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티토 유고 대통령’ 이 사망하자 유고슬라비아는 커다란 혼돈으로 빠져 들어갔죠.
글다 소련 붕괴 후 1991년 ‘슬로베니아’ 와 ‘크로아티아’ 가 독립을 선언하고,
1992년 3월 국민투표를 통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도 독립을 선언하게 되네요. ㅎ
글나 ‘보 헤’ 내 ‘세르비아 인’ 들은 글 부정하고 세르비아 인의 나라인 ‘스릅스카 (Srpska) 공화국’ 을
세우려 하자 1992년 4월부터 1996년 2월까지의 기나긴 '보스니아 내전’ 이 발발케 됨다.
곧 ‘스릅스카 공화국’ 은 세르비아의 원조를 받는 ‘세르비아 민병대’ 를 조직하고
‘보 헤’ 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무차별적인 ‘인종 청소’ 를 자행케 되죠. ㅎ
‘보 헤’ 의 수도 사라예보는 세르비아 민병대의 포위를 받게 되는데, 십중팔구 포위선을 뚫고
오가기엔 어려움에 처하죠. 게다가 세르비아 민병대는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물품, 전기, 수도 등을 차단한 채 끊임없이 포격을 가해오고, 또 포위선 곳곳에 저격수를
배치하여 탈출하려는 많은 수의 사라예보 시민들이 희생됨다. ㅎ
글 보다 못한 UN 의 설득 끝에 ‘사라예보 공항‘ 만은 서방 항공기들의 착륙과 이륙이 허락되나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식량 등 구호품이 전달되기엔 역부족이네요.
글다 토목기술자인 ’Nedžad Branković' 이 포위선 안에 있는 사라예보 공항 인근 마을인
‘Dobrinja' 와 공항에서 가까운 마을인 ’Butmir' 사이 800여 m 의 터널을 뚫자는 계획을 냄다. ㅎ
마침 ‘Dobrinja’ 쪽은 터널의 입구가 아파트 내의 주차장에 은폐되어 있었고,
‘Butmir' 쪽은 ’Bajro Kolar' 이란 개인소유의 집을 통해 들어가는데,
이 계획에 따라 1993년 1월부터 6월까지의 쉼 없는 작업을 통해 터널이 뚫리게 되어 많은 식량, 보급품 등이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제공됨다. 글나 1994년 세르비아 민병대가 이를 알아차리고
입구 주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 터널 입구 외에 여러 통로를 망가뜨림다. ㅎ
그 후 ‘10년 전쟁‘ 이라 불리는 유고 내전이 끝나고 이 터널은 세인의 기억에 사라졌다가
나중 복원되었으며 ‘Bajro Kolar' 의 집은 사라예보 시민들의 고마움이 전달되어 ’Sarajevo Tunnel
Museum' 으로 지정돼 ‘보 헤’ 국민들이 하루에도 수 백 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네요. ㅎ
(사진 출처 : www.amusingplanet.com)
첫댓글 ... 그 당시 'ㅂ ' 의 구성원 중 '보스니아 인는 이슬람 교',
'세르비아 인은 로마 정교회', 그 밖의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을 신앙하는 ...
마지막 사진은 망가졋다 복원된 'Dobrinja' 쪽 출구네요. ^^