전, 적벽가 이야기까지 누벼 넣고 싶었던 차마 잊혀져선 안될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주자는 이야기다.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잔소리가 이리 기니
누가 이런 글에 눈길을 줄까 싶다. '잦은 산타령' 첫번째 구절에 등장하는 드러누운
<자부송> 소나무에 산타령 이야기들을 푸는 단서가 있다고 봤더란 소리다. 해석하는
자의 눈길 따라 마음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수 있을 것이나. 난 느낀다. 민요나
잡가에 차마 없애 버리지 못할 이야기들이 시대가 변해도 아우성 치는 소리들을 느낀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자진산타령에 판소리 이야기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사설여행 자리인가요?
종구 경기 선소리 산타령 중에 자진산타령 구절들 잠시
돌아볼까요.
희은 선소리 산타령 중에서 자진산타령 어떤 구절인가요?
종구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산타령으로 이어지면서
한양의 산세며 유명한 산을 쭈욱 늘어놓구 있는데
오늘 돌아볼 잦은산타령을 돌아보자 그겁니다.
희은 놀량에서 잦은산타령까지 등장하는 산 이름이랑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자면 시간이 모자랄텐데요.
종구 우리 산타령에도 이야기가 있다. 산처럼 변하지 않고
전해질 사람들이 있다. 사라질 듯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사연이 있다. 이걸 잠시 돌아보자는건데요. 이 구절 보세요.
희은 ‘잦은산타령’ 시작하는 구절이군요. (낭송) ‘청산의 저 노송
자부송은/ 너도 어이 누웠느냐 풍설을 못 이겨서 꺾어져서
누웠느냐/ 바람이 불려는지 그 지간 사단을 뉘 안단말이오.’
종구 그렇게 시작하는 자진산타령에 등장하는 자부송을 한번 보세요.
산에 오랜 세월 절로 절로 누운 듯이 버티고 선 소나무가
‘자부송’이거든요.
희은 ‘절로 누운 듯 서 있는 자부송’ 이 ‘자진산타령’ 첫구절로
등장하는군요. 여기에다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건가요?
종구 오랜 세월 우리 땅을 지켜 온 산 산마다 절로 누운 듯이
결코 쓰러질 수 없는 사연들,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수도 있는데요. 흥미롭게 자진산타령에
단가와 심청가 춘향가 적벽가 이야기가 등장하거든요.
희은 이 잦은산타령에 강화도 마니산 이야기며, 경주 토함산,
강원도 금강산이 등장하는데, 판소리 이야기가 엮어져 있다니요
종구 ‘잦은 산타령’에 ‘임당수 깊은 물에 어선도 끊어지고’ 이렇게
시작하는 사설은 심봉사도 등장하고 있는데요. 그 뿐만 아니라
‘항쇄 족쇄 벗겨주면 걸음이나 걸어보지 옥문 밖을 내놔 주면
세상구경이나 하여볼까~~ 이 대목은 어떤 이야기 같나요?
희은 옥방에 갇혀 있는 춘향이 심정을 대변하는 거 같은 분위기
같은데요. 날 좀 풀어 주소. 그럼 훨훨 날아 이도령을 만나
보겠네 그런 이야기 아닌가요?
종구 그건 춘향가 이야기가 들어온거구요. 잦은 산타령 맨 뒷구절에
(낭송) ‘공명이 갈건야복으로 남병산 상상봉에 칠성단 도도모고’
이건 적벽가 남병산 대목 이야기가 잦은 산타령으로 들어왔죠.
이래서 우리 선소리 산타령에는 그냥 산만 있는게 아니더라.
쓰러질 듯 누운 자부송처럼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희은 산처럼 유구하게 전해질 사람과 그 이야기들을 함께 아울러
노래하고 있는게 선소리 산타령 아니냐 그 말씀이군요.
‘고전의 샘터’ ‘잦은산타령 판소리 이야기’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